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 겨울낚시의추억과 빙어낚시의 추억이란 글을 올리고
많은 월님들의 격려의 말씀을 받았는데
어린애 장난같은 유치한 글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글은 다음편을 올려달라시는 댓글 주신분의 요청과
재미있게 잘 보셨다는 쪽지를 주신분에 대한 보답으로
소양호 겨울을 추억하며 하나 더 써봤습니다.
다시 한번 내용이 엉성해도 참아 주시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시작합니다. ^^
제가 낚시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그동안 오랜시간 낚시를 해왔습니다 .
그동안 전국의 저수지 강 바다 하천등 숱하게 많은곳을 다녔고
오랜시간 낚시를 하였지만 그래도 그중에 추억이라고 생각하면 젊은시절 오랜시간
정말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충주호 소양호 낚시가 처음 떠오르는데
그중에 소양호의 낚시가 제일 재미가 있었고 잊지못할 추억도 많아서
주로 소양호 조행기를 올리고있습니다.
8.90년대 소양호 댐 낚시는 연안 낚시들도 하였지만
주로 배타고 들어가는 골짜기에 있는 가두리를 끼고 이루어 졌습니다
춘천시내 여러 낚시점들은 자기 낚시배들과 자신들만의 운행 코스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낚시점마다 들어가고 선호하는 코스들이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낚시점들은 주로 동면쪽으로
어떤 낚시점들은 조교리 통골 오항리쪽으로 내가 주로 이용했던 종점낚시배는
주로 북산면쪽에 있는 부귀리 쪽으로 운항을 하였는데
낚시배는 터미널과 남춘천역에 도착하는 낚시인들을 낚시점으로 데려가서
낚시에 필요한 떡밥 어분등 낚시용품과 쌀김치 야채양념등 식료품 생필품들을 사게한뒤
짐은 트럭으로 사람은 버스에 태워 소양호 선착장으로 실어 날렀습니다
낚시배는 휴가때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번 운행을하였는데
낚시배에는 낚시점 총무가 타서 포인트를 안내했는데
매일 오전 열시에 선착장을 출발하는데 내가주로 이용했던 종점낚시배는
출발한지 얼마안돼서 산막골이라는곳을 들리는것을 시작으로
물노리 신진섬 뱀사골 마사골 퐁당골 귀신골등 이름도 무시무시한 가파른 골짝이를
한군데씩 순회하며 전에 내려줬던 낚시인을 철수시키고
새로온 낚시인들을 다시 내려 주었습니다 .
새로 내리는 낚시꾼들은 대박의 부픈꿈을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낚시터에 상륙했고
몆칠동안 텐트치고 장밖하며 노숙아닌 노숙자 신세가됐던 철수꾼들은
몆칠동안 햇빛에 타고 물때에 쪄들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철수길에 올랐습니다
신기하게 소양호 장밖 낚시에서는 낚시 오는 첫날에는 그렇게 귀티가나고 깔끔했던 사람들도
낚시를 시작하고 2~3일만 지나가면 명품옷을 입은 사람이나 넝마옷을 입은 사람이나
대통령이든 재벌회장이든 농사짓는 사람이든 서울역 노숙자든
구분이안갈 정도로 똑같이 꾀제제하게 변해갔습니다 .
그렇다고 씻는걸 게을리 하는것도 아닌데도 낚시온 모든 사람들이
희안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지저분해 져 갔습니다.
아마 햇볕에 타고 물볕에 타고 빨래도 못해입고 계속된 텐트 노숙생활이
사람들을 하향 평준화시켜 낚시를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노숙자 비슷하게 변화 시켰나봅니다.
아무튼 그당시 소양호 낚시터에서 만큼은 요즘 모든 종교인 정치인들이 헛나발 들을 불어대는
빈부격차가 없는 골고루 평등하고 공평한 민주사회가 이루어 졌습니다 .
낚시란게 참 묘한 취미라서 정작 낚시터에 도착하여 대를피면 거의 맨날 꽝이고 별볼일이 없었고
또 낚시터에 오고가는 과정이 그렇게 힘든데도
낚시터에 갈때는 너무나 설레였고 낚시터로 가는 배속에서
시비가 붙어서 서로 욕설을 하고 주먹다짐을 하고
싸웠던 사람들도 같은곳에서 하루만 낚시를 같이하면
서로 친해질만큼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푸근한 무언가가
예전의 소양호 낚시에선 있었습니다.
제생각엔 우리나라 정치인들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만들려면 소양호 섬들중 하나나 아니면
바닷가 섬하나를 낚시터로 꾸며모든 정치인 종교인들을
강제로 보름씩만 장밖낙시를 시키면 정치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종교인들은 어려운 신도들을 삥뜯고 등쳐먹지않는
평화로운 사회가 될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배에서 낚시인들이 타고 내릴때마다 이삿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낚시짐들이 올려지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새로 낚시를 오는 사람들은 몆칠동안 입고 덥고 먹고 쓰고 자야 했기에
낚시가방 낚시짐을 포함한 짐들이 피난통 피난민짐 같았는데
철수하는 낚시인들은 그동안 가져왓던 생필품과 식료품등을 소비하여
나가는 짐들이 좀 가벼워 졌는데 낚시터에 내리는 낚시인들은
정말 엄청난 짐들을 가지고 내렸습니다 .
또 당시의 소양호낚시는 넓은 소양호에서
골짜기로 고기들을 유인해서 머물게하여 잡는낚시법이라
밑밥들을 무척많이 소모 했는데 주로 당시 낚시점에서 파는 어분 팰릿이나
기름집에서 사는 찐깻묵 덩어리등을 황토와 섞어서 포인트에 투척했는데
나중엔 펠릿어분이 비싸져서 밑밥용으로 닭사료가 유행했는데
나중에는 소양호에 오는 장밖꾼의 대다수가 거대한 닭사료를
한푸대씩 사가지고 들어오니 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곤 했습니다 .
낚시배를 타고 내리던 사람들의 첫번째 관심사는 철수하는 사람들의
아이스박스나 살림망에 집중되었는데
당시는 소양호 향어 잉어를 횟감용으로 알아줄 때라
보통 배 들어 오는시간을 기다릴때 그동안 잡았던 향어 잉어 f1 등을
살려서 가려고 철수짐을 다 쌌는데도 살림망은 물속에 담궈놓고
잡은 고기를 맨마지막에 살림망째 들고 배에 올라 아이스박스나 삐꾸등에 옮겨 담곤했습니다 .
당시 주 어종이 향어와 잉어등 대형 어종인탓에 대형 살림망에 10마리만 담아도
옆에서보면 감탄이 나올만큼 그양이 많아 보였습니다.
고기를 많이잡아 철수배에 잡은 고기를 실을때엔 많이잡은 사람들은
어깨에 자동으로 힘이 들어가 의기양양 하며 잡은 고기를 자랑했고
못잡은 사람들은 옆에서 그 모습을 부러운듯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
소양호 낚시인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다른곳을 목표로 출조했던 사람들도 철수하는 사람들의 살림망을 살펴보고는
한곳에서 고기많이 잡은 사람들이 많이타면 출조지를 변경해서
그 골짜기로 우루루 내리고들 하였습니다.
당시는 소양호낚시의 최고 전성기때라 전국에서 수많은 낚시인들이 몰려왔고
가두리가 터져서 물고기가 유출되거나 어느 한 포인트에 떼고기가 터졌다는 소문이 돌면
한동안 그 골짜기는 북새통 인산인해를 이루곤했습니다.
소양호 낚시포인트는 크게 가두리없는 골짜기와 가두리가 있는 포인트로 나눠졌는데
가두리가 있는곳은 초보나 대부분의 소양호 낚시인들이 많이 찾는곳이었고
가두리 양식장이 없었던 골들은 주로 급경사 지역이나 마사토바닥 등 지형이 험하고
낚시자리 소위 아시바 만들기가 힘든곳이 많았는데
소양호낚시를 오래한 꾼들이나 번잡한곳을 싫어하는
소위말해서 고수들이 주로 출조하는 전문터였습니다.
두 포인트의 차이는 조황이 아무래도 매일 가두리에서
일정한시간에 사료를 주기때문에 가두리가 거대한 밑밥통 역활을 하여
흘러나온 사료를 먹으려고 가두리 근처로 항상 고기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가두리가있는 골짜기가 없는곳 보다는 좀 낳았습니다.
그래서 낚시점에 처음온 손님들은 무조건 식수가 나오고 가두리있는곳에 내려 줬는데
이분들도 계속 출조를 하여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는 한적함을 쫒아 가두리 없는곳을 즐겨 찾았습니다.
가두리가 있는 주 포인트들은 가두리때문에 고기들이 항상 몰려들기 때문에
늘 어느정도 조과가 보장되고 먹을물도 있고 또 웬만한곳에는 텐트를치고
라면 과자 소주 밑밥 케미등을 파는 매점이 있어 낚시하기는 편하지먄
너무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초보자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낚시시즌 동안에는 늘 시끄러웠습니다.
댐낚시는 깊은물 본류권을 회유하는 고기때가
일정한시간에 골짜기안으로 들어왔을때를
노리는 낚시라 고기 오기만을 몆칠동안 기다리고
또 한번 들어온 고기떼가 본류넓은곳으로 나가지않도록
낚시하는 자리에 황토 펠릿 닭사료등 온갓 밑밥을 뿌려놓고 골 안에잡아놓고
숨소라도 참아가며 하는 낚시인데 아무래도 초보들과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여드는 가두리옆은 항상 시끄러울수밖에 없었습니다.
큰고기 경험없는 얼치기꾼이 저수지에서 작은 붕어만 그라스대로 휙휙 걷어내다
한칸반 짧은대를 세우지도 못하게 힘를쓰며 바닥으로 파고드는 댐 향어의 힘에는
으악~악~ 하는 소리를 초보들은 자동으로 냈습니다 .
저수지에서 붕어만 잡다 처음 소양호에 온 초보들은 세분류로 나누는데
밤새입질이 들이와도 피라미 입질처럼 반마디만 깔짝꺼리는
향어입질을 파악 못하고 밤새 입질이 와도 멍하니 가만히 있다가
어쩌다 자동빵으로 걸린 향어한번 잡아내고 손을덜덜 떨며 감격하는
부류와 저수지에서 쓰던 붕어채비 그대로 와서 몆번 채비 터트린 후
광분해서 채비 보충하러 다음날 철수하는 부류와 채비는 제대로 해와
어쩌다 한마리 걸면 으악~ 잡앗다~ 크다 뜰채 뜰채 하면서
조그만거 한마리 잡고 온갖 소리를 질러대 골짜기에 들어온 고기 다 쫒아내서
그곳에 있는 낚시인들을 열 받게하는 부류로 나눌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도방정들을 떨면 가두리 주위에 몰려있는 작은 고기들은 그럭저럭 잡히는데
정작 전문꾼들이 노리는 잉어와 자연산 바닥향어는 잡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꾼들은 조용하고 바닥고기를 노릴수 있는 가두리없는곳을 선호했습니다
그런곳은 인적도 드물고 무섭기도 하고 낚시 여건이 좋지않아 낚시는 좀 힘이 들어도
일단 골짜기안에 고기가 붙으면 말 그대로 자연산 대구리들로 대박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소양호 주 포인트는 가두리가 있는 산막골 동면 신진 물노리 오항리 조교리 등이었고
가두리가 없던곳까지 포함하면 포인트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
또 당시에는 배에 물건을 실어 매점이 없는곳을 돌아다니며
낚시인을 상대로 장사하던 매점배도 있었는데
주로 가두리 없는 매점 없던곳을 방문하였습니다 .
담배 라면 소주 등을 팔았었는데
지금도 가끔 TV에서 태국 방콕 수상시장 장사배들을 비춰주면
옛시절 소양호 매점배에서 물건사던 생각에 젖어들곤 합니다 .
일단 소양호에 출조하면 첫날은 각자가 준비한 식료품과 음식들을 가져들 가서
쇠고기 먹는 사람과 보리밥 먹는 사람등의 빈부격차가 나지만은
낚시하고 이틀만 지나면 재벌회장이나 노숙자나
그 포인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똑같은걸 먹게됩니다 .
냉장고 없고 전기도 없는곳이라 아무리좋은 음식을 싸가지고 들어와도
아이스박스에 아무리 보관해도 이틀이면 김치도 쉬고 가지고온 음식도
이틀후면 상하기 시작 합니다 먹을게 떨어지거나 낚시하다 낚시용품이 필요하면
전날 쪽지에 필요한 물품을 적어서 순회하는 낚시점 총무에게 돈과함께 내밀면
다음날 낚시배가 들어오면 잔돈과 함께 물건을 받을수 있었는데
낚시점에서 파는 식품들이라 기본적인 쌀과 김치 양파나 감자같은 야채와 된장 고추장등
기본적으로 먹는 식품밖이 없었습니다 일단 낚시올때에 가져왔던 음식들이 떨어지면
그다음은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서민이나 모두들 똑같은걸 먹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부귀리 신진에 주로 출조했는데 신진에는 단골 장박꾼들이 많이 계셔서
몆년동안 출조해서 만나고 친해져서 모두들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때 신진에는 그당시 40대 연배의 두분께서
텐트를 치고 소주 라면 어분등을 파는 매점을 열고 계셨는데
신진에 자주가는 장박꾼들은 냉장고도 전기도 없이 계시는 두분을 위해
책과 고기와 밑반찬등을 가지고 갔는데
얼음이 귀할때라 고기종류는 하루밖에 가질않아
들어온 그날로 고기는 다 구워먹었습니다.
매일 낚시배로 매일 단골꾼들이 들어오니
매일 매일 고기잔치가 열리곤 했습니다 .
이분들은 진도개 두마리와 잡견 여러마리와
놓아키우던 닭을 몆마리 키우고 계셨는데
진도개들은 애완견으로 사냥의 명수로
아래에 올린 내글에 한번 출연했었고
봄이되면 병아리와 강아지들을 여러마리 춘천시장에서 사다가
낚시터에서 방목하며 키웠습니다 .
다음해 봄이되면 한마리도 남지않고
다시 병아리와 강아지들을 사러나가는 일이 매년 반복됐는데
단골꾼들이 덜 들어오거나 한겨울 고기도 안나오고
몆칠동안 김치찌게에 된장국만 먹다보면
거기모인 단골들은 자동적으로 옆에서 놀고있는 닭과
여름내 키워서 덩치가 제법 큰개를 보고 입맛들을 다시게 됩니다
그러면 여럿이 합의하에 돈을 걷어서 잡거나 아님 맘 좋은 한분께서 적당한 값을
매점 총무님께 치루고 본격적으로 모두들 개사냥 닭사냥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희안한일은 총무님께 개값을 치루고 나면
매일 옆에서 꼬랑지 살살 흔들고있던 강아지가 어느덧 사러지곤 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어분 한덩이만 줘도 달려들던 개가
삼겹살등 먹을걸로 유혹해도 안오는걸 몆번봤는데
아마 동물들은 특유의 감지능력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또 닭도 놓아서 방목한 놈들이라 잡는게 만만치가 않았는데
산속의 야생동물들을 피해 밤에는 나무위로 올라가 자는
거의 야생인놈들이었는데 평소에도 낚시인들이
닭한마리 잡아 달라면 총무님께서 조건을 겁니다 잡아다 주면 얼마
직접 잡아오면 5천원 깎아서 얼마하고~
그럼 낚시꾼은 싼맛에 자기가 잡으려고 직접 나서는데
한마리 잡는데 보통 반나절은 걸립니다.
거의 야생이라 잡힐만하면 수십미터씩 날라다니는게 마치 새같습니다.
조금 싼맛에 닭 잡으러 헥헥대던 사람은 어찌어찌하여 겨우 잡아 오지만
지쳐서 닭도 못먹고 텐트에서 뻗는사람 여럿 봤습니다.
그렇게 뻗은 사람중에 그곳에 자주오던 화양리에서 부인이 약사로 계시던
김사장님이란분과 오랫동안 친하게지냈는데
이 양반이랑은 다른 잊지못할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소양호에서 본 착한분중에 한분이셨는데 삼제가 꼈는지
그해는 재수없는 사고를 많이 당하셨습니다.
초봄에 낚시하다 낮에 산에가서 약초캐다가 땅벌에쏘여 병원으로 실려갔었고
골짜기에 낚시하다가 물에빠진걸 제가 받침대로 건져드린적도 있었고
넘 불피는것 옆에서 구경하다 부탄까스통이 터져 살짝 화상도입은적도 계셨는데
제일 재수없었던일은 저랑 다른 골짜기에서 낚시할때 있었던 일인데
당시에는 소양호에 배를타고 낚시를 들어오면
현지민이 청소비를 천원인가 얼만가 한번 받았는데
거의 매일 소양호낚시를 이곳 저곳 다니고 오래 다니다 보니
이분은 소양호에서 어업 하는분과 현지 마을분들과도 친하게 지내셨는데
사람이 워낚 착하시고 손이 크셔서 현지인들도 이분을 좋아하셨습니다.
어느날인가 우연히만나 어느 골짜기에서 둘이 같이 낚시를 하고 있는데
동네어르신이 이분을 보고 저까지 집으로 초대를 하셨습니다.
식사 대접을받고 밥을 먹는데 시골에서 옥수수로 직접담은 동동주라며
술을 내왔는데 술맛이 달달한게 참 맛있었습니다.
이분은 막걸리처럼 약한술인줄 알고 맛있다고 막걸리 마시듯 술을 들이키는데
예전에 동동주 먹고 한번 뻗은적이있는 저는 극구 말렸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 양반은 뻗어 버렸고 저희는 그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습니다
술김에 또 오랜만에 집에서 자서 정말 한번도 안깨고 다음날 아침까지 정신없이 잤는데
잠결에 그집 며느리가 아버님!아버님! 급하게 소리치는소리에 깨보니
옆에서 자고있던 그양반은 안보이고 며느리의 다급한 목소리만 울렸습니다.
급하게 나가보니 세상에!!!!!!!!!!!!!!!!!!!!!!!!!!!!!!!!!!!
대문옆에있는 외양간속에서 이 양반이 몸에 소똥을 잔뜩 묻히고 곩아 떨어져 있었는데
얼굴을보니 반쪽이 온통 침범벅에 교통사고날때 아스팔트에
심하게 쓸린것처럼 얼굴 반쪽이 변해 있었습니다.
시골집엔 재래식 화장실이 외양간과 서로 붙어 있는데
이양반이 자다가 화장실 갈려고 깨서
화장실 갔다오다 술김에 외양간에 그냥 쓰러져 잤는데 옆에있던 소가
혀로 짭짤한 이 양반 한쪽 얼굴을 밤새 핥아댔던겁니다.
시골출신들은 잘 아시겠지만 소의 혀는 사람처럼 부드럽지않고
지푸라기도 씹는 까끌까끌한게 아주 억샙니다
한동안 이양반은 아수라 백작같은 얼굴로 꽤 오랬동안 다녔는데
사람들이 얼굴이 왜 그렇냐고 물으면 사람좋게 허~허 웃으며
내가 너무 잘생겨서 암소가 밤새 키스해서 그랬다고 농을하고 다녔습니다.
소양호 가두리가 철수하고도 고기는 한동안 나왔는데
이분을 마지막으로 뵌게 소양호의 마지막 가두리가 철수하는해 겨울낚시에서 였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마지막 그 만남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철수하는날 전날 이 양반이 돈을내어 개와 닭을 몆마리 잡았습니다.
먹을거로 살살 꼬셔서 개를 먼저 잡고 가마솔에 장작불을때고
된장과 대파와 온같 거기있는 양념을 모두넣고 푹~삶았습니다.
개를 못먹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백숙도 구수하게 끓여놓고
잘익은 고기를 꺼내 도마에서 한점씩 잘라냅니다
된장에 들깨가루를 넣고 들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썰은고기를
대파에 돌돌말아 양념장에 푹 찍어 한입 먹어봅니다
여름내 나를 따라 다니며 꼬랑지 치던 놈을 먹는다는
찜찜함이 한꺼번에 날아갑니다.
소주 한잔을 따라 입에 털어 넣습니다.
기분좋은 알싸한 쓴맛이 식도를따라 흘러 들어갑니다.
뿌옇고 노란 국물속에 있는 닭다리를 꺼내
후추뿌린 소금에 찍어 먹어봅니다.
입안에서 적당히 느껴지는 기름기와 약간 질긴듯한
야생닭의 쫄깃함이 감칠맛과 함께 입안에 맴돕니다.
손에 묻은 기름을 옷에 닦고
손에들은 소주잔을 김사장님께 건냅니다.
술을 받으시며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가두리도 모두 철수됐는데
우리가 내년에도 만날수 있을까요 ?
술잔을 손에 쥔 사람들이 모두들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소양호 그 파랗고 깊은물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거기있던 사람들은 언제쯤에나 만날수있을까요?
소양호 일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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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공사근처 수로였는데 파트린느 선배님이 한말씀 하시더군요...
" 개혀? "
그래서 제가 답변을 했습니다.. " 네 협니다 "
소개글입니다
지난 소양호에 낚시추억 잘 읽었습니다
정말 낚시 참~~입니다ㅎㅎㅎ
낚시여정 파란만장하셨네요
오늘이 내일에 추억이 되는 행복한 낚시
즐기시구 건강하세요^^
소박사님 소양호 추억의 조행기 1,2,3편~
너무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ㅎ
참으로 현장감있는 추억의 조행기입니다.
이 글을 보고도 공감이 만땅인데,
소박사님은 이 글쓰면서 추억을 회상하셨으니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정말 장문의 추억을 잘 읽었습니다.
4탄도 빨리 써주세요 ~~
기다릴게요
소박사님 글을 읽으면 직접 출조 했을때 보다 더
현장감이 있습니다~~~~~~~돋보기 끼고 읽으니 눈이 아롱아롱 거려서
달구새끼 잡다가 사람 잡는데 까지만 읽고 쉬었다 또 오겠슴다ㅎㅎㅔㅔㄱㄱ
추억의조행기 잘보고 갑니다
그냥반 그렇게 우여곡절이 심하신데... 별고 없겠지요~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견님은 먹지 않으니...닭백숙 다리하나 건져갑미데이~~~~~~~ㅎ
긴글 읽은데 한참이 걸렸지만 정감이 가는 멋진
글인것 같습니다
지금도 초짜지만 초짜일때 울산에서 안동땜까지
향어 낚으로 간적이 있습니다
긴글 잘보 았습니다
예전이 정말 그립습니다
낚시란 고기만 잡는게 아니라 추억이라는 멋진것도 덩다라 같이 낚는것이라는걸
느껴 집니다...항상 안출 하시고 건강 하십시요~~~~~~~~~~`
현장감이 있는
그림이 있는 조행기
삶이 있는 조행기
사람 사는 냄새나는 조행기~
잘 읽고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박사님글에 마지막은 항상 술을 땡기게하는 어떤.. 무언가가 있습니다 ㅎㅎㅎ
에휴..오늘 막걸리 두어통 사서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한글자도 빠질새라 천천히 읽었습니다.
소양호 낚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눈앞에 선하네요.
당시의 낭만과 추억, 그리고 인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이제는 그런 낚시추억을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겠지요
사라져가는 우리문화...
이것 다 어디 갔어. 하며 웃기는 코메디 프로가 생각날 만큼 아쉬우면서도 그리움이 솟아나는 조행기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화양사거리에서 육교쪽애 코너인걸로 기억하는데 그분이 신당낚시에 회원하시다가 화양리의 화원낚시회원으로 낚시하셨을텐데..
아마도 화원낚시 사장님이 알고계실것 같군요! 화양리의 화원낚시 사장님은 아직도 하시고 계시고요 큰아들께서 찌를 만들고 계시죠
화원찌라고요... 가끔들려서 인사드리고 했는데,,,, 사무실이 이사하는 바람에,,,못간지 오래됐는데,,,,,,
예전에 소양댐에서 뵌적도 있었을 것도 같네요 한가지 기억이 생각나네요 ㅎ
소양댐에서 낚시배가 도착했는데 거의 몰황이라 배에서 내리는 꾼들의 어깨는 축 처제 있었죠
전 선착장의 배사이 뭍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죠 근데 지가 그 곳에서 엔속으로 향어를 낚는 행운을 맞았죠, 그렸더니
배에서 내리는 낚시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지 옆으로 낚시대 수 십여대가 쫙
펼쪄지는 웃지 못할 기억이 ㅎ ㅎㅎ
저보다 쬐끔 나이가 적으시네요
그러고 보면 지도 이젠 나이를 꽤 먹었네요 재밋게 봤네요
책을 출판하셔도 될듯 싶네요 ㅎ
지금도 소양호 출조를 하지만, 물이 많이 더러워서 아쉽습니다.
물이 그리워 욕조에 푹 담그고 있읍니다
장문의 조행기 잘 읽었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항상 즐거운 낚시 하십시요~
두번세번 다시읽고싶네요
저역시 소양강을 좋아했던꾼으로서 멋진글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좋은일만있으시길....
이 글 쓰시면서 그때 그 추억들로 감회가 새로와겠습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