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멋쟁이 30대들은 만난 구룡포
가을이 오면 꾼들의 마음은 설렌다. 붕어는 더욱 살찌고
계류 어종들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 진다. 민물과 바다 구별하지 않고
고기가 있는 곳이면 찾아가는 전천후형 꾼들은 동해안 갯바위와
방파제 모습이 눈에 선해 지는 계절이 또한 가을이다.
가을 바람이 불면
가을이면 내가 즐겨 찾는 낚시터 가운데 구룡포가 있다. 일정 때 이미 읍으로 승격할 만치 번창했던 구룡포는 동해중부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였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조선 수산왕으로 불리던 카시이 겐타로 남조선수산주식회사 사장은 동해로 출어하는 어선단의 전진기지가 필요했다. 카시이의 요청으로 이른바 조선총독부가 정책적으로 개발한 항구가 구룡포다.
구룡포를 어업전진기지로 개발하면서 당시만 해도 동해안에서 제일 규모가 큰 방파제를 건설했고 그것이 지금의 구룡포 방파제다.
한시절 전까지만 해도 구룡포 방파제에서는 중치 감성돔과 벵에돔이 지천으로 낚였다. 어업전진기지로 개발된 구룡포는 당시 수준으로는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거기다 어선 선주와 선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술집들도 많아 고기가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즐거웠다.
그 시절의 추억을 못 잊어 지금도 가을이면 구룡포 해역을 즐겨 찾는다.
3년 전 추석이 지나고 바람이 제법 서늘해지면서 우리들 x놈 그룹 3인조가 구룡포를 찾았다.
세월은 구룡포를 어업전진기지와 함께 관광지 구실을 겸하는 항구로 바꾸어 놓았다.
구룡포에는 두 가지 맛 거리가 있다. 복국과 과메기다. 구룡포 복국은 대도시 식당에서 손님의 주문이 있을 때마다 냄비에 재료를 넣어 즉석에서 끓이는 것과는 달리 큰솥에 복을 넉넉히 넣어 중불에 뭉긋이 끓여 복 뼈 국물까지 우러나게 한다. 이렇게 끓여두었던 것을 손님이 청할 때마다 그릇에 담아내 놓는 구룡포식 복국은 맛이 일품이다.
구룡포 복국은 끓일 때 소금간과 마늘 정도만 넣을 뿐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 국물이 더욱 시원하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스스로 양념장을 넣는다.
구룡포 복국이 유명한 것은 구룡포 앞 바다에서 복이 많이 잡힌 덕이다. 복은 찬바람이 불때 제 맛이 나기 시작하고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절정을 이룬다.
한시절 전까지만 해도 구룡포 복국은 현지에서 잡히는 연안산 생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구룡포 복국은 손님이 특별히 생복으로 해 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으면 냉동복을 사용한다. 냉동이기는 하지만 복을 넉넉히 넣고, 또 끓이는 방법에 특이해 대도시 식당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감칠맛이 난다.
의외의 수확
구룡포에 도착하는 길로 바로 방파제로 나가 낚시를 던져 조황을 탐색해 보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내일 새벽 대보지역 갯바위로 나기로 하고 낚싯대를 접었다.
낚싯대를 접으면 가는 곳은 정해진 코스대로 복집이다. 복 수육에 막걸리를 시켰다.
생선 요리를 먹을 때 소주를 곁들이는 사람이 많지만 동물성 지방질 함량이 적은 생선은 독한 술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일본식 술인 청주도 좋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복 수육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특히 낚시터에서 찌와 씨름을 하다보면 목이 마르고, 마른 목을 추길 겸 복 수육에 막걸리를 마신다.
"복 수욕에 막걸리 이 맛 때문에 구룡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맛 못 보고 어제 죽은 사람 불쌍하네."
일행 가운데 가장 연하인 A가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킨 다음 복 수육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며 특유의 넉살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한결같이 복을 좋아한다. 복을 좋아하는 우리 일당은 고기잡이보다는 복 맛에 끌려 가을 바람이 불면서 구룡포를 찾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아저씨 서울 사람 같은데, 복 맛은 제대로 아는 모양이네."
막걸리에 곁들여 먹는 A의 복 수육 맛 예찬 소리에 옆자리에서 들려온 소리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셋이 앉아 복국 식사를 하고 있었고, 말을 던진 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상대가 30대 초반 여인들이고 거기다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 온 이상 넉살 좋은 A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말하는 것 보니 아가씨도 복 맛 좀 아는 모양이네요."
어디로 보아도 아가씨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을 나이인데도 A는 넉살 좋게 아가씨라 불렀다.
여자는 자기를 젊게 보아줄 때 기분이 좋아진다. A는 이런 여자의 심리를 노리는 데는 선수다. A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도 나에게 배운 거라지만.
"그 아저씨 술 취했나 봐. 우리가 아가씨로 보여요?"
여자가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항의 아닌 항의를 한다.
A가 수작을 거는 사이 여자들을 찬찬히 살핀다. 대도시 여자들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구룡포 현지인 같지도 않다. 구룡포는 좁다. 좁은 곳에 사는 구룡포 현지 여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끼리끼리 식당으로 몰려와 식사를 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현지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의상과 화장이다. 좁은 구룡포에 사는 현지 여자들이란 평소 입는 옷 그대로 식당으로 올 것이고, 새삼 정성 들려 화장까지 하고 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세 여자 모두 화장을 정성 들여 한 모습이다. 거기다 세 여자 모두 스타킹을 신고 있다. 스타킹을 신었다는 것은 구두를 신었다는 뜻이고, 좁은 구룡포 주민 여자라면 가까운 식당에 오면서 구두까지 신을 이유도 없다.
현지 주민이 아니라면 외지에서 온 여자들임에 틀림없다. 상대가 현지 여자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서면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생긴다.
"말하는 것 들어보니 복 수육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라는 걸 아는 모양인데, 언니들도 한 잔 해 보시지요."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막걸리 컵을 옆자리 여인 앞에 놓고는 술을 따른다. 내 액션을 기다렸다는 듯 우리 일행 A와 B도 각기 다른 여자 앞에 잔을 놓고 막걸리를 따른다.
이런 행동은 조금 무례하다 싶지만 일종의 기습작전이고, 중년에 들어선 여자에게는 기습작전이 의외로 효과적이다.
우리들의 기습작전에 세 여자가 서로의 눈치를 힐긋 볼 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눈짓을 교환하고 거부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들과 어울릴 생각이 있다는 신호다. 기습작전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여자들이 우리가 따른 막걸리 잔을 들면서 합석으로 발전했다.
복 수육과 막걸리가 인연이 되어 합석한 30대 초반의 세 여자들은 예상대로 구룡포 현지 주민이 아닌 여행객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명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자기들 이름도 말했고 사는 곳을 알게 되었지만 굳이 여기서 밝힐 이유는 없다. 이름도 편의상 숙자, 애자, 민자 정도로 해 두자.
나를 선택한 여자
북 수육에 막걸리가 궁합이 맞고, 그 맛이 일품이라 해도 그것만 먹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일당도 여자들도 합석을 할 때 이미 그것만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서로가 합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만난 중년 남자들과 여자들이 2차로 몰려 갈 곳은 대개가 노래방이고, 노래방으로 옮기자는 말에 여자들이 순순히 따라 나서면 그 다음 코스는 일사천리다.
노래방으로 옮기기로 합의하고 식당을 나섰지만 그때까지 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럴 때 남자 쪽이 나서서 짝을 정하려하는 건 상책이 아니다. 짝에 대한 선택권은 여자 쪽에 주어야한다. 선택권을 여자 쪽에 주는 것이 분위기가 좋아지고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선택권을 여자 쪽에 준다고 해서 '누가 내 짝 할거요?' 하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을 물을 만치 우리들은 촌스럽지 않다.
우리가 찾아 들어간 노래방 소파는 ?자형이었다. 들어서면서 우리 셋은 한 사람이 ?자형 소파 한쪽 면을 차지해 앉았다. 여자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남자 옆에 앉으라는 뜻이다.
처음 말을 걸었던 애자씨가 먼저 A옆에 앉았고 이어 숙자씨가 내 옆에 앉았다.
이제 파트너가 정해졌다. 파트너가 정해지면서 오랜 전부터 알아왔던 사이처럼 친숙해 진다.
한 커플이 이중창을 부르면 다른 커플들은 끌어안고 춤을 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신청곡은 하나 같이 블루스다.
내 파트너인 숙자 씨의 춤 솜씨는 초보 운전자 수준이다. 30대 초반 여자 춤 솜씨가 거미를 연상시킬 만치 능란하면 도리어 좋지 않다. 30대 초반 여자의 춤 솜씨가 프로급이면 바람기의 베테랑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상대의 춤 솜씨가 초보운전자 수준이면 편리한 구석이 있다. 춤이 베테랑이면 자연히 스텝이 많아진다. 상대가 초보자고 스텝이 작으면 이쪽이 주도권을 잡는다. 이쪽이 주도권을 잡으면 스텝은 적당히 해 놓으면서 몸을 밀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밀착시킨 상태에서 숙자씨의 몸매 검사에 들어간다. 30대 초반 여자답게 몸 전체에는 적당히 물이 올라 있고 탄력도 나무랄 구석이 없다. 조금 더 철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검정해 보기로 한다.
철저한 검정을 해 가는 사이 숙자씨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숨결이 뜨거워지고 스스로 몸을 밀착시켜 온다.
'숙자씨는 굉장히 민감한 몸을 가진 여자구나.'
아니면 오랜 동안 남자와 접촉이 없었던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어느 쪽이건 남자 입장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그 사이 시간은 흘렀고 시간이 흐르면서 누군가 조명 스위치를 조작해 실내는 어두워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변해 있다.
술과 어둠은 인간을 대담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대담해 지면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물론 우리들 커플이 낄낄거리는 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내 뿜는 뜨거운 입김으로 실내 공기에 열기와 습도가 높아간다. 이것은 노래방을 졸업해야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포장마차에 가서 밤바다 바라보며 우리끼리 맥주 한 잔 할까?"
포장 마차에 가자는 것은 구실일 뿐 세 여자를 각각 떼어내고 숙자씨와 단둘이 되기 위한 수작이다.
어린애도 아닌 30대 초반의 숙자씨가 둘이서만 포장마차 가자는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를 리가 없다. 늦은 밤 일행과 떨어져 단 둘이 된 다음 남자와 여자가 가는 곳이 어딘지, 가야할 곳에 가서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숙자씨도 아니다.
단둘이 포장마차로 가자는 말에 숙자씨가 곱게 눈을 흘긴다. 눈을 흘기기만 할 뿐 거부반응이 없다. 거부반응은 고사하고 흘기는 눈에 30대 여자 특유의 진한 교태까지 담겨 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먼저 나가 있어 내 뒤 따라 나갈게."
숙자씨가 또 한번 곱게 흘긴 다음 말없이 백을 들고 나간다.
3분 정도 여유를 둔 다음 역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룸을 나섰다.
낚시는 어디 가고
노래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숙자씨를 데리고 일단 해안가 포장마차가 있는 해안통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떨어지면서 약속이나 한 듯 숙자씨가 내 팔을 끼고 내 팔이 숙자씨 허리를 감는다.
"낚시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포장마차에서 해삼 안주에 맥주를 마시면서 숙자씨가 묻는다.
묻는 말투 속에 내가 권하면 내일도 같이 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 숨어있다.
"사흘 예정이야. 숙자 씨는?"
"사흘은 괜찮아요."
사흘을 함께 해도 좋다는 뜻이다.
숙자씨 정도의 여자라면 사흘 아니라 그 이상도 대환영이다. 문제는 다른 여자들이다.
"친구들은 어때?"
"우리 사흘 예정으로 나왔어요."
"친구들 마음에 자기 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마음에 들었으니 그 야단이겠죠."
노래방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낚시 그만 두고 동해안 여행이나 할까?"
"나 차 가지고 왔어요."
"그것 잘 되었네. 내일 숙자씨 차에 우리 둘이 타고 우리 차에 다른 네 사람 타라고 하면 되겠네."
결론은 쉽게 났다.
쉽게 날 수밖에 없다. 숙자 씨 일행은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나선 여행길이다.
우리도 그런 일이라면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낚시 정도는 희생시킬 줄 아는 한량들이다.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여행에 나선 숙자씨 일당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가 필요하다 해서 매일 같이 남자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안심할 만한 상대를 구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모텔 베드에서 들은 말이지만 숙자씨 일행은 노래방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우리를 관찰했고, 관찰 결과 안심할 수 있는 상대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안심할 수 있는 상대라는 판단이 서면서 우리와 사흘을 함께 하는 쪽으로 적극 유도하자는 음모까지 꾸민 모양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숙자씨 일행을 낚은 건지 우리가 숙자씨 일행의 음모에 빠져들었는지 헷갈린다.
어느 편이면 무슨 상관인가. 언젠가 말했듯 일본 엔가에 '남자와 여자 서로 낚고 낚여서'라는 구절대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워지는 사이가 아니더냐.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면서 숙자씨 일행처럼 멋스러운(?) 목적으로 관광지를 찾는 여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개방 사회를 맞은 오늘의 한국 풍속도이기도 하다.
사진 설명
1. 바다에서 바라보는 구룡포 항구.
2. 벵에돔의 명소 구룡포 방파제.
3. 구룡포 특산물 과매기.
4. 출어를 기다리는 어선단.
5. 구룡포 주변에는 갯바위 낚시터도 많다.
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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