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도 그곳에
그 소류지(小溜池)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억조차도 가물대는 어린 시절 잔챙이 낚시에 재미 들어 있을 무렵,
친구들과 어울려 우렁이며 칼조개 잡고
가끔씩 대나무 낚싯대 담궈 작은 붕어며 빠가사리 잡던 곳,
그저 고기가 물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며
나도 모르게 손맛과 챔 질의 기초를 익히던 곳,
그러나 한해 한번쯤은 어김없이 말라 바닥을 들어내던 작은 저수지였다.
고향을 떠나있던 시간이 있었고
세월이 흐르고 조력이 쌓이면서 더 큰 고기를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게되고 그 작은 저수지는 차츰 내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였다.
"어이 친구! '장구동' 방죽에서 가끔 큰늠이 나오던데
오늘저녁 손 한번 맞추는 거 어때?"
마침 궂은 날씨 틈새의 맑은 하늘을 보며 잠시 낚시 생각에 젖어 있을 때였다.
나는 '장구동' 넘어 '성지방죽'을 얘기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고
오후 여섯 시 친구는 어김없이 집 앞에 차를 댔다.
성급한 친구의 채근에 저녁도 미처 먹지 못한 나는
물 한 병만 달랑 낚시가방에 챙긴 채 차에 올랐고
십 오 분이면 도착하고도 남을 거리에 있는 낚시터에 가는 게 뭐가 그리 바쁜지
급하게 차를 몰던 친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어젯밤 나 그곳에서 월척을 3수나 했거든!"
아홉 치만 넘으면 월척으로 치부하는 친구의 습성을 아는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친구가 정색을 하며 목소리의 톤을 높인다.
"정말이라구, 내가 자로 재 봤는데
세 마리가 모두 프레스로 찍은 듯이 33 센티더라구!"
"뭐 썼는데?"
"떡밥!"
나는 그래도 미심쩍어한다.
장구동 고개를 오르던 차가 엉뚱하게 좁은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성지방죽 가는 것 아냐?"
"아니 장구동 방죽이라고 했잖아!"
"장구동에 방죽이 어딨는데...?
...아니 그럼 그 쬐끄만 방죽이 지금도 있단 말이야?"
이윽고 차가 멈추고 친구가 가리키는 좌변을 보았을 때
아 그곳에는 놀랍게도 잘생긴 소류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연과 뗏장과 마름과 부들이 잘 어우러진 7백 여 평 남짓한...
애초에 아래 산비탈 천수답(天水畓)의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던 이 저수지는 워낙 담수량(湛水量)이 적어
농사철이면 어김없이 바닥을 들어내곤 했으나 나주호가 생기고 수로가 저수지 옆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수문제가 해결되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없이 지금껏 버티어 왔단 것이다.
친구는 잽싼 걸음으로 지난 밤 월척을 했다는 포인트에 자리하고
나는 저수지를 한바퀴 돌면서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심은 세 칸 대 기준 1미터에서 1.5미터,
제방근처엔 자리하고 있는 연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고
중류엔 뗏장과 마름이 낚시하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중간중간 빈 공간을 남겨놓고 퍼져있었고 상류엔 부들과 뗏장이 섞여 밀생(密生) 해 있었다.
한마디로 낚시꾼들이 꿈꾸는 환상의 포인트들이 산재해 있었던 것이다.
한가지 흠이라면 저수지 윗 편에 축사가 한 동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상류 마름과 뗏장과 부들이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지점에 받침대 네 개를 야무지게 꼽았다.
채집 망을 넣어 보았으나 올챙이 몇 마리 외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생 미끼에 대한 미련을 접고 떡밥을 개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밤엔 떡밥과 옥수수로 승부를 보리라!
친구는 벌써 일곱 치 한 수를 비롯한 잔챙이를 몇 수 째 끌어내며 의기양양해 있었다.
찌불을 밝히면서 콩알엔 가끔씩 너 댓 치를 위주로 한 씨알이 올라오고
이따금 축사에서 풍겨오는 컨츄리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지만
한편으론 저수지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여름밤의 정취를 더해주곤 했다.
저녁도 해결하지 못하고 나온 터라
아홉 시도 넘기지 않았는데 심한 시장기 느껴진다.
가지고온 옥수수를 먹어보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생각보다 별미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반 캔도 더 먹고 만다.
아! 이 맛에 붕어들이 옥수수 캔을 먹는구나.
기대를 부풀리며 마름과 뗏장사이에 옥수수 세 알씩을 붙여 세워둔 찌들을 훑어보는데
아까부터 꼼지락대던 3.2 칸 대의 반응이 수상쩍다.
계속 반 마디씩 깔짝대던 움직임이 한마디씩 두어 번 느리게 올려주는
전형적인 붕어 예신(豫信)으로 바뀌더니 환상적인 찌 올림으로 이어 지는 게 아닌가.
두 마디, 세 마디...
아! 얼마 만인가. 저 슬로우 모션의 찌올림을 보는 것이...
낚시도 기(氣)로 하는 것인가?
매사(每事)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기죽어 지낸 때문일까?
유난스럽게도 큰 붕어와 인연이 닿지 않던 올해였다.
월척은 고사하고
아홉 치 급 손맛조차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세월이 주는 피로감(疲勞感) 때문인지 이젠 시력까지도 떨어져
낚시에 집중하기가 예전 같지 않고
그러다 보니 신경질 적인 낚시가 되기 십상(十常)이어서
낚시에 대한 재미도 반감 해버린 게 사실이었다.
이래저래 하룻밤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고 철수해버린 날들이 많았으니
손맛이 기다림의 결과일진데 끈기가 소진(消盡)되어 버린 낚시꾼의 손에
큰 손맛이 전해지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낚시에도 매너리즘이 있는 것일까?
느린 찌 솟음에 온몸이 전율하고
느슨해져있던 신경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튕겨져 오르며
내 손은 어느새 낚시대 손잡이에 올려져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단한 속기였다.
어찌 무적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도 무사시'의 칼쓰는 솜씨가 이보다 날쌜 것이며
서부시대 전설적인 건 맨 '빌리 더 키드'의 총 뽑는 솜씨가
어디 낚싯꾼 챔 질 솜씨보다 빠를까?
그리고 찌 솟음이 절정에 이르기 직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짧은 챔 질과
낚싯대의 반탄력(反彈力)을 이용한 빠른 끌어내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앞쪽으로 듬성듬성 깔려있는 마름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세삼창 하듯 두 손을 번쩍 추겨들고 끌어당기는 내 힘을 붕어는 겨워하며
별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 나왔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볼 틈조차 얻지 못하고 끌려나온 붕어에게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정상적인 겨룸은 아니었다는 씁쓸함도 함께...
시류(時流)에 편승하는 것일까?
큰 붕어를 잘 잡지 못하면서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내 채비는 강해져 있었다.
주로 2호를 쓰던 낚싯줄은 3호를 거쳐 4호까지 상향조정되어 있었고
붕어 5호 이하를 즐겨 쓰던 바늘도 감생이 4호 이상을 묶어 두는 게 다반사(茶飯事)였다.
불빛에 들어 난 붕어의 자태는
그 두께를 한 손으로는 차마 다 감당하지 못할 튼실한 녀석이었다.
황금 비늘, 높은 체고,
지난밤 친구가 잡았다는 그 월척 붕어 일 것이다.
마치 나는 첫 월척을 한 사람처럼 설레고 있었다.
정말 이 붕어가 친구의 말대로 33센티일까?
수건으로 감싼 붕어를 살림 망에 넣기 위해 어둠 속에서 살림 망 입구에 대고
손에 힘을 풀었다.
"철벅..."
붕어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상했다. 망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건에 지느러미가 걸린 붕어는 살림망 입구를 겨냥한 내 의도와는 달리
그냥 물 속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멀리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친구는 낚시가 잘되는 날은 저 울음소리가 "솥 적다, 솥 적다...'로 제대로 들리지 만,
낚시가 잘 되지 않은 날은 "엿 같다, 엿 같다...하고 들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밤 내 귀에 들리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솥 적다. 엿 같다..." 였다.
묵은 책갈피에서 낡은 지폐 한 장을 발견한 즐거움은
그 액수를 불문하고 잠시나마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게 하는 아련함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의 소류지에서 하룻밤 낚시는
내 낚시 본능을 흔들어 깨워 주었고 막혀있는 생각들조차도 환기시켜 주었다.
욕심 없던 어린 시절처럼 정말 즐거운 낚시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 다음 주말이면 다시 그 소류지를 찾아가 그곳 붕어들과 정식으로 겨루어 보리라!'
이번에는 2호 줄에 5호 바늘을 맨 채비로...
지난 여름에...
어유당 올림.
소류지(小溜池)
-
- Hit : 6323
- 본문+댓글추천 : 0
- 댓글 9
저도 어린시절 산속 자그마한 둠벙이 생각이 나는데
아직 그대로 인지 모르겠습니다
동네 형들과 겨울이면 얼음 지치던 곳인데
지도상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글을 보니 그곳생각이 나네요
미꾸라지는 무지 많았던걸로 기억나는데
한번 고향엘가면 가보고 싶네요
바늘을 뻬곤 햇는데 어쩌다 큰놈 월척도 훨씬 넘어선
손아귀에 잡어지지 않는 그래서 손바닥에 올려서
잡아야했던 그리고 살림망에 넣다가 그만 방생으로
이어져 과연 얼마나 크기가 되었을까 하고 오랜동안
마음에 남아잇던 기억이 새롭네요...다음에 소류지 조행기 부탁합니다...
그것이 같다면 저는 4년째 죽(粥)을 쓰고 있는것이 되는데........
그렇치는 아닌것 같습니다.
지금에 제 낚시가 정당한 승부인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겠군요......
제가 밑지고 있는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가슴에 와닿는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좋은 추억의 소류지가 그러하듯이.............
오늘아침도 같은 어 짜를쓰는 후학이 가슴 훈훈해 합니다.
또 올려질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구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다음글 기다립니다.^^
문학쪽으로 일하시는분이신듯합니다.정말 글들이 장난이 아니네요 ㅠ.ㅠ
정감있게 쓰신글 넘재미잇게 보구 감니다
제가 낚시하던 곳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고,
그나마 양어장으로있던 낚시터마저도
광명역사에 묻혀 사라져버렷네요`~
이제 제고향은 모습이 하나도 남지를 안아서
씁쓸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