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된 일이다.
새삼스레 지난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이곳에 왔다가 어느 낚시가게에서의 불쾌했던 기억과 함께, 대물을 잡아보고자 치열하게 보냈던 그때가 떠올라서다. 벌써 십오륙년의 옛일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월 빠르고 인생무상이다.
그때만 해도 주말이면 붕어찾아 어디든 쫓아다녔다. 그날도 토요일이 되자 외근을 핑계로 일찌감치 회사를 빠져나온 나는 대물이 나온다는 원남지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원남지는 첫 출조였다. 원남지에 짜장붕어가 들어가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대부분의 낚시꾼, 특히 서울 경기의 꾼들은 거의 떡밥꾼들이었고 나 역시 새우나 참붕어 대물낚시는 알지도 못하던 때다. 당시엔 떡밥의 종류도 몇가지 되지 않았는데, 난 **떡밥을 박스로 구입해 차에 싣고 다녔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떡밥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한 낚시가게에서 가게에 오는 손님에게만 팔던 떡밥인데 그걸로 팔당댐 붕어 많이도 잡았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원남지 길목에 있는 낚시가게에 들렀다.
가게에는 들어가니 몇몇이 둘러앉아 화투놀이중이다. 행색이 초췌하고 앞에 화투판에 만원권과 천원짜리가 놓여있는걸로 보아 아마 전날밤 어데선가 밤낚시를 하고 시간을 보내며 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어느 낚시가게마다 진을 치고 있는 죽돌이들이다.
들어서니 한 사내가 화투를 내려놓고 나선다. 양 볼따구에 붙은 살과 참새처럼 삐죽 튀어나온 입이 욕심과 심술이 공존하는 관상이다.
-어서오세요.
패를 돌리는 죽돌이에게 자기 패는 돌리지 말라 말하며 날 맞이하는 게 가게 주인인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저기... 원남지가 잘 나온다던데...가는 길을 몰라서요.
주인에게 말하며 가게를 둘러보다 *장떡밥과 케미를 골랐다. 떡밥이야 차에 잔뜩 실려있지만 낚시터만 묻고 그냥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장이 슬쩍 살피더니 묻는다.
-떡밥낚시 하시나보죠? 낚시는 좀 하시나요?
낚시광이던 내 얼굴은 항상 볕에 그을러 새카멯고 행색도 낚시꾼 그 자체였으리라.
-왜요?
내 물음에, 주인이 한창 열을 올리며 패를 두들기는 죽돌이에게 묻는다.
-너 오늘밤 안들어간댔지?
-어, 못들어가. 상가집에 가야되. 붕어는 나오는데 제길!
죽돌이가 냅다 패를 휘둘러 쌍피를 물어가며 대답하자, 가게 주인이 눈알을 굴리며 은근하게 말한다.
-자리하나 있는데 들어갈래요?
-자리요? 무슨자리?
무슨 말인지 몰라 물었다.
-목좌대도 놔져있으니 그냥 가서 낚시만 하면 되요. 오늘밤만 하실거죠? 내일은 다른 사람이 있으니...
난 상황을 이해했다.
-오늘밤만 할겁니다. 어딘데요? 원남지인가요?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끼는 떡밥을 써야하며, 내가 고른거 말고 **떡밥에 **떡밥을 몇대 몇 비율로 섞고 찰기는 어찌어찌 해야하고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대물이 움직이는 시간대니 자서는 않된다며 아조 사근사근하게 설명해준다.
뭐 나도 좋은데서 낚시를 할 수 있게되어 기쁜 마음으로 절대 잠을 자지않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런데...
그의 설명대로 처음 만져보는 두 가지의 떡밥이 든 검은 봉지를 사 들고 목좌대의 위치를 막 들으려는데 한 놈이 가게에 들어서며 소리친다.
-원남지 터졌담서요. 아 졸라쎄게 달려왔네. 자리 있제요?
보아하니 화투패 일행이다. 가게 주인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고스톱에 빠져있는 일행을 눈짓하며 말한다.
-왔냐. 함께 들어가면 되겠네.
그리고는 날 힐긋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외면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순간 난 상황을 파악했다. 내게 알려줄 자리, 내가 오늘밤 낚시할뻔한 자리에 금방 온 놈이 가게되었음을. 바톤터치하던 자리가 비어 뜨내기인 날 붙이려다가 단골이 오니 차버린 것이다.
열이 확 뻗쳤다.
-이 개늠으새퀴가!
하지만 욕을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가 먼저 자리 운운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안면 바꾸는 놈을 보니 기가 막힌다. 그러고도 미안하게됐다거나 하는 말한마디 없다. 인근 낚시터의 포인트를 선점하고 릴레이로 손님을 보내는 일부 낚시가게의 행태를 모르는바도 아니고, 장사를 위한 그 행동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황당했다. 속이 부글부글끓는데, 이 개늠으새퀴가 다시 나와 힐끗보더니 한마디 말도없이 화투판에 끼어든다.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다. 양뺨에 붙은 심술보가 더육 밉쌀스럽게보여 귀싸대기를 후려쳐버릴까 하다가 겨우 참았다.
즐거워야할 출조인데 기분이 상해버렸지만 떡밥이 든 봉다리를 든 채 불쾌한 가게를 나와 다른 낚시가게에 물어 원남지로 갔다.
사월의 원남지 물버들에 연두빛 잎새가 피고 넓은 저수지는 온통 꾼으로 북적거렸다. 붕어가 붙을만한 빈 자리는 없었다. 최고의 포인트로 보이는 몇곳은 아니나 다를까 목좌대며 텐트까지 쳐져 바톤을 이어받을 꾼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곳에서 자리 다툼이 나기도 했다.
한적한 낚시터가 아니라 치열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장대를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바람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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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 올리겠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독수리 타법으로 애써 쓴 글이라 버리지 못하고 일단 올립니다. 그 불쾌했던 낚시가게는 혹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지 몰라 밝히지 않습니다.
불쾌했던 낚시가게와 원남지 대물.
xodidto / / Hit : 14858 본문+댓글추천 : 17
님의 글이 궁금증을 유발하네요
빨리 후속편을 올려주세요~^^
시간되실때 천천히 편히 올려주세요
그들만의 낚시방 인가요
욕 나올라하네요
간결하지만 생동감있는 묘사가
다음을 기다려지게 하는군요.
90년대 원남은 무매너의 천국이였습니다.
하여튼 그래도 그시절이 그립네요.
그때도 아마 4월쯤이었을 듯하네요.... 낚시가게가 문제가 많네요... 먹고 사시느라 그러셨겠지만.. 오래된 일이니 맘 푸시길~~~
그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