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찌를 쓰는 낚시법이 생겼을까요? 조선시대에도 낚시를 하는 선비?들이 있었다는데 그 때에도 찌를 사용했을까요? 찌의 기원과 찌의 시대적 변천과정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목록 이전글 다음글 [질문/답변] 찌는 어떻게 변화하였나요?(찌의 역사) 댓글 6 인쇄 신고 퍼렁별 / 2011-11-14 19:38 / Hit : 3243 본문+댓글추천 : 0 언제부터 찌를 쓰는 낚시법이 생겼을까요? 조선시대에도 낚시를 하는 선비?들이 있었다는데 그 때에도 찌를 사용했을까요? 찌의 기원과 찌의 시대적 변천과정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추천 0 터미박 11-11-15 13:29 1600년경 조선시대 기록에도 찌 표현이 구체적으로(올림,내림) 표현되여 있는걸로 보아 민물찌의 역사가 400년 이상 되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찌를 한문으로 浮子라고 표현하는데 한,중,일 모두 공통어가 됩니다 찌의 어원은 띠줄기로 찌를 만들어서 띠에서 찌로 ~ 띄다의 띄가 찌로~ 또는 길다란 대나무 꼬쟁이를 찌라고 불렀다는 설이 나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각 지방 마다 나이드신분들의 찌 호칭이 각기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 형태의 찌 들은 그 기초가 6.25전후라 볼수 있는데 전쟁직후 수도가 부산에서 서울로 넘어올 시점 부터 사회안정이 되면서 낚시붐에 편승되어 대나무 낚시와 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 했습니다 유명한것은 용인의 한작찌였고 소재는 오동이고 길이는 20cm이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주작찌가 등장 했는데 찌톱(대나무,오동)에 칠을 하면서 인기를 받았다 합니다 본격적으로는 1960년경 발사 소재가 등장 하면서 찌 톱을 PP소재(일종의 튜브)로 쓰기 시작 하면서 1965년 부터는 바야흐로 찌의 중흥기에 이르게 됩니다 곧이어 일본에서 넘어온 셀룰로이드찌가(역광) 국내에서 본격 생산 되면서 도리어 일본으로 역수출 하게 됩니다 1966년경 최고의 찌는 공작소재의 셀룰로이드 찌 인데 나무소재의 찌톱,이나 pp,톱의 수제찌들이 10~50원 인데 비해 공작찌는 300원에 달하 였으니 오늘날 화폐가치로 보면 15만원 정도 될것 같습니다 찌맞춤도 1960년경 찌 부흥기와 더불어 1965부터는 찌의 물리적 역학까지 연구한 흔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본격적 찌맞춤의 역사는 50년 정도로 생각 하면 될것 같습니다 1975년 경에는 원자찌가 출시되어 밤낚시의 신기원을 열기 시작해 1981년 에는 캐미라이트가 선보임으로서 밤낚시 필수품 이었던 간델라(카바이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970년경 대부분 초보자들은 튜브로만 된 막대찌를 주로 썻고 캐미장착찌도 튜브통안에 삽입되는 저렴한 형식을 많이 쓰곤 했습니다 오늘날 캐미꽂이가 달린 찌의 본격적 사용은 1985년에나 이루어 진걸로 기억 됩니다 1990~2000년 까지는 콩알 떡밥 낚시의 부흥의 정점으로 카본의 본격 출시로 떡밥찌톱에 카본을 쓰고 가는찌톱,저부력 예민한 찌맞춤의 전성기라 할수 있습니다 예민한 낚시는 1990년경 초반 향어낚시의 부흥기와 밀접한 관계가 됩니다 이 시절 공장찌와 수제찌의 양극화가 뚜렸 했는데 일반 수제찌는 1만~2만원선 공장찌는 고가가 5000원선에 주로 거래됬고 일부 명인의 찌의 경우 10만원에 달하는 찌도 있었습니다 콩알의 전성기 떄 군계일학 좁쌀봉돌 채비와 찌가 전국적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시점으로 내림낚시(경기낚시)가 인기를 끌면서 고가의 외국찌(일본,대만)가 고기능을 핑계로 10만원 이상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낚시방송 월척특급이 인기를 끌고, 2003년경이후 전국적으로 대물바람이 불면서 오늘날 고부력 막대찌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찌도 이창수의 반관통찌가 그 시점부터 선보이기 시작 했고 관통찌도 더불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반관통찌나 관통찌를 일반찌에도 적용할수 있는 관통플러스(행낚)나 줄잡이 응용 채비가 생기게 됩니다 2007년 부터는 옥내림찌(물먹는찌)가 선을 보이며 옥내림 부흥의 서막을 울렸고 2011년 현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저부력찌들이 서서히 자릴잡고 있습니다 향후 미래에는 어떤찌가 선보이게 될런지... 개인적으로는 찌와 수신기를 통한 소리나는 찌가 나와 주었음 하는데,(헛눈팔기,자동빵방지 ㅎㅎ) 가능은 한데 무선전파국의 허가 절차나 고장률,중요한 가격대 등이 맞질 않습니다 수신기 5만원 찌 한개에 3만원인데 고장,분실, 파손이 흔하니 누가 만들고 누가 사기나 하곘습니까 .... 찌와 부력의 50년 역사가 돌고 돌아 1990년 으로 회규 했다고 생각 됩니다 찌의 역사를 생각 나는데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틀린점이 있다면 양해 바람니다 추천 5 신고 1600년경 조선시대 기록에도 찌 표현이 구체적으로(올림,내림) 표현되여 있는걸로 보아 민물찌의 역사가 400년 이상 되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찌를 한문으로 浮子라고 표현하는데 한,중,일 모두 공통어가 됩니다 찌의 어원은 띠줄기로 찌를 만들어서 띠에서 찌로 ~ 띄다의 띄가 찌로~ 또는 길다란 대나무 꼬쟁이를 찌라고 불렀다는 설이 나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각 지방 마다 나이드신분들의 찌 호칭이 각기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 형태의 찌 들은 그 기초가 6.25전후라 볼수 있는데 전쟁직후 수도가 부산에서 서울로 넘어올 시점 부터 사회안정이 되면서 낚시붐에 편승되어 대나무 낚시와 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 했습니다 유명한것은 용인의 한작찌였고 소재는 오동이고 길이는 20cm이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주작찌가 등장 했는데 찌톱(대나무,오동)에 칠을 하면서 인기를 받았다 합니다 본격적으로는 1960년경 발사 소재가 등장 하면서 찌 톱을 PP소재(일종의 튜브)로 쓰기 시작 하면서 1965년 부터는 바야흐로 찌의 중흥기에 이르게 됩니다 곧이어 일본에서 넘어온 셀룰로이드찌가(역광) 국내에서 본격 생산 되면서 도리어 일본으로 역수출 하게 됩니다 1966년경 최고의 찌는 공작소재의 셀룰로이드 찌 인데 나무소재의 찌톱,이나 pp,톱의 수제찌들이 10~50원 인데 비해 공작찌는 300원에 달하 였으니 오늘날 화폐가치로 보면 15만원 정도 될것 같습니다 찌맞춤도 1960년경 찌 부흥기와 더불어 1965부터는 찌의 물리적 역학까지 연구한 흔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본격적 찌맞춤의 역사는 50년 정도로 생각 하면 될것 같습니다 1975년 경에는 원자찌가 출시되어 밤낚시의 신기원을 열기 시작해 1981년 에는 캐미라이트가 선보임으로서 밤낚시 필수품 이었던 간델라(카바이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970년경 대부분 초보자들은 튜브로만 된 막대찌를 주로 썻고 캐미장착찌도 튜브통안에 삽입되는 저렴한 형식을 많이 쓰곤 했습니다 오늘날 캐미꽂이가 달린 찌의 본격적 사용은 1985년에나 이루어 진걸로 기억 됩니다 1990~2000년 까지는 콩알 떡밥 낚시의 부흥의 정점으로 카본의 본격 출시로 떡밥찌톱에 카본을 쓰고 가는찌톱,저부력 예민한 찌맞춤의 전성기라 할수 있습니다 예민한 낚시는 1990년경 초반 향어낚시의 부흥기와 밀접한 관계가 됩니다 이 시절 공장찌와 수제찌의 양극화가 뚜렸 했는데 일반 수제찌는 1만~2만원선 공장찌는 고가가 5000원선에 주로 거래됬고 일부 명인의 찌의 경우 10만원에 달하는 찌도 있었습니다 콩알의 전성기 떄 군계일학 좁쌀봉돌 채비와 찌가 전국적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시점으로 내림낚시(경기낚시)가 인기를 끌면서 고가의 외국찌(일본,대만)가 고기능을 핑계로 10만원 이상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낚시방송 월척특급이 인기를 끌고, 2003년경이후 전국적으로 대물바람이 불면서 오늘날 고부력 막대찌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찌도 이창수의 반관통찌가 그 시점부터 선보이기 시작 했고 관통찌도 더불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반관통찌나 관통찌를 일반찌에도 적용할수 있는 관통플러스(행낚)나 줄잡이 응용 채비가 생기게 됩니다 2007년 부터는 옥내림찌(물먹는찌)가 선을 보이며 옥내림 부흥의 서막을 울렸고 2011년 현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저부력찌들이 서서히 자릴잡고 있습니다 향후 미래에는 어떤찌가 선보이게 될런지... 개인적으로는 찌와 수신기를 통한 소리나는 찌가 나와 주었음 하는데,(헛눈팔기,자동빵방지 ㅎㅎ) 가능은 한데 무선전파국의 허가 절차나 고장률,중요한 가격대 등이 맞질 않습니다 수신기 5만원 찌 한개에 3만원인데 고장,분실, 파손이 흔하니 누가 만들고 누가 사기나 하곘습니까 .... 찌와 부력의 50년 역사가 돌고 돌아 1990년 으로 회규 했다고 생각 됩니다 찌의 역사를 생각 나는데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틀린점이 있다면 양해 바람니다 시후아빠 11-11-15 16:18 터미박님 잘 읽고 갑니다...ㅎㅎㅎㅎ 추천 0 신고 터미박님 잘 읽고 갑니다...ㅎㅎㅎㅎ 대바구니 11-11-15 20:24 터미박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칸데라 쓰던 시절부터 낚시를 했지만 이런 역사와 단계를 거쳐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월척은 다양한 고수들의 집합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0 신고 터미박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칸데라 쓰던 시절부터 낚시를 했지만 이런 역사와 단계를 거쳐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월척은 다양한 고수들의 집합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붕어와춤을 11-11-15 21:23 터미박님 댓글에 추천 한방 놓고 갑니다. 참 대단하신 조사님 이십니다. 추천 0 신고 터미박님 댓글에 추천 한방 놓고 갑니다. 참 대단하신 조사님 이십니다. 바야흐로 11-11-16 16:52 유용한 정보~ 잘읽고 갑니다. 추천 0 신고 유용한 정보~ 잘읽고 갑니다. 월척폐인 11-11-20 21:30 좋은 공부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0 신고 좋은 공부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목록 이전글 다음글 하단에 목록보기
터미박 11-11-15 13:29 1600년경 조선시대 기록에도 찌 표현이 구체적으로(올림,내림) 표현되여 있는걸로 보아 민물찌의 역사가 400년 이상 되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찌를 한문으로 浮子라고 표현하는데 한,중,일 모두 공통어가 됩니다 찌의 어원은 띠줄기로 찌를 만들어서 띠에서 찌로 ~ 띄다의 띄가 찌로~ 또는 길다란 대나무 꼬쟁이를 찌라고 불렀다는 설이 나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각 지방 마다 나이드신분들의 찌 호칭이 각기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 형태의 찌 들은 그 기초가 6.25전후라 볼수 있는데 전쟁직후 수도가 부산에서 서울로 넘어올 시점 부터 사회안정이 되면서 낚시붐에 편승되어 대나무 낚시와 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 했습니다 유명한것은 용인의 한작찌였고 소재는 오동이고 길이는 20cm이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주작찌가 등장 했는데 찌톱(대나무,오동)에 칠을 하면서 인기를 받았다 합니다 본격적으로는 1960년경 발사 소재가 등장 하면서 찌 톱을 PP소재(일종의 튜브)로 쓰기 시작 하면서 1965년 부터는 바야흐로 찌의 중흥기에 이르게 됩니다 곧이어 일본에서 넘어온 셀룰로이드찌가(역광) 국내에서 본격 생산 되면서 도리어 일본으로 역수출 하게 됩니다 1966년경 최고의 찌는 공작소재의 셀룰로이드 찌 인데 나무소재의 찌톱,이나 pp,톱의 수제찌들이 10~50원 인데 비해 공작찌는 300원에 달하 였으니 오늘날 화폐가치로 보면 15만원 정도 될것 같습니다 찌맞춤도 1960년경 찌 부흥기와 더불어 1965부터는 찌의 물리적 역학까지 연구한 흔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본격적 찌맞춤의 역사는 50년 정도로 생각 하면 될것 같습니다 1975년 경에는 원자찌가 출시되어 밤낚시의 신기원을 열기 시작해 1981년 에는 캐미라이트가 선보임으로서 밤낚시 필수품 이었던 간델라(카바이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970년경 대부분 초보자들은 튜브로만 된 막대찌를 주로 썻고 캐미장착찌도 튜브통안에 삽입되는 저렴한 형식을 많이 쓰곤 했습니다 오늘날 캐미꽂이가 달린 찌의 본격적 사용은 1985년에나 이루어 진걸로 기억 됩니다 1990~2000년 까지는 콩알 떡밥 낚시의 부흥의 정점으로 카본의 본격 출시로 떡밥찌톱에 카본을 쓰고 가는찌톱,저부력 예민한 찌맞춤의 전성기라 할수 있습니다 예민한 낚시는 1990년경 초반 향어낚시의 부흥기와 밀접한 관계가 됩니다 이 시절 공장찌와 수제찌의 양극화가 뚜렸 했는데 일반 수제찌는 1만~2만원선 공장찌는 고가가 5000원선에 주로 거래됬고 일부 명인의 찌의 경우 10만원에 달하는 찌도 있었습니다 콩알의 전성기 떄 군계일학 좁쌀봉돌 채비와 찌가 전국적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시점으로 내림낚시(경기낚시)가 인기를 끌면서 고가의 외국찌(일본,대만)가 고기능을 핑계로 10만원 이상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낚시방송 월척특급이 인기를 끌고, 2003년경이후 전국적으로 대물바람이 불면서 오늘날 고부력 막대찌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찌도 이창수의 반관통찌가 그 시점부터 선보이기 시작 했고 관통찌도 더불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반관통찌나 관통찌를 일반찌에도 적용할수 있는 관통플러스(행낚)나 줄잡이 응용 채비가 생기게 됩니다 2007년 부터는 옥내림찌(물먹는찌)가 선을 보이며 옥내림 부흥의 서막을 울렸고 2011년 현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저부력찌들이 서서히 자릴잡고 있습니다 향후 미래에는 어떤찌가 선보이게 될런지... 개인적으로는 찌와 수신기를 통한 소리나는 찌가 나와 주었음 하는데,(헛눈팔기,자동빵방지 ㅎㅎ) 가능은 한데 무선전파국의 허가 절차나 고장률,중요한 가격대 등이 맞질 않습니다 수신기 5만원 찌 한개에 3만원인데 고장,분실, 파손이 흔하니 누가 만들고 누가 사기나 하곘습니까 .... 찌와 부력의 50년 역사가 돌고 돌아 1990년 으로 회규 했다고 생각 됩니다 찌의 역사를 생각 나는데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틀린점이 있다면 양해 바람니다
대바구니 11-11-15 20:24 터미박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칸데라 쓰던 시절부터 낚시를 했지만 이런 역사와 단계를 거쳐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월척은 다양한 고수들의 집합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찌 표현이 구체적으로(올림,내림) 표현되여 있는걸로 보아 민물찌의 역사가
400년 이상 되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찌를 한문으로 浮子라고 표현하는데 한,중,일 모두 공통어가 됩니다
찌의 어원은 띠줄기로 찌를 만들어서 띠에서 찌로 ~
띄다의 띄가 찌로~ 또는 길다란 대나무 꼬쟁이를 찌라고 불렀다는 설이 나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각 지방 마다 나이드신분들의 찌 호칭이 각기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 형태의 찌 들은 그 기초가 6.25전후라 볼수 있는데
전쟁직후 수도가 부산에서 서울로 넘어올 시점 부터
사회안정이 되면서 낚시붐에 편승되어 대나무 낚시와 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 했습니다
유명한것은 용인의 한작찌였고 소재는 오동이고 길이는 20cm이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주작찌가 등장 했는데 찌톱(대나무,오동)에 칠을 하면서 인기를 받았다 합니다
본격적으로는 1960년경 발사 소재가 등장 하면서 찌 톱을 PP소재(일종의 튜브)로 쓰기 시작 하면서
1965년 부터는 바야흐로 찌의 중흥기에 이르게 됩니다
곧이어 일본에서 넘어온 셀룰로이드찌가(역광) 국내에서 본격 생산 되면서 도리어 일본으로 역수출 하게 됩니다
1966년경 최고의 찌는 공작소재의 셀룰로이드 찌 인데
나무소재의 찌톱,이나 pp,톱의 수제찌들이 10~50원 인데 비해 공작찌는 300원에 달하 였으니
오늘날 화폐가치로 보면 15만원 정도 될것 같습니다
찌맞춤도 1960년경 찌 부흥기와 더불어 1965부터는 찌의 물리적 역학까지 연구한 흔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본격적 찌맞춤의 역사는 50년 정도로 생각 하면 될것 같습니다
1975년 경에는 원자찌가 출시되어 밤낚시의 신기원을 열기 시작해
1981년 에는 캐미라이트가 선보임으로서
밤낚시 필수품 이었던 간델라(카바이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970년경 대부분 초보자들은 튜브로만 된 막대찌를 주로 썻고
캐미장착찌도 튜브통안에 삽입되는 저렴한 형식을 많이 쓰곤 했습니다
오늘날 캐미꽂이가 달린 찌의 본격적 사용은 1985년에나 이루어 진걸로 기억 됩니다
1990~2000년 까지는 콩알 떡밥 낚시의 부흥의 정점으로
카본의 본격 출시로 떡밥찌톱에 카본을 쓰고 가는찌톱,저부력 예민한 찌맞춤의 전성기라 할수 있습니다
예민한 낚시는 1990년경 초반 향어낚시의 부흥기와 밀접한 관계가 됩니다
이 시절 공장찌와 수제찌의 양극화가 뚜렸 했는데
일반 수제찌는 1만~2만원선 공장찌는 고가가 5000원선에 주로 거래됬고
일부 명인의 찌의 경우 10만원에 달하는 찌도 있었습니다
콩알의 전성기 떄 군계일학 좁쌀봉돌 채비와 찌가 전국적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시점으로 내림낚시(경기낚시)가 인기를 끌면서
고가의 외국찌(일본,대만)가 고기능을 핑계로 10만원 이상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낚시방송 월척특급이 인기를 끌고, 2003년경이후 전국적으로 대물바람이 불면서
오늘날 고부력 막대찌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찌도 이창수의 반관통찌가 그 시점부터 선보이기 시작 했고
관통찌도 더불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반관통찌나 관통찌를 일반찌에도 적용할수 있는 관통플러스(행낚)나 줄잡이 응용 채비가 생기게 됩니다
2007년 부터는 옥내림찌(물먹는찌)가 선을 보이며 옥내림 부흥의 서막을 울렸고
2011년 현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저부력찌들이 서서히 자릴잡고 있습니다
향후 미래에는 어떤찌가 선보이게 될런지...
개인적으로는
찌와 수신기를 통한 소리나는 찌가 나와 주었음 하는데,(헛눈팔기,자동빵방지 ㅎㅎ)
가능은 한데 무선전파국의 허가 절차나 고장률,중요한 가격대 등이 맞질 않습니다
수신기 5만원 찌 한개에 3만원인데
고장,분실, 파손이 흔하니 누가 만들고 누가 사기나 하곘습니까 ....
찌와 부력의 50년 역사가 돌고 돌아
1990년 으로 회규 했다고 생각 됩니다
찌의 역사를 생각 나는데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틀린점이 있다면 양해 바람니다
칸데라 쓰던 시절부터 낚시를 했지만
이런 역사와 단계를 거쳐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월척은 다양한 고수들의 집합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대단하신 조사님 이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