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정원 8.
단 한주도 빠짐없이 출조했다.
무슨 억척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아님 몽유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렇게
주말만 되면 나는 모든 여건을 무시한채 낚시터에 가 있곤 했다.
태풍이 몰아치던 여름밤 낯선 곳에 차를 세우고 차를 세차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바람소리가 좋았고,
한겨울밤 꽁꽁 얼어버린 물가에 세워 놓은 차안에서 바라보던 시린 겨울의 밤하늘이 좋았다.
어쩌면 낚시는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 필요해는 지도 모르겠다.
가슴속에 품은 불덩이를 식히려는 하나의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거의 한주도 빼놓지 않고 출조하던 주말 출조를 3주째 건너 뛰었다.
비밀의 정원으로 갈 용기도 없었고 비밀의 정원이 아닌곳엔 찌를 드리울 용기도 없었다.
비밀의 정원은 나에게 한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낙의 오열에서 느껴지던 불길한 예감을 직면하게 될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가슴에 간직된 분노를 다시 보게 될까봐 더 겁이 났다.
십수년 가슴속에 쌓아두고 애써 외면해 왔던 내안의 고스란히 간직된 것들의 봉인이 풀려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컷다.
그 안엔 절대로 미워해서는 않되는 존재들도 함께 있었다.
피를 나눈 형제, 지금도 친분을 유지하는 친구들, 심지어는 아내까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봉인은 풀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평소같으면 물가에서 케미 불빛을 보고 있을 토요일 저녘,
나는 친구와 반주를 곁드린 이른 저녘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친구와의 만남동안 나의 머릿속에 부족한 생활비를 구걸하러 갔을때 매몰찬 눈빛을
보내던 모습이 친구의 미소띈 얼굴위로 오버랩되고 있었다.
식당을 나서며 계산을 하겠다고 계산대로 총총걸음을 짖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은 2차까지 쏘겠다며 내 팔을 붙들고 끄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엔 하나의 질문만이 계속되었다.
‘이리 좋은 녀석이 그땐 왜 그리도 잔인했을까?’
그 생각이 들수록 친구의 미소띈 얼굴이 가식적으로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내엔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끼리끼리 짝을 이룬 젊은이들이 모습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지나갔다.
시즌이 가져다주는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모두들 기쁨과 환희로 가득차 있었다.
젊다는것만으로도 모두가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도 언젠가 삶의 생채기를 가득 안고서 이길을 걷게 되리라
미래는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꿈에 가득차 있지도 않고,
특별함으로 가득차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리라.
하루하루가 특별하지 않고 모두가 특별하지 않게 살아가는 일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없는 무료한 일상이 가져다 주는 평범함에
기쁨과 환희를 모두 잃어버리는 중년의 삶을 살게되리라.
우체국 앞을 지나칠 무렵 낯익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녘 선잠을 깨우던 교회의 은은한 종소리를 닮아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지페 몇장을 꺼내 구세군 냄비로 다가 갔다.
그리고 그곳에 돈을 놓는 순간,
반짝이는 물체 하나가 허공을 가르더니 손등위로 떨어졌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눈송이를 갖추지 못한 빈약한 눈결정이 가끔씩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유를 알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슴속엔 불안과 초조만이 가득차 있었다.
사멸,
너무도 여리게 흩날리는 눈발은 그녀를 닮아 있었고
오늘밤 그녀가 내게서 영원히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채
나는 주차장을 향해 총총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심장은 점점더 요동치고,
아낙의 울음에서 시작된 불길한 예감은 더욱더 강해져 갔다.
비밀의 정원까지는 한시간의 거리였다.
자꾸만 엑셀을 밟은 발엔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에 불안감과 그녀의 투명한 얼굴만이 아른 거렸다.
그 모습이 사멸해가는 눈꽃처럼 그렇게 사라질거 같은 조바심만이 가득했다.
소읍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눈에 들어 온것은 불꺼진 실내포장마차였다.
내 불길한 예감처럼 어둡고 음울한 실내포장마차를 보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다 떠나버린 것일까?
너무 늦은 것일까?
애써 출조를 외면했던 두 번의 주말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볼수 없을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비밀의 정원으로 통하는 길로 접어들어 코너를 돌아서며
나의 눈은 그녀의 마당을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친 헤트라이트 불빛에 놀란 탓인지 아주머니가 장독대에서 일어섰다.
마당을 서서히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축 처져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혼자 그렇게 장독대 한귀퉁이에서 오열을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로 진입해서 낚시대를 펼쳤다.
미끼도 준비된 것이 없었지만 도착하자마자 두 개의 케미를 꺽어 두 대의 낚시대를 펼쳐 놓았다.
그것은 내가 비밀의 정원에 와 있다는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를 피해 아주머니가 장독대에 있었던걸루 보아
그녀는 지금 방안에 있으리라.
그리고 차소리를 듣구 내가 와 있음을 알고 있으리라.
방에 불이 꺼지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정장차림으로 온 탓에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녀가 마루로 나와 함께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밤낚시를 함께 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마루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왜 가게문을 이리 이른 시간에 닫은 것일까?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는 나는 그곳을 떠날수가 없었다.
밀려드는 한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차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그리구 시디 버튼을 눌렀다.
감미로운 고전 영화음악이 흘러 나왔다.
실체를 알수없는 막연한 그리움과 기분좋은 우울함이 느껴졌다.
그건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회상이리라.
몇곡의 음악이 끝이나고 러브스토리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고
영화속 눈밭을 헤집던 아름다운 영상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리며 실내등이 밝아졌다.
그녀다.
그녀였다.
시린 겨울 갑자기 날아들던 눈발같이 그녀가 다시 내게로 왔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을 머금고 있었고,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조수석에 올라탓다.
그리고 파라솔 밑에 앉던 자세로 조수석에 앉아 포개진 두무릅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는 음악마져 들리지 않았고 마치 우리는 침묵의 공간속에
함께하는거 같았다.
잠시후 그녀의 어께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점점 더 그녀의 어께가 심하게 들썩였다.
울곳이 필요했는가 보다.
혼자만의 공간, 혼자서 아무도 몰래 울곳이 필요했는가 보다.
잠시 그녀의 가려린 어께를 보았다.
‘상처입은 새한마리 날아들었네
두려움과 고통에 젖은 몸은 떨리고
두눈엔 눈물만이 가득하네.
꼭 안아
그 슬픔을 함께 감싸고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고 싶으나
그 여린뼈가 부서질것만 같네
그 여린몸이 부서질것만 같네.
나도 모르게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마음껏 울수 있도록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 밖에는....
나는 볼륨을 높여주고 조용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스피커에서는 온 썸머 나잇이 흘러 나왔구,
예스터데이가 흘러 나왔고,
온리유가 흘러나왔고 .....
아련한 예추억을 떠올리는 감미로운 음악들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울기 좋은 음악들이었다.
그렇게 가슴시원해지도록 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울음이 다하는 순간 내게로 다시 다가와 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의미없는 케미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시 심한 한기가 느껴길때까지
긴 시간을 그렇게 그녀는 차안에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밖에서 추위에 떨며 그녀가 다시 내게로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뒤를 돌아 그녀의 실루엣을 살폈다.
울음이 잦아든 탓인지 그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렇게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용기를 내야한다.
그녀에게 내가 다가가야 한다.
나는 그녀가 내게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여인에게 그걸 바라는건 이룰수 없는 희망일 뿐이다.
내손을 잡아 끌어주기를 내게 손짓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결코 그녀는 내게 그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용기를 내어야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일 것이다.
한기 때문인지 몸이 심하게 떨려 왔다.
그때였다.
자동차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온몸의 촉각을 곤두 세운체
그녀가 내곁에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오지 않았다.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오는 그 길을 축처진 힘든 걸음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낮은 담을 넘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바로 철수를 했다.
기분은 한없이 우울하게 가라 앉아 있었고,
온몸은 힘이 다 빠져 나간듯 축처져 있었다.
비밀의 정원을 빠져나오다 잠시 차를 세우고 어두운 수면위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 비밀의 정원에 내가 다시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훑고 지나갔다.
비밀의 정원 9부로 이어 집니다.
비밀의 정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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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기다립니다.^^
뭔 사연이 있는건지도 넘 궁금하네요...
기다려 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다음주 9부 기다리겠습니다....ㅎㅎ
1부터 쭈욱 정독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글에대한 감사에 말씀
전합니다
선배님9부 빨리춈^^
언능 9부로 가봅니다...추천,추천,추천
볼만하면 끝... 아놔 또 다음주. ㅎㅎ
이러실껍니까?
이러셔야합니까?
이런식이면 곤란합니다. ㅜ.,ㅡ
너무나두 간절히ᆢ
책으로 바로 내십시요.
바로 달려가서 사겠습니다. ^^
아~ 또기다려야하는건가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