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하늘의 끝자락이 찢어진 듯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장례 행렬도 짙은 운무 속을 뚫고 산길을 따라 장지로 향하고 있었다.
만장들도 비에 젖어 대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물에 젖은 투박한 북소리는 상여소리와 빗소리가 같이 섞여서 잡목 사이를 뚫고 무겁게 퍼져 나갔다.
“북망산천이 멀다고 하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구성진 가락의 메기는 소리가 나오자, 상여를 맨 사람들의 뒷소리가 약간의 여백 뒤에 바로 이어졌다.
“너허 너허 너화 넘자 너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비닐우의를 입고 있었지만 온몸은 비에 젖어 칙칙한 기분이었다.
상주인 재종형님들 뒤를 따라 선창자의 메기는 사설을 들으며, 상여의 이동 속도에 맞추어 보폭을 조정했다.
비가 그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자두 밭 사이로 상여의 행렬이 지나갈 때 가지가 걸려 떨어진 붉은 색의 자두들이 길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물이 고인 진흙길과 주위 초록색의 잡목사이에 떨어진 자두 알의 붉은 색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관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인지 상여꾼들의 장난은 계속 이어졌다.
상주가 나가고 사위가 나간 뒤, 이번에는 백관들을 찾고 있었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신발은 완전 물에 빠져 질퍽거리고, 속옷과 겉옷이 달라붙어 걷기가 불편하다.
장례 행렬이 계곡사이 저수지 주변의 공터에 잠시의 휴식을 가졌다.
유년시절 바다같이 넓게 보이던 산속의 저수지가 갑자기 축소되어 손바닥으로 가릴 만큼 적어보였다.
주유소에서 받은 휴대용 화장지 비닐 포장에 넣어 놓은 담배를 꺼내, 습기 먹은 라이터로 몇 차례의 점화 시도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
담배를 물고 저수지 초입의 둑 아래 쌍둥이 바위를 찾아보았다.
벼농사를 짓지 않아 배수가 없는 저수지는 만수위를 이루고, 그 바위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순간 사십칠팔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랐다.
한약방 하던 그 어른의 단골 낚시 자리는 지금 물속에 잠겨 있었다.
정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그 어른은 지금 생존해 계시는지........
한살 위인 사촌형은 오늘 장례식에 참석은 못했지만, 둘이서 그 어른 뒤에 쪼그리고 앉아 낚시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뚜껑이 빤질빤질하면서 나무로 깎아 만든 지렁이 통.
그 어른이 미끼를 끼우기 위해 뚜껑을 밀어 지렁이를 꺼낼 때, 지렁이는 보라색 띠를 두르고 꿈틀대고 있었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살림망.
입구가 좁게 만들어진 살림망위에는 항상 풀잎이 덮여 있었다.
살림망을 물에서 건질 때 생동감 있게 퍼덕이던 붕어들의 춤사위는 어린 꼬마의 눈에는 경이로운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두 꼬마는 입을 동시에 떠억 벌리며 같은 소릴 질렀다.
“우와!! 고기 크다.”
휴식의 끝남과 출발을 알리는 둔탁한 북소리가 간격 없이 연이어 들린다.
정신이 들었다.
군데군데 같은 또래끼리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은, 자기의 역할로 되돌아가 행렬을 맞추었다.
일기예보에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으로 내려온다더니 오늘은 종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어제 아침시간에 연락을 받고 당숙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늘 오후 C읍의
대남 병원에 도착을 했었다.
밤을 병원 영안실에서 보낸 후, 금일 장례식에 참석을 했었다.
비를 맞아서 인지 한기와 미열을 느꼈다.
상여는 장지에 도착했다.
하관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장지에는 장마철에 비를 피하기 위해 미리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막 가장자리를 통해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막이 낮아 물이 고여 늘어지는 부분은 누군가 막대기를 위로 들어 물을 빼고 있었다.
땅 다지는 절차가 시작되자 선창자는 의미 있는 사슬을 섞어 아들, 사위, 조카를 불러 메기는 소리를 하고, 받는 사람은 원을 그리며 달구소리로 화답을 했다.
갑자기 돌아가신 고인과 만남의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대여섯 살 개구쟁이 사내 녀석 둘이 모내기를 갓 끝낸 논에, 개구리를 잡는다고 발가벗고 뛰어 다녔다.
방금 모를 심은 논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래 논에 모내기를 끝내고 윗 논에 모내기를 하시다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다른 어른들은 막 고함을 치고 야단들이었다.
그런데 삼베 적삼을 입은 그 분은 혀를 끌끌 차시면서, 다시 모포기를 바로 심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사촌 형과 나는 저녁도 못 먹고 집에서 쫓겨났다.
갈 곳이 없어 캄캄한 밤에 동구 밖의 개울가에 둘이 앉아 있었다.
흘러가는 물소리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렸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빛을 보며,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당신의 손에 이끌려 둘이는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느 봄날이었다.
당숙부가 땔감용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오다가 논두렁에 나뭇짐을 세워놓고 땀을 닦으며 쉬고 계셨다.
지게에 꽂혀 있던 진달래 가지를 꺾어 손에 쥐어주시던 생각이 났다.
진달래를 참꽃이라며 먹던 생각도 떠올랐다.
진달래를 먹고 나면 산골 아이의 입술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곤 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그분 삶의 종말이며, 그분이 살아온 작은 찰나의 시간 속에 내 자신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삶에는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간에 무수한 만남과 이별이 늘 공존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만남도 있고, 길을 가다가 옷깃을 스쳐가는 작은 만남도 있다.
하지만, 만남의 범위 속에 늘 이별이 포함되어있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맞이하는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결국 종착점에 도달하는 이별은 죽음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는 이별을 감수하고 적응을 하는 것도 살아있는 사람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어른이 남긴 행적을 기리며 저승에서도 좋은 곳에 가시길 빌었다.
장마철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영원히 그분을 보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동성로 연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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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소나기.
그게 바로 님의 아이디인 단비일것 같아요.
관심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