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동지 팥죽먹으로 오라는 어머님 구수한 전화...
"머하냐? 병~~~신년도 편히 보낼라면 팥죽 한사발 먹고가라"
마나님 모시고 가려고 전화했더니... 오늘은 어린이집 맘들이 애덜 데리고 모임이 있는 날이란다.
그냥 혼자 편한 맘으로 청도 시골집에 퇴근 후 씽씽~~~
일 때문에 주중에 대구에 계신 아버님도 팥죽 드시러 오셔서 주차하고 계시고... 반가움에 인사 드리고 집에 들어서는데...
엄니 왈... "어... 영감 니꺼는 없는데... " , 아버님 왈 "아들꺼 나눠 먹지머..."
엄니 왈... "와... 내새끼 양식을 탐내노... 느그 엄마한테 함 가봐라", 아버님 왈 "저승까지 갔다오라고?"
다 같이 빵 터져서 한판 웃고... 손 큰 엄니 답게 솥단지에는 최소 10인분의 팥죽이 끓고 있다.
작년 집사람에게 팥죽 이야기 했더니 단팥죽을 끓여서 일년 내내 애석했던 맘을 간간한 엄니표 팥죽 두 사발로 시원하게 풀고...
아버지와 함께 지난주 물세척 마치고 세워서 말려놓은 낚시대 광택 작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입낚'을 시작한다.
엄니도 예로부터 물이 맑아 지명이 淸道인 이고을 토박이라 내가 갓난쟁이부터 아버님 낚시 따라 다니셔서 입담을 보태시고...
왠지 이런 밤에는 구라가 반쯤 섞인 놓쳐버린 대물 이야기가 제격인데, 요즘 손자 손녀 재롱에 감수성이 소녀스러워진 어머님이
그 옜날 사진까지 가지고 나오셔서 낚시터에 데리고간 누나와 내 이야기를 풀어 놓으신다.
일단 사진 보면서 우리 아들과 넘 똑같이 생긴 까까머리 새까만 어린이가 너무 낮설고 또 익숙해서 한번 놀라고...
내가 낚시를 무지 지겨워 했고... 아버지 낚시대를 휘두르면 차르르... 절번이 나와 길어지는 걸 좋아해서
아버지 낚시대 절번 고착 유발범 이였다는 사실에 또 한번 스스로 낮설어 진다. "그랬나? 여기선 엄청 좋아라 웃고 있는데..."
엄니 왈... 그러면서 또 아버지가 조금만이라도 딴청 피우면 "아빠 거기 입질..." 이런 거짓말도 심심하면 하는 악동이었다니...
5~6살 때 이야기지만 왜 이런 순간이 하나도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지 참 애석한 생각에 가슴이 허전할 때...
아부지 왈... "권아... 니... 인자 낚시 접어라"
갑자기 동지날 밤에 이게 무슨 생뚱맞은 말씀이란 말인가???
아부지 왈... "나도 니보다 한참 어릴 때지만... 니가 6살 될때... 그러니까 니가 태오만할 때 시작해서 한 20년 정도 낚시를 접었다."
"지금은 자식과 가정에 더 충실해야 될 때기도 하고, 또 나는 내 자식이 물가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항상 맘에 담기를 바랬다."
갑자기 엄니도 깜작 놀란 표정이고... 지금것 살면서 "니 와그라노?"라는 흔한 질책도 단 한번 않으셨던 아버지라 충격이 더 컸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무리 머리속을 스캔해 봐도 정말 아버지는 나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요구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런 분이 70세가 넘어서 40이된 아들에게 뭔하 하나를 하지 말아 달라고 처음으로 청하시는 것이었다.
더 고민할 필요 없이 "네 아부지..."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니께서 "그라마 인자 낚시가 재미가 없다... 그라면서 안다닌게 내랑 우리 애기들 챙길라꼬 그란긴교?"
엄니가 묻자... 아무지 왈 "그래 생각 해라" 한마디 하시면서 껄껄 웃으신다.
역시 시원한 우리 엄니... "당신 참 기특하네... 여기 죽 한 그릇 더 묵으라" 하신다. ^^
아부지 왈... "일년에 한번 니하고 내하고 한번씩만 하자... 그기 맞다"... 하신다
"맨날 천날 지 하고 싶은거 할라고 가족들에게 실없는 소리하고... 또 나가서 몇일씩 집에 안들어오고... 가장이 그래가 되겠나?"
"나는 니 국민학교 때, 시험 못봤다고 우는거 보고 낚시 끊기를 참 잘 했다 생각했다."
"아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야 된다. 알겠나?" 하신다.
"넵... 아부지..." 넙죽 대답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게... 가장이 된다는 게... 커가는 자식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게...
부인에게 신의를 지키고 거짓이 없다는 게... 동지날 밤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큼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참 인생은 켜켜이 쌓여 있는 양파 껍질처럼 매 순간 새로운 국면으로 내 앞에 드러나는 것 같다.
옛 성현 말씀에 "항상 주변을 살피고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간간한 팥죽처럼
달지도 짜지도 쓰지도... 그렇다고 단순히 구수하다고 하기도 애매하게 어렵풋이 손 끝에 닿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정말 그날 이후 20년간 단 한번도 낚시를 하지 않으셨을까? ㅎ
아버지와 입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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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건사 "잘"하라는 아버님 말씀이지
낚시 끊으라는 말씀 이겠읍니까~~??
살림망 두고 오셨음
치우러 가입시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인자 11살,9살인데.... 대학갈때까지 딱 10년만 접을까......하고 생각하면서
몸은 낚시대 업글을 뭘로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참 병도....
낚시를 사랑하는 자신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를 반쯤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잠시 쉬면서... 좋은 때를 흐뭇한 맘으로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는게 맘 편할거 같네요.
제 고민입니다..ㅜㅜ
가능하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을때 가볼까 합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가요~~^^
언제나 낚시다니며 맘 한켠의 걱정이 이런 부분이었는데..
ㅠㅠ..정말 둘다 잘 할순 없는걸까요..?
마눌과 자식위해 사는거는 아니겠지만 술끈고 난후 퇴근길에 피자한판이면 온가족이 오순도순 먹으면서 지껄이는 모습에 빙긋이 웃음지울때...
월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