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맹랑하고 귀여운 애인을 만난 '온양'
"어린 애 어디가 좋다고 사귀고 그러냐?"
"모른 소리하지 말어. 어린 사내아이는 말 잘 듣고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게 데리고 놀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20대 중반 이후의 여성들 사이에서 연하의 남자 애인을 선호하는 풍조가 번지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맹랑한 소리가 들려온다
내 주변에도 연하의 남자 애인을 가지고 있는 독신녀들이 여럿 있다.
문제는 맹랑한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는 녀석이 아무리 높게 보아주어도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소녀 티를 막 벗은 아가씨라는 데 있었다.
예산 쪽으로 낚시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산을 지나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온천을 좋아하는 성미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공동탕에 들러 늘어지게 온천을 한탕하고 나니 시원한 맥주 생각이 절로 난다. 온천 직후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건 남자도 아니라는 것이 내 지론이지만.
온천탕을 나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찾아 들어간 곳이, 차도 팔고 맥주도 파는 드링크 하우스였다. 찾아든 해거름의 드링크 하우스는 온통 젊은이들 판이었다. 맥주 작은 것 한 병을 시켜 한 모금 마시는 데 옆 테이블에서 문제의 연하 사내 아이 애인 예찬론이 들려왔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공개적으로 맹랑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옆 테이블에는 세 녀석이 앉아 있었다. 미성년자를 겨우 면했을까. 많이 보아주어도 스무 살은 크게 넘지 않았을 것 같아 보이는 세 아가씨가 앉아있다.
시선이 자기 쪽으로 온 것을 의식한 세 꼬마 아가씨는 당황하거나 어색해 하기는 커녕 생긋 웃기까지 한다. 정말 맹랑한 녀석들이다.
세 아이의 미소에 무심코 미소로 답했다. 세 아이들의 미소가 약간 짙어진다.
이쯤 되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고 그대로 있을 나도 아니다. 맥주병을 들고 옆 테이블로 가서 혼자 앉아 있는 아가씨 옆에 앉았다.
"아저씨 혼자 왔어요?"
옆자리에 앉은 녀석이 묻는다.
"나 여행은 혼자 다니는 주의야."
여행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두자는 발언이다.
세 녀석이 여행 온 아가씨들이라면 에트랑제끼리 통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고, 지역 아이들이라면 이쪽이 여행객이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이 모두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실전전술이다.
"아저씨 되게 멋있게 사네요."
조금 전 어린 사내 애인 예찬론을 외치던 맹랑한 녀석이다.
"혼자 다니면 멋있는 사람이냐?"
"아저씨 온양 관광 오셨어요?"
옆자리 녀석이 묻는다.
"아니 지나는 길에 온천 한탕하고 나니 목이 말라 들렀어."
"어디 가는 길인데요?"
"낚시."
"그럼 지금 낚시 가는 거예요?"
낚시라는 한 마디만 들은 녀석이 낚시 가는 걸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구태여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는 정정까지 할 필요가 없다 싶어 그대로 넘어갔다.
"낚시 어디로 가는데요?"
"태안 바다 쪽이야."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말이다.
"진짜 멋있는 아저씨다. 혼자 바다로 낚시도 다니고."
녀석들 입에서 계속 멋있는 말이 감탄까지 썩여 나온다.
"예쁜 친구들 만났으니 아저씨가 한잔 살까?"
녀석들이 응하면 함께 술을 마시고 온양에 자도 좋다는 배짱을 정하면서 한 말이다.
"낚시 가는 것 아니고요?"
"매력적인 친구들 만났으니 오늘은 온양서 놀다 자고 내일 떠나도 돼."
"아저씨 진짜 멋있게 사는 분이다."
또 멋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맥주를 시키고 술판이 벌어졌다.
눈치로 보아 녀석들은 이 집 단골인 것 같고, 종업원이 아무런 연령 확인 절차 없이 맥주를 갖다 주는 걸 보면 미성년자는 아닌 것 같아 일단 마음이 놓인다.
"남자는 어린 사내가 좋다고 하던데, 아저씨하고 마셔 별 재미없겠구나."
"그건 그냥 데리고 노는 애 얘기예요."
겨우 스무 살이 넘었을까, 20살 고비에 걸려 있을까 하는 녀석 입에서 나오는, '그냥 데리고 노는 애'라는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다.
"미진이는요. 아저씨가 더 좋데요."
"미진이?"
"쟤요."
연하의 애인 예찬론자가 손가락을 내 옆에 앉은 아이를 가리킨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눈으로는 미진이라는 아이를 보며 말은 연하의 애인 예찬론자에게 했다.
"왜요?"
"미진이가 내 옆에서 떨어져 앉아 있잖아. 싫으니까 떨어져 앉아 있는 것 아니겠어."
미진이라는 아이와 내 사이에는 주먹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아저씨가 그렇게 앉았잖아요."
미진이가 곱게 눈까지 흘기며 바짝 다가붙어 앉는다.
너무 바짝 다가붙어 앉아 허벅지에서 어깨까지 완전히 밀착되었다. 거기다 미진이가 팔까지 틀어 안는 바람에 가슴이 팔에 밀착되었다.
탱탱하고 싱싱한 가슴 탄력 감촉과 함께 젊은 여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미진이가 적극적으로 나서니 이제 이쪽이 움직일 차례다. 팔을 허리 뒤로 돌려 손을 엉덩이에 살짝 올려놓았다. 팽팽하면서도 탱글탱글한, 건강한 젊은 아가씨 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촉이 손을 즐겁게 한다.
힙에 손이 올려진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미진이는 거부감이나 거항감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파트너는 미진이로 결정하기로 했다.
"중국음식 잘하는 집 아는데, 거기 가서 맛있는 것 먹자."
아산 역전에는 화상이 경영하는 정통 중국요리를 하는 홍콩반점이 있다.
3년 전 현지에서 만난 친구 소개로 들렀다가 음식이 맛있어 아산을 지날 때는 찾아 식사를 하는 곳이다.
여행길 자청하고 나서는 아이
홍콩반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이트클럽으로 가기로 했다. 홍콩반점에서 식사를 하는 사이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말했다.
내 파트너 이름이 미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맹랑한 소리를 하던 연하 사내 예찬론자가 주연이고, 또 한 아이가 현애였다.
홍콩반점에서 나와서는 세 녀석 청에 따라 나이트클럽으로 가기로 했다. 관광지인 아산에는 나이트클럽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관광호텔 나이트가 제일 낫다는 말에 거기로 갔다.
우리가 나이트클럽으로 들었을 때는 아홉 시 전후였다. 그 시간이면 나이트클럽으로서는 초저녁이다. 거기다 평일이라 테이블은 반 이상 비어 있었다.
붐비고 소란한 것보다는 한산한 편이 미진이를 완전한 파트너로 만드는 작업에 편리하다.
맥주 한 잔을 비우고는 현애와 주연이는 플로어로 달러나간다.
"아저씨는 춤 좋아하지 않죠?"
두 친구가 플로어로 나가고 둘만 남으면서 미진이가 몸을 바짝 밀착시켜 묻는다.
"특히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술을 마시고 싶어."
"아저씨 내일 낚시 가면 며칠 동안 해요?"
"글세 낚시 잘되면 이틀이나 사흘이 될 수도 있고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바로 돌아갈 거야."
그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나 낚시 따라가면 안 돼요?"
미진이 입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말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사실은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이고, 내일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미진이 낚시하고 싶어?"
"나 낚시 한번도 못해 봤어요. 아저씨 좋은 분 같아 같이 가고 싶어요."
"미진이가 가고 싶다면 같이 가자."
"데리고 가 줄줄 알았어요."
뭐가 그리 좋은지 미진이가 엄청 기뻐한다.
"며칠씩 나가 있으면 집에서 뭐라고 하지 않냐?"
처음부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아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미진이 정체를 알고 싶어 물은 말이다.
"집 여기 아니예요."
그렇다고 여행 중인 아이도 아니다.
"집이 어딘데?"
미진이가 말하는 집은 아산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지역이었다.
미진이가 어떤 아이라는 짐작이 갈만했다. 짐작만 할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을 이유도 없고 물어 좋을 것도 없다.
11시가 가까웠을 때 핸드폰 밸이 울렸다. 핸드폰 밸이 울렸을 때 세 아이는 모두 자리에 돌아와 있었고 벨이 울린 핸드폰은 현애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현애는 말이 없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들으면서 미진이 눈치를 살핀다.
자기 눈치를 살피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미진이가 고개를 가로 젖는다.
"나하고 주연이만 갈게요."
고개를 가로 젖은 미진이를 본 현애가 전화에다 한 말이다.
"아저씨 우리 가 봐야돼요."
전화를 끊은 현애가 일어난다.
"오늘 즐거웠어. 이걸로 차 타고 가."
두 아이에게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집어주었다.
"미안하잖아요."
말로는 미안하다면서 손으로는 지폐를 받고는 절까지 꾸벅한다.
현애와 주연이가 떠난 나이트클럽에 우리만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정해진 코스를 따랐다.
귀엽고 어린 애인
다음 날 미진이를 차에 태워 태안반도로 향했다.
함께 낚시하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무리를 해 함께 며칠 여행하고 싶을 정도로 미진이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아산에서 확인했다.
"아저씨 나 좋아요?"
태안반도로 가는 차안에서 미진이가 물었다.
"좋아. 정말이야. 그런데 미진이는 어떠냐?"
"나도 아저씨가 좋아요."
"어디가?"
"모두가 다 좋아요."
"미진이 보러 아산 자주 와도 되겠네."
"정말 와 줄 거예요?"
"미진이만 좋다면."
"나 아저씨 애인 할까?"
"애인?"
"귀찮게 하는 애인 아니고."
미진이가 말하는 귀찮게 하지 않는 애인이라는 말뜻을 알아들을 것 같은 기분이다.
"미진이면 조금은 귀찮게 해도 좋아."
"그럼 우리 약속한 거예요."
"그래. 약속했다!"
"손도장."
우리는 손도장까지 찍고 조금은 귀찮게 해도 되는 애인이 되기로 약속했다.
미진이와 사흘 동안 함께 여행을 했다. 여행을 하는 사이 미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진이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집을 떠났다.
처음부터 대학 갈 생각도 없었다. 대학 갈 생각이 없는 아이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 청소년 시절이 매우 활달하고 자유롭다. 활달하고 자유롭게 살아온 미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집에서 용돈도 타 썼지만 졸업 후에는 그것도 마땅치 않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가까운 도시 아산으로 나와 일자리를 찾았다. 자취를 하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1년쯤 지나면서 아르바이트 무대가 변했다. 노래방 도우미와 단란주점이다. 그쪽에서 도우미 아가씨가 필요하면 핸드폰으로 연락한다. 연락이 왔다고 무작정 달려가는 건 아니다.
상대 손님을 물어 괜찮다 싶으면 간다고 한다. 테이블에서 나오는 돈은 5만원 선이다. 손님에 따라, 또 자기들 하기에 따라 팁도 나온다.
미진이 친구들이 술자리에 간다해서 흔히 말하는 '보도 아가씨'는 아니다. 보도 아가씨의 보도는 보트가 와전된 말이다. 보트 아가씨라는 말은 월남 패망 후 등장한 떠돌이라는 뜻이 담긴 보트 피플에서 유래했다. 보드 피플이 보도방 아가씨로 변했고, 특정한 집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술집 아가씨를 부르는 말로 정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도 아가씨는 그 자체가 직업이다.
미진은 보트 아가씨가 아니다. 술자리에 나가는 것 자체를 직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2차도 마찬가지다. 돈만 준다고 무작정 따라 가지는 않는다. 굳이 미진이 같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인다면 세미 프로 프리랜서다.
사흘 동안 함께 여행을 한 우리는 서울로 왔다. 다음 날 미진이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 옷 몇 벌을 사주려하자 애인끼리 그런 것 주고받으면 이상하다면서 한사코 사양했다.
달래서 옷 몇 벌을 사고 용돈을 주어 아산으로 보냈다.
그때 미진이와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한 달에 한번씩은 미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약속이었다.
그 첫 약속은 최근에 지켰고, 앞으로도 지킬 것이다.
* 황기택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6-10 10:54)
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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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뭔 내용인가 열심히 읽었는데 은근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