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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떼기] 나의 어릴적 이야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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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꽤 큰 하천이 있었다. 내가 어릴때도 물은 더러웠고,그나마 조금밖에 흐르지 않았으며, 각종 생활쓰레기로 덮혀져 있었다. 그 하천에 길이는 길지 않지만 높이는 꽤 되는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양색시촌과 부평역을 낀 일반 창녀촌이 있었다. 그러니까 하천의 한쪽벽은 미군부대 담이었고 다리를 가로질러 하천을 건너면 창녀촌이었다. 양색시들은, 내가 알기론 절대 기둥서방으로 있는 형들외엔 일반 한국남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놈 양키들은 우리들을 미개인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의료보험도 적용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미개인 원숭이들과 놀아난 여자는 미군부대 출입증을 발급 해주질 않았다. 그러니 다리 하나를 두고 비슷비슷한 여자들 끼리도 서로 으르렁 거리며 말쌈을 하기 일쑤였고 언제나 양색시들이 많이 울었다. 지금 차마 지면에 쓰지 못할말들이 오갔고..그래도 다다구미라고 불렸던 일반 창녀촌의 여자들은 일종의 자긍심(?)을 갖지 않았나..생각든다. 그 다리에서 조막만한 우리들은 동네형들에게서 담력(?)시험을 받곤했다. 다리는 작아도 높이는 지금봐도 꽤 높은데 밑에 양색시들이 쓰다버린 침대 메트리스 한 장을 깔고 그 위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시절에 침대란 엄청 귀한것이었는데 고급침대를 사용했을리 없고 그나마 쓰다버린 것이니 단단한 스프링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어서 잘못 뛰어내리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형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뛰어내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다쳐서 지금까지 불구로 지내는 친구도 있다. -그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하겠다- 이렇게 인정받은 우리또래의 몇 몇은 바로 실전에 투입되곤 했다. 실전이란..미군부대 담장밑의 하천뚝을 뚫어 만든 개구멍으로 들어가 미리 내통되어 있는 한국노무자나 하우스보이, 카투사, 혹은 일부 양키들이 빼낸 구리선(전선),술,담배,레이션박스,각종 약, 요상스런 물건이나 책.. 등등을 갖고 나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몸이 작은 우리들을 시켜서 훔친 양키물건을 빼내오는 운반책을 시키는 것이었다. 난 초등학교 4학년때 이미 미군부대 영창에 3일간 갇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때엔 싸움에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높다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담력만으로도 학교에선 별로 겁나지 않았다. 또 덤비는 놈이 있으면 코피만 나게 하면 이길 수 있었고 어쩌다 맞았다 하면 그놈은 아예 전학을 가야 했다. 신촌패거리들..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악마들이 아니었나...생각든다. 이렇게 유년시절은 지나갔다. 배불떼기

배불떼기님 저와는 상반된 환경에서 자라셨네요.
저는 이웃동네 어른들이
"낮에도 호롱불 켜놓고 사는 동네"
라고 놀릴 정도로 산촌에서 자랐습니다.

싸움방법은 서로 비슷했던것 같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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