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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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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01. 11. 19 ∼ 11. 24(5박 6일)
○ 과 제 : 도시, 시장, 교통, 환경, 농업, 사회시설분야
○ 연수자 : 사진 참조
○ 예산소요액 : 1인당 1,002천원 정도
※ 매입환율 : 1$ = 1,330원,

"뒤돌아 보니

중국은 나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주성중.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이념적, 정치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의 장막" 의
국가라고
철저히 외면하였던
가장 가까운 나라를
동 마루에 앉아
몇 번이고 읽었던
삼국지가 전부이기에
인터넷으로
지도와 역사책을 본다.

朱子의 32代 孫으로
가보고 싶은 中國을
5박 6일간
문명과 문화의 거리를
걸어보고
느낀 감정을
다음과 같이 담아 보고자 한다.

11월 19일(월) 12:30에
대구에서 청도로
출발 예정이던

중국민항기가
현지 사정으로 4시간 지연(delay)하다

기다림과 설레임을 안고
거대한 중국을
향하여 이룩하였다.

창공의 밝은 빛 아래
솜이불 같은 구름이 흘러가고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도 빠뜨림 없이 기록하려는 듯

12명의 일행은
저마다 메모에 열중이다.

첫 대면한
異國의 청도는
삼면이 바다로 쌓여 있고

耕地整理가 잘 되었으며
新市街地 거리의 가로등은
30m 거리마다 1m 크기의
선전포스터와
화려한 네온싸인을 바라보며

변화된 항구,산동성의 한개의 市가
아닌 거대한 중국의 경제가 눈앞에 있었다.

안개 자욱한 거리를
손으로 닦으면서 바라보니,

바다와 교회,
1890년대 후반의 독일풍의 서양건물들,
장개석 총통의 별장 등,

아름다운 해안선 따라
풍요로운 자연과
유럽풍의 시가지가 어우어져
중국 최초 휴양지구로 선정되어
관광객이 연(年)인원
1,050만명이며
관광수입은
69.1億元 넘는다고 하니,
훗날 기회가 닿으면
이곳에서 관광사업을 하고 싶다.
늦은 시간에
중국음식을 대하면서
돌아가는 상,
떠서 먹은 음식
어느 하나 낯설고 서투르나
안내원(guide)은
손님식탁에 앉을 수 없다며
홀에서 극구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11월 20일(화요일) 맑음, 안개

전날의 일정에

차질을 오늘에 만회하려는 듯

일찍부터 행장을 꾸려 출발한다.
小魚山,

前海해변의 아름다움을
朝鮮族 裵月花 안내원은
열심히 설명하지만

경치는 하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에 묻고
5. 4 운동 기념탑에 서서
먼저 1919년 3. 1 독립만세을 외쳤던

파고다공원을 생각해 내고는

씁쓸한 마음이 들어

黃海의 방파제를 걸으면서

이 곳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매국노가 지도자가 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나마 기도한다.


12시에 공항으로 갔으나,

북경에서는 안개에 의하여

비행기가 당일 한대도 운행하지 않아

대기실에는 앉을 자리도 없이

서성다가 18:00 이후에 취소(kencel)이라고

안내 방송하여도 동행한 안내원(guide)

및 우리 일행은 귀먹은 벙어리처럼,

비행기를 탈 것이라며,

따라간 곳은

공항에서 마련한 호텔이었으나,

누구하나 방 배정 요구하지 못한 채

현지 안내원이 오기만 기다린다.

생각하면 자신에게 부끄럽지만

우리는 늘 責任轉嫁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공항호텔 인근에서

한식을 하는 "고향마을"에서

구수한 韓食을 먹고

주인 한재순님의

현지 7년간의 체험담에

모두들 같은 마음이 되어 고개를 꺼떡인다.


중국인들이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나,

일본인들이 빈털털이가 되어 간

공단에 한국인들이 오기 시작할 즈음에

한재순씨도 남편 따라

이곳에 왔다가 가라오게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였으며

현재 한국식당은 잘 된다고 하나

불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토지는 국가 소유이며,

건물 및 식당은 조선족 명의 임).


11월 21일(수요일) 06:00 morning call

어제 저녁에

현지 가이드가

공항공안 담당자에게 뇌물을 먹였는지

전날 새벽부터 기다리던 사람들 보다

먼저 탈것이라는 말에

공항호텔에서 마련한 早食을

먹는 둥 마는 둥

로비에 있었으나

점심시간이 되어도 가지 못하자

우리들도 언젠가는 가겠지 하며

우리의 일행도

만만디 성격으로 변한다.


日程대로라면

북경에서 심양으로 가는 시간에

청도에서 북경을 거쳐 심양으로 가야 하다니

(6일간의 여행중 3일을 청도에서 보냄),

14:00쯤 되어

전날 공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북경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북경공항에서 심양으로

저무는 석양의

아름다움의 축복을 받으며 도착하였다.

(하루 다녔던 거리는 한반도 전체임)



11월 22일(목요일) 맑음

우리가 늘 말하는

만주벌판의 시작인 이곳에

북온대 계절풍 영향으로

추운 지방이라고 생각되어

내의를 갖고 오지 않았음에 걱정되었으나

우리나라의 날씨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청나라 누루하치가

도읍을 정하였던 곳으로

료동성 성소재지로

670만명 그 중 시구인구는 480만명으로

고궁으로 향하는 길은

경제, 금융

(주 은행: 중국은행, 중국인민은행,

중국공산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교통은행),

상무 중심지역으로

2개의 부동산 관리공사

(일반인도 건축물 소유 가능)

건물을 바라보며

자본주의 냄새를 맛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였으며,

도로에 LG간판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마지막 황제의

촬영장이었던 고궁에서

아무 느낌 없이 보았던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짧은 인생에서

부귀영화와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그네

오늘 내 마음은 춥구나.



상점에서 관련 물품을 구경하고,

중원公園(丙子胡亂

잡아간 부녀자와 삼학사의 넋이 있는 곳)

을 가보고 싶었으나,

오늘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단체 행동이라

장장 260km의 거리인

라오허의 평원

판진시 고승진으로 향하였다.


심양에서 북경까지의 거리 640km

6차선 고속도로에는

차량을 많이 볼 수 없었으나

중국인 특유의 무질서 속에

질서를 찾으며

고승진장(우리나라 군수)의

간단한 현황을 듣고

마침 가는 날이 장날(5일장)이라

人道 1km를 걸어가면서

30년전의

시골 장날 같은 느낌이었다.

중국 1,000개의 진 중에서

가장 잘 살수 있도록

원인 제공을 한 하우스가

50여동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하우스의 크기는 7M×100M

설치비가 600元

(우리나라 돈으로 10,000,000원)정도이며,

그 중 몇 곳을 보았는데

하우스마다 제 각각의 작물

(토마토, 가지, 오이, 부츠 등)

에 열매가 있으며,

販路를 걱정하는 우리와 달리

정부에서 작목을 선정하고

농산물은 집하단지까지만 운반하면

할 일을 다 하였다고 하니

부분적이나마

사회주의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일정이 다가오면서

선물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는데

guide은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이

기념품 전시장에서

이곳의 주산지인 玉

(베개, 팔찌, 목걸이 등)으로

만든 공산품은 샀는데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이다.


11월 23일(금요일) 맑음

中國의 서울(京)

600년의 역사를 하루만에 보아야 한다.


가이드(guide)는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우리군과 자매도시 추진하는

낭방시로 향할 것이라 하여

우리 일행은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는 것은

내 의지대로 가고자 한 곳에

가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북경에서 75km의 거리인

만리장성으로 가는 길목의

식당에는 좌석수가 2,000여개 되지만

비어 있는 곳이 없을 정도이며

거의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으며,

무엇보다 종사원 및 주위 사람들과

언어 소통이 되었으며,

김치와 고추장이 있어 胃 청소를 하였다..


산악지형으로

겹겹이 쌓은 城을 바라보면서

朝鮮族 가이드(guide)는

이민 4세대인 제 고향 길림성은

그 옛날 우리나라 땅이었으며,

선생님들이 힘을 키워

다시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족이 가장 무서워하는 민족은

조선족과 우리와 같이 피를 나눈

몽고족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萬里長城(6,700km)의 시작이

우리나라의 국경선이라고 하는데 ....

지금 우리는

발자취를 남기려고

곳곳에 낙서가 즐비하다.


행군하듯

만리장성에 올랐다가

서둘러 廊坊市로 향한다.

끝없이 펼쳐진 大地에 안개가

나그네의 바쁜 길을 막아

공무원들은 바리케이트를 쳐서

고속도로 운행을 못 하도록 하고

운전사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런 핑계 저런 말들을 늘어놓지만

우리 일행 한사람도

동요하는 빛 없이 밤 새워서 간다는 의지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

거북이 걸음으로 지방도로를 향한다.


가이드(guide)는

현지 사정으로 늦다고

여행사를 통해 전달하였으나,

주 5일 근무에다 1

6:30분에 퇴근한다기에

우리 모두 자매결연의

목적을 포기하고

18:00에 도착하여

당직인 듯한 공무원에게

몇 마디 물어 보았으나

서두르는 법 없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직원을

내가 붙잡고 온 몸으로 말하였으나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

준비해간 볼펜을 몇 자루 주면서

월드컵을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는지

본관 2층으로 안내하며,

담당자들과 연결되었는지 기다리란다

外事課長님이 도착하자

우리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며,

늦게 도착하였기에

간단히 현황을 묻고자 하였으나

중국 풍습에는

귀한 손님께

식사뿐 아니라

잠도 같이 자야 한다면서

호텔을 예약 할 것이란다.


이 곳의 풍습에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에

식사를 하면서 준비해 간 질문을 하였다.

이 곳 전통의

샤브샤브의 음식도 별미였지만

외사과 직원 4명이 합류하여

따르는 술잔에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은 것이 예의라고 하여

예의를 다하느라

술에 약한 나는 고역이었다.


11월 24일 (토요일) 맑음

마지막 날

우리의 일정을 마무리하였지만,

이 곳까지 왔다가

천안문 및 자금성을

보지 않을 수 없어 일찍 서두른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천안문 광장에서

10명 정도의 사람만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 것을 당부한 안내원의 말에

언어도 통하지 않은

異國에서 모두들 행동에 조심한다.


광장 및 천안문은

숫자에 비하여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으며

참고로 천안문 높이가 33.7m이라고 하였으나

감을 잡을 수 없다.

처음에는 메모지에

천안문에 동서 9칸,

남북 5칸, 남북으로 약1,000m,

동서로 약760m의

성벽으로 되어있으며

성벽외곽으로는

도랑을 파놓았고.

성벽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5문에는

들어가는 자의 위치에 따라

출입 할 수 있는 등

자세히 적었으나,

비행기 시간 때문에

훗날을 약속하며

1시간도 채 보지 못하고

내 생에 가장 긴 여행을 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안내를 한 조선족 4명은

이민 4세대로써

말과 행동을 보면서,

본인의 생각을

고쳐야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그들에게(중국동포)들을

홀대하지 않았는지

봉사료 몇 만원을 주면서

자만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지난 신문에는 국내에 체류중인

2만5천여명의

중국동포를 불법체류자로

그리고 고국을 찾아오다

배 안에서 불의의 혼이 되어 버린

그 영혼에 생각해 본다.

재미,

재유럽 동포들과
비교했을 때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갔거나

강제징용과 수탈을 피해

이주한 동포들이야 말로

정부의
각종 혜택을 입어야 마땅한데도

재외동포법이

오히려
이들을 혜택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하여

점진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여행이란

스침에 불과하였으나,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관광명소를 구경도 하며

시청사를 방문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흥정하며

낮선 도시에서 서성이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 할 기회를 주신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 드리고

무엇을 배웠지 잘 모르겠지만

배운 체험을

행정에 접목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안내를 한 조선족 4명은

이민 4세대로써

말과 행동을 보면서,

본인의 생각을

고쳐야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그들에게(중국동포)들을

홀대하지 않았는지

봉사료 몇 만원을 주면서

자만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지난 신문에는 국내에 체류중인

2만5천여명의

중국동포를 불법체류자로

그리고 고국을 찾아오다

배 안에서 불의의 혼이 되어 버린

그 영혼에 생각해 본다.

여행이란

스침에 불과하였으나,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관광명소를 구경도 하며

시청사를 방문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흥정하며

낮선 도시에서 서성이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 할 기회를 주신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 드리고

무엇을 배웠지 잘 모르겠지만

배운 체험을

행정에 접목하겠습니다.





○ 여행지 현황


1. 청 도

지역의 이름을 딴
청도 맥주와

노산의 깨끗한
광천수로 유명하며,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 도시로서

, 산동 반도의 동쪽에
위치하였으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평균 기온은 12℃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776mm이며

도시 전체의 면적은 10,654 ㎢ 이며,

총 679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대구시와
우호 관계를 맺었으며,

전 축구감독 김정남이
청도 프로축구단의 감독을 역임한 곳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은 곳임.

2. 심 양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도읍을 정하였으며,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이며,

한때는 고구려의
영토에 속했던 곳이기도 하다.

료녕성의 성도로서
동북3성의 정치,경제,
문화 산업유통의 중심지이며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곳이기도 하다.

3. 북 경

수도이며
중국의 정치, 문화, 관광의 중심으로

50 만년전에
북경원인이 살던 고장이며

3천년을
이어온 중국 역대 왕조의
도읍지답게 현종하는
역사유적 박불관 그 자체다.

면적은
만8천제곱킬로미터,

인구는
약 1천2백만명이며,

북위 40도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신의주와
거의 같은 위도에 있다.

북경의 겨울은
영하 10도정도 내려가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는 춥게 느껴진다.

명나라 영락제때
자오잔 9백99칸의 자금성은

중국 역사를 상징하며

중국 정치사의
현장 천안문과
최고 수재들의 배움터인 북경대학,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공건축물 만리장성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 깨끗한 거리를 자랑하는
현대화된 번화가를 걸으면서
다음날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4. 낭방시(廊坊市)

6,249㎢의 면적으로
북경과 천진 사이에 위치하며,

인구는 378만명으로

2구2시6현으로
시본청 300명의 공무원으로

행정조직은
시장→부시장→미수장→비미수장
→과장→부과장→일반직원으로
구성되었고

우리군과 자매결연 추진중이며
근교농업이 발달되었으며,

경제현황은 GDP 38.2억불,
1인당 GDP 1,033불이며
밭 면적이
전 면적의 57.8%차지.

대소하천 20개이며,
생활수준은
도시 716불/명, 농촌 415불/명으로

제1,2,3차 산업별 비중은

- 20.8 : 47.9 : 31.3으로

첫 이미지는

전형적인 농촌
그 자체라는 것이다.끝http://myhome.naver.com/jusj77

주성중 홈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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