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네요.
당시에는 본사 인사팀에 근무할 때라 연말에는 주말도 없이 바빴는데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 있어서 아내와 아들들을 이끌고 강화도 수로로 나갔습니다.
그 전 해에 회사 시설관리팀장이 만들어준 썰매를 가지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넘어져 뒹굴기도 하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행복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이번에도 저는 얼음낚시를 하고 가족들은 썰매를 타기로 했습니다.
당시 고1, 초등학생이던 아들들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지만 바쁜 아빠와 시간을 만들어주려는
아내의 독촉에 심드렁하니 따라 나섭니다.
1초라도 더 낚시를 하고픈 생각에 아침식사는 얼음판 위에서 라면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새벽 같이 길을 나섰습니다.
잠이 덜깬 가족들은 출발하자마자 차에서 잠이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애마를 재촉하여
단숨에 강화 수로까지 내달렸습니다.
살얼음 잡힐 때 수초치기에서 엄청난 대물을 얼굴만 보고 터트렸던
바로 그 포인트에 도착하여 구멍 5개를 뚫고 채비를 밀어 넣으며 다짐합니다.
"이놈! 오늘 또 바늘털이 한 번 해보거라~" ㅎㅎㅎ
대물과의 복수 일전을 상상하며 막 대편성을 끝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의자에 몸을 묻는 순간
'띠리리리~~ 띠리리리~~'
휴일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체로 불길한데.....
아니나 다를까 회사 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상사 : "지금 어딘가?"
나 : "아... 네. 가족과 바람 좀 쐬러 나왔습니다."
상사 : "이 사람이 지금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지사에서 업무 협의차 방문했는데 담당이 출근도 안하면 어떻게 해?" "당장 나와!!!"
나 : "아.... 네......."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주말에 본사를 찾아온 지사 담당자의 비매너가 단단히 일을 그르쳤습니다.
가을부터 거의 주말을 반납하다시피 일을 하다 바람도 쐴겸 조우까지 꼬드겨 출조했는데....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본사를 찾은 지사 직원을 그냥 놔둘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상사의 질책을 견뎌야 하고,
회사로 출근하면 가족과 조우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고,
1분간 고민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출근하기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손으로는 후다닥 대를 접으며 입으로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동출한 조우께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허겁지겁 철수하여 오는 길에 가족들을 내려주고 저는 낚시복장 그대로 차를 몰고 회사로 직행했습니다.
가족들은 허탈하게 집으로 들어갔고
조우와 저는 아침을 쫄쫄 굶었습니다.(아침, 점심 식사까지 우리 가족이 책임지기로 함)
뒤늦게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처리하였지만 분위기는 아주 냉랭하였습니다.
그 불상사가 벌어진 이후로는 머리가 굵어진 아들들은 한 번도 낚시를 따라간 적이 없고
아내도 나물 캐는 시즌 이외에는 거의 낚시에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올해 첫 얼음낚시를 가면서 아내에게 "강화도 가서 바람이나 쐬자"고 하였더니
"또 라면도 못 먹고 쫒겨 오라고?"라고 응수합니다.
결국 그때 함께 쫄쫄 굶었던 조우와 둘이서 얼음을 탔습니다.
조과는 별로였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얼음 위에서 끓여먹는 라면'을 먹으며
그때 일들을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 묘한 게 '푸쉬킨'의 시처럼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월님들 올 겨울에도 얼음판 위에서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드셔요.~~~
"또 라면도 못 먹고 쫒겨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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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의 담당자라는 분은 정말 짜증나는 타입이군요.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지고 심정 공감됩니다.
직장 상사분... 나쁜 분은 아니겠지만 우리네 직장 문화도 한번 되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저 역시 아직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저 같으면 부하 직원에게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직원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하다못해 내가 나가든지
아니면 지사 담당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돌려보내든지 하겠네요.
맛깔스런 글솜씨에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거의 완벽합니다.ㅎㅎ
담여수님의 깔끔한 성품이 엿보이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담여수님의 여유있는 성품이 느껴지네요.
주말아침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두 분 고수님이 휴일 이른 아침에 다녀가셨네요.
문제의 그 지사는 저의 은근하고 야비한 보복(?)으로 인해 자신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쳤고
양손 무겁게 들고 온 몇 번의 조공을 석고대죄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여
깨끗이(조공이 있어 아닌가??)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사분이 나쁜 게 아니라 당시 우리 회사 분위기가 그러했는데
불과 12~13년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어
지금은 그렇게 하면 상사가 소위 '갑질'로 문책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 상사분과 비슷한 위치에 와 있는데 쫌 많이 억울.......^^
요즘 후배들 일 하는 것이나 직장생활 태도를 보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정말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올 때도 있지만 꾹꾹 누르며
짐짓 인자한 척 하며 타이르는 이중인격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며느리 노릇은 다하고 시어머니 노릇은 한 번도 못하는 그런 세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사분은 은퇴한 지 몇 해 지나셨지만 지금도 서로 왕래하고 있고
호형호제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온갇 풍파 견디며 직장생활 하는 담여수님을 볼때마다 감동먹습니다.
저 주위 사람중에 정년 퇴직한 사람보기 힘듭니다.
건투를 빕니다
남은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시간 나면 또 얼음판에서 봅시다.~~
그래도 추억거리 하나 있으시군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 먹고 싶습니다^^
흙은 배신하지 않는다 신념으로 농사지으로 귀향했더랬죠. ㅠㅠ
좋은 상사 만나는것도 복이죠. 님은 아마 좋은상사이실 겁니다.
지금은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저 또한 좋은 사장 되려고 노력중입니다. ㅎ
얼음판의 추억!
저야 빙어낚시를 워낙좋아하니까 추억 많습니다. 집사람과 애들은 아예 안따라오니깐 때론 미안하기도 하구요
글 잘보고 갑니다.
예전의 상사들을 반면교사 삼아 좋은 상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붕춤님이야 말로 멋진 사장님일 것 같습니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낚시에 대해 잘 모르는 직원이
'빙어낚시도 하느냐'고 물어서
'고수(순전히 자칭) 체면이 있지 어찌 그런 자잘한 녀석들하고 놀겠냐'고
'빙어낚시는 생 초보때 애들하고 나들이할 때 하는 거'라고 했는데
붕춤님이 빙어낚시를 너무 좋아한다는 글을 보니 괜시리 찔리네요.^^
겨울 바람이 아주 매섭습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줄조 하셔요~~
지난 옛추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고 잠시 미소짓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