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셔도 퇴근길 식사 전에 마셔야 취기가 위벽을 슬금슬금 타고 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귀가하여 저녁 식사 후에 집에서 어정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오라는 연락을 받거나 나갈 일이 생기면 선뜻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것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더더욱 엉덩이가 방바닥에 붙어 버린다.
저녁식사 후 베란다에 붙어 서서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들어오니 아내는 일일 연속극에 몰입이 되어 있었다.
소파에 걸터앉으니
"어휴! 담배 냄새! 연기까지 몰고 들어오시네."
할말이 없었다.
금연초를 구입해서 딸, 아들 모두가 기립 박수를 치면서 거창한 전달식을 거행했었다.
그러나 선수는 가족 모두의 성의를 봐서 일주일을 금연하다가, 술좌석에서 다시 연결해 버렸다.
그후 쏟아지는 가족의 비난에도 쇠가죽처럼 대꾸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다.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조간 신문을 뒤적이다가 아내를 쳐다보며
"우리 수박 먹을래?"
하고 동의를 구하니
화면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쳐다보며
"○○이 학원 갔다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좀 있다가 같이 먹읍시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연속극 보는 분위기 때문에 내가 나가야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연속극을 집필하시는 작가 선생님은 단칼에 끝내 버리지 사람 혼을 빼듯이 맨날 감질나게 하시노?
문을 여니 아들녀석이 가방을 메고 서있었다.
"잘 갔다 왔어?"
"예. 다녀오겠습니다."
"얌마, 인사가 뭐 그래? 다녀왔습니다로 다시 해봐."
"아빠가 그렇게 받아 주시면 되죠."
"뭐라고?......"
드디어 바보상자의 프로그램이 끝이 났나 보다.
수박을 잘라서 들고 왔다.
딸은 수험생이라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세 식구가 둘러앉아 수박을 먹고 있었다.
한 입을 베어 물고 있는데 아내가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 수박이 씨도 없고 잘 익었제? 달기도 참 달제?"
아들은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컴퓨터 부팅을 하고 있었다.
수박이 잘 익었다는 칭찬은 아들이 오면 같이 먹자고 한 이야기에 대한 보상 차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수박이 달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무거운 수박은 알아서 사들고 오라는 내용으로 들렸다.
PC화면을 쳐다보니 녀석은 수박 조각을 들고 같은 반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있었다.
지 엄마가 쳐다보며
"○○아! 수박 다 먹고 난 뒤에 PC해라."
"예, 예."
대답과 행동은 따로 하고 있었다.
수박 조각을 입에 물고 자판을 치던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라니?"
"엄마! 나 지금 큰일 났어요."
곁에서 나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야, 지금 비오는데 어디 불났나?"
"지금 불나는 게 문제가 아니래요."
"그럼 뭐가 그리 큰일이 났니?"
"오늘밤에 다 보고 가야 내일 수행평가 시험 치는데......"
비오는 늦은 밤에 수박 한 조각을 먹다가 선수는 또 밖으로 내몰리게 생겼다.
아내는 나를 쳐다보면서
"저 녀석이 낮에는 일본어 책을 잊고 가서 5교시 시작하기 전에 급하게 갖다 달라고 전화가 왔더라. 택시 타고 갖다주고 올 때는 걸어오면서 비를 맞아 내 청바지 다 버렸다."
결국 낮에 비를 맞으며 아들 심부름을 했으니 밤에는 내가 다녀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뺑소니를 치기 위해
"돈을 줄 테니 네가 좀 다녀오면 안 되겠니?"
금방 채팅을 하던 녀석이 헤드셋을 끼고 화면을 바꿔서 동영상 수업을 듣고 있었다.
결국 출동할 선수는 나밖에 없었다.
수행평가 관련 시험을 잊고 있다가 친구와 채팅을 하다 알게 된 모양이다.
내용인 즉슨 밤늦게라도 정해진 책을 읽고 가야 내일 시험을 치르는 모양이다.
서점 문을 닫기 전에 빨리 가서 책을 사오라는 이야기이다.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있다가 티셔츠를 걸쳤다.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해 서점으로 출발을 했다.
동네서점 문을 닫기 전에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라는 책을 빨리 구입을 해와야 한다.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을 옮기면서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게 울리고 있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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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면서도 귀엽죠.. 대견하고..
아!~~ 평화스럽습니다..
우리 아들 생각 나네요..
휴가 오면 맥주 챙겨서 낚시 가자고 했는데...
저두 아들내미 어릴 때는 엄청 엄하게 키웠슴니다만
요즘은 되도록 부딪치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도 부인과 자식들에게 잘 해 주시는게
눈 앞에 보이네예. 저는 집에서 거의 폭군(?) 스타일이라
감히 과제물이니 등등 저 한테 심부름시킬 사람이 없슴니다.
알아서 해 줄 때는 해 주지만 자식의 실수까지 부모가
카바 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게 제 신조입니다.....
과잉보호는 애들을 사랑하는게 아니고 버리는 지름길입니다.
설사 좋은 고등학교, 대학 못 가면 어떻슴니까?
자신의 일을 자신이 (설사 빵점 맞더라도요) 알아서 하도록
교육시키심이 차라리 더 발전적 일 수 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자신의 일을 미루지 않도록 하는게 좋을 듯 하네예
애들 교육에 이러쿵 저러쿵해서 죄송합니다.....
혼자 설수있게 고기를 잡아 주는게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게 교육방법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잘해주는건 부끄럽습니다만, 제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질이 나면 성질을 내고......
좋은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