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소중하게 시간을 들여 글을 써주시는 월님들을 보다...
지금은 꽤 시간이 흐른 저의 추억의 조행기가 떠 올랐습니다.
이미 한 7,8년 전 타 사이트에 올렸었던 글이지만
허접한 글이나마 글쓰는 다른 분들께 답글도 제대로 못달았다는
죄스런 마음에 공유해 보고자 올려 봅니다.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1987년. 5월 2일.
춘천으로 향하는 버스차창엔 가는 보슬비가 눈물이 되어 흩어질때.
이문세의 신곡이라는 멘트와 함께 라디오에선 노래가 흐르고
난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않고 버스뒷좌석에서 4홉들이 소주를
안주도 없이 병채 나발불고 있었다.
첫사랑.
그리고.....오늘 예상치 못한 이별.
춘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만취가 된 상태에서 또다시 난 슈퍼에서
소주를 사서 깡소주를 나발불며 학교기숙사로 걸어가고....
다음날, 늦은 아침. 간밤에 나의 행패에 기숙사화장실 문짝은
모두 폭탄 맞은 거 모냥 부서지고 떨어져있었다.
철모르는 고2때 처음 만나 2년을 사귄 그녀.
고3때 나의 반항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늘 그자리에 서 있을 것 같던 그녀.
늘 술에 취하고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도 천사같은 그녀앞에서 난 온순한 학생이었고
고3때 23일간 가출을 했을 때도 멀리 전주까지 찾아와 밥을 사주고
돌아갔었고....한여름 번개치는 빗속에서도 함께 전철역에서 손잡고
밤을 지새며 묵묵히 옆에 있어주던 그녀였는데................
나역시...마음까지 타락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의 풋사랑은 순박하게 조심조심 여물어 갔었다.
난, 인문계. 그녀는 상업고등학교.
졸업후 난 간신히 춘천에 있는 지방대엘 진학했고.
그녀는 수순에 따라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춘천과 서울. 주말마다 오가며 바로 지지난 주만 하더라도 우리는
해가 지는 공지천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웃으며 헤어졌는데......
도대체...이 일방적인 통보에 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때마침. 학교는 축제기간이 막 시작된 시점. 그 분위기는 나를 더 깊은
슬픔의 늪에서 침잠하게 만들었고...
난 매일매일 하루에 소주 5병~7병씩을 밥대신 먹었고
소식이 없어 궁금해 찾아온 친구들이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 산송장 치울까봐 죽 2끼 먹인 것이 일주일식사의 전부.
6.29선언이 있기 이틀전인 6월 27일.
그 격동의 시간에 늦은 밤. 억지로 연결한 전화에서 들려온
그녀 친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거의 나를 미치게하다시피했다.
그녀를 놓아주라......그녀도 무척 지금 힘들어한다.......
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그녀의 친구.
"난 이해 못합니다. 도대체, 헤어진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
"부탁입니다.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지않습니까."
".............생각해보고 며칠내로 전화드리죠."
꼭 전화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이 상황에서 끓어오르는 기분을 어찌하지못해
공중전화박스의 유리를 산산조각내고는
주먹과 발등에서 눈물처럼 흐르는 피를 훔칠 생각도 않고 뒤돌아섰다.
술도 과하면 병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
여름방학이건만 집에는 안돌아가고 밥대신 술로 지내다보니...
이젠 아침에 눈뜨면 내가 자는 곳은 학교운동장. 근처 공사장 담밑.
어쩔땐 2층에서 떨어졌지만 빨래줄에 걸려 살기도 하고.....
나중엔 잠들지않은 상태에서도 환각이 보였다.
4인이서 쓰는 기숙사는 밤낮으로 환각증세를 보이는
내가 무섭다고 모두 나가버려 방엔 나 혼자.
이젠 수중에 돈도 떨어진지 오래여서 가끔 생명의 위협에 드믄드믄 하던
식사마저 할 수가 없다.
젠장...............
책상서랍을 열어본다. 혹시 라면을 살 잔돈푼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때 동전대신 눈에 띄인건, 지난번 사둔 낚시줄과 바늘.
세상에 버려진체 나 혼자라는 생각의 하루하루에 지친 내게
갑자기 문득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밤의 캠퍼스.
방학이기도 하고 늦은 시간인데다....데모의 시간대신 새정권의 탄생이
모든 학생들을 대부분 집으로 돌려보낸 그 고즈넉한 시간.
난 조용히 주머니속에 낚시줄과 바늘하나 달랑.
손에는 방금 전재산을 통털어 산 새우깡 한봉지들고 휘적휘적 걷는다.
대운동장을 막 벗어나면 길가에 놓여진 커다란 연못.
가끔 익살스런 학생들이 생일날 친구를 못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그 곳에 어떤류의 물고기가 있는지 어떤지는 들은 바가 없다.
당연히 캠퍼스내의 연못은 학생들의 쉼터이자 조경가치가 크기에....
이 곳에서 낚시를 한다는 것은 누가 말리지않아도 아는 상식이건만.
이미 지성과 상식따위는 관심이 없어진 난
수위아저씨가 나중에 호통을 치며 달려오든 말든 연못가 바위에 털썩 앉는다.
새우깡을 한입 털어넣고는 우물거린다.
적당히 찰기가 생겼을 무렵. 10호쯤되는 낚시바늘에 떡밥대신 끼우고
찌도 없고...대도 없는 오직 동그란 낚시줄감기하나만을 손에 든체
무의식중에 손은 전방 3미터의 물속으로 채비아닌 채비를 입수시킨다.
오랫만이다.
무언가를 바라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찾아온 것은.....
5월 2일부터 근 2달. 세상과 격리되어 틀에 갇혀 술만을 벗하며 살았는데...
연락을 준다던 그녀의 친구.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전화는 없고....
그녀는 물론 그녀의 식구들도 내전화를 피한지 오래.
방법은 없는 걸까......그녀의 변심은 이유조차 알 수 없으니.........
손에 무언가 자극이 온다.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본능적으로 돋아나는 이 익숙한 긴장감.
술에 쩔고 혹사시킨 몸과 정신이지만 내 본능은 감출 수 없었구나.
"핑!!"
자그만 놈이 아니다. 비록 찌없이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이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챔질을 하였건만, 제대로 훅킹이 된 이놈은 직감적으로
잔챙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대의 탄력이 없으니 놈의 힘찬 저항도 오래가진 못했다.
근 수면에서 1.5미터는 떨어진 내가 앉은 바위위로 놈을 무식하게
강제집행해서 발앞에 내동댕이치고는 그 정체를 궁금해하며 들여다 본다.
비단잉어.
놈은 누런 황금빛비늘을 온 몸에 감싸고 배는 백설같이 하얀
40cm정도의 비단잉어다.
녀석은 여태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나 먹고는 이런 입천장을
꿰뚫는 아픔은 처음 당할테지................
약간은 겁먹은 순박한 두눈의 꿈뻑거림이 나의 퀭한 두눈과 마주쳤을 때.
난 부질없이 또 헤어진 그녀의 예쁜 쌍꺼풀을 떠올렸다.
가라.....
놈을 조심스레 다시 던져 놓고는...목적없는 낚시아닌 낚시를 계속한다.
잠시후...이번에 요동치며 올라온 놈은 자그만 불루길 한마리.
그 당시엔 블루길인지 뭔지도 몰랐던 나지만
이 가시많은 지느러미에 욕심많게 생긴 이놈은 별로 놓아주고 싶질 않아
아까 새우깡을 담아온 비닐봉투에 감금해 놓곤 또 바늘을 담근다.
"핑!!!"
이번엔 좀 힘을 쓴다. 다시 무식하게 끌어낸 놈은...또 비단 잉어.
자세히 보니 아까 내가 잡은 바로 그놈이다.
바보같은 놈....아프지도 않더냐.....
다시 돌려보낸다. 그러나....물고기 아이큐가 이리 낮던가.
잠시후 놈은 또 내가 던진 달콤한 미끼의 유혹을 못 이기고 다시
2번이나 더 뭍에 나와 내눈을 마주쳐야 했다.
이놈은 먹이를 위해서 이리 달려든다지만....
난 과연 그녀에게 이리도 집착하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사랑이기에? 아니면 그녀를 남에게 빼앗긴다는 자존심이기에?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비단잉어를 돌려 보내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블루길 3마리가 든 비닐봉투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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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꽃이 위 비닐봉투안에 든 3마리의 블루길이
이미 폐사하고도 그 사체위에 하얀 물곰팡이가 뒤덮을 때쯤.....
난 춘천을 떠나 서울도심을 서성이고 있었다.
제기랄........이리도 난 무관심하였던가.....
그녀의 집도, 직장도 그저 버스정류장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찾아가 기다리려 해도 아는 것이라곤 그것이 다였지만
며칠째 난 아침마다 집을 나와 사당동과 충무로거리를 서성대고 있었다.
그녀가 항상 학창시절부터 몰려다니던 친구중의 하나.
내게 그녀가 결별을 난데없이 선언한 이유를 후에 말해주마했던 친구.
그녀대신 그녀의 친구를 마침내 마주친 것은 내겐 차라리 없는 일만 못하였다.
나를 애써 외면하고 도망가는 그녀의 친구를,
난 흡사 형사가 범인을 연행하듯 팔을 잡아끌며 애원하다시피했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도대체! 왜 하루아침에 모든 이들이 내게 이렇게 돌변하게 된겁니까?
제발......만일 이야기해주신다면, **를 깨끗이 단념하겠습니다."
한참을 한숨쉬며 뜸을 들이던 그녀가 무겁게 이야기를 꺼냈다.
차라리....알지 말았어야 하는 그 이야기를............
긴 서술없이 한마디로 말하겠다.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기억.....
그녀가.......겁탈을 당했단다. 불량배 두 놈에게.
당시 코스모스백화점. 지금의 중국대사관 가는 길목.
밀수로 들여온 외제물품을 파는 그곳에서
난 단추를 누르면 자동으로 칼날이 펴지는 재크나이프 한자루를 구입했다.
그 놈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이미 살의를 품게 된 나에겐 그 누구라도 좋았다.
만일.....그녀의 동네 으슥한 골목에서 젊은 여자를 위협하는 불량배를
만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놈은 나의 서슬퍼런 비수를 가슴에 꽂게 되리라............
학교는 이미 2학기 개강을 시작한지 오래건만,
난 사당동 비탈진 골목을 밤마다 돌아다니며 흡사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주머니속의 재크나이프를 꺼내기만을 눈을 번들거리며 기다렸다.
마침내.....근 2주간의 배회에 그물속에 걸려든 놈들.
젊은 여자에게 소위 삥이라는 걸 뜯는 어느 젊은 10대놈들을 발견하곤
어설프지만 무식하게 휘두른 내 칼날의 끝에 온 감촉.
스치는 느낌과 함께 내 시야엔 그중 한녀석이 한쪽귀를 부여잡곤
피를 흘리며 동료를 따라 무리지어 골목끝을 벗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돌아오는 밤길.
이게 뭔가....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성취감은 커녕 자책과 끝을 모를 커다란 어둠만 보일 뿐.
난.......근처 공사장 저멀리 재크나이프를 던져버렸다.
약간은 정신이 돌아온 후, 난 세상에 대한 분노위에 죄책감을 하나 더하고
더럭 사람을 베었다는 공포심에 서둘러 춘천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이야~~ 이게 누구야?
임마! 너 그동안 뭐했냐? 수업에도 안들어오구."
"..........................."
"이놈자슥. 뭔일있었냐? 무게 잡기는......"
"..................나 술 사주라."
".......그래? 좋아. 뭘로 할까? 막걸리? 소주?"
"............나......물이 보고 싶다."
간만에 찾은 교정에서 날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 고마웠다.
아직 수업이 한두시간 남은 평일임에도....녀석들은 나를 위해
이유도 묻지않은체 소양강지류의 한 골짜기로 술판을 벌이기 위해
기꺼이 동행하였다.
낚시를 좋아하는 날 위해서 가장 친한 친구놈은 아버지의 낚시대를
슬쩍 빌려오고.....어떤 놈은 코펠과 버너도 준비하여.....
대충 나를 포함한 놈팽이 7은 그럴싸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날, 나의 술취한 신세타령에
친구놈들은 때론 숙연히. 때론 분노해가며 나를 위로해줬고.
다음날 새벽까지 끝을 모를 술자리에 쓰러진 소주는 40병이 넘어섰다.
그날 마신 술이 목젖을 타고 식도를 넘어갈때.
나의 가슴속에도 끝을 모를 눈물이 뜨겁게 흐르고 있었고.
촛점 흐린 눈으로 바라본 수면에는... 일렁이는 찌그림자가
그날 만큼은 챔질에 대한 유혹마저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잠 한숨 안잔채 무표정한 눈으로 임자가 사라져버린
새벽 물안개 속의 쓸쓸한 낚시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친구 녀석이 조용히 일어나 새벽 품질을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인가 멋드러지게 대물처럼 올리는 찌를 보고 끌어낸 놈이
조그만 피라미였음에도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 속에 하나의 결심이란 것이 섰다.
결국, 그녀를 그렇게 되게 만든 것은 나라는 생각에.......
내가 만약, 서울에 있었더라면.
고등학생시절. 그녀의 격려대로 좀 더 공부를 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였더라면. 그래서 그녀를 매일 바래다 줬더라면.
그 악몽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가슴 아픈 후회가 밀물처럼 나를 뒤덮을 때
더이상 춘천의 수려한 경치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즐겁지않았다.
채 1년을 못채우고......자퇴서를 내던지고 말았다.
"**에게 꼭 전해주세요.
난, 기다릴 거라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
"언제든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겁니다.
만일,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그녀가 부담스러워한다면.
좋습니다. 10년. 10년안에만 내게 돌아와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헤어진 이후....얼굴 한번 목소리 한번 안보여준 그녀대신
그녀의 절친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서, 난 다음해 날아든
징집대상서류에 미련도 없이 도피하듯 7월에 머리를 깍았다.
그로부터 해마다.....난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그녀의 생일에
꼬박꼬박 눈물방울 얼룩진 답장없는 축하편지를 보내는....... 1년에
딱 1번뿐인 편지로 내가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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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철이 없던 내가 다시 군대가 아닌 사회란 것에 발을 디밀때.
목적지없던 내게도 유일한 하나의 목표란 것을 던져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의 이별이였었다.
그녀를 서울에 남아 지켜주지 못한 나의 죄책감은
이제라도 그녀와 가까운 서울로 돌아오기위하여 다시 켠켠히 묵은 먼지 쌓인
고등학교때의 교과서를 집어들게 했다.
정말로....세상에 태어난이래 그전에도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렇게 죽자사자 열심히 공부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전후사정은 모르셨지만......이제사 군대 갔다와서 철 든
아들녀석의 모습에 어려운 살림이지만 허리띠 졸라매가며 학원비를 대셨고.
드디어......91년.
난 공부를 다시한지 10개월만에 서울소재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늦깍이 대학생이되어 입학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녀가.....이 사실을 안다면.....기뻐해줄까........
두번째 학번을 소유하게 된 나는 매일 등교하는 전철에서나마
그녀를 우연히 마주치게되길 바랬지만.....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그나마 유일했던 그녀의 친구마저 이젠 연락처를 알 길 없었다.
세월은,.......정말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가끔....점점 아픈 그녀와의 기억이 조금씩 빛은 바래가는 것을 느꼈지만,
결코 내가 일방적으로 약속한 10년간의 약속은 잊지않았다.
94년. 12월. 난 대기업의 계열사공채에 합격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문득....야근을 할 때 차창밖을 바라보며 가끔 그녀가 떠오를때.
난 오히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감사하는 마음마저 갖게 되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인생의 변환점이라는 것이 있다.
나에 있어서 그첫번째는 그녀. 결국....그녀와의 헤어짐이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리라....(지금도 생각한다.)
그녀에게 내가 스스로 약속한 10년을 채 못채운 9년하고도 11개월 3일이 지난
97년 4월 5일.
난 나를 사랑하게 된 같은 학번의 4살 어린 지금의 아내와
신촌에서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딘가에서.....아픈 상처를 감싸줄 남자를 만나
그녀도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귀여운 자녀들과 함께 퇴근하는 남편을 미소로 맞이하며....
대답없는 그녀의 모습은 그러할 것이다라는 자위를 하며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한 새살림은
조금씩 둘이 함께 한다는 행복감에 하루하루 물들어 가고.
이젠, 근 20년전의 그 첫사랑의 아픔은 기억저편에 두터운 딱지에 쌓인채
난 한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으로서 틀에 박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른 문명의 이기는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 유대리. 이게 뭔가?"
"아, 싸이인데요.요즘 이거 모르는 사람 없어요."
혹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2005년 연말 난 처음 **월드라는
미니홈피를 알게 되어 그곳에 사진과 글 올리는 재미에 중독되었고.
문득 기억 저편에 희미한 앙금처럼 남은 이름 석자를 기억해내고 말았다.
인터넷상에 미니홈피의 홈페이지에는 사람찾기라는 메뉴가 있는데...
난, 문득 첫사랑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억해 내고.....
흡사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두군거리는 가슴의 고동을 느끼며
혹시나하며 찾기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풍덩!!"
어느놈인지 산란을 하나보다.
봄에 찾은 저수지 한켠. 밤새 나를 지켜주던 찌불이 그 빛을 잃어갈 즈음.
어느새 사라지는 어둠이 남기고간 수면의 물안개에
꼬박 밤을 새운 난 시선을 아직 잿빛이 많은 산 저멀리 둔채 상념에 젖어든다.
미안하다.....
그녀가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보고싶어 목말라하던 그녀가, 그 곳에 있었다.
18년만에, 그것도 인터넷의 버튼 하나로 너무나 쉽게 그녀를 찾았다.
달랑 그녀의 홈피엔 사진 한장.
해맑게 미소짓는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18년전의 그녀였다.
약간의 눈가 잔주름을 제외하곤....내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
하지만........정작 내 눈앞을 뿌옇게 만든 건.
그녀가 아직 혼자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때문이다...........
그 죽어도 잊지 못할 사건이.....그녀를 여직 혼자있게 만든 것인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등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그 홈피에 방명록 한줄 남기지 못하고....멀거니 바라보던 난,
난 도망치듯 애써 모니터아래로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하다......정말.......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하여서 미안하다........
너에겐 18년의 세월이 아직 상처였구나.....
난....무심하게 이렇듯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첫사랑.....한때였지....라고 치부하던 내가 참으로 증오스러웠다.
아직은 제대로 된 입질 한번 못본, 올해 두번째 출조다.
노지위 대충앉은 내자리 주변엔, 수줍은 산나물들이 군데군데 나와 있고.
간밤의 무서리에 적셔진 대끝위에 초롱초롱 달린 이슬처럼,
건너 산끝을 바라보는 내눈에도 이슬이 고여있다.
그 후, 몇번을 그녀의 홈피를 도둑처럼 들락거렸지만.....
전혀 업뎃이 안되어 있는 그녀의 사진만 한참 바라보다 나와야했다.
나중에 가만히 관찰해보니......그 홈피에 올린 사진마저도
아마 그녀의 초등생 조카가 장난으로 올려놓은 것임에 틀림없음을 알았다.
이젠....지방간과 고지혈을 걱정하는 배불뚝이 중년의 나.
그녀를 만날 수도, 만나서도 안되는 세월의 간격이 야속하다.
2005년 5월.
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말했던가.......
그녀와 헤어진지 꼭 18년되는 그 계절에 찾은 저수지.......
18년전. 춘천의 자욱한 물안개를 밤새워 술에 취한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그날도 밤새 부질없는 상념속에 맞이한 물안개속에 놓여진 대끝에는
이슬인지 눈물인지 모를 첫사랑의 추억이
투명한 빛을 머금고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벌써 7년이군요.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건, 그 시절의 사람이 그립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가끔은 이제 그 아픔마저 그립습니다. 허접한 장문의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끝에 걸렸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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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감정이실려서 멋지게 단편소설이군요,
그래서 낚시가서 상념에 빠지면 좋은거지요,
,감사합니다
추억이시라 ᆢ
이젠다잊어주는것도 그사람을 위한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보았습니다
87년 ...기억나네요 저도..
그래도 다시 시작하셨네요 한편으로는 부럽습니다
감명깊게 보고갑니다.
지난날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잘보고 갑니다.
저는 처사랑과의 결혼이라서 아픔은 없거든요
잘 보았습니다
허우적 댑니다.
절절하네요~~~
눈물 흘리며 보았습니다ㅠㅠ
글로 다 표현 못한 아픔이 더 있으리라 봅니다.
아련한 마음을 같이 달래 보고 싶습니다.....
하나 또는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있겠죠.
요즘세상 그닥 진심으로 무얼 바란적이없는데
물나그네님덕분에
그녀가..진심으로 행복하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려옴을 느낍니다.
물나그네님도 행복하시고 그 첫사랑의 여인분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읽엇습니다
어떻게 하는게 혹은 어떤게 정답인줄 저는 몰라서
댓글 줄입니다.
시간 가는줄모르고 읽었네요
그분도 님과의 추억 소중히 간직하고 계실겁니다
세상과 대적하는 무모하리만치 우직한 사랑... 그것이 바로 첫사랑이지요.
그만큼 영혼이 순수하다는 것일 테구요. 무료한 오후... 좋은 글 느끼고 갑니다. ^^
물그나무님 세대하고비스해서 대게공감이갑니다....
잊고살았던 애틋한 저의첫사랑도 아련히 떠 오르네요.
86년도 화천풍산리 평화의댐 인근에서 군생활하던 그시절도 그립구요.
여자는 나라에 보물이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는 나의 또 하나에 심장과 같은 보물이죠!
글로보니 이건 뭐.. 한편의 드라마 같구려..
직접들으면.. 별로 재미없던데..
형님 글빨 주기는데요^^
여하튼, 장박 낚시는 잘 하구 있는겨?
바람땜에.. 개고생이라던데..
한편의 청춘소설을 보는것 같네요.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으련만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수 있는건 낚시를 통해서건 망각할 수 있어서 일겁니다.
어쩔수 있나요. 평생 가슴에 묻고 사는 수밖에 없지요.
힘내세요 ^^
그런 첫사랑에 완전히 배신당한 나같은 사람도 있는데....ㅎㅎ
처음 사랑을 영원히 가슴에 품어두고 사는 많은 남자들 이야기가 오늘따라 애절 하게 들려오누만....
항상 가정 평안하시고 늘 어복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조행과 더불어 추억 듬뿍 낚아오는 계절 되소서...
여기서 만나기 반갑네요.
그래서 이 창을 그냥 닫으면 않된다는 책임감까지 느껴져........ 기꺼이 댓글을 남깁니다.
어유당님 이후... 정말 좋은 글을읽었습니다. 천천이 정독하지않으면 않될.....
물나그네님께는 아픔이었겠지만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b
내가 미칩니다
사랑이몬지ᆢ
그 아픈사랑을 이제야보고 가슴이 쓰라려
흔적을 남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