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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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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우리 사무실에 예쁜 아줌마가 있다.
30대 중반으로 2명의 자녀가 있고 큰놈은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등산, 수영 등으로 몸 관리를 잘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소 깔끔한 차림이라 노처녀로 보기 쉽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줌마라 부르기 미안해서 아가씨라 부르기도 하지만, 직원들도 장난삼아 아가씨라 부른다.

헌데, 이 아줌마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 아줌마예요.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아줌마 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과 돈이 들었는지 아세요? 진짜 아줌마가 되려고 배가 두 번이나 아팠어요 .이 나이에 아가씨라 부르면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가 좀 모자라는 걸로 생각하잖아요."

不惑의 나이를 넘어 知天命의 나이가 되니, 흔하게 말하는 검은 귀밑머리가 파뿌리가 돋아 나오듯 희끗희끗해진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속절없이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염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냥 지낸다.
염색도 부지런해야지, 염색한 머리 밑에 흰머리가 숭숭 올라오면 진짜 보기 흉하다. 그래서 염색을 하지 않는다.

또한 늙어 간다고 가련하게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호기를 부리려고 항변을 한다.
"이 머리가 희어지는데 50년이 넘게 걸렸어. 이제 나이를 먹어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데 왜 염색을 해! 처음 보는 사람은 나를 형님으로 대우하고 술자리에서도 술잔을 먼저 받는 특권이 있는데 포기 할 수는 없지."

마누라가 직장에서 늙어 보이면 밀리니까 염색을 하러 미장원에 가자는 것을 한사코 거부를 했더니, 딸애가 보다 못해 염색약을 사다가 코밑에 들이댄다. 마지못해 장난삼아 한 번 해보자며 맡겨 두었더니, 검은색에다 요즘 유행하는 갈색을 섞었다며 염색을 하고 보니 이상한 색깔이 되고 말았다.

다시 지울 수도 없고 그냥 출근을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이발만 하고 나와도 쑥스러운 생각이 드는데 노르스름한 염색을 했으니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민망하다.
그래서, 또 한마디한다.
"요즘에는 황사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까지 노래졌네."

어릴 적 아버지 밥상 위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어서 나이를 먹고 싶었다. 어른들 얘기에 끼여든다고 꾸지람을 들을 때 나이를 먹고 싶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미성년자라고 들어가지 못해서 사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몰래 들어갈 때에 나이를 먹고 싶었다. 술집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 때
나이를 먹고 싶었다.

어머니가 등잔불아래 바늘에 실을 꿰지 못해 자구만 헛손질을 할 때 철없이 웃었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면 무엇이 그리 슬프냐고 놀렸고, 무릎에서 찬바람이 난다고 하면 선풍기가 달렸느냐고 물었다.
논에서 김을 매던 아버지가 자주 허리를 펴는 뜻을, 지게를 지고 가시다 자주 쉬는 이유를, 밤이면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시던 말씀을, 그리고 막걸리 두 어 잔에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눈곱이 낀 눈으로 '공부 열심히 해라'고 쓸쓸히 하시던 말씀의 뜻을 어린 나이에는 몰랐다.

이제 내가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고, 내 자식들이 그때의 나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세월의 빠르기는 정말로 주마등같다고나 할까?
언제까지나 어리고 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듯 안경이 없으면 수첩을 꺼내놓고도 전화번호를 읽지 못하고, 휴대폰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노래방에서 곡목을 읽을 수도 없으니 슬픈 생각도 든다.

살아 갈 날이 살아 온 날보다 적다는 것을 생각하니 부질없이 살아 온 날들이 허무하고, 세상에 태어나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낸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 왔고, 엄한 상관 밑에서 대꾸 한번 못해보고 순종하며 가슴을 누르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광복의 혼란과 전쟁의 격변기에 태어나 병이 들면 병원 한번 못 가보고 죽어갔으며, 어려운 보릿고개는 칡뿌리로 허기를 달래고 점심시간 때면 펌퍼물을 먹으며 배고픔을 참았다.
몽땅 연필과 미국산 우유, 검정고무신, 책 보따리, 산토닌 회충약, 그리고 마루바닥 교실!
지하실이나 다락 위의 자취방, 19공탄, 연탄가스, 백열구, 국수, 수제비, 검은색 교복, 그리고 선술집, 이러한 것들이 지금의 50대들의 귀에 익은 말들이다.

어려운 시절에 배고픔을 참으며 자라나, 자취로 고생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서 순종하며 밤 세워 일하고 쥐꼬리 같은 월급에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이제는 살만한 세월이 되었건만 경제위기라 퇴출당하고 컴맹이라 밀리고, 윗 모르는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세대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식들이 재대로 자라나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 놈들 장래나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일까?
일요일이면 낚시대 달랑 들고 물가로 가서 하염없이 찌를 바라보며 세월을 되새김하는 것이 즐거움일까?
같이 늙어 가는 마누라의 주름살을 마주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 즐거움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
生, 老, 病, 死가 인간의 굴레라면 나약한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것!
주어진 운명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남이 흉을 봐도 참고 살아가야 하는 나이, 남의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살아가야 하는 나이, 그래서 50은 쉰세대라 하는가?

남은 세월을 손꼽아 헤아려보면 한 손으로도 남는다.
그 중에 활동을 할 수 있는 세월이 얼마나 될까?
그 남은 세월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생각나는 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뿐.
또 한가지!
세상에 내가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戊午年 盛夏, 안동어뱅이 생각----



서글픈 생각을 가끔하니 더 늙지.....ㅉㅉ
`하늘은 오래된 풀을 가옆이 여기고, 인간은 노년의 삶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즐거운 면만 보더라도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山自無心碧 雲自無心白 . 성님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삶이 아닐까요??? 성님!!! ^^*
흐르는 세월을 어찌하오리까?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가는것이
그 좋은 글솜씨로 시리즈로 책이라도 내심이 좋을듯 합니다.
평소 생각나서 모아두었던 글의 조각들을 갑짜기 꺼내보았네요 낚시가 인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주공감 합니다 반백이되니 별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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