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광장에는 3만여명이 모여 있었다.
오늘밤에는 공수부대 진압군이 몰려온다.
집으로 가야 할까? 남아야할까?
집으로가던, 남아있던 그 누구도 붙잡지도 않고
원망도 안한다. 아니 할 수가없다.
가스배달원, 구두닦이, 식당종업원, 웨이터등 남은 사람중
"사"자가 들어간 사람은 교사 한분, 야학교사 몇분과
대학생 몇명만 남고 다 집에가고, 1% 약 300명이 남았다.
손에는 2차대전때나 한국전쟁때 썼던 엠원과 칼빈 소총.
그것으로 진압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순수한 애국심으로 목숨을 걸고 도청을 지키려고
했었을까요?
여러분들과 저라면 그들처럼 그렇게 할수 있었을까요?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말이 광주시내 바닥에 울려 퍼질때,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을 것입니다.
또 그순간 집에있던 그들의 가족들 심정은 어땟을까요?
새벽 3시가 지나 방송이 끝나고 잠시후에 총성이
3~40분쫌 울려퍼졌습니다. 그걸로 모든건 끝났습니다.
아마도 역사에 가장긴 새벽이었을 겁니다.
그후로 "살아 남은자의 슬픔" 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한홍구 교수의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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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후대에 이정표와 목표의 지향점이 될수도 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일까요?
우린, 1980년 5월 그분들이 피와 땀, 눈물 그리고 목숨바처
지키고자 했던 그것들을 잘지켜 나가고 있나요?!!!
화사하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젊은 청춘들.
5월의 마지막 봄꽃처럼 꽃잎을 떨구고 막 열매를 맺기 시착한 그시점,
비릿비릿한 그들은 비릿한 내음을 남기며 봄꽃처럼 시들어 버렸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그(전두환)는 수십년이 지나도
사과한번 없고 오히려 점점 더 뻔뻔해집니다. 법정에선 사뭇 다른
꼬장꼬장한 모습도 보이고 정상이 아니긴 한가 봅니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사건은 슬프고 잔인하게도
가정의 달이란 5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말 누가했는지 아시죠?
아직도 이런놈들 많다는것이 슬픈 일입니다.
사태니,폭동이니..............
아무 생각없이 이런놈들을 따르는 무리도 있으니............
그러네요.............
가정의 달에 오월의 광주가 있었네요.
아련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