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이혼할 뻔했다
"김형! 이번 주말 특별한 일 없으면 낚시 어때요?"
"글쎄, 스케줄을 확인해 봐야겠는데, 내 전화하리다."
서울 신당동에 사는 김상빈(가명, 46, 자영업)씨는 낚시광이다. 그런데 금년 봄 가족들 앞에서 낚싯대를 꺾었다. 자녀들을 동반한 부인의 강력한 시위에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전 처음 낚시를 시작한 김씨는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금요일 저녁 일찌감치 가게를 정리하고 낚시터로 향했다.
"낚시가 말이지, 밤새 혼자 생각할 여유도 있고 정신건강에 참 좋은 거 같아"
김씨가 낚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부인은 그런 줄 알았다. 또 시간 날 때 가끔 낚시를 다녀온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렇게 수긍하는 눈치를 보인 게 잘못이었다. 남편 김씨는 당연한 듯이 금요일 저녁이면 낚시를 다녀온답시고 집을 떠나 일요일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귀가한 남편의 모습도 가관이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밤새 무엇을 했는지 담배와 술에 쩔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주말 집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는지 남편은 TV 리모콘만 이리저리 돌리다 잠이 든다.
낚시 초창기엔 그렇지 않았다. 낚시터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잡은 물고기를 내보이며, "같이 간 사람들 모두 공쳤는데 나만 혼자 잡았다"고 으스대며 이야기를 늘어놓고 가족을 위해 맛있는 매운탕을 끓이겠다고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가까운 친척의 결혼식에도 바쁜 일 때문이란 핑계로 거짓말을 해 가면서 낚시를 다녀온 남편을 볼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안 되겠다. 당신 낚시 포기해라!"
당연히 남편은 '개인 사생활 침해, 타인의 취미 간섭' 등을 내세우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동원한 맹공에 결국 남편은 백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주말만 되면 불안한 기색을 보이더니 등산화를 신고 등산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웬일일까. 등산을 다녀온 사람 몸에서 물고기 비린내가 난다. 예감은 적중했다. 김씨는 등산을 핑계로 매주 낚시를 다녀 온 것임에 틀림없다.
남편 몰래 차량 트렁크를 보니 낚싯대며, 뜰채, 살림망 등 낚시용품으로 가득하다.
"가족은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무너진다. 가족 간의 불신이 있어도 안 된다. 그런데 당신이 그것을 깨뜨렸다. 아이들 앞에서 묻는다. 낚시 계속할래? 이혼할래?"
부인의 눈치를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결국 차에 있는 낚싯대를 모두 꺼내 부러뜨리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것이 불과 몇 개월 전 봄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런데 평소 낚시 때문에 친분이 두터웠던 이씨가 느닷없이 낚시 출조 제안을 한 거다. 순간적으로 '까짓 낚싯대 사면 되지'라는 생각에 출조 여부를 전화로 알려 주기로 했는데, 부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캠핑을 위장한 낚시 출조, 아내에게 들켰지만
▲ 강 옆의 푹 들어간 공간, 이런 곳이 붕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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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캠핑이 대세인 것 같아. 창고에 가족 텐트 있지? 그것 가지고 이번 주말 우리 가족 캠핑여행 어때?"
"아니, 그 덥던 여름엔 한마디도 안 하더니, 날씨가 추워지는데 무슨 캠핑이야? 어디 좋은 데라도 있어?"
평소 소소한 모험을 즐기는 김씨의 부인이 호기심을 보인다. 시골 밖에서 잠을 잔다는 말에 아이들도 쾌재를 부른다.
"이제 다 준비됐지? 근데 찌개거리는 뭘로 하지?"
"내가 고기 잡을게."
캠핑을 위해 부인과 시장을 찾았던 김씨는 은연 중에 그렇게 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을 쳐다보던 김씨 부인은 알겠다는 듯 쇼핑을 계속한다. 남편의 취미를 억눌렀던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고, 얼마나 낚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면 가족캠핑이란 생각을 했을까... 김씨 부인은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대신 낚시를 가족들과 같이 해. 당신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낚시하는 방법도 모르니까, 당신이 가르쳐 줘, 그리고 많이 잡은 가족들에게 상품도 당신이 줘."
김씨는 순간적인 아내의 지혜에 놀랐다. 부인의 말은 의미 없이 야외에 나갔다가 오는 것보다 집안의 작은 행사를 만들어 가족들의 추억을 만들자는 거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 앞에서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자 아이들이 더 신났다.
시골 낚시터,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졌다
▲ 낚시터에 도착해 낚시대를 드리운 김씨 아내의 자세가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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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가족 캠핑 낚시터를 강원도 화천에 있는 서오지리 마을로 정했다.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중 깨끗한 곳이 좋을 것 같다는 부인의 말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지난 5월초 이곳에서 다량의 붕어를 잡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엔 집사람이 무서워 30여수나 낚은 붕어를 잡에 가져가지 못하고 모두 놓아주었지만, 꼭 그 붕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멋지게 붕어를 낚아 의기양양하게 낚시 때문에 구겨진 체면을 살리리라."
전날 밤, 김씨는 낚시터 인근 마을 반장인 서씨에게 전화를 했다. 서씨는 3년 전부터 출조전 조황을 물어왔던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어제 밤 춘천댐에서 물을 빼는 바람에 수위가 조금 낮아졌어. 그래서 며칠 더 있어야 입질이 들어올 거 같은데..." 정직한 서씨는 고기잡이가 목적이라면 이번에는 내려오지 말기를 권했다.
"그렇다고 해도 꼭 낚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우리 가족 캠핑이 목적이니까 가겠습니다."
"김씨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오면 나야 좋지."
서오지리, 연꽃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강변 3만여 평 규모의 늪지는 온통 연꽃 밭이다. 5월부터 9월까지 수련을 비롯해 어리연, 참연 등 수십 종의 연꽃이 자연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곳이 또 이곳이다. 이 연꽃단지 아래 강변이 지금까지 김씨가 찾았던 포인트다.
이 마을 반장인 서씨는 연차와 연주 그리고 연 튀김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 내가 오늘 첨 뵙지만, 우리 김씨는 낚시꾼 중에 모범이세요. 돌아갈 때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도 뭐고 다 버리고 집에 가기 바쁜데, 김씨는 남들이 버린 쓰레기도 다 줍고 집으로 가신다우. 그것 때문에 내가 김씨를 늘 환영하기도 하지만...허허~"
'왜 이곳 반장이란 사람이 우리가족 일행을 특별히 맞이해 주는지 궁금했는데, 우리 남편이 쓰레기를 잘 치워서?...' 순간적으로 김씨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건 아닌 것 같다. 서로 너털웃음을 웃어가며 '금년도 농사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 사이의 계산되지 않은 정감어린 친근감이 묻어있는 듯하다.
바쁜데 그러지 말라는 만류에도 서 반장은 텐트를 치고 낚싯대 설치를 돕는다.
"어! 김씨, 낚싯대가 뭐 이래?"
"지난번에 쓰던 거 다 잃어 버려서 급한 대로 오면서 샀어요. 오늘 캠핑이 목적인데 뭐..."
"그래도 이건 꾼 체면에 말이 아니다."
서씨는 김씨가 낚싯대를 모조리 부러뜨려야 했던 사건을 모른다.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맞는 한 칸 반대 낚싯대를 펴 주고, 김씨는 부인과 옆자리에 나란히 두 칸 대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 준비를 마쳤다. 서씨가 눈을 찡긋했다. 저녁을 준비했으니 집으로 오라는 눈치다.
"잘 봐! 떡밥에 물을 이 만큼 붓고 밀가루 반죽하듯이 이렇게 개는 거야."
요리에 익숙한 아내는 내 말이 우습다는 듯이 붕어낚시를 위한 떡밥을 쉽게 만드는데, 아이들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이거 먹으면 죽어요?" 라면서 장난을 치며 난리다.
"에이 그렇게 말고, 줄을 잡고 초릿대를 이 정도 당겨서 놓으면 튕겨져 나가잖아."
역시 여자들에게 낚시기법 전수는 무리이다. '그게 아니고, 잘 봐'를 수십 번 되풀이 했지만 던지는 포인트가 들쭉날쭉 찌의 높이도 매번 다르다.
"근데 왜 고기는 안 잡히는 거야?"
아뿔싸. 순진한 아내는 낚시만 담그면 물고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낚시 바늘을 물고 나오는 줄 알았나 보다.
"입질이 오든지 말든지 떡밥을 달아서 던지고 좀 있다가 또 떡밥을 달아 던지고를 반복해야해. 그래야 고기들이 먹이 냄새를 맡고 모이기 시작하거든."
어떤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몰두하는 습관이 있는 아내의 성격 때문인지, 미끼를 다는 것하며, 낚시를 던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다. 애초부터 낚시에 관심이 없었던 아이들은 진즉에 낚시터를 떠나 멀리서 재잘댄다. 메뚜기 잡이에 정신이 팔린 듯 시골 논밭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난리다.
"김형! 빨리 오십시오. 소주 한잔 합시다."
기다리던 서 반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서 반장이 마련한 저녁식사, 직접 재배한 가지, 오이, 호박 등의 농산물로 요리한 풍성한 반찬이 신선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평소 집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호박나물과 오이김치, 매운탕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야외에 나오면 아이들이 자연과 동화되어 식성이 바뀌게 됩니다."
서 반장도 아이들이 맛있게 저녁식사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스럽다는 눈치다.
▲ 캐미컬라이트, 밤 낚시에 있어서 필수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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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전이 개시됐다
식사 중에도 김씨의 생각은 온통 낚시터에 가 있었다. 몇 개월 만에 어렵게 만든 기회.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이다. 서 반장의 친절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서둘러 낚시터로 향했다.
캐미컬 라이트 불을 밝히고 찌를 뚫어져라 노려봐도 미동도 없다. '월척이 찌 가까이 다가온다'는 상상도 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김씨는 부인과 평소에 하지 못했던 깊이 있는 이야기도 나눴다. 이미 낚시에 싫증을 느낀 아이들은 텐트에 들어간 지 오래다.
"두 사람 데이트 방해할까봐 안 나올까 하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있어야지."
밤 10시쯤 되었을까, 조황이 궁금했던지 서반장이 김씨 부부를 찾았다.
"낚시는 말이야 끈기와 저력이 있어야 해!"
김씨가 밤새 낚시를 하고 싶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서 반장은 김씨의 아내를 보면서 말을 건넨다. 아내가 일어난다.
"오랜만에 두 분 이야기나 실컷 나누세요! 난 들어가서 소주와 안주를 준비 할게요."
아내는 김씨와 둘이 있을 때는 사사건건 잔소리꾼이지만, 옆에 손님이 있으면 천사표로 변한다. 못 말릴 왕내숭이란 것을 알지만, 김씨는 괜히 서 반장 앞에서 (난 이런 훌륭한 아내와 삽니다 라는 식으로)으쓱해지고 싶었다.
"작전개시?"
"콜"
능숙한 솜씨로 서 반장은 아내의 낚시 바늘에 미리 준비해 온 팔뚝만한 붕어를 꿰었다. 그러고는 큰소리로 집사람을 불렀다. 안주를 준비하다 무슨 영문인지 달려온 아내에게 김씨는 "당신 낚시에 붕어가 물린 것 같아. 빨리 당겨" 라고 외쳤다.
아무리 꿰어 놓은 붕어라 해도 팔뚝만한 크기면 힘이 대단하다. "대를 세워"라는 외침에 아내는 "도와줘"를 외친다. 서 반장은 아내 옆으로 잽싸게 자리를 옮겨 힘겹게 끌어내는 척한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큰 붕어는 처음 봅니다."
"반장님~ 도와줘서 고마워요."
서 반장의 너스레에 아내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지 목소리마저 떨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은 이랬다
▲ 북한강 가을은 붕어낚시의 적기이다. 가족단위 캠핑 낚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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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출조 전에 조황을 묻기 위해 서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에 서 반장은 춘천댐 수위 변동으로 낚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가족들과 함께 가는데, 아내가 고기를 잡는 연출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야 가족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허허~ 그거라면 걱정마슈,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할 테니, 사모님이 자리를 잠시 비우게만 해줘요."
이렇게 두 사람의 작당에 의해 대물 붕어가 낚인 것을 김씨의 아내는 모른다. 아예 소주 안주 준비하러 갔던 기억도 잊었는지 그녀는 낚시에만 열중이다. '소주가 준비된 다음에 일을 꾸밀걸'. 김 씨는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잘못 정했다고 생각했다.
"한번 고기가 낚시면 물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고기들이 달아나 한동안 입질이 없어요."
서 반장의 말에 눈치 빠른 아내는 서둘러 소주와 안주를 준비해 왔다. 같은 술이라도 강변에서 마시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던 김씨의 아내도 '이래서 남자들이 낚시를 즐기나 봐요' 하면서 한잔을 들이킨다.
"사실 서울에서 주량이 소주 1병인 사람이 이곳에 오면 2병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아요. 맑은 공기가 원인이겠지만,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인 거 같아요."
서 반장은 그럴싸한 명언을 만들어 낸다. 술을 한잔씩 나눈 김씨일행은 계속되는 대화에 낚시도 잊었다. '술에 취하는 것 같아요' 라고 김씨 아내가 말하며 텐트로 이동한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서 반장과 김씨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차피 내일 아침 매운탕 거리도 있어야 하니까, 내가 보관해 놓은 붕어가 한 30마리 있는데, 그것을 살림망에 넣어 두고 내일 아침 김씨가 잡았다고 부인에게 말 하세요."
하긴 그랬다. 아내가 잡은, 실제로 잡은 건 아니지만, 한 마리 가지고 매운탕을 끓인다는 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 서 반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30마리의 붕어를 가져와 김씨의 살림망에 넣어 주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아내에게 실토해야지
"우와~ 이게 다 아빠가 잡은 물고기야?"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고기가 들어있는 망을 들어 보이며 환호성을 친다. 김씨 아내도 눈빛으로 그러느냐는 눈치다.
"에이, 난 몇 마리 못 잡고 서 반장님이 새벽에 다 잡았지 뭐~"
집에서 가져온 김치와 즉석 매운탕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한 김씨 가족일행은 강변 산책에 나섰다. 강변을 따라 2km여 떨어진 원천리 동구래 마을까지의 구간은 도심에서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줄 정도로 강변 정취가 그윽하다.
김씨는 자꾸 아내와 아이들을 속인 게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그러나 지금 말함으로 당장의 즐거운 분위기가 바뀌는 게 싫었다. '좋은 기분으로 돌아가자. 그러고는 다음날 사실은 이랬노라고 부인에게 고백하자. 그것 또한 즐거운
낚시가 그렇게 좋아? 그럼 이혼하자,,,,기사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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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ㅎㅎㅎㅎㅎㅎ
행복한 이름입니다!!! ^^b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