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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 친일의혹?

    맥가이범 / 2013-08-21 02:36 / Hit : 17392 본문+댓글추천 : 0

    늙으면 조용히 입다물고 있어야 하는데 점점 더 깊이 토론방에 발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상주 하시는 분들과 투쟁하여 승리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것이 아니고 말없이 토론방을 지켜 보고 계시는 수천명의 회원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좋게 평가 하시는 분들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배워야 할것이고 의혹이 있다면 풀어야 할것이고 잘못된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할것 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폄훼하려고 인터넷에 떠도는 거의 모든 글과 사진 동영상에 대한 반론이 실려 있습니다.

    년도 표시등에 약간씩 오기도 있고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말투나 용어가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어서 수정하거나 보충하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만,

    오기된 부분은 첨부된 사진자료보거나 링크를 따라가면 확인이 가능하니 원본에 충실하기 위하여 그대로 두겠습니다. 단, 금칙어로 업로드가 안되는 부분만 수정하였습니다.

    정독하면 두어시간 이상 읽어야 할 긴글입니다. 상식을 넓힐수 있는 좋은 글이니 천천히 다 읽어 보신후에 긍정을 하시거나 부정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반론글을 올리시는것은 토론방이니 당연한 것입니다만, 국정원 일베 친일파 지역 등등 서로 심기를 불편케 할수있는 말은 삼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월척 서버가 불안정 한것인지 저희집 인터넷이 불안정한것인지 가끔 사진이 x박스만 보이는 경우가 있네요.

    그럴때는 인터넷에 다시 접속하시거나 맨아랫쪽에 글쓴이가 참고한 링크가 있으니 완벽하진 않지만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읽다가 중지하면 왜곡된 정보가 될수도 있으니 꼭 시간이 되실때 읽어 주시기 바라며 오래된 자료라

    가끔 링크가 안되는것도 있지만 대부분 연결되니 시간의 여유가 있으시며 링크도 따라가 보시면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위인 박정희를 폄하하는 세력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실은 글입니다.


    글이 매우 길기 떄문에 시간내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를 폄하하는 것에 반박하는 방법보다


    박정희를 폄하하는 세력의 실체를 까바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지만


     


    이미 박정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므로


    그것부터 씻어 내리려고 합니다.


     


     


     



    1. 박정희 대통령의 교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문경 심상소학교 교사였습니다.


     


    그 시절 학생들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정순옥(鄭順玉)의 말)


     


    어느 일요일, 동무들 몇 명과 함께 새로 오신 선생님(박정희)의 하숙 집을 찾아갔다.
    호기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방을 살펴봤더니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데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영웅 나폴레옹"이라고 하시며 나폴레옹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다.

     


     


    4월 어느날 소풍을 가게 되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떠났다.
    선생님은 등산복 차림에 어깨엔 나팔을 메고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우리들이 장난을 치거나 줄이 흐트러지면 한 대씩 때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박 선생님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참 만에 그 아이를 건져내어 인공호흡을 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동안 둑에서 발만 둥둥 구르고 계셨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박 선생님과 일본인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놀게 되었다.
    그때 일본이 선생 한 분이 조선 여성은 예의가 없다느니,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물동이를 이고 다니느니 하며
    우리 나라 여자의 흉을 보았다. 이에 박 선생님은 우리들에게"너희들 저 말 잘 새겨 들어라.
    가난하고 무지하면 남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절대로 일본말을 쓰지 말고 조선말을 쓰자"고 했을 때
    우리는 철없이"조선말 쓰면 퇴학 당하는데 왜 그러세요"하고 반박한 기억이난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며 따랐다.
     

     


     

    (주영배(周永培)의 말)

     


     


    19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 과목을 가르치며 박 선생님께서는 "이 글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다.
    가정실습 때는 문경에서 1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다.
     

     


     


    (전경숙(全慶淑)의 말)

    박 선생님은 우리 집으로 하숙을 옮겼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를"모친"이라고 불렀다.
    식사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복장은 단정하였으며 출근은 빨랐다.
    언제나 숙제를 내주시고 철저히 검사하여 평가를 해주셨다.
    월요일마다 공책을 점검하시고 글씨를 바르게 쓰도록 지도해 주시고 일기와 편지쓰기를 장려하였다.
    5학년 20명과 2학년40명을 한교실에서 복식수업(複式授業)을 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했다. 
     

     


     

    말은 간단명료하였으며 청소에 신경을 쓰고 유리창, 천정의 거미줄, 화장실 청소를 철저히 시켰다.
    그리하여 청소도구를 완비하여 가지런히 정리 정돈되도록 하였으며
    책상의 줄이 비뚤어지고 환경이 지저분한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위인전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고 "너희들도 이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노래와 나팔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악대와 합창반도 조직하여 각종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가을운동회 때는 박 선생이 기마전, 기둥 넘기기, 공바구니 터뜨리기,텀블링을 지도하여
    관중들의 박수를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소풍 때 문경새재를 갔을 적에는 제1관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시고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은
    선생님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시던일, 발목을 삐어 걸음이 곤란한 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오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영태(李永泰)의 말)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 <황성옛터><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柳澤)와 말다툼 끝에 그가 <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인 순사 중에 오가와(小川)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논쟁을 벌였다.
    박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小川)가 무어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전도인(錢道寅)의 말)

    하루는 박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그때 일본인 청부업자 한 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와 박 선생님에게 "오이! 교장 계신가?"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일본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 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게 그러한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 국민으로 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되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 해도 무례하기 그지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 인간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어서 나가봐!"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황실광의 말)

    박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다.

    박 선생님이 일제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하다.
    학생 한 사람을 복도에 세워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 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것은
    박 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선생님의 별명은<호랑이 선생님>이었으나 자주 부르지는 못했다.
    나는 졸업 때 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이순희의 말


     


     

    일어 상용(常用)으로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는 수업시간에 몰래 조선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번은 둥근 원을 그려 그 속에 가로로 물결무늬를 그려 넣고는 
    “보기만 해! 이게 조선 국기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림을 찢어버렸는데 한 학생이 다른 반에 가서 자랑한 것이 
    일본인 교사 귀에 들어가 ‘불온교사’로 찍혔다는 것이다.

     



      


     


     


     


     


    2. 만주군관학교의 박정희


     


    좌파들의 주장 중에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들어갔으니 친일파라고 합니다.


    지청천 장군, 백선엽 장군, 김수환 추기경 이런 사람들도 일본군 출신이었으며


    워싱턴 대통령, 장개석, 간디도 영국군 출신이었습니다.


     


    일본군에 복무했다고 다 친일파로 모는 게 타당한 걸까요?


     



     


    이건 '김백일'이라고 흥남철수작전을 지휘한 다른 분에 대한 얘기지만,


    일본군에 있었다고 친일이면


    워싱턴, 간디도 친영파인가요?


     


    국공합작 하여 항일항쟁 주도한 장개석도 여러분 말대로라면 친일파겠네요.


     



     


     


    일본을 그토록 혐오했던 이우 황자 역시 일본 육사 출신이니까 친일이네요.


     


     


     


    일본군 장교였던 김수환 추기경도 친일파였겠군요?


     


    그리고 '일본군 복무하면 닥치고 친일' 이 논리대로라면 김대중 대통령도 친일 아닌가요?


     



     


    목포상고 졸업앨범입니다.


    빨간 원 안에 있는 사람이 목포상고 학생회장이었던 김대중입니다.


     


    고등학생이 사회 유지로 여겨지던 시대에 목포상고 회장은 그 지역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바로 그때에


    김대중이 몸소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 공연을 하며 졸업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씨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습니다.


    즉, 김대중은 친일파 여운형의 추종자였으며,


    일본군복을 입고 대일본 제국을 위해 나가서 싸우자며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했던 그 행동 대장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당시 일본군복입니다. 김대중이 입고 있는 것과 100% 일치하죠.


    학도병이라도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황제로부터 봉급을 받는 군인은 누구든 반드시 저 복장 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기준을 갖고 본다면


    김대중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친일파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짤 두 개만 더 첨부할게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서 학생 대표로 축사를 읽었다는 말이 있는데


     




     


     


    생도 대표 이름 잘 보세요.


     


    결론. 개구라.


     


     


     


     


    3. 만주국과 일본


     


    그리고 박정희는 일본 육사가 아닌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만주국군이 일본군이었다면


     

    이런 불온교사 경력의 박정희는 신원조회에 걸려 절대로 사관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고, 
    입학 후에도 곧 입학이 취소되었겠죠.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주국은 일본의 신원조회망을 벗어난 제3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만주군이었던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만주군관학교에서 두 차례나 입학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박정희를 일본 황국신민화 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보낸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약 일본이 박정희가 일본군이 되기를 원했다면


    무엇하러 나이 트집을 잡아 두차례씩이나 불합격시켰을까요?


    어차피 충성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건데요.


     


    박정희는 1940년 2월 불온교사로 찍혀 문경의 교사직에서 면직되었고,


    바로 그 다음 달, 즉 1940년 4월 4일에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3수하려면 2~3년 걸리는데 어떻게 3월 한 달 사이에 3수할 수 있었을까요?
     

     


    만주국은 일본이 만든 나라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만주군을 일본군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만주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은 만주국에서 근무하면 친일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대 사람들에게는 행정상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만주국이 일본과 혼동될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만약 만주국이 일본 통치권 안에 있었으면 만주국 경찰로 복무했던 광복군 대장의 조카 김일련은 일본 신원조회에 걸렸을 것입니다.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거주하던 간도는 우리땅임을 알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조선인이 만주국 건국에 동참하면 친일파라는 정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위는 일본 인명사전에 기록된 박정희의 경력입니다.


    중앙의 19-7이라는 연대 표시 바로 옆에 박정희는 "만주국군 소위"였음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국군이었디면 일본군(日本軍)이라고 명기하였겠죠. 그러나 외국군이었기에 만주국군이라고 한 겁니다.


     

    일본인들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데,
    도대체 왜 한국의 어떤 무지한 이들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나요?

    박정희는 유학생이었으며, 유학생은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육사에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유학생이 옵니다.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육사에 유학했던 아프리카 군인을 한국군이라 부르면


    우리가 무슨 생각이 들까요? 마찬가지인 겁니다.


     


    위에 네째 줄에 보면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본육사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포병학교 과정을 일년간 이수한 겁니다. 
     

     


     


    1940년대의 일본 육사 유학생반을 보면 유학생들은 일본사관생도 제복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수업도 유학생들끼리 따로 받았습니다.


     

    위의 박정희 학력에 57기생 상당으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 김대중이고 뭐시고... 워싱턴 장제스는 그렇다 치자. 박정희는 혈서까지 쓴 X끼잖아' 하겠죠.


     


    자, 좋아요. 그럼 이제 박정희 혈서 들어갑니다.


     


     


    4. 박정희 혈서 진위여부 논란


     


    여러분이 좋아하는 친일혈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939년 3월 31일 만주일보에 공개되었다네요.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보면


    문경 심상소학교 재직 당시 동료교사였던 유증선 씨의 증언이 나옵니다.


     


    "1938년 5월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에게 유증선이 충고하길


    나이도 한 살 정도 줄이고 편지와 함께 혈서를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즉석에서 면도칼로 새끼 손가락을 그어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바쳤고 만주신문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①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이 20세라는 부분과


    ②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일단, 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은 몇 살이었을까요?


    관련하여 쇼와 14년에 작성된


    『陸軍預科士官學校生徒、陸軍經理學校予科生徒及陸軍幼年學校生徒召募告示の件』이라는 일제의 공문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보면 응시자격 연령이 16세 이상 ~ 20세 미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증선이 증언한 바 당시 1938년이면 박정희 나이가 22세일때인데,


    한 두살 낮춘다고 응시자격이 생겼을리가 없겠죠.


     

    이쯤에서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중앙일보 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유 선생의 지적처럼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시험을 쳤기 때문에,


    그로부터 1년 5개월 전에 혈서를 보냈다는 얘기는 여러모로 의심이 가네요.


     


    당시에는 모집여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1939년에야 만주군관학교 설립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유증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재학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위의 제한연령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므로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 믿으실까봐 증거자료 첨부합니다.

     


     



     


    (출처는 앞의 왜말 문서와 같습니다)


     


    두번째로 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1945년 일제가 작성한『임시육군군인군속계』상에 나타난 박정희의 생년월일을 보면


    대정 6년(1917년) 9월 30일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실제  음력 생일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박정희는 나이를 고친 적이 없는 거죠.


     



     


    혈서 위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앞서 혈서가 공개된 신문이 1939년 만주일보라고 했는데


    만주일보는 1935년에 폐간되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입니다.


     



     


    이에 당황한 민족문제연구소(박정희 혈서 떡밥을 공개한 데)는


    만주일보가 아닌 만주신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알 거면 제대로 알고 까시든가...


     


    게다가 만주신문은 만주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만주국 국민들도 전혀 안 보는 신문이었으며, 일본인들도 안 보는 신문이었습니다.


     


    더 웃기는 건 1939년 2월 24일에 이미 만주군관학교 합격자가 발표되었는데


    왜 기사는 1939년 3월 31일에 나왔을까요?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혈서 이야기는 이것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의 혈서지원설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만주일보 사본의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징모를 말그대로 풀이하면 징집과 모병을 뜻하는데,


    만주국이 국병법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한 것은 1941년입니다.


    징모라는 말은 상당히 어폐가 있는 것이지요.


    만주국 발행 정부공보를 아무리 뒤져봐도 징모과는 찾을 수 없었다.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1938년 9월 무렵 만주군관학교의 모태인 중앙육군훈련처의 군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보면

     


    치안부 군형과(軍衡課)에서 채용공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출한 신문기사의 진위가 또한번 되네요.


     


    징모과라는 부서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이며,


    징병제를 실시할 무렵에 정모과라는 부서가 존재했지만 이 또한 징모과와는 엄연히 다른 부서입니다.


     



     


    분명 '재신경칙위치안부군형과'라고 되어 있네요.


    존재하지 않는 부서에 혈서를 제출한 박정희의 정체는?


     


     


     


     


    추가내용


     


     


     


     


     


     


     



     


     


     


     


     


     


    1939년 박정희 혈서에 대한 만주일보 기사를 갖고 좌빨새끼들이 혈서 혈서 드립을 치기 시작함


    그러나, 이 만주일보라는 신문사는 1935년에 이미 폐간되어 없어진 신문.


     


     


    게다가 혈서에 대한 증거물은 이 조작기사 말고는 쥐 코딱지 만큼 없음 대충 정리해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일보에서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렸다고 5년동안 주장.

    근데 만주일보는 1935년에 폐간 으잌ㅋㅋㅋ

    뻥카가 들통나자 민족문제연구소는 만주일보가 아니라 만주신문이라고 말을 바꿈.

    근데 만주신문은 일본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주 기관지임 + 만주신문은 창간호도 없음.

    잉?? 근데 일본 국회 도서관 마이크로필름에서 기사 발견.


    좌좀들은 만주신문이 찌라시면 일본 국회 도서관에 찌라시도 있냐면서 극딜 시전



     여기서 저 신문의 이상한 점을 찾자면??


     


     


     


    1. 신문 원본이 없음.


     


    2. 조작된 복사본 한장만 있음.


     


    3. 박정의 친일혈서 기사 부분만 어떻게 딱 하나만 있을수 있을까?


     


    4. 그 당시엔 쓰지 않던 현대 일본어 표현으로 적혀있는걸로 보아


    일본어를 완벽하게 통달하지 않은 사람이 쓴것이라고 확인이 되고 있음.


     


    5. 아까도 말했듯이 애초부터 날짜가 맞지가 않음.


     


    혈서를 썻다고 한 날짜는 3월 29일..


     


    근데 실제로


     


    학교의 합격자 발표는 2월 24일..


     


     


     


     


    박정희가 친일 혈서를 썻다는 진실된 근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혈서 사진도 혈서 목격자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박정희가 입학한 학교는 만주육군 사관학교였는데


    만주국군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습니다.


    (2년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편입)


     


    박정희 혈서의 진실 여부를 가지고 논쟁하는 자체가 악질 좌파들의 박정희 죽이기 프레임에 갇히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황국 신민으로 길러졌고 고등교육을 받으려면 충성스런 황국 신민 행세를 해야 가능한 시대인데,


    그 이후 실질적인 친일행적이 있나 없나를 가지고 판단해야지


    안그러면 지 청천, 백 선엽 장군 등등 모두 친일파가 됩니다.


     


    일단 만주군은 일왕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갈때 일왕한테 뭐 충성이니 뭐니 이딴게 없어 만주국의 군대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조선인은 그당시 일본군에 입대할수 없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일본군의 장교로 안 뽑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박정희가 교환학생 방식으로 일본육사로 건너간뒤 졸업하고도,


    졸업자 명단에 일본군 장교 소위 박정희가 아니라,


    만주군 장교 소위 박정희라고 나와있었지요.


    그리고 저 신문자체가 조작입니다. 


     


    혈서신문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필로으로 복사한 사본만이 존재 합니다.


    사본은 법적증거력이 매우 현저히 떨어집니다.


    조작가능성 때문이지요.


    원본은 없고, 사본이라는것도 현대식 일본어가 쓰여진 엉터리이고,


    글을 쓴사람 행적은 오리무중입니다.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나온 저것을 원본이라고 생각하는 좌파가 태반입니다.


     


     


     


     


    5. 창씨개명 했다?


     


    창씨개명 하면 친일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일본명 도요타 다이쥬)을 포함한 국민의 80%가 창씨개명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의 80%가 친일파겠네요.


     


    혹자는


    "창씨개명 한 게 죄가 아니라, 두 번 한 게 죄다"라고 합니다.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었는데


    그 이름이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 하여


    나중에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꿨다는 소문이 있는데,


     


     

    여기서 잠깐, 오카모토 미노루는?
    1929년의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공(?)을 세운 
    사이비교육자인 한 왜놈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입니다.

     


     


    이를 반박하고자,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동창으로서


    인하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에 거주하시며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김병희 옹의 말을 퍼왔습니다.


     


    김병기 옹의 홈페이지인 http://home.megapass.co.kr/~gimbyngh/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김병희)는 홈페이지[http://home.megapass.co.kr/~gimbyngh/]를 가지고 있어서,


    지구촌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음대로 와서 구경도 하고 글도 쓸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오늘 새벽에는 "이상유"라는 분이 오셔서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았다["…"은 수십 자씩 생략했음을 뜻함]:


     


     

    "저는 서울에서 근무하는 교사 이상유입니다. … 
    저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가 많았지만,  …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다른 창씨 명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악질적입니다. …

     


     

    그러다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정말 우연치 않게 
    박사님과 고민철 씨가 게시판에서 주고 받은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제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오카모토 미노루의 비밀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


    순간 박대통령을 음해에 앞장서던 김삼웅이 떠올라 치를 떨었습니다.


     


     

    김삼웅은 독립기념관장을 하던 중에도 신촌의 서점에서 가끔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 
    이제 박대통령이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음해가 사실이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박사님의 소중한 증언 덕분입니다. …


    홈페이지 어딘가에 오카모토 미노루의 사진을 올려놓았다는 글이 있던데 찾을 수가 없군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위의 이상유님 글을 요약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 명이 타카키 마사오(독립군을 비밀리에 도와준 사람으로 독립군사이에 유명) 와


    오카모토 미노루(김상웅이 주장)라는 설이 있는데 있는데,

    오카모토 미노루는 노무현 정권때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김삼웅이 박정희를 음해하려고 조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사이비사학자에게 독립기념관장이란 중책을 누가 천거해서 누가 임명(김대중)했는지는 모르지만, 
    꼴두기가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이군. 필자는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냈다:

     


    "이상유님 보세요


     


    혜서 잘 읽었습니다. 교육 동지를 만났군, 반갑습니다.


     


     

    더욱 박정희 대통령의 참모습을 아시려고 주야 분투하신다니, 
    전교조 무리들이 많다는 곳이라 진흙 속에서 구슬을 만난 느낌입니다.

     


     


     

    박정희군은 저의 죽마고우인지라, 
    그가 오카모토(岡本) 운운의 일본식 이름을 가진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어느 엉터리 사학도가 그런 발설을 한 모양입니다.

     


     


     

    오카모토라는 대구사범 교유는 광주학생사건 때 우리 조선인학생들을 때려잡아 수훈 갑인 자로서, 
    당시의 조선총독이 대구사범 학생감으로 특진시켰기에, 
    박군(박정희)이나 저를 포함한 우리 대구사범 조선인 학생들은 전원이 그를 개나 돼지처럼 악종으로 보았답니다.

     


     

    그 사학자(김상웅-김대중 추종자), 그 자는 틀림없이 친북정권의 수하로서 박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의도로, 
    그 악종의 성을 박군의 일본식 성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말살 내지는 희석시키려는 음모의 발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자서전을 쓰면서 그 오카모토 학생감에 관해서 여러 번 언급은 했지만, 
    모두가 교육자다운 모습은 없고, 시종일관 조선인 학생의 사상동향에서 민족정신을 뽑아,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그의 더러운 수작을 폭로했을 뿐이었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그의 사진을 올린 기억은 없습니다.


     


    여불비례


     


    2008. 11. 13        울산 일산진에서          김병희""


     


    실제로 병적과 서류를 모두 뒤져보면


    박정희는 광복 때까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가 절대 아니라는 거죠.


     


     

    박정희군은 저의 죽마고우인지라, 그가 오카모토(岡本) 운운의 일본식 이름을 가진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어느 엉터리 사학도가 그런 발설을 한 모양입니다. 오카모토라는 대구사범 교유는 광주학생사건 때 우리 조선인학생들을 때려잡아 수훈 갑인 자로서, 당시의 조선총독이 대구사범 학생감으로 특진시켰기에, 박군이나 저를 포함한 우리 대구사범 조선인 학생들은 전원이 그를 개나 돼지처럼 악종으로 보았답니다.

    그 사학자, 그 자는 틀림없이 친북정권의 수하로서 박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의도로, 그 악종의 성을 박군의 일본식 성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말살 내지는 희석시키려는 음모의 발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자서전을 쓰면서 그 오카모토 학생감에 관해서 여러 번 언급은 했지만, 모두가 교육자다운 모습은 없고, 시종일관 조선인 학생의 사상동향에서 민족정신을 뽑아,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그의 더러운 수작을 폭로했을 뿐이었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그의 사진을 올린 기억은 없습니다.

    여불비례

    2008. 11. 13        울산 일산진에서          김병희

     

     
    김병희 옹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동창으로서 인하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에 거주하시며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졸업사진


     


     


    왼쪽이 오카모토. 오른쪽 박정희.


     


     


     


     


     


     


     

     박정희의 제2창씨명으로 알려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의 실제 이름은 오카모토 히로시(岡本寬)이다.

    實자와 寬자가 워낙 비슷해, 옮겨쓰면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의하면 1935년에는 實로 표기가 되어 있고 1936~1943년까지는 寬로 표기가 되어있다.
    히로시가 미노루로 둔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오카모토는 1930년 조선공립고보에서 시작하여 1932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광주제일고보의 교유(敎諭)로 있었는데,
    물의를 일으킨 조선학생들을 일망타진한 수훈갑의 공로가 있어 1등급 특진하고,1935년,
    그러니까 박정희가 3학년이었을 때 대구사범학교로 영전하게 되었다. 

    당시 대구사범학교는 현준혁의「교유 및 생도의 비밀결사사건」이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아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불온사상을 특별히 감독하고 단속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여 오카모토를 대구사범학교로 발령시킨 것이다.
    과연 오카모토는 당국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카모토가 부임한 이후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퇴학과 정학을 밥먹듯이 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워낙 학생들을 개패듯이 팼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오카모토는 이렇게 조선인 학생들을 짓밟고 일어선 덕에 그 뒤로도 승승장구하여,
    1940년에는 6등 授瑞寶章이라는 서훈을 받고 함경남도 道視學官을 거쳐 1944년에는 청주사범학교장을 지냈다.
    평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직위까지 오른 것이다.

     


     


     


     


     


    결론 : 박정희 ≠ 오카모토 미노루


     


    2번 개명 안함 .


     


    오카모토와 박정희는 다른사람입니다.


     


     


     


     


     


     


     


    군속계만 봐도 1945년까지 高木正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교사의원면직 발령원부나 보고 날조를 하던가.


     


    1940년.


     


     


     


     


     

    충격적인 사실은,


    박정희 = 오카모토 미노루’ 는


    북한에서 시작된 네거티브라는 점입니다.


     

     

    대선토론회에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문제

    이시완 자유기고가, leeshiwan@gmail.com

     

    등록일: 2012-12-05 오후 6:23:29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다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갑자기 뜬금없는 ‘다카키 마사오’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인터넷 포털에서는 갑자기 ‘다카키 마사오’라는 검색어 순위가 급등하고,
    덩달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또하나의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알려진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이름까지 검색 랭킹에 등장했다.

    이것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무책임하게 트위터, 인터넷 댓글을 양산하며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를 들고 나와 박정희와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소동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 트위터의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 선동들  

    대한민국의 자칭 진보세력들


     


     


     


     

    나는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말을 퍼뜨리고 있는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박정희의 창씨개명이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느냐고 말이다.
    그들의 대답은 뻔하다.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2001),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그리고 재미 언론인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1999), ‘김형욱 회고록’(1985),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의 칼럼 및 저서 등이 바로 그들의 ‘근거’다. 

    하지만, 그 어떤 자료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카더라’ 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점이 있다. 바로 위 인물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다.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와 대립했던 사람이거나,
    김대중 전대통령의 측근, 혹은 친북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티 박정희’의 요소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안티박정희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근거라며 늘 가져오는 근거는 일본 측에서 발간한 ‘일본육해군 총합사전’이다.
    실제 이 사전의 2판(2005)에 보면 박정희의 일본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 '일본육해군 총합사전' 2판 (2005)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이 사전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
    도쿄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한 ‘개인출판물’이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사전의 초판(1991)에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없는데,
    2005년 발간된 2판에 갑자기 이 이름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도쿄대학 출판부를 통해 이 사전의 저자에게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의 근거를 확인해 본 결과,
    “근거 확인이 안되니 3판을 출판할 때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삭제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의 ‘안티 박정희’ 세력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오던 ‘일본측 자료’ 의 설득력도 이것으로 없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주장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현재까지 언급되고 있는 자료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1985년에 나온 ‘김형욱 회고록’인데,
    필자가 발견한 그 보다 더 오래된 기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북한’ 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 8월11일자 북한의 로동신문을 보면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에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는데,

    그때부터 ‘오카모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남조선의 한 집권자는 우리 인민이 일제 침략자들에 항거하여 싸울 때 혈서를 써서


    ‘천황’의 ‘적자’가 될 것을 맹세맹세한 후 ‘특등 일본인으로’,


    ‘돌격대장’으로 ‘오까모도중위’로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애국적 인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이른바 ‘토벌’에 110여회나 참가하였으며 조선동포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속에서 기여나오는 동포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을 총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고 생매장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손가락 하나 떨지않고 감행한 자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73년 8월11일 로동신문)

    여기서 ‘오까모도’가 박정희를 지칭한다는 것은 1987년 북한의 금성청년출판사에서 나온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라는 책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한다.

    일본 군국주의 우두머리 한놈인 구모놈은 박정희 역적놈을 ‘가즈오료리점’에 특별히 불러내다 먹자판을 벌려놓았는데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오갔다.

    “자네 퍽 몰라보게 됐네”


    “각하,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사랑 받던 오까모도입니다”


    “아무렴 알아보고 말구”


    “그떄 선생님은 저를 돌격대장이라고 불렀지요”


    “그랬지.암 돌격대장이야.


    오까모도군이 지금 남조선의 실권자로 나타났지만


    내 눈에는 옛날 자주빛깔 만주국군의 군관생으로밖엔 보이지 않네”


    “고맙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저 역시 그 때를 자주 추억하곤 합니다”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금성청년출판사1987)

    한일회담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박정희를 악의적으로 ‘오까모도’ 라고 설정하여,


    일본인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인물로 그려놓은 것이다.


    단지 북한과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이 달라 ‘오카모토’가 북에서는 ‘오까모도’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1973년 이전에 박정희를 ‘오카모토 미노루’ 라고 주장한 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에 퍼진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설은 북한의 주장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정적비판을 위해 퍼뜨렸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주체가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안티박정희’ 진영이다.

    문명자씨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직접 면담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으며,


    김형욱씨 역시 박정희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정희 정권 비판의 선봉에 섰고,


    김삼웅씨는 박정희의 정적 김대중씨가 만든 평민당 당보의 주간을 맡을 정도로 친DJ의 성향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전형적인 ‘안티 박정희’ 성향의 인물들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본 ‘박정희=오카모토’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보았느냐고.


    북한자료가 아니라면 당당히 밝힐 수가 있을 것 아닌가. 

    지금까지 박정희 친일설, 혈서설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제시는 단 한번도 없었다.


    만약 근거가 있다면 진작에 나오고도 남았어야 한다. 

    만약 그 출처가 차마 북한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카더라’ 라고 말을 하고 싶다면


    한국 사회에 무분별하게 퍼진 그 ‘설’에 대한 책임을 과연 누가져야할까?


    정적 비판도 좋지만 도를 넘어서는 인신공격은 정파,


    시대를 떠나 어느쪽이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6. 박정희는 왜 만주군관학교에 갔을까


    고산 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정희는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발, 초등학교 교사직을 버렸습니다.


    그에겐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이란 근대적인 선진문화였습니다.


    그즈음 선진문화 중 하나가 일본군사체제였기에 만주군관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적진 소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불을 훔치러 간 '프로메테우스 행보'입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일제대륙침략선봉 황야의 늑대 이시하라 간지,


    천황의 여우 기시 노부스케 두 걸물의 만주국건설 산업경제개발방략과 근대적 국가통략을 공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박정희는 당시 만주군으로 위장한 광복군 첩자였습니다.


    뭔 헛소리냐고요? 잘 보세요.


     


     


    7. 백강 조경한 선생이 말하는 박정희


     


    자세한 설명은 이 짤로 대체합니다.


    (아... 여기 오타가 났습니다. 조경환이 아니고 조경한입니다. 조경한 조경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43430&viewType=pc


     


    이래도 친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좌파들은 조경한 선생님 일대기를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박정희가 친일파였다면 김학규 장군을 깍듯이 대해줬을 거 같습니까?


     


    아무리 조작드립 치면서 역사를 왜곡해봤자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작 친일파 집단을 신봉하는 새끼들이 애국자를 친일파로 덮어씌우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8.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하는 박정희


     


    박정희의 비밀요원 활동을 기록한, 육군본부의 창군전사 기록을 공개합니다.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no=379335&s_work=view&tcode=01001


    원문의 일부를 밑에서 언급합니다.


    이곳에 가시면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스압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링크를 걸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과 조경한 선생님의 말이 구라라면


    박정희는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이름이 올라갔겠죠.


     


    어떤 분이 백범 선생은 저런 글 쓴 적 없다고 하시던데,


    글쎄요, 사실 저게 진위여부 논란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학규 장군 얘깁니다.


     



     


    http://cafe.naver.com/bohunstar/14551


     


     


     


    9. 박정희 독립군 토벌했나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 시절 팔로군을 공격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팔로군은 어디까지나 중국 공산당의 군대일 뿐, 독립군이 아니죠.


     


    사실, 일제 말에 독립군은 만주를 떠나


    중국 내륙으로 다 이동한 상태였다고요.


     


    실제로 류연산이라는 작자가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을 제시했다가


     



     


    그렇다 합니다 ㅇㅇ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에서 모든 성적이 아주 우수했지만  전체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이유는 황국신민과목을 백지로 냈거든요.


     


    박정희가 모든 과목에서 최우수 성적을 얻으면서도


    늘 전체 성적이 바닥을 헤메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던 아리카와 당시 중좌는


    박정희가 윤리 등 황국신민 과목에는 백지 답안을 제출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맺어졌으며 오래 지속된 사제지간의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군관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요?


    백범김구의 백범일지에는 박정희와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하려던 박정희대통령은 김정균을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났습니다.


    김정균은 상해임정에서 비밀첩보원을 하던 김구 선생님의 수족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남의사 소속의 왕정국, 산서성 총사령관 염석산과 더불어 독립 운동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김정균의 일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 김구 선생은 1939년 3월 어느날 청년 박정희를 만났다.

     


    그때 박정희는 20대 초반으로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처음 박정희 청년을 김구 선생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김정균의 친한 친구인 신영학 이라는 친구다. 

    신영학을 통해 소개받은 김정균은 박정희 청년의 뚜렷한 역사 의식과

     


    조국 광복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고는 김구 선생에게 소개를 하였다.


    그때 박정희를 처음본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1시간동안 부동자세로 세워 두었다.


    김구 선생이 본 박정희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부럽뜬 두 눈을 보고는


     

    멈칫 놀랐다고 박정희가 나간후에 김정균이한테 말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청년은 1시간 부동자세로 서 있었지만 자세하나 흐트러 지지 않았다.

     


    김구 선생이 박정희 청년을 세워두고 외출을 하여 40여분만에 돌아 왔으나


    박정희는 그때까지 부동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 김구 선생은 박정희가 서 있는 자리에 비밀 표시를 해 두었다.


     

    그랬는데 박정희는 그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않고 1시간을 서 있었다. 
    그기에 감탄한 김구 선생은 박정희 청년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후에 그곳에 모인 광복군 동지들께 말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아마 1945년에 광복이 못되고 했더라면 박정희는

     

    김구 선생을 도와 일을 했을것이다 라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박정희를 만주 군관 학교를 보낼려고 하였으나

     


     

    박정희 청년이 적을 알아야 한다며 굳이 일본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가 일본군 사관학교에 다니면서도 일본군의 무기정보

     


     

    일본군의 전술공부등 많은 정보를 김정균이에게 알려 주었다. 

    박정희 소좌가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선양으로 떠날때도 김정균이한테 알려 주었다.

     


     

    김구 선생은 박정희 소좌가 선양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김정균이와 박정희 소좌는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일본군의 동태 작전능력 병력이동 계획,

     


     

    일본군의 동태를 알려 주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 이를 뒷받침 할 근거로서는 백범일지에서 나와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 아.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 하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독립군을 때려잡았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자세히 알아보면 진짜 개병 신같은 소리입니다.


    http://www.bookstore21.net/korean/815/faked-article.htm


     


    이글만 봐도 알겠지만,


    당시 진짜 독립군은 거의 궤멸되서 만주쪽엔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싸운건 중국 만주 지역을 철권통치하던 무장한족(군벌)이었습니다.


    당시 삶이 힘들어 만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받아준건 만주국이었거든요.


    한족들은 조선인이 땅을 소유하는걸 엄격하게 막고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무장한족은 자기들이 점령하던 지역을 빼았겼으니 만주국과 싸우려 들겠지요?


    그들의 기치가 '조선인과 일본인을 쫓아보내자'였고 그게 항일부대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그들에게는 항일 독립군이였을지 몰라도 우리 조선인 입장에선 적군이였지요.


    그러니 박정희는 그곳에서 그들과 싸우는걸 즐거워 했을 겁니다.


     


    이후 박정희는 광복되기전 광복군으로 들어갔고


    OSS 지금은 CIA로 불리는 조직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했습니다.


    http://www.bookstore21.net/korean/815/park-oss.htm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president_park&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8


     


    이래도 박정희가 친일파인가요?


     


     


     


    백번 양보해서 좌좀들 말대로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입학했다고 해도


    입학하기 위해 호소 형식으로 쓴 것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박정희를 친일파로 둔갑시키기에는 여러 증언들로 인해 명함하나 내밀 수 없지요.


     


     


     

    혈서가 진짜든 아니든 솔직히 말하자면 별 상관없는겁니다.
    어차피 지도자로서의 실제적인 업적하고는 상관도 없는건데요.

     


     


     

    어쨌건, 박정희를 못 까서 안달인 악마같은 좌파새끼들의 필살기라고 주장하는 친일파 증거니까,
    까는건 제대로 반박해줘야겠지요.

     


     


     

    박정희가 독립군에 협조 한것은 백범 김구선생님이 인정 했고
    백범 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10. 독도 팔아넘겼나?


     


    대한민국에 귀화한 일본인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계신 호사카 유지 교수의 말을 빌려 왔습니다.


     


     

     


     


    독도 수호운동가


    세종대 교수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는 한일협정 관련 심포지엄에서의 자신의 발표문을


    어느 인터넷 신문이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전했다.


     


    발표문 내용은


    <한일협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를 한일회담의 의제에서 제외하라"


    라고 도쿄에 있던 이동원 외무부 장관에게 지시하면서


    "본건은 한국 정부의 안정과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만약에 한국 측이 수락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일회담을 중지해도 좋다" 고 말했다>


    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이런 단호한 방침에 일본 정부가 양보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겠다는 안을 거두어들였고,


    독도명칭을 교환공문에서 삭제했으며, 한국 측이 제시한 구속력이 없는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최종안이 마련되었다" 며 "내 발표문의 취지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만큼은 처리를 잘했고


    이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사실상 독도를 포기헀다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심포지엄 내용을 보도한 어느 인터넷신분이 내 발표문을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는 것.


    그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를 심하게 망가뜨렸다는 취지로 내 발표문을 소개한 것" 이라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 발표문과는 완전히 반대인 내용을 사실인 양 써서 보도했다" 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심한 왜곡은 그동안 내 의견에 악성 댓글을 썼던 일본인들도 하지 않은 처사" 라며


    "그런데 대한민국 내에서 자신들의 취지나 노선에 맞지 않는다 해서


    주제발표자의 발표내용을 심하게 왜곡해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기가 막혔다" 고 했다.


     


    특히 "한일협정 당시 독도문제가 한국 측 잘못이라는 왜곡된 결론을 내면,


    국제법상 독도의 위치가 위태롭게 된다" 며 "그런 중대한 상황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왜곡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나라를 망하게 할 가능성을 내포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짧은 것이다" 라고 질타했다.


     


    이어 "'나' 라는 한 개인이 화가 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며


    "왜곡해서 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개인이 사회에서 신뢰를 잃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이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울 뿐인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그럼에도 "1965년도의 환경 속에서 박정희는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를 포기하게 만든게 사실" 이라며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진실은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리고 그와 같은 신념을 관철시키고 싶다" 며 "나는 한 정치가를 두둔한 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를 판단해서 알렸고 내 신념대로 움직였을 뿐" 이라고 덧붙였다.


     


     


     


     


     


    요약


     


    박정희의 외교 덕분에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는 발표문을 발표함.


    근데 그걸 한국 좌파들이 반대로 왜곡해서 보도.


     


    "박정희가 독도를 팔았다" 라고 생각하는 놈들은 전부 속은것.


     


    실제로 독도 영유권이 훼손된 때는


    김대중 정부 때 체결한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은 신한일어업협정.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

     


    http://www.wbkn.tv/?m=bbs&bid=news&uid=3115


     

    [인터뷰]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연합국의 합의 없이 통보된 미국무성 '러스크 서한'은 무효


     


    2011년 04월 18일 (월) 10:09:38 이석호 기자 dolko@hanmail.net


     



     


    <편집자주> 지난달 일본에는 강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일 양국의 응어리진 역사를 잊고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도 일본에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일본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지리 및 사회교과서를 검정하면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한 교과서 검정본을 모두 승인했다. 다시 일본에 대한 비판여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최근 독도문제에 있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인 호사카 유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를 찾았다. 


     


    - 한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독도문제에 있어 일관되게 강조해온 ‘조용한 외교’라는 틀을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일본은 독도가 분쟁지역화 되는 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외교’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는 평소 조용한 외교를 펼치는 한국정부가 일본 측에서 사건을 일으키면 매우 강경한 외교로 돌변한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까지 하지 않았던 실효지배 법안을 갑자기 부활시키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일본의 공세에 말려들어간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독도지배의 정당성 논리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입니다. 지금 한국 정부의 독도공식 사이트는 외교통상부에 있는 ‘대한민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입장’이고 이 문서만을 보면 잘 작성되었지만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일본 측 독도주장과 비교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공식견해가 일본 측 주장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면 독도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법입니다. 외교통상부의 사이트뿐만이 아니라 외교부에 링크된 준 공식사이트도 문제가 많습니다.” 


     


    -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논리적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거론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올려 져 있는 독도 팸플릿 등의 내용을 보면 1951년 8월10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 작성과정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 국무성이 미국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사실상 독도는 일본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된 소위 ‘러스크 서한’을 보냈습니다. 일본 측은 이 공식서한이야말로 독도가 일본영토로 남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미국 국무성 비밀자료에 의하면 이 ‘러스크 서한’은 한국정부에게만 비밀리에 송부되었고 다른 연합국들에게 공표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연합국간의 합의가 없었던 문서로 밝혀졌습니다.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주장은 당시 미국 일국만의 견해이지 연합국들의 합의를 얻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규칙을 어긴 서한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연합국들이 합의한 내용이 아닌 서한이 아무리 공식문서의 형식으로 한국정부로 송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연합국대표 10개 국가들은 모두가 독도를 한국영토로 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서한을 공표하면 다른 연합국들이 미국에게 항의할까 우려해 비밀문서로 한국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정부는 ‘러스크 서한’이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증거라고 10개 국어로 세계에 발신하고 있는데 한국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 문제가 큽니다.” 


     


    - ‘러스크 서한’이 무효라고 처음 밝힌 것은 언제인가? 외통부도 사실을 알고 있나. 


    “지난해 9월 제가 펴낸 <대한민국 독도>(2010, 책문)를 통해 처음 공개했습니다. 올해는 곧 논문으로 발표할 것입니다. 외통부가 ‘러스크 서한’에 대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우리나라가 독도에 대한 불리한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는 독도문제뿐만 아니라,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 문화재 반환협정, 어업협정 등이 포함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가 한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다른 모든 협정문서에 서명하지 말고 귀국하라고 이동원 외무부장관에게 강하게 명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당시 일본 사토내각은 양보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일양국이 ‘분쟁해결을 위한 교환공문’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본 측은 국제사법제판소로 독도를 회부하자고 되풀이해온 제안을 철회했고 분쟁해결방식을 ‘중재’로 바꿨습니다. 그 단계에서는 독도명칭이 문안 속에 있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규정해 놓고 싶어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중재라는 일본 측 제안도 한국 측이 승낙하지 않자 일본정부는 독도명칭을 완전히 공문에서 삭제했습니다. 타결된 교환공문은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그것이 안 될 경우에는 제3국을 통한 조정으로 해결하자는 문구로 정해졌습니다. 결국 독도는 한일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한국 측 주장은 독도명칭을 교환공문 초안에서 삭제함으로 인해 관철됐습니다. 이후 일본 외무성은 ‘이것은 한일양국이 장래 매우 평화스러운 관계를 구축했을 때 독도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되풀이했습니다.” 


     


    - 논리 대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독도문제에 있어 가장 확실한 논리적 증거는 무엇인가. 


    일본이 역사적으로 적어도 세 번에 걸쳐서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다, 조선의 부속이다’라는 공문서를 남겼습니다. 1696년, 1870년, 1877년의 세 번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 측 독도논리의 핵심적 주장인 ‘고유 영토론’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1905년 이전의 일본의 공식지도가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하거나 조선의 소유라고 명기까지 했습니다. 1905년의 일본에 의한 독도강제편입도 국제법으로 보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무효가 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한일협정에서도 지금까지 언급한 대로 독도는 한국영토로 인정받았다고 판단됩니다. 


     


    호사카 소장은 또한 1883년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발행한 공식문서인 ‘수로지(水路誌)’에서 독도를 ‘리안코르토 열암’으로 기록한 것을 강조했다. 이 명칭은 독도의 프랑스 명 ‘리앙쿠르 락스’에서 딴 것. 그리고 각종 수로지에는 독도가 ‘리앙쿠르 호’에 의해 184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일본정부가 역사적으로 독도를 송도(松島=마쓰시마)로 불러왔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독도가 일본고유영토라는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호사카 소장은 주장한다. 


     


    - 한국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독도가 분쟁지역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된다는 점이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한국정부에 대해 한 번도 공식적으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65년에 양국 간에서 교환공문을 맺는 과정에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한일 간의 분쟁 해결방식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 문제로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습니다. 일본은 교환공문의 진실을 알면서도 마치 현재까지 계속 한국정부에게 국제사법재판소 행을 제안하고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지요. 물론 독도에서 한일 양국 간에 국지전이 일어나면 독도문제는 UN안보리를 거쳐서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잘 다스려야 합니다.” 


     


    - 제 3국과 함께 독도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할 필요는 없는지.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므로 다른 나라들과 독도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앞으로 한국 측이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지요. 그런 일본의 전략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확실한 논리와 자료를 내면 조용하게 독도문제를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와 대립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작업이야말로 독도 조용한 외교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한편 전 세계 지도 정보 서비스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구글어스’에서 독도를 확인해 보면 독도의 이름은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라고 표기돼 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도 ‘독도’라는 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으로 뒤바뀌어 있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내세워 다른 국가들을 설득시키는 동안 한국은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8년 전 한국인으로 귀화해 독도문제에 전념하고 있는 호사카 소장의 조언을 되새겨 봐야할 시점이다.


     


    <호사카 소장은?> 


    일본에서 ‘렌즈’ 개발 사업을 해오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동경대 공학부를 수학했다. 어려서부터 서양사 등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공과 상관없이 독학으로 한일역사에 대한 공부를 했고, 재일동포사회를 알게 됐다. 


    88년 고려대어학당에서 9개월간 한국어공부를 했던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녔다. 이후 ‘45년 이전 한일역사’에 파고든 그가 가장 궁금해 했던 역사적 명제는 “왜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했는가”였다. 그가 독도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후반부터. 세종대학교 교수인 그는 2008년 12월에 세종대에 독도종합연구소를 만들었고 소장으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렀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900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호사카 교수의 '대한민국 독도'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외교문서 보니까 사실이 아니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박정희는 1965.6.22. 소위 구-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돈을 주는 대가로 일본이 또 독도를 거론했다는데요,


    1965년 5월 17일,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방미중인 박정희를 만나


    한일협정 진척을 축하하면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라, 공동등대를 설치하라 종용했습니다.


     


    박정희는 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지만(1965.6.15, 국무부문건 364호) 박정희는 장관급 회담을 거절하겠다며 맞섰습니다.


    미국대사는 박정희는 그 무엇으로도 독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밀어붙이기의 불가능성을 본국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독도는 1998년의 신한일어업협정에 의거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바다가 국제법상 일본에게 영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당시에 이뤄 졌습니다.

     


     


     


    그리고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문재인은 이런 박정희를 친일독재정권이라고 매도하며


    일본이 자꾸 독도를 탐내자 박정희가 화나서 한 말인


    "네놈들한테 줄 바에(다른나라에 독도를) 차라리 폭파시켜 버리는 게 낫다."라고 한 말을


    독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왜곡하여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1. 한일국교정상화


     


    이제 좌파들은


    '아 닥쳐 광복 후에 친일했잖아 굴욕외교 한일국교정상화 모르냐?' 할 겁니다.


     


    글쎄요, 일단 이건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굴욕외교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국'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달러중
    무상으로 3억 달러,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일국교정상화를 타결합니다.
     

     


     


    물론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 주는 쪽이 일본인데


    국교정상화를 위해 돈을 많이 달라고 하면 일본이 해 줄까요?


    (사실 저것도 그 당시로는 거금이었습니다만)


     


    또한 위 금액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대일청구권? 저 돈이 적다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내야 '잘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배상액이 아무리 많은들 일본이 우리를 유린한 댓가에 턱없이 적은 것이겠죠.


    일본이 갖고 있는 돈을 다 줘도 모자랄 지도 모릅니다.


     

    또한, 배상액 금액 과소 여부를 떠나 
    일본과의 악연을 일단 떨어버리고

     

    국교정상화를 통해 일본과 보다 더 자유로운 경제교류를 가능하게 해서
    대한민국은 결국 실질적 과실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명심할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괴롭혔든 안 괴롭혔든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줄 의무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빌려달라 해봤자 안빌려주면 그만인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한국에 돈을 빌려줘봤자 일본이 돈을 돌려받을 수나 있었을까요?


     


     


     


    법정 스님도 수필 '광복절에 생각한다'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일본은 일단 우리의 이웃이고,


    또 우리보다 더 앞서 있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일본과 가깝게 지내서 나쁠 게 없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과거사에 너무 집착해서


    일본이라는 나라와 화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고요.


     


    그러면 법정 스님도 친일파겠네요.


     


    그리고 대일청구권을 받은 나라가 있는지요?


    수십억달러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청구권 때문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당시 대일청구권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으며,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즉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만약 '위안부 문제 보상 못 받게 한 사람이 친일파'라면


    김영삼 대통령이 친일파겠네요.


     


     


     


    그리고 일본이랑 수교할 때 받은 돈 갖고 뭐했습니까?


     


     


     


    미얀마, 태국 같은 나라들은 호텔이나 보트 짓고 놀고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을 만들어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쓴 거죠.


     


    김대중은 그 돈으로 도로 짓고 제철소 지으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 먹자고 하였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5개 년 계획,


    장면 정부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 그걸 할 만한 돈이 없어서 실패했죠.


     


    스타크래프트 하시는 분들만 이해하시겠지만,


    'SCV가 다 죽었는데 미네랄이 40밖에 없다'


    뭐 이런 상황이었단 말입니다.


     


    결국 외자의 도입이 필요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 외자의 도입을 위해


    '민족의 미래를 위한 슬픈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마지막 할 말은 이 짤로 대체합니다.


     



     


     


    자, 이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끝났습니다.


     


    제가 제시한 증거들을 보고도


    아직도 박정희가 친일파라고 생각하신다면


    반박해 보시죠.


     


    1. 박정희 대통령의 교사 시절 이야기는 전부 허구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제자들은 모두 박근혜한테 돈 먹은 알바라는 걸 증명하세요.


     


    2. 어떠한 방식으로든 식민 정부에 조금이라도 협조하면 무조건 친일파이며,


    그러니까 장제스 총통은 친일파, 이우 황자도 친일파, 나폴레옹은 친불파, 워싱턴 대통령은 친영파라는 것을 증명하세요.


     


    3.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만주국을 제3국이 아닌 일본의 속국이라고 생각했고,


    만주군도 일본 황군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세요.


     


    4.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박정희 친일 혈서가 진짜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제가 제시한 증거 다 반박해야 합니다.


     


    5.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로 창씨개명을 또 한 번 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6.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동기는


    오로지 순수한 '대일본제국을 향한 충성심'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7. 백강 조경한 선생이 거짓말쟁이거나,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8. 백범 김구 선생과 김학규 장군이 거짓말쟁이거나,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백범 김구 선생님의 『 아.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구 선생님과 오른팔 조경한 선생님의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증언도 못믿겠으면


    김구선생님도 친일파라 지껄여 보시던가요.


     


    아, 김구선생님 아들인 김신이 박정희 유신정우회 소속이었고


    손녀인 김미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부인이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http://blog.naver.com/teraness/60177926841


     


    9.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 주세요.


     


    10. 박정희가 독도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거짓말쟁이이고,


    박정희는 독도를 팔아넘겼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11. 한일국교정상화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을사조약에 버금가는 국치라는 것을 설명해 보세요.


     


     


     


     


     


     


     


    박정희에 대한 음해 관련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반박자료.


     


     


     


     


     


    1.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했으니 빨갱이다?


     


     


     

    박정희가 해방 당시 공산당이던 남로당의 당원이었던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슨 빨갱이인것처럼 날조를 해대는데요,
    안됐지만 당시 남한에서 공산주의는 합법 사상이고 남로당 같은 공산당 또한 합법정당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것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진짜 빨갱이 였던 형 박상희가 대구 좌익 폭동때 죽자
    그와 친분이 있던 좌익세력들이 박정희를 동향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끌어들였습니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이름이 올랐다해도 실제로 행동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있다면 증거자료 부탁드립니다.

    박정희는 남로당 당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장교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군내 남로당 좌익 군인들에 의해 발생한 대한민국 전복 반역 폭동인 여수 순천 반란사건에
    좌익폭도를 진압하는 작전장교로 참여했지요.
    만약 박정희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면 진압군이 아니라 오히려 반란에 동참했을 겁니다.

    박정희가 잡힌것은 그가 공산 반란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군내 좌익 공산주의를 색출하기위해 모든 남로당 출신 군인들을 잡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잡힌 남로당 군인들은 거의 사형을 당하지만
    박정희의 성향을 잘 알던 동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변호하여 살아남았지요.
    가까운 사람들은 박정희가 공산주의나 국가 반란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능한 국군장교라는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로당 좌익 조직을 실토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입니다.
    군인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전복하는 반역자들을 보호해줘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동료'를 배신했다고 박정희를 비난하는 자들은 빨갱이가 자신의 '동료'라는것을 인정하는 소리밖에 안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장교 박정희가 국가 반란을 획책한 빨갱이 동료를 보호하기위해 대한민국을 '배신'했어야 했나요?
    박정희 동료 고발 배신 운운은 북조선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좌익 빨갱이들이
    원한에 사무쳐 울부짓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박정희는 대한민국 군인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소임을 다해서
    군내 좌익 색출과 처단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남로당은 빨갱이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합법정당이었으며


    박정희 형 박상희가 남로당에 있다가 죽자 남로당원들이 혈연관계를 이용해 꼬드겨 박정희를 가입시켰고


    박정희는 명목상으로만 남로당원이었지 활동한 경력은 전혀 없으며 자신도 그 곳에 대해 알아볼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아버지를 추천해서 새누리당원으로 가입시키셨지만


    아버지는 정치에 아무 관심 없으셔서 명목상으로만 새누리당 당원이지


    활동한 경력, 새누리당이 어떤 당인지 전혀 모르는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저의 친아버지는 새누리당 당원이시지만 정치에 관심 없으시며 활동한 경력조차 전혀 없습니다.


     


     


     


     


     

    2.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다?

    4.19 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독재정부 타도를 외치며 결국 대통령은 망명가고
    이런 혁명이 오랜시간 유지되면 국가 붕괴가 이어지고,
    한국전쟁 이후였는데도 군사력은 여전히 전쟁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마음먹고 또 쳐들어오면 적화통일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미 북한공작원들이 남한에 넘쳐났었고 국지도발급 도발은 지금보다 훠얼씬 많았으니까요.

    이런시기에 박정희가 필두로 나선 군사쿠데타는 필수였고,
    군사정부가 치안을 다잡고 그 뒤에 대통령선거에 당선됩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기 전에 한국은 140개국중 120권의 최하위 빈민국이었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식량지원 없이는 국민들의 생존조차 어려운 국가였지요.
    국민소득 70달러의 최빈민국에서 민주주의를 하면 과연 얼마나 멋진 민주주의가 나올까요?
    자유당 정권이 독재로 무너졌다지만 독재보다는 무능하고 부패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이어서 들어선 장면정권은 국가를 제대로 이끌만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하루하루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지요.
    이때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거고요.

    당시 국민들중 40%는 쿠데타를 원했고 20%는 찬성하나 시기가 빠르다고 했고
    40%가 쿠데타를 반대했습니다.
    쿠데타도 좋으니 현 상황이 변화해줬으면 했던것이 당시 분위기입니다.

    미국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쿠데타를 진압할 명분이 없으므로
    한국내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박정희가 총칼을 들이대고 권력을 장악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같은 무혈 쿠데타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욱이 국민들은 박수를 치고 환대했지요.

    쿠데타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청렴했고 죽었을때 남긴거 하나 없었지요.

    자 이렇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었는데

    좌빨들 주장대로 오로지 국민의 근면성만으로도 경제성장이 당연했다고요?
















    진짜로...?






    그럼 625전쟁 끝나고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보다 잘살던 나라들은 왜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지요?






    국가발전 단계상 누가 대통령 했어도 그 만큼 발전 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력의 3배인 필리핀, 태국 등은 발전단계가 없었나요?


    그 나라들이...우리보다 지금 더 잘살고있나요?


      


    1960년대 초,  전쟁직후인 우리나라는,


    자원,기술,자본,시장 경험 없는 , 전혀 가망이 없는 나라라고 판명되어


    전세계 국가들중에서 꼴찌에서 2등이었습니다.


     


    좌빨들 주장중의 하나가 18년 장기 집권하면 그정도 경제개발은 아무나 할 수있다고 하는데


    전세계 장기집권 독재 국가들은 모두 한국보다 더 경제가 발전했겠네요?


    그러면 60년 집권한 북한은 선진국 되야하겠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가 좋은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이전에 국민들의 문맹률이 90%였던 것은 알고나 있습니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때 당시 무지했는데 도데체 무슨 수로 근성만으로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소립니까?

    그리고, 그렇게 똑똑한 민족이 병 신같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됩니까?

    물론 당시 조정이 병 신이었으니 이 말에 태클건다면 별로 할말은 없습니다만,
    좌좀들의 주장처럼 윗대가리가 병 신인데 어떻게 이러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역으로 물어보고 싶군요.



    한국사람들이 워낙 뛰어나서?
    좌파들은 박정희와 김일성을 동급 취급하는 미 친 짓을 저지르는데 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닌 병 신이라서 저렇게 못사나요?



    미국이 한국 원조해줘서?
    그럼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국가중 하나인 필리핀은 왜 한국정도의 경제력이 안됬지요?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가난한 국가들을 떠올려 봅시다.
    가난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남아시아 국가, 남미도 떠올려 봅시다.
    그런 나라들 중 우리나라처럼 순식간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 국가들보다 더 병 신상태였던 국가였는데 정말로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까놓고 말해서, 박정희를 친일파로 알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광우병 괴담도 종북 세력들이 진실인 마냥 꾸며대니까 수백 수천명이 소요사태를 일으켰는데
    이런 거짓말에도 넘어가는 사람들이 천지인 국가에서,

    휴전 상태이며 항상 대남선전을 하는 북한의 간첩들 때문에
    정신적인 무장을 하지 않으면 선동당하는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간첩들을 때려잡는 철권 통치와 엄청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면

    이나라는 북한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 적화통일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보급받는 밀가루 포대나 옥수수 가루를 물에 풀어먹고
    겨우 입에 풀칠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어떤수로 경제재건 자금을 마련해서 건물짓고 공장만들고 했을까요?
    미국이 해줬을까요?

    미국은 단지 못쓰는 무기 팔고 식량지원 해준게 다입니다.
    만약에 김대중이나 좌파정치가가 정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나마 한일협정의 댓가로 받은 배상금도 못 받았을 것이고
    공산당의 대남작전에 속아서 평화평화 거리다가 북한이 쳐들어와서 베트남꼴 났겠지요.





    박정희는 해외각지를 돌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해서 자금을 받아
    경제 여건기반을 세울 자금을 공수해왔습니다.
    물론 그 자금을 빌리기위해서 희생된 그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있었지요.
    기름한방울 안나오고 자원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던 국가에서
    복지나 독재정치 평화를 따지기전에 일단 한끼식사라도 굶지않으며 잘살아보자는 것이 
    그때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한번 보지요.
    그때당시 우리나라보다도 잘살았던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국가들을 한번 봅시다.
    그런국가들이 지금 한국만큼의 경제발전이 있었나요?
    100달러 미만에서 지금 20000달러나 경제발전 했는데 그런 나라가 있었습니까?

    박정희 리더십이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고
    그 리더십을 국가를 사랑하고 후세에 가난을 물려주기 싫었던, 가난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그 시대 국민들이 잘 따라와줬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겁니다.



    좌파 세력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나라의 발전은 모조리 반대하며 북한이 원하는것은 모두 찬성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반대(그 돈으로 옥수수 사먹자고 함)
    제철 반대(사실상 우리나라가 공업국으로 전환하는걸 반대)
    KTX 반대(자연파괴를 빌미로)
    인천국제공항 반대(지반이 위험하다는 것을 빌미로. 하지만 아직도 안전함)
    한미 FTA 반대(노무현때는 찬성함. 노무현때와 거의 차이가 없게 체결했으며 오히려 미국이 징징거림)
    4대강 반대(자연파괴를 빌미로. 하지만 99.9% 날조로 선동질)
    제주해군기지 반대(노무현때는 찬성함)

    국가보안법 폐지 원함(북한도 원함)
    미군철수 원함(북한도 원함)
    연방제 통일을 원함(북한도 원함)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했을 거라구요?

    이순신이 없었어도 조선수군은 일본수군을 이겼을 것입니다.

     


     


     


     


     

     푸틴의 '박정희식 개발모델' - 러시아를 폭풍 성장시키다


     


    http://cafe.naver.com/rightofkorea/21101


     


    세계위인들이 평한 박정희 대통령


    http://cafe.naver.com/rightofkorea/397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대통령 평가-일본대학생은 우리 대학생을 비웃는다.


    http://cafe.naver.com/rightofkorea/398

     


     


     


     


    아래 박정희대통령과 야당 후보의 선거 공약


     


    야당 후보공약을 보세요.


    야당이 되었으면 우리나라 완전히 거덜났을 겁니다.


     


    상단은 기사내용


    하단은 설명추가


     



    출처 : 경향신문 1967.04.22일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7042200329201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04-22&officeId=00032&pageNo=1&printNo=6622&publishType=00020


     


     


    좌파들은 사실상 우리나라가 산업국으로 발전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조건 포퓰리즘의 복지정책을 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위 권에 들던 경제 대국이었으나

    좌빨들이 좋아하는 포퓰리즘 복지 정책으로 빈곤한 땅으로 추락하였습니다.

    분배, 복지의 포퓰리즘이 아르헨티나의 서민과 저소득층을 절대 빈곤층으로 추락시켜버렸습니다.

    5위권의 경제 대국도 포퓰리즘으로 무너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복지 정책을 편다고요?

    미 친 소리입니다.

     


     


     


     


     


     


     


     


     


    3.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했지만, 독재로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박정희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 물론 많이 죽었을 겁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 들 중
    수십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분들은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아픔의 희생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선동한 사람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고 애쓰는 쓰레기 종북 세력들이며
    애초에 그들이 했던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운동을 빙자해 국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한 더러운 목적의 운동입니다.
    박정희는 그들을 때려잡아 대한민국의 평화를 유지시켰습니다.
    박정희가 때려잡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종북 세력들입니다.

    그분들의 후손이라면 박정희를 욕하십시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보지도 않고 그 시절을 겪은마냥 행세하며
    박정희를 욕하는 새끼들은 욕할 자격이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죽은 사람들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사실상 별로 없는거 같은데요?




     


     


     


    가끔 정신나간 좌파들은


    경제발전 안했더라도 차라리 좀 가난하게 살면서 민주주의국가로 가는게 낫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세계의 총 사망자 중 1/3이 빈곤 때문에 사망하며


    12억 이상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갑니다.


     


     


     


    극단적으로 보이십니까?


    625 전쟁 직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당시 세계 2위, 1위는 인도)


     


     


     


     


    옛날엔 모든 국민들이 잘먹고 잘살기만 해도 왕이 성군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지금 한국이 굶어죽을 걱정을 하고 있나요?


     


    박정희는 한반도를 반만년간의 만성적인 굶주림에서 해방시켜줬으며


    한국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대국으로 만들어준 영웅입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조차 당시 전국의 인구가 250만이었음에도


    특수한 계층을 제외하고는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조차 굶어죽은 백성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4. 영웅으로 칭송받는 위인들


     


     


     



    호세 데 산 마르틴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 출신. 칠레와 페루의 해방자이자 페루의 초대 대통령.
    아빠가 스페인 군인인데다, 스페인으로 이민가서 귀족 학교에서 유학함.
    1791년부터 1811년까지 무려 20년간 스페인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여러 전쟁에 참전해 스페인에서 훈장까지 받음.
    1812년에 군에서 제대한 후에 남아메리카 독립군이 돼서 스페인군을 물리치고 칠레와 페루를 독립시킴.


     


     


     




    시몬 볼리바르



    스페인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출신.
    '남아메리카의 조지 워싱턴', '해방자(El Libertador)'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의 해방자이자 초대 대통령.
    아빠가 존 나 부자인 카카오 농장 대지주였던 '기득권', '상위 1%' 집안 아들로 태어남.
    14살 때 스페인군 사관학교에 들어가서(이 시대엔 어느 나라나 중딩 나이에도 사관학교 입학 가능)
    스페인군 준위가 됨(원사 위에 존 나 높은 그 준위 말고, 소위보다도 아래인 쩌리 개념이었던 준위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배우고, 남아메리카로 돌아온 뒤 독립운동가가 됨.
    독립전쟁에서 무슨 盧로호처럼 두 번 연속으로 스페인군한테 운지당하고도 근성으로 세 번째 전쟁에서 독립 성공해서
    남아메리카 북쪽에 그랑콜롬비아 공화국을 세움.
    대통령이 된 후 독재까지 해가면서 공화국 분열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분리주의자들 때문에 다 쪼개져 나가고
    병걸려서 '혁명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바다에서 쟁기질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으앙 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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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한다스 간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
    인도 독립운동가,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위대한 영혼)'
    아빠가 인도 식민지 지방 장관이었던 존 나 '매국노(?)' + '상위 1%' 집안 출신.
    런던대학교로 유학가서 법학을 공부함.
    남아프리카에 이민가 살면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하다가 1900년에 보어 전쟁이 터지자
    영국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도인 자원자들을 모아 의무병 부대를 만들어서


    자원입대해 영국 정부에게 훈장을 받음.
    1906년에 남아프리카 줄루족과 영국이 전쟁을 벌이자 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함.


    레알 군대 두번감.
    1차 대전 때는 인도인들한테 영국군으로 참전하라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임.
     


    '사티아그라하(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침.
    독립 후에는 인도의 분열을 막으려다 미 친 힌두교 광신도 사이코한테 암살당함.


     


     


     


     


     


     


     


     


     


     


     


     


     


     


     


     


     


    (  )는 사업에 실패하여 몇십 년간 빚에 시달린 무능한 인간이었다.


    (  )는 공식석상에서 "나는 흑인을 유권자나 배심원으로 삼으려 한 적도 없고,

     


    흑인에게 공직을 부여할 생각도,  백인과 결혼을 허용할 생각도 없다."라는


    무지막지한 망언을 했다. 


     

    (  )는 내전 중에 자신을 비판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설을 실은 신문회사 수백 개를 폐간시키고
    언론인들을 체포하거나 폭도들을 선동해 두들겨패게 만들었다.

    (  )는 인신보호영장의 정지를 선언하여 전쟁이나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법적 절차 없이 깜빵에 쳐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  )의 정체는...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노예 해방을 선언한 대통령,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유신독재의 원조 링컨 기념관 out!!! 독재자 후빨하는 양키들 노예근성 좀 보소 ㅉㅉ


     


     


     


     


     


     


     


    (  )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15년간이나 대통령을 해먹은 종신집권 독재자이다.

     


     


    (  )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터번을 쓰는 전통을 버리고

     


     

    서양식 모자를 쓸 것을 강요했으며
    이에 항의시위를 벌인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수백 명을 사형에 처했다.

     


     


    (  )는 자신이 암살을 당할 뻔한 사건을 구실로 삼아 반대파 정적 수십 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3명만이 암살을 기도한 증거가 발견됐음에도 마구 사형과 징역형을 때렸다.

     


    이 때 사형수들은 자기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로 끌려가 교수형을 당했다.


     


    (  )는 쿠르드족 같은 소수민족들에게 일제시대 내선일체 정책급 탄압을 가했다.

     


     


    (  )는 세계의 모든 언어의 기원이 우리나라 말이라고 우기는 "태양언어 이론"을 스스로 만들어환빠스러운 역사왜곡을 국가 차원으로 저질렀다.

     


     


    (  )의 정체는...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터키 초대 대통령. 1차 세계대전의 명장,

     


     

    전쟁 후 연합군의 점령계획과 그리스의 침략을 무찌른 구국 영웅.
    개슬람 막장 신정국가였던 터키를 남녀가 평등한 근대국가로 다시 세운 근대화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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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에서는 독재자 아타튀르크 out!!! 했다간 구속이라면서요? 진짜 미 친 나란듯;;;


     


     


     


     


     


     


    (  )는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원수의 나라 영국에서 유학을 하였다. 


     


    (  )는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청일전쟁 때 중국과 싸웠던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망명 시절 그와 친구가 된 일본 정치가 이누가와 츠요시는 훗날 일본 수상이 된다.

     


     


    (  )가 조직한 중국혁명동맹회에는 일본 극우파 인사들이 여럿 가입하였다. 

     


     


    (  )는 일본의 제도와 문물을 차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식민지도 아니었던 당시 중국에서 일본식 이름인 '나카야마 쇼우'를 자랑스럽게 썼다.

     


     


    (  )는 아내와 이혼하고 26살 연하인 친구의 딸과 재혼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였다.

     


     


    (  )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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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아버지' 쑨원
    중국과 대만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하는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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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적으로 보시려면 이곳을 참조해 주세요.


    http://blog.naver.com/teraness/60185386931


     


     


     


     


     


    좌파들이 박정희를 친일했다고 까면 위의 반박 자료를 보여주시고,


     


    독재했다고 까면 그보다 더 했던 사람들을 보여주세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10위권의 대국으로 만드는데


     


    40명 정도의 희생밖에 안 만들었다는건 진짜 대단한 겁니다.


     


    박정희가 죄없는 사람 혹시 수천 수만명 죽인걸로 알고 계셨나요?


     


    그것 역시 좌파 세력의 농간입니다.


     


    이순신의 부하들은 해전에서 전사한 수보다 이순신에게 죽은 숫자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이순신은 군법이 엄격했습니다.


     


    위에는 북한이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고 있고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있는데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무너졌을 겁니다.


     


     


     

     

    “박정희 위인이라더라” 야당 총재에게 말했더니

     


     

    2009-05-25장경순(전 국회부의장ㆍ제18대 농림부장관)
    ▲1972년 9월 14일 남북한적십자사 대표단의 현충사 방문을 안내하는 노산 이은상(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 국가기록원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은 생전에 나하고 각별한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해서, 내가 그 분을 자주 찾아뵙거나 그 분이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또 한번은 노산선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한 강주진 박사와 함께 병문안을 갔는데, 병석에서 일어나 앉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이 양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인물 중에 위인을 꼽는다면 꼭 세 분이 있소. 한 분은 세종대왕, 한 분은 이순신 장군, 그리고 또 한 분은 박정희요.”(대통령이라는 직함도 빼고)


     


    그 느닷없는 말에 나하고 강 박사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노산선생은 그 세 분이 어째서 우리 민족의 추앙을 받아 마땅한 위인이며 그 실제의 타당성은 어떤지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세종이 어째서 성군이고 위인인가. 한글을 창제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어째서 성웅이고 위인인가. 왜적을 물리쳐 나라와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종과 이순신을 합친 것보다도 더 월등한 업적을 쌓은 위인이 바로 박정희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훌륭한 업적이지만, 그를 성군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성군이라면 정치를 아주 잘했다는 최대의 찬사인데, 세종이 과연 그런 칭찬이 합당할 만한 정치업적을 쌓았는지 의문이다. 정치를 잘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백성들이 모두 등 따숩고 배부르게 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당시 전국의 인구가 불과 250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계층이 아니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에 굶어죽은 백성들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오니 성군이란 칭찬이 무색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박정희는 1961년에 혁명정부를 세우고 불과 20년만에 우리 국민의 숙원이던 보릿고개 극복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놀라며 칭찬할 만큼 우리 국민을 잘 살도록 만들어놓았다. 박정희는 다른 방면으로도 특출한 업적을 많이 쌓았지만, 이 경제문제 하나만으로도 세종보다 월등 위인 소리 들어 마땅하지 않은가.


     


    이순신은 임금으로부터 버림받아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면서 스스로 거북선 만들고 각종 무기도 개발해 왜적과 23번 싸워 23번 모두 승리한 업적을 세웠기에 성웅이고 위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어떤가. 1961년 집권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훨씬 열세였다. 그렇던 것이, 이제는 김일성이 감히 싸울 생각을 못할 정도로 남과 북의 처지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전쟁에서는 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면승(免勝)을 제일로 꼽으니만큼, 그런 면에서 박정희가 이순신보다 월등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정희를 세종과 이순신을 합친 정도의 위인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노산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보다도 논지의 정연함과 탁월한 지식에 탄복하고 말았다. 나뿐 아니라 같이 문병을 간 강주진 박사도 마찬가지로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여기저기서 노산선생의 이야기를 이따금 했다.



    한번은 이민우 신민당 총재한테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듣고 있던 이 총재가 발끈해서 그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냐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무안해져서 말했다. 
    “그거야 총재님 생각이지요. 저 역시 백 프로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노산선생이 하신 말씀을 옮긴 것뿐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그런데, 이튿날 이민우 총재가 일부러 내 방에 찾아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젯저녁 집에 가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장 부의장 말씀이 백번 옳습디다. 지금 야당합네 하며 목소리 높이는 젊은 친구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노선에 서 있소이다만, 이 친구들 정치하는 거 보니까 우리 야당 하는 사람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요. 노산선생이 바로 평가했어요. 박 대통령은 위인 반열에 올라 손색이 없는 분이오. 어제 괜히 싫은 소리 한 거 사과하리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깜짝 놀라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하, 우리 야당에도 이런 인물이 있구나. 정치인으로서 마음의 자세가 참으로 훌륭하구나. 사람은 누구나, 특히 정치합네 하는 위치에 있으면 한 번 꺼낸 주장은 설령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끝까지 뻗대며 고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기가 틀렸다 싶으니까 곧바로 정정하고 사과하지 않은가.



    나는 그 순간부터 이민우 총재라는 인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그 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헌정회장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해 그 일화를 곁들인 조사(弔辭)를 읽었다.


     


    내가 아는 정치인으로서 솔직담백하게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단 두 사람, 그 한 분이 장택상씨였고, 또 한 사람이 바로 이민우씨였다. ◎

     


     


     


     


     


     


     


     


     


     


    5. 가난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겪어봐야 안다.


     


     


     


     


     

    지금 경제발전으로 인해 개나소나 집집마다 컴퓨터 있고 핸드폰 있고 자동차 가진 나라가 되었는데
    자기가 그때당시 산업화의 세대도 아니면서,
    지금 편하게 누릴 거 다 누리면서 박정희 욕하는 새끼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병 신같습니다.
    모르고 욕하는 것이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소위 못사는 가난한 국가는

    별거 아닌 자연 재해에 수천 수만명이 죽으며

    별거 아닌 질병에 역시 수천 수만명이 죽습니다.

    치안?

    막장입니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는 사실상 치안이 엉망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절대 민주주의니 복지니 그딴거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인도 여행을 왜 자제하라고 하는지 아나요?

    그곳은 치안이 엉망이고 범죄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할머니는 625전쟁 당시 부산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처에 깔렸기 때문에 항상 도둑들이 들끓었다고 합니다.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민주주의?

    명심하세요.

    박정희 아니었으면 아프리카같은 빈민국과 동급인 나라였을 겁니다.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상위 1%만 가졌을 겁니다.

    컴퓨터는 꿈도 못꾸고 지금쯤 다들 밭갈고 있었을 겁니다.

    걸핏하면 별거 아닌 질병에 수천 수만명이 죽었을 겁니다.

    살인 약탈 방화 이런게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개나소나 스마트폰 가지고 다닐 일은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의식주가 인간 생활의 기본인데 그걸 해결해준 사람한테,
    배고플 때 굶지 않게 해준 사람한테 몇가지의 결점으로
    (결점도 찾아보니 전부 날조에다 진짜 결점이라곤 별로 없네)
    엄청나게 큰 업적을 깎아내리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재로 수십명 죽은것은 분명 과오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날조로 거짓선동을 일삼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투표 당시 박근혜를 뽑아준 사람들 대부분은 5,60대의 어르신들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독재로 국민들을 괴롭혔다면 과연 어르신들이 박근혜를 뽑아줬을까요? 


     


    아, 어르신들이 존 나게 무식해서 국민들을 괴롭힌 박정희 딸 박근혜한테 그렇게 투표를 많이 했구나 ㅎㅎ


    좌파 벌레새끼들한테 박근혜 뽑은 어르신들은 그저 못배우고 세뇌당한 빨리 뒤져야 할 늙은이일 뿐입니다.





    http://blog.naver.com/teraness/60178414730 - 좌파들이 생각하는 어르신 (혐오주의)


     


     


     


     


     


     


     


     


     


     I would remind you that extremism in the defense of liberty is no vice.


     


    And let me remind you also that moderation in the pursuit of justice is no virtue.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 행위는 악이 아닙니다.


     


    또한 정의를 추구하는 데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Barry Goldwater


     


     


     

     

     


     


     


     


    6. 박정희는 왜 음해당하는가


     


    박정희를 음해하는 세력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임원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날조하는 놈들 까고보면 친일파에다 종북세력들입니다.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하면 친일파가 아니라는 자료를 보여주는것 보다는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혼란을 주고 국가전복시킬 목적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우파들은 모두 친일파니 빨갱이니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세력인지, 왜 박정희 같은 사람을 친일파로 날조하는지 알고 싶으시면


    이곳을 참조해 주세요.


    http://blog.naver.com/teraness/60179798290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프레이저 보고서에 대한 반박문도 올립니다.


    http://blog.naver.com/teraness/60187167435 (빡침주의)


     


    보고 욱 하실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새누리당을 친일파당이라고 까는 새끼들의 친일파 후손, 친일파 목록


    1.정동영 (민주당)
    부친 정진철: 전라도 출신. 일제때 전북 순창 구리면 면장 출신이자 금융조합 간부(서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정진철 면장은 당시 순창 근처에서 가장 좋은 명문 '남원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 조선 착취 최일선 기관인 '금융조합'의 서기를 5년이상 하면서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다하여 소작농민을 괴롭힌 놈이다. 

    2.유시민 
    부친 유태우: 일제시대 훈도(교사) 경력. 역사훈도
    백부 유석우: 일제시대 친일파 면장 

    3.김희선 (민주당)
    부친 김일련(가나이 에에찌): 일본특무경찰로 간도 독립군 체포,고문 전문.
    김희선 본인의 자료 조작으로 독립군 김학규 장군의 딸인 것처럼 조작하였으나,
    이후 김학규 장군의 친자녀들과 장군의 동지들에 의해 김희선의 친부는
    간도 만주독립군 체포를 위해 이주한 일제특무경찰 김일련으로 밝혀짐.

    김일련(가나이 에이이치)은 만주유하경찰서 특무 간부로서, 독립군을 탄압했던 기록이 무수하고,
    극악친일파들만이 복역하던 형무소에서 김희선이한테 편지를 보낸 놈.
    김희선이는 그걸 조작해서 환부역조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칭 독립군의 손녀를 가장하고
    오로지 그거 하나 팔아먹으면서 오늘날에 이른 철면피.

    독립군 사칭한 민주당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이 일본 경찰이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확산시킨
    미 워싱턴 밴쿠버 거주 교포 이배영씨는 김일련이 만주에서 경찰을 했고,
    김일련의 부인이 남편의 경찰 근무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더라.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4.김근태 (민주당)
    부친이 일제 조선총독부 교육청 소속 엘리트 소학교 훈도(교사) 출신.

    5.조기숙 (열린우리당/이화여대 교수)
    조부 조병갑: 동학운동의 근원 전남 고부 미곡일본방출사건의 장본인. 전남 고부군수 조병갑
    부친 조중완: 일본 총독부 소속 신문기자

    6.이미경 (민주당)
    부친 이봉권: 일본군 헌병. 위안부 차출하여 황군에 바친 훌륭한 분.
    이봉권이는 그야말로 일본군의 핵심 사찰요원으로 당시에 조선인은 꿈도 못 꾸던 황군 헌병.

    7.신기남 (열린우리당)
    부친 신상묵: 시게미쓰 구미오. 헌병오장.

    8.김대중 (도요다 다이쥬)
    일본인 해운회사 근무

    그리고 민주통합당 친일파 끝차대빵

    9.홍영표 (민주통합당)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공격할 목적으로


    친일파 청산법 만들다 개처발린 사건.


     http://blog.naver.com/teraness/60176672956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직접 내려 주세요.


     



     


     


     


    참고 링크


    http://blog.naver.com/sangmin5886/162206186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첫월척배딴놈 13-08-21 05:57
    뭔 대단한 인간이라고 이렇게 글올리시는지...

    그래봐야 나쁜x인데...
    달구지220 13-08-21 06:46
    맥가이범형님

    새벽에 긴 글 올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먼저 인사드리고, 정독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늪사랑 13-08-21 07:56
    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10.26.
    629선언, 민주화 물결에 항복하면서 하는 수 없이 629선언을 하였지만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 김재규 중앙정보 부장, 629 선언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백골부대의 방망이와 군화, 지ㄹㅏㄹ탄,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설치는
    대한민국 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를 살면서 백골부대의 군화에 짖 이겨지고 채류가스에 눈물을 흘려 보시지 않으셨다면,
    경찰들의 주먹에 대갈통을 난타당하고,
    옷이 벗겨진 나채 상태로 취조를 당하지 않으셨다면 자판 두들기기를 멈추십시요.
    (그 당시의 채류가스가 얼마나 독한지 아십니까.
    수출 하였다 너무 독하여 반품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고 박종철군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탁"하고 치니까 "윽"하고 죽었습니다.
    天地不仁 13-08-21 08:13
    긴글 읽어볼필요도 없구 제목만 보니깐 알겠군요

    참 애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게
    맥가이범 13-08-21 09:08
    타블로가 그랬죠 " 못믿는게 아니라 안믿는것" 이라고




    그분들이 하고 싶은말은 " 믿을 수 없다 "가 아니라 "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 라는것






    .
    무위자연 13-08-21 19:11
    좋은 말입니다만 반대로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저도 믿고 싶은 것만 눈에 들어와서...

    진실보다는 사실이 있겠지요. 안타깝게도 사실 자체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하는게 문제라는
    석천공 13-08-21 09:13
    지금의 7~80대가 피땀을 많이 흘렸죠.
    우리때도 아침을 걸른학생들을 위해
    국민학교시절에 옥수수죽을 나누어주었죠.
    오전반 오후반 모두다....아마 30%는
    먹어보았을 겁니다. 경험해보지않고 이해한다는게
    힘들겠지요...첫째도 둘째도 현 교육이 문제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맥가이범 13-08-21 10:21
    서울에서는 딱딱하게 만든 옥수수 빵을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인가 받았던것 같은데

    숫자가 많지 않아서 수업끝나고 나서 청소 당번 들에게만 주었죠

    그것 얻어 가지고 집에와서 동생들과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흑표조사 13-08-21 10:50
    우리 초딩때는 옥수수빵 배식도 안줘서요 나중에 줫지
    보리고개 지나고 삶이 풍요 할때도 쪼매 팍팍해지니까
    경제를 살려줘 하면서 역대 최대 표차이로 명박이도 밀어주고
    국가일년 예산이 하버드대 보다 적은 국가를 세계 십위권으로
    끌어올리는 토대를 만드신분을 칭찬은 고사하고 못까서 안달인
    사람들과 토론은 무슨 토론입니까 날더운데 시원한 계곡지가
    건강에 이롭습니다
    올해는 육짜와 상면하세요 ㅎㅎ
    맥가이범 13-08-21 11:01
    흑표조사님 안녕하세요?

    젊은애들 말대로 늙은이들은 입닥치고 나죽었네하고 지내야 하는건데

    일이 있어서 2주째 낚시를 못갔고 이번주도 결혼식대문에 못가게 되다보니 금단현상이 일어났나 봅니다.

    낚시못가는 한을 월척에서 풀고 있네요.


    오짜도 못했는데 육짜까지는

    막바지 더위에 건강조심하세요.
    케미컬나이트 13-08-21 09:22
    맞아요!!

    박정희는 신입니다.

    박정희가 없었으면 이나라는 진즉 망국이 되었겠죠.

    그리고 아래 어느분 말씀처럼 친일이 없으면 낚시도 못하겠다는데, 친일은 일상생활의 필수죠 ^^

    역사가 밥먹여주는것도 아닌데 이러믄 어떻고 저러믄 어떻습니까?

    독립군은 전부 후안무치였으며, 한일합병이 잇었기에 이땅이 존재하며, 이후 박정희라는신꼐서 강림하시어

    그나마 현시국까지 오게 된것 아니겠습니까?

    5.18은 빵갱이들의 선동/윗분말씀처럼 돈벌이로 .... 네네 다~맞고요~~

    안중근과 김구는 테러리스트에 대일본제국 천황폐하 꼐옵서 미천한 조센징에게 이름까지 하사해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셨는데 빨개이 쉐리들은 선동만해데고 ㅋㅋ 그나마 위안부 문제는 그예민함에 있어 살~짝 피해가시는유연함

    을 발휘 하시는 센스쟁이~~

    우리나라 역사책들은 전부다 소각하고 여기 학식이 높은신분들(맥가..내일..맘대..)이 재출간을 해야하는데,

    일단 빨개이 쉐리들부터 처단하고 하시지요. 어차피 역사는 다시 새롭게쓰면 되니까요 ^^

    계속해서 부단한 활동 부탁 드립니더~
    하나로 13-08-21 10:43
    맥가이범님.....
    정성들여 쓰신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이슈 토론방에서 많이 오갔던 글들인데,
    서로 상대의 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보니
    또다시 쓰게되고 또다시 주장하고....
    같은 말과 글이 계속 반복되는것 같네요,

    이번에 쓰신 글들도 읽어보며 링크 걸어놓은곳도 들어가 보았지만.....

    참 안타깝네요.......

    결국 님이 말씀 하시고 주장 하시는 내용도 대부분이
    보수를 대변하는(?) 그런곳에서 글을 옮겨오고
    그런곳의 주장만 믿고 이곳에다 전달해주신다는 그런 말씀이시네요?

    그래도 어느정도의 기대는 하고 글을 읽다보니....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어느정도 수긍할수 있는 그런곳의 정보이기를 바랬는데.....

    님의 글을 읽고
    저도 쓰고 싶은 글은 많지만
    많은분들이 많은 글들을 열나게 주고받고 하시니

    어제의 숙취가 한쪽에 찌그러져 있으라하니 그만 물러 갑니다....쩝...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글들이 넘쳐나는 공간이 되길 희망 하면서.....
    카이엔 13-08-21 10:59
    맥가이범님 덕분에 많은걸 알게 되네요
    진실은 아무리 왜곡한다해도 언젠가 밝혀집니다
    고 박정희대통령 같은 영웅이 어려운 시절 우리나라를 이끌었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고 널리 알려야 하는것을
    일부 자국민들 스스로 까내린다는게 참으로 한심한 현실입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내일은꿈 13-08-21 11:05
    토론방에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보수는 늘 비겁하다

    자칭 진보가쓰놓은 말도 안되는 논리의 글에 대응하기는 고사하고

    혼자서 자신은 저글을 이해하고 허구임을 아는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서서 표현하기를 거부하고 쓴웃음 만 남기죠 ?

    하지만 진보는 아무리 작은 이슈에 대해서도 살을붙이고 거짖을 사실로 만들수 있다에서 출발 합니다

    이러한 탓에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글들은 그들만의 논리를앞세워 거짖이 사실로발전되어 버리고

    반박하기에는 이미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이젠 보수도 당당하게자신의의견을 표현할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봅니다
    보라소국 13-08-21 11:32
    삭제되었습니다
    맘대로 13-08-21 13:05
    보라소국님 민주투사 이시군요

    맥가이범님은 알바가아니고 국정원 최정예 고위 간부 아닐가요?

    알바들은 귀찮아서 저정도 긴글은 안올립니다

    저라도 알바비 받고는 저정도 긴글은 못올립니다
    天地不仁 13-08-21 13:10
    9200만원이요 그라고 부하들좀 나눠주겠져 요기 부하들도 있는듯 하니
    맘대로 13-08-21 13:30
    틀렸다는 근거를 토대로 자료를 제시하는게 보기좋지 않을가요?

    그냥 맘에 안들면 알바드립? 이건 아니잔아요

    어차피 싸우는거 제대로 싸워보시는게~~~

    이런씩에 드립은 졌다고 인정하는겁니다

    조리있게 자근자근 반박하시는 분들이 무서운거지 그냥 알바드립이나 하시면

    누가 인정 해주겠습니까

    님들의 주장을 인정 받고 싶다면 조리있는 반박글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토론이 되지요
    맘대로 13-08-21 13:20
    대단하십니다 맥가이범님

    박정희를 존경하는 1인이지만 님처럼 그정도에 지식은 없었네요

    저는 친일이던 친미던 간에 이나라가 두번 다시 뺏기지 않을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저들이 주장하는 박정희가 친일파 였다고 하더라도 저는 박정희를 존경함에 있어서 변함이 없을것입니다

    한가정에 부자지간. 형제 .자매 사이에도 뜻이 맞지않아 다툼이 있는게 현실인데

    하물며 한나라를 통치하는데 있어서 그정도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족이 억울하게 당했다면 원망하며 원수처럼 보이겠지만 모든사람을 다 만족 시킬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분들에게야 죄송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때 존경하는바 입니다

    맥가이범님에 박정희에 대한 정보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케미컬나이트 13-08-21 13:35
    "내가족이 억울하게 당했다면 원망하며 원수처럼 보이겠지만 모든사람을 다 만족 시킬수는 없다고 봅니다"

    당신 자식이 화형으로 거죽이 벗겨져 참담하게 생을 마감했어도 그말 참 잘나오겠네요 그쵸?^^

    또한 누군가가 그런님 앞에서 같은말을 한다해도 님은 적극 찬성 할거구요. 그쵸?^^
    케미컬나이트 13-08-21 13:53
    삭제되었습니다
    맘대로 13-08-21 14:37
    삭제되었습니다
    달구지220 13-08-21 14:30
    캐미님
    남의 글에 협박하시나요?
    물속에쳐박는다니......
    월척 운영자분은 뭐하나 모르겠군요
    향수™ 13-08-21 15:07
    맥가이범님이 좋아하는 역사속의 정치인은 박정희라고 칩시다.

    케미컬나이트님은 가장 좋아하는 역사속의 청치인이 누구입니까?

    남이 좋아하는 정치인 자랑질에 인신공격을 할것이 아니라

    케미컬님이 좋아하는 정치인의 자랑꺼리 한번 들어봅시다.


    남의 글이 마음에 안든다고 협박에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으면서

    당신의 인격은 항상 점잔은척하는 이상적인 사람 같습니다만?


    자신의 뜻과 다르면 매번 시비로 대처하면서

    늘 점잔은척, 대한민국 국민의 뜻인양 하는 자신주의 같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박근혜님이고

    우리는 그아랫 사람도 아니고 그 윗사람도 아닙니다.


    원한을 갚고자 인격살인을 저지른다면

    연좌가 있어야 될것이 아닙니까?


    박근혜를 물어뜯고 싶은데 별로 불어뜯을것이 없으니

    그의 아버지를 물어뜯는 좀비같은 행동은

    어디서도 역사를 알고자하는 진지함을 못느낍니다.


    이밑으로 님의 답변에대한 저의 답글은 없을것이니까

    혼자 약올라 하십시요.


    남에게 인신공격한 죄값입니다 ^^;;
    케미컬나이트 13-08-21 16:00
    삭제되었습니다
    간드렛 13-08-21 15:44
    근대화의 선구자 박정희 대통령!

    유신이라는 과오도 있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조국의 기틀을 마련한 세계에서 인정하는 훌륭한 지도자임은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유신 독재를 어서 빨리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한 그때 그 시절 양김씨들은 목청 높여 외쳤습니다.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는 민주화만 오면 대한민국은 정말로 잘 될 것처럼 국민들에게 외치던 그 두 김씨들은 박 대통령 시절보다 훨씬 좋아진 90년대 후반과,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는 꽃 피고 새 우는 정말 좋은 시절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고 먹을것조차 변변치 못했던 어려운 시절 힘들게 대통령을 하였던 박대통령의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못 따라가는 부끄러운 행태와 친인척들과 자식들의 온갖 비리와, 졸렬한 정치속에서 부끄럽게 이 나라의 역대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역사 속에 새겼습니다.

    역사는 기억할 것입니다. 정말로 나라를 위한 조국의 지도자가 누구였는가를...

    혹자들은 말합니다. 18년 동안 권좌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박대통령만큼은 할수있다고 .... ?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천만의 말씀 입니다.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잘 살았던 필리핀의 마르코스... 기나긴 독재 끝에 나라를 파경에 이르게 하고 자신의 부정부패와 친인척들간의 졸렬한 정치속에서 필리핀 국민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산업을 배우고 일자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자원 부국이었던 버마를 오늘날에도 군사쿠테타로 얼룩지고 가난한 나라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나라로 망쳐놓은 인물이 바로 네윈이라는 인물입니다

    박대통령과 거의비슷한 시기인 60년대 초반부터 1988년까지 무려 26년 동안이나 독재를 하다가 쫓겨나 말년에는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던 독재자 네윈이 자원부국이며 동남아의 샛별이던 버마(現 미얀마)라는 나라를 개인의 사리사욕에 가득찬 독재로 인하여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로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수십년이 넘게 권좌에 올랐지만 나라를 가난하고 마약과 온갖 범죄가 끝이지 않는 빈국(貧國)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이 통치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국가의 번영은 누구나 오랫동안 권좌에 올라 통치한다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진정으로 조국을 위하고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설 때 개인의 사적인 욕심을 잠재우며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어렵고 험난한 시국에 (60~70년대 시절에 비하면 험난이라 할 수도 없지만) 나라를 위한 진정한 지도자가 더욱 간절하게 정말 그립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진정한 지도자를 한분 모시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지를 박대통령을 통해서 다시한번 깨닫게됩니다.
    호금이 13-08-21 17:54
    정말 진지하게잘요약 하셨네요
    수고많으셨어요....
    울나라가박정희대통령의조국근대화바람에
    부흥할수있었지요...
    존경합니다 박정희대통령님....
    天地不仁 13-08-21 21:05
    최근 서민경제와 국가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로망이 다시금 피어나고 있다.
    특히 극우.보수단체에서는 거의 종교수준이 되어 버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진중권씨가 한마디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언급하길 회피하거나, 작은 목소리만 낼 뿐이었다.
    최근 여러분야에서 진중권씨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지성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그만큼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쯤 역사적 재인식에 노력을 기울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당신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고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인민이 맹목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맘대로 13-08-21 23:37
    지 앞가림도 못하는 인물이 하는소리를 지성인의 대표가 말한것 처럼 생각하시면

    거기서 부터 대화는 힘들어 진다고 봅니다
    유율 13-08-22 10:43
    29살청년입니다 잘읽고갑니다
    허송세월10 13-08-24 15:07
    박정희 친일파 의혹이라니...친일파지...국정원 청문회때 동영상을 보고도 아니라는 인간들과 뭐가 다른가?
    답이없다.
    물고기옆자리 13-08-26 09:26
    아빠총맞아죽어~
    엄마총맞아죽어~
    남동생은뽕쟁이에~
    여동생한테고소당해~

    거참~뉘집이야기인지.....ㅋ
    그래도파란집들어가서잘사네요....ㅋ
    그래도아버지가대단하긴한가봐요....ㅋ
    아직도이렇게그리워하는이들이있으니...ㅡ.,ㅜ
    안타깝네요~~~
    4짜조사양 13-09-05 20:44
    참 세뇌가 무섭긴 무섭군요.

    말이 혁명이지 군부쿠테타에 독재자에, 전두환이도 똑같이 배워서

    똑같이 해먹고.... 독재자 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딸도 아버지 따라쟁이.. 간첩만들기...
    초록가물치 13-09-25 17:14
    ㅋㅋ 손바닥 크다
    아예 모든 것을 가리려 합니다!
    가려 질까요?
    다까끼 마사오!
    독립군 토벌대 선봉장
    변천사 일본 패망후 남노당 으로
    눈치끝 동료 팔아 먹고 변태를 거듭 하여
    눈가리고 아웅 군복입고 총들고
    내란으로 정권 찬탈!
    성공한 쿠데타는 아무이유없다 카는 자기합리성 또는
    쿠데타를 반기는 현 보수주의 정체성과 100% 일치.
    ㅎㅎ 지금 개누리 보수는 쿠데타를 어찌 생각 할런지!
    뼈속까지 친일 자손들이 유독 많은 개누리보수국회 유유상종 아닐런지!
    낚고지비 13-10-07 21:43
    천번을 양보를 하고 만번을 되물려 보아도,
    님의 글을 반의 반 만을 믿어도,

    중학교 2학년때
    '대통령 유고'
    라는 소리를 듣고, 그 뜻을 알아채고는 하루종일 울었던 내가
    새삼 기억이 닙니다.

    소중한 글, 귀한 증거를 힘들여 보여 주신 노력에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진정 고 박정희 대통령님은 우리의 영웅 이셨습니다.
    진정 그 분은 우리의 큰 어른 이셨습니다.

    세치의 혀로, 우리를 현혹 시켰던 몇몇 모리배와는 그 참 모습이 다른 분이셨습니다.

    차마 범접하지 못할 그분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물론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만,
    그 그릇이, 그 규모가, 그 뜻의 크기가 다른
    이미 격이 다른 분이었습니다.

    님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님을 늦게나마 다시 일깨워 주신 소중하신 글월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춘장 13-11-05 17:15
    다까끼마사오 가 한국이름인가?
    통기타리스트 17-11-07 15:53
    붕어나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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