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읽어 봤습니다.
다시보니 예전 추억이 아스라이 안개처럼 떠오르는군요 .
간혹 자게방에서 저에게 추억의 조행기를 다시 올려 달라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께는 죄송스럽게도 제가 사는게 바빠서
요즘은 장문의 글을 쓸 시간이 전혀 안납니다.
대신 예전 저와 같은 시절에 양수리에서 도둑 낚시를 해보신분을 위해
또 제 글을 안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예전에 올렸던 글 을 다시 한번 올려 봅니다 ^^
양수리 도둑 낚시의 추억....( 재 연재 )
.
저번주 정말 오랜만에 팔당 댐 이 있는 퇴촌을 다녀 왔습니다.
지인들과 팔당호 옆 매운탕 촌에서 모임을 갖기로 해서
서울에서 볼일을 본 후 서울에 사는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편안하게 조수석에 앉아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들을 구경 하자니
운전 하면서 지나칠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한강의 경치와
예전과는 달라진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구경할수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외각으로 넓게 뚫린 외곽도로를 타고
예전에는 꼭 거쳐야만 했던 도시들을 거치지도 않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팔당 댐 에 도착 하는걸 보고
세상이 편하게 변했다는걸 실감 할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한참 이길을 다닐때에는 서울 어느곳에서 출발하던지
지금은 구리시라 부르는 교문리를 지나 도농리 덕소등의 시내 가운데를
필수로 통과했는데 지금은 예전에 아주 느리게 통과하던 복잡한 도시를
외각으로 빨리 통과해서 나에게 예전에는 없던 편리함을 주었지만
예전에는 의미없이 지나쳤던 그 도시들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내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강변길을 따라 한강변을 얼마쯤 달려가자
몆칠동안 서울로 지방으로 바쁘게 움직여서
피곤에 지쳐있던 내 몸은 곧 수마에 빠져들었습니다.
한참을 자다다 차가 멈추는것을 느끼고 눈을뜨니
졸음이 가시지 않은 내 눈앞에 꿈결처럼 팔당댐이 있었습니다.
담배를 피려고 차에서 내린 지인을 따라 차에서 내려
내 젊은날의 수많은 추억들을 알고있는 팔당댐을 바라보니
잊혀져 가는 기억끝에 걸려 있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산이 몆번이나 변할날이 지나고 나서 이제서야 찾아온
팔당댐은 옛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는
연갈색빛 콘크리트의 그 모습 그대로인데
댐 아래 여울에 품고있던 수많은 견지 낚시배들과
간이 선착장의 여객선 연안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던
보트장의 노젓는 보트들은 보이지가 않았고
댐 건너 숲속에서 매운탕과 닭도리탕 도토리묵등을 팔던
수많은 간이 천막 식당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댐 밑에 1년 365일 을 천막치고 전을 펼치고 잉어를 잡던
그 많던 릴꾼들도 모두 없어지고 황량한 도로가에 몇개 남아있는
매운탕 가게의 텅빈 주차장만이 쇠락해져가는
팔당의 옛 영화를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내 청춘의 황금 같던 젊은날 새로사귄 여자친구를
물놀이 보트에 태워 잘 젓지도 못하는 노를 저어서
팔당호 한 가운대로 몰고가서 배 양쪽을 손으로 잡고
기우뚱 기우뚱 흔들었고 출렁거리던 배의 요동에
기겁하던 여자친구에게 웃으면서 뽀뽀를 해주지 않으면
다시 흔든다는 반 협박조의 말을 해서 받았던
억지로 해주는건지 진심으로 해 주는건지
구분할수가 없었던 여자 친구와의 달콤했던
키스의 추억도 떠올랐고 뽀뽀를 하고 의기양양
여객선을 타고강건너 숲속에서 영업하던
간이식당 평상에 않아 손을 꼭 잡고 먹던 도토리묵과
막걸리의 행복했던 맛도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눈을 감으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젊은날의 정말 행복했던 팔당호 낚시의 어느 멋진 하루가
다시 생각난 옛 기억의 끝자락을 따라 아련하게 떠 올랐습니다.
내 젊은날의 화창한 어느 봄날 새벽5시
그날도 전날 미리 맞춰둔 요란한 시계 알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며 미리꾸며둔 낚시가방을 챙기고
돗자리 파라솔 텐트등이 들어있는 가방에 냉장고에 있는
쌀과 김치 밑반찬 양념통등을 담고
낚시가방을 메고 서둘러 집을나왔습니다.
오늘의 행선지는 늘 항상 다니던 팔당호가 있는
양수리다리 검문소밑으로 정했는데
평소 같으면 거기로 낚시 갈때 그냥 간편하게
낚시가방만 메고 다니거나
아니면 도시락 하나를 들고 가는데
오늘은 내일이쉬는날이라 시간이있어
1박2일을 예정하고 가느라고 짐이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니 아직 날이밝지않아
채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다가오는 여명과 어우러져
희미한 새벽세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골목길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가는데
어깨에맨 가방의 압박과 양손에 나눠든 짐의 무게가
발걸음을 자꾸 느리게 만들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차를 타는분들은 주로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분들이나
청소하시는 어르신들 아니면 장거리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뤘는데 나이 많으신분들이나 아니면
아주 어린사람들이 거의 첫 버스손님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쩔때는 그 가운데 연배인 젊은 내가 새벽부터 낚시가방을 메고
놀러 가는게 바쁘게 사시는 그분들께 왠지 모르게 미안해서
버스를 탈때까지 바닦만 보고 있을때도 있었습니다.
5시25분 기다리던 첫차가 도착하면 거기있던 거의 모든사람들은
종로나 시청등 서울 도심쪽으로 들어가는 차를 타고 가버렸고
나는 그분들과 반대로 서울을 벗어나는 중화동 면목동 망우리등을 거쳐
교문리로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서울을 벗어나는 첫 버스는 타는 승객이 몆명되지 않았고
새벽 냉기속에 서있다 탄 버스의 훈훈한 온기와 덜컹거리는
버스의 흔들림에 않아서 깜박 졸다보면 버스는 어느새
교문리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당시는 서울에서 양수리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당시 교문리 최고 번화가인 돌다리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돌다리에 내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있는 단골 낚시가게에 들어서니
자주뵈던 초로의 사장님이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어서오게 오늘도 양수리로 가는가"
"예!사장님 오늘은 밤낚시좀 하려구요"
"밤낚시를 하려면 양수리시내 주유소뒤나 아니면 문호리쪽이
더 좋지않나? 거긴낮에 단속도 잘 않나오는데"
"거기 갈려면 한시간 더 기다리다 비둘기호 통근열차를 타고 왔죠
거기는 차에서 내려 너무많이 걸어야 해서 차 없이는 큰맘먹고 가야합니다
짐이 많아서 이짐지고 거기가면 지쳐서 죽습니다 사장님"
"커피나 한잔하게"
팔팔 끓고있던 주전자를 들어 커피를 한잔 타 주십니다.
아무것도 먹지못한 빈속에 달콤한커피가 들어가자
입안에서 행복감이 밀려나옵니다.
"요즘도 단속반이10시쯤나오나요?"
"10시에서 11시사이에는 틀림없지 뭐"
"서둘러가야겠네요"
아~자식들 조금 만 더 있다 나오지 낚시꾼들 아침이나 먹게
아침식사 않했지? 옆집에서 해장국 하나 시켜줄까?"
"아니요 아침을 먹고가면 낚시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 오늘은 뭘 좀 줄까?"
"일단 지렁이부터 담아 주시죠"
낚시점사장님이 옆에 사각으로 잘라놓은 신문지를 한장뜯어
가게앞으로 나갑니다.
가게앞에는 빨간색 고무다라 3개가
널판지가 덥힌채로 나란히 있습니다.
고무다라 한쪽을 열고 그속에서 지렁이를 꺼내 신문지에 쌉니다
습관 처럼 옆다라를 들춰보자 한쪽엔 견지낚시에 쓰이는
꼬물거리는 구더기가 가득하고 한쪽에는 요즘 새로운낚시로 각광받는
민물농어미끼인 새우가 물에 잠겨 하나가득 들어있습니다 .
" 이제 사장님도 새우를 갖다 파시네요 잘 나가나보죠?"
"요새 팔당댐에 농어가 잘나와
농어낚시하는사람이 많이 늘었어 농어가 비싸잖아 회도 맛있고 찜도 맛있데
덕소엔 농어식당도 생겼다나봐 자네도 농어낚시 한번해봐"
"그래요 ? 한번 해봐야겠요"
"오늘 자네가 가는곳에서도 이제는농어가 제법 잘 나와 작년까지만해도
왕창리쪽이나 문호리쪽만 나왔는데 지금은 웬만한곳은 다 나와"
"언제한번 해봐야겠네요"
"지금은 지렁이로도 잘나오니 오늘가서 몆마리잡게"
아~참 자네 농어 원래 이름이 뭔줄아나?"
"원래이름요?"
"농어이름이 영어로 배스래 배스"
"배스요?이름 참 희안하네요"
당시는 그 희안한 이름이 두고두고 우리나라 생태계를
초토화 시킬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렁이를 신문지에 담고 신장 떡밥과 깻묵이
많이 들어간 춘천 원자탄도 한봉지 넣고
캐미와 삼봉바늘 등 소품들을 사고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께서 찌를 하나 써비스로 주십니다.
"이찌 한번 써봐 새로 나왔는데 무척 편리해 찌끝 뚜껑이 열려서
그속에 캐미를 넣으면 캐미 끼우는 무시고무가 필요없어서 좋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낚시가게를 나와서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 갔습니다
.
지금은 낚시가게에서 라면과 물과부식등을 함께 팔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낚시가게에서 라면등을 파는곳이 드물었습니다.
당시 노인부부 두분이 운영 하시던 살림집겸 구멍가게에는
한쪽 옆 의자에 당시 40대의 그분들의 아들이 항상 하얀메리야스를 입고
등을 돌리고 않아 뮌가 모를 소리를 항상 중얼거렸는데
정신이 약간 불안정한 그를두고 주위사람들은 젊었을때 너무 천재라
서울대도 수석 입학을 했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해서
정신이 돌아버렸다고들 말들을 하는데 제가 전국을 돌면서
정신 이상자들을 수없이 많이봤는데 옆에 물어보면
그들중 둘중 하나는 거의가 다 서울대출신이고
다들 공부를 많이해서 머리들이 이상해진 사람들 이라고해서
그걸 사실이라고 믿을수는 없었습니다.
가게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 아침식사로 먹은후
소주를 한병 사고 커피와 라면등도 주위사람들과
나눠먹을수 있는만큼 넉넉히 사가지고
버스정류장에서 양수리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가게문들이 하나 둘씩 열리고
가게앞을 빗자루로 쓰는 사람들이 한두명씩 보였습니다.
강산이 두번 바뀐 지금도 교문리 돌다리 버스정류장의
풍경이 마치 사진처럼 떠오르는데
다른것은 다 잊었지만 내 젊은날의추억이 가장 서려있던
당시 돌다리정류장 옆 건물은 지금도 가게 상호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납니다.
대성약국 반석학원 교문낚시점 구리슈퍼 고려당 궁전회관.........
잊혀지지 않는 그리운 상호들.
구리시 토박이분들은 아마 지금도 가장 번화가였던
돌다리의 그 시절 그가게들이 어렴풋이 기억들이 나실겁니다.
당시 양수리로 낚시가는 교통편은 크게 3가지로 나눠졌는데
저처럼 구리시까지 시내버스를 타고가서 구리시에서
양수리쪽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 타는것과 아니면
비둘기호열차를 타고 가거나 덕소까지 열차를 타고가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코스들을 많이 이용했는데
당시 낚시인이 자주가던 포인트는 제가 자주가던
양수리시내의 주유소 뒤 밭자리나 양수대교 다리 검문소밑쪽과
다산 정약용 묘가있던 능내역 부근과 강 건너 퇴촌쪽 분원리나 귀여리
서종면이나 문호리쪽으로 출조들을 많이 했는데
그외의 포인트들도 셀수없이 많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당시 팔당호는 많은 서울낚시인들의 전용 놀이터였습니다.
지리도 가깝고 고기도 잘 잡히고 왕복버스비와 지렁이 한통이면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다올수 있는 무료터를 한번 가려면 최소 왕복5시간은 운전해야하는
지금의 서울 낚시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꿈의 낚시터였습니다.
한참을 기다리자 양수리행 버스가 내앞에 섰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니 기사님께서 눈웃음으로 맞아주십니다.
당시 양수리행 버스 기사님들은 주로 시골동네로 다니셔서인지
서울 시내버스 기사님들보다 100배쯤은 더 친절하셨습니다.
타고 내릴때 인사도 잘하시고 시골마을입구등 정류장이
닌곳에도 잘 내려주시고 노인분들의 짐도 잘 들어드리는
서울에서는 절대 볼수없는 친절함들을 가지셨습니다.
버스는 교문리에서 이른 새벽이라 승객몆명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도농리를 지나 시골동네 몆군대를 거쳐 덕소로 진입했는데
마을을 한군데씩 거칠때마다 승객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덕소에 들릴때쯤엔 출근시간과 겹쳐 양수리나 청평 가평으로
통학하는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덕소에서 하나가득 승객을 태운버스가
동막 팔당을 거쳐 양수리입구에 있는 양수대교를 앞에 둘때쯤
낚시가방을 챙기고 기사님께 가서 검문소입구에서
좀 세워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원래 그곳은 정류장이 없는 곳이라 버스가 서질 않는곳인데
당시 기사님들은 혼쾌히 그곳에 낚시꾼들을 내려 주셨습니다.
만일 기사님께서 그곳에 낚시인들을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낚시꾼들은 다리건너 양수리 시내부터 무거운짐을 지고들고
긴 양수대교다리를 건너 한참을 걸어와야 하였기에
버스기사님이 내려주지 않으시면 다리 밑 포인트는
차없던 당시에는 낚시할 꿈도 못꿨을겁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기사님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 괴기 많이 잡어유"
"네! 고맙습니다 기사님 수고 하셔요"
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7시5분
다리옆으로 난 샛길을 따라 서둘러 아래로 내려갑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자 논과 밭의 형체를 아직도 간직한 수몰된 논 밭터 옆 둑길을 따라서
낚시인들 수십명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다대편성은 생각지도 못하던때라
누가 낚시대를 서너대만 펴도 정신 없어서 그걸 다 어떻게 보냐고
물었을정도로 거의 낚시대를 많아야 두 세대씩 피고 낚시를 할때인데
그곳은 낚시금지구역으로 묶인곳이라 단속이 나오면 재빨리
장비를 접어야 하기에 거의 모든 낚시인들이 한 두대씩
낚시대를 펴놓고 계셨습니다.
낚시할 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둘러 보는데 멀리서 한분이 손을 드십니다.
"어이 여보게 여기야 여기"
가까이 다가가니 예전에 나와같이 여러번 낚시를 같이 하였던
양수리의 현지 어르신이 반겨주십니다.
"아~어르신 안녕 하셨습니까? "
"그래 그래 한참만이네 여그서 해 내옆에서"
기꺼이 옆자리를 양보해 주십니다
어르신옆자리에 짐을 내려놓고 어르신의 살림망을 보니
뭔가가 꼬물꼬물 움직입니다.
"몆마리 잡으셨네요 어르신 밤낚시를 하셨나보네요 "
" 아녀 새벽에 잠이 안와서 5시쯤 나왔어 "
"어이쿠~ 어르신 그럼 양수리에서 깜깜한데 걸어오신거예요?"
" 운동삼아 솔방솔방 걸어왔지 "
"어르신 잘못하면 큰일나세요 어두워서 위험해요
잘못하면 교통사고 나요" 웬만하면 날 밝은담에 다니세요"
"그래서 내가 자전차 않 타고 걸어왔잖아
날 밝은담에 오면 낚시할시간이 너무 짧아 10시면 단속 나오잖여"
"그럼 그냥 시내 주유소 뒤에서 하시지 그러셨어요? 거기도잘나오는데 "
"거긴 사람도 너무많고 고기도 쬐깐한게 너무많아
쓰레기도 많고 정말 드러워 낚시하던 놈들이 얼마나 싸질러댔든지
웬 천지가 똥밭이여 에이 드런놈들"
"그래도 큰길은 차가너무 씽씽 다니니 어두울때는 조심 하셔야되요"
"아~걱정말어 가생이로 살살 걸응께"
서둘러 받침대를 꼿고
미리 채비해둔 낚시대를 2대 피고 신문지에 싸온 지렁이를 바늘에 꿰어
한대를 먼저 던져놓고 떡밥을 개어 나머지 한대도 던져 놓습니다.
손을씻고 코펠에 물을담아 버너에 올려 끓입니다.
부식봉투에서 사각으로된 빨간색 커피믹스를 꺼내 종이컵에 담고
끓는물을 부어 옆의 어르신과 그 옆에서 낚시 하시던분께 한잔씩 건냅니다.
커피를 받은그분들의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수면에 떠있는찌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모금 들이킵니다.
뜨거운달콤함이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물 안개에 살짝 움추렸던 내몸에 따듯한 커피 한잔이 들어가자
세상 부러울것 없는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호수에 피어나는 물 안개를 바라보며 커피를 다시 한모금 마시는데
나란히 같이 떠있던 찌 2개중에 하나가 안보입니다.
재빨리 낚시대를들어 챔질을 합니다.
휙~~~~~~~첵~
쭉~~~~~~~풍덩~
댐고기 특유의 강력한 째는 힘에
손안에선 꿈틀거리는 낚시대의 감촉이 느껴지고
내 머리에선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두손으로 낚시대를 잡고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낚시대를 위로 세우고 고기와의 힘겨루기를 시작합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낚시줄이 왼쪽옆으로 째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째고 곧 가운데로 옵니다.
낚시대가 점점 뒤로 눕혀지고 눕혀진 거리만큼
물고기가 수면으로 조금씩 떠 오릅니다.
씨커먼 물고기등이 잠시 보이더니 다시 바닦으로 처박으며 힘을 써댑니다.
낚시대를 잡고있는 두손엔 다시 힘이 들어가고
낚시줄에선 핑~핑 ~ 쭈욱~ 쭈욱~~~~~~~
남들이 피아노치는 소리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낚시대를 잡고 조금씩 조금씩 뒤로 물러납니다.
그라스 롯드의 튼튼한 낚시대가 ㄱ 자로 접히고
초리대는 거의 물속으로 처 박히듯 요동칩니다.
낚시대가 부러질까 걱정하며 한참동안 힘겨루기를 하던 어느순간
밑으로 내리꼿는 힘이 조금씩 약해지며 퍼더덕 거리며
커다란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잉어다 잉어 "
"크다 커 두자는 넘겠다"
커다란 잉어를 본 순간
내 가슴은 두근 두근 심박동이 빨라집니다.
뒤로 천천히 물러 가면서 잉어를 연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끌어냅니다.
옆에서 낚시하던분이 뜰채를 들고 서 계십니다.
"안돼 ! 뜰채가 너무 작어 ! 뜰채 대면 잉어가 힘써서 줄이 터질지두 몰러
그냥 가생이로 살살 델꼬 나와 "
어르신의 말씀대로 천천히 뒤로 뒤로 물러서자
힘이 약해진 잉어가 조금씩 조금씩 물가로 끌려나옵니다.
황금빛 누런 몸체를 뒤집으며 얕은 물 로 끌려나온 잉어가 퍼덕거리며
마지막 힘을 쓰자 나는 낚시줄이 터질까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와!!!!! 크다 커 석자는 넘겠다 "
"바닥잉어네 !!!
" 엄청크네 "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말이 내 귀 에 들릴때쯤
나도 지쳤고 잉어도 지쳐서 얕은 물속에서 눈만 꿈뻑이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바짓단을 걷으시더니 수건을 한장 들고
잉어 머리 위쪽으로 살살 소리죽여 물속으로 들어 가십니다.
수건으로 잉어 눈가를 살짝 덥으시더니
두손으로 잉어를 가슴에 들고 물밖으로 나오십니다.
푸드덕 거리며 벗어나려는 잉어를 겨우 잡고
잉어를 땅 위 에다 던집니다.
황금빛 누런 몸체를 뒤집으며 내 평생 처음보는 커다란 잉어가
가쁜숨을 몰아쉽니다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구경꾼들이 되어 우리를 둘러쌉니다 .
석자가 넘겠다는 사람
석자는 안된다는 사람
1미터는 되겠다는 사람
80Cm는 넘겠다는 사람 등
여러의견을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한대 물고 불을 부칩니다.
한모금 빨아 연기를 내뿜으니
마음이 좀 가라않습니다.
담배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걸 느낍니다.
옆에 마시다 만 커피를 들어 마시니
커피는 이미 다 식어 있었습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식은 찬 커피가 마치 꿀 맛 같습니다.
낚시가방에서 미리 준비해가지고 다니던 나일론줄을 꺼내서
지쳐 누워서 눈만 껌뻑이는 잉어에게 갑니다
주먹이 들어가는 커다란 입 을 통해 나일론 줄 을 아가미로 빼서
지느러미 뾰족한 돌기에 잡아메여 잉어 넥타이를 하여
물속에 잉어를 풀어 놓습니다.
나일론끈을 달고 물속에 들어간 잉어는 있는 힘껏 도망가려고
깊은 물 을 향해 몆번 힘을 쓰더니 땡겨지는 아가미의 압박에
포기하고 이내 곧 조용해졌습니다.
호수물에 손을 씻고 일어나려니 바닥에 오백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잉어의 비늘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슴의 옷이 엉망이되신 어르신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 어르신 정말 고맙습니다.옷이 더럽혀져서 어떻하지요? "
" 뭘~ 이까이꺼 갖꼬"
" 됐다 이따가서 빨아 입으믄 된다 "
" 어르신덕분에 큰걸 잡았습니다"
" 뭐가 내 덕이고 자네가 잡은거지 "
"아이쿠 ~ 어르신이 아니면 꺼내지도 못했을겁니다."
"됐네 이사람아 근데 크긴 정말 크네 저만한 잉어는 나도 낚시터에서는 처음보네 그려"
시장에선 몆번 봤어도 눈알이 소 눈알만 하잖아"
" 저도 잉어는 더러 잡아봤어도 저렇게 큰놈은 처음 잡아봤습니다 "
" 저거 무거워서 어째 갖고 가려나? "
"왜요?어르신 잉어 필요하심 드릴까요? "
"됐네 이사람아 ~ "
"내가 파평 윤씨여 윤씨!! 우리는 절대로 잉어 안묵어!
우리 며느리 애 낳을때도 잉어대신 가물치 다려 멕였어 "
"아 예 ~ 그렇시군요 어르신 "
대답을 하고 잉어를 보니 얼마전 아이를 출산한 친구가
잉어나 가물치를 잡으면 가지러 갈테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부탁을 했던게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를 하려면
양수리까지 나가야 하기에 또 서울까지 갖다주기엔 너무 무거워서
잉어를 그친구 갖다줄까 말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의 고민후
그래 ~ 갖다주자 애 낳은 산모인데
내가 조금 고생하면 산모한테도 좋겠지!!! 친구놈이 저런 자연산 잉어를 어디서구해?
하고 생각하고 서울까지 택시에 실어서
가져다 주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미끼를 달아 호수에 낚시대를 던져 놓습니다.
이미 해는 완전히 떠올라서
강가의 물안개를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다시 찌가 솟구칩니다.
챔질하니 이번엔 작은 붕어가 한마리 나옵니다
얼른떼고 다시 투척하니 곧 이어 입질이 다시 들어옵니다.
챔질하니 이번엔 9치급붕어가 제법 힘을 쓰며 나옵니다.
계속 입질이 들어옵니다.
붕어 누치 끄리 마자 동자개등 강계에 사는 물고기들이 골고루 나옵니다.
아침 입질 타임이 되니 이곳 저곳에서 입질들이 들어오고
연신 챔질들을 하고 잡아내느라 낚시터가 갑자기 부산스러워 졌습니다.
옆의 어르신도 계속 고기를 낚아내십니다
"잡았다 "
"또 잡았네 이번엔 붕어여"
옆에서 연신 실황중계를 하십니다.
한참을 낚시에 열중하는데 옆 어르신께서 다른걸 낚아 내십니다.
"이게 뭐꼬 ? 이순자 붕어 아닌가 ? "
가서 보니 부루길 한마리가 낚시에 매달려 있습니다.
"어르신 그 고기는 부루길 이라고 합니다 이순자 붕어가 아니고"
" 여기선 다 이순자붕어라고 혀"
전두환이 마누라가 외국에서 갖다가 여그다 풀었다나봐"
"그 고기 맛이있나요 어르신? 전 한번도 부르길은 먹어보지 못했네요 "
"가시가 많아서 귀찮치만 쫄여 놓으면 아주 맛나
쪼림은 농어보다 훨씬 나서 이따 가서 농어랑 같이 쪼리면 되겠다"
"농어도 잡으셨어요?"
"그려 아까큰놈하나 잡아놨지"
" 그래요 ? "
당시 전국에서 처음으로 팔당댐에 풀리기 시작했던 배스는
민물 농어라는 이름으로 아주 비싼 값 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살림망을 들어 보니 30정도 되는 주둥이 큰농어가 한마리 들어있습니다.
"어르신 돈 버셨네요 비싼 농어를 잡으셨으니 회로 잡숴야죠?"
"농어회는 한 둬번 먹어 봤는데 내 입 맛 에는 아니드라고 "
"이순자 붕어도 농어도 회보다는 쪼림이 더 맛있어 ! "
해빛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파라솔들이 하나 둘씩 펴지기 시작하면
밤 낚시를 했던 낚시꾼들이 한명 두명 철수를 하기 시작 합니다
시간이 계속 흘러 오전 9시반쯤 되면 거의 모든 낚시꾼들이 짐을 꾸리기
시작하고 어르신도 나도 낚시대를 접기 시작합니다.
철수 준비를 끝내고 아쉬움에 낚시대를 한대만 피고 낚시를 계속 하고있는데
저멀리에서 쩌르릉 쩌르릉 자전거 신호음이 들려옵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낚시하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잠시후 베이지색 공무원 잠바를 입고 민방위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가 물가에 나타나서 손을 입에모으고 소리를 지릅니다.
" 이제 그만 하고 가유~~~~!!! "
그 소리가 들리면 낚시하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철수를 합니다.
그곳에 처음 낚시온 사람이나 성격 안 좋은사람들이
단속나온 공무원에게 불평들을 해댔는데
어르신 옆자리의 낚시꾼이 낚시대를 접으면서 연신 일팔일팔 해댑니다.
그걸 보시고 어르신이 한 말씀 하십니다.
" 어 ~ 허 이사람아 ! 그럼 안되네 ! 공무원이 뭔 죄가 있나 ? "
"다 시키는데로 하는 사람들인데 여기도 저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믄 낚시를 아예 못혀!"
따끔하게 한마디 하시는 어르신을 보고 단속원이 다가와서 인사를 합니다.
"어이구~ 윤회장님 낚시 오셨습니까 ? "
"그려 김주사 오랜만이네 공무 보시느라 노고가 크시네! "
"회장님 어떻게 재미는 좀 보셨습니까?"
" 먹을만치 잡았네 그려 부친께서도 무고 하시지?"
"아~예 잘 계십니다 회장님"
"요즘도 능내퇴촌까지 단속하러 다니나 ?"
"아니요 요즘은 그쪽 단속은 보트로 합니다 회장님
"저는 양수리 시내와 여기만 나옵니다 회장님"
"그랴? 단속하는 보트가 생겼나?"
"예! 이제 거의 보트로 단속하고 수심 낮은곳이나
보트가 못댕기는 곳으로만 제가 갑니다. 회장님"
두분이 이야기하는 동안 거의모든 낚시꾼들이 철수하고 있었고
나도 짐을 다 꾸려 일어나려는데 회장님이 눈짓을 하십니다.
"자네 오후에는몆시쯤나오는가?"
"원래는 낮에도 한번 더 나오고 3시쯤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제가 가면 좀 더 노시다 가시지요 회장님 "
"제가 않나올수는 없으니까 오후에 한시간 더 있다가 네시쯤 나오지요"
"그랴 !그럼 멪시간 더 놀다갈까 ?"
"지금 하시지 마시고요 좀 쉬시다 한시간쯤 있으면
단속보트가 이 앞쪽으로 지나 가니 보트가 지나간 다음에 하십시요 회장님 "
" 그래 고마워 김주사"
낚시꾼이 철수 하는걸 끝까지 보고 있던 김주사는
잠시후 자전거를 타고 떠나가고 어르신과 나는 다리 밑 교각 그늘로
자리를 옮겨 야외용 돗자리를 피고 않았습니다.
버너에 물을 올려 라면을 끓여서 한그릇을 어르신께 올리고 아침에사온
소주를 한잔 따라 어르신께 건냅니다.
"이거오늘 자네 신세 톡톡히지네 그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르신 한잔 쭉 하십시요"
어르신이 한잔을 들이키십니다.
"크~~~~ 으"
"자! 자네도 한잔받게"
따라주신 소주를 고개를 돌리고 단숨에 들이킵니다.
기분 좋은 알싸함이 식도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고
뱃속에서 이내 화끈화끈 열이 올라옵니다 .
라면을 한젓가락 먹어봅니다.
후루루룩 몆번 씹지도 않았는데
꼬들꼬들한 라면의 감칠맛이 남아있던 소주의 쓴맛까지
함께 가지고 입안에서 목안으로 넘어 갑니다 .
라면국물을 한모금 마시자 얼큰함에 뱃속까지 다 시원해집니다.
주거니 받거니 ..........................................!
어르신과 둘이서 라면 냄비를 국물까지 다 비우고 소주병을
전부 비운뒤 어르신은 다시 낚시하러 가시고
나는 돗자리에 등을 깔고 누웠습니다.
시원한 교각그늘 돗자리에 누워 있으니 기분은 알딸딸
배는 부르고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게 없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낚시고 뭐고 만사가 다 귀찮아졌습니다.
그냥 다리밑 그늘에 누워 라디오를 꺼내 음악을 틀고
자다 깨다를 하다 보니 물가엔 도둑 낚시꾼들이 한두명씩 늘어납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눈물 젖은 두만강의 구수한 노랫말을 따라 부르다
스르륵 다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쩌르르릉~~~~~ 쩌르르릉~~~~~
잠결에 들리는 자전거 신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니
귀에익은 목소리가 꿈결인양 들려옵니다.
"이제 그만하고 가유~~~~!!!!"
돗자리에 누워 낚시인이 쫒겨 나는걸 보니
오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편안합니다
시계를 봅니다
오후 4시30분
마음착한 김주사가 동네 어르신 좀 더 노시라고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늦게 나왔습니다
이제 김주사가 갈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내일 오전10시까지는 맘놓고 낚시를 할수가 있는데
줄에 메여 물속있는 잉어를 바라보자
내마음은 다시 복잡해 졌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려도 잉어가 죽거나 상하는건 아니어도
산모에게 좀 더 싱싱한 놈으로 갖다 주자는 생각도 들고
그냥 들어도 무거운 낚시짐에 저 무거운 잉어까지
같이 운반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도둑 낚시인들이 하나 둘씩 쫒겨나 다리위로 올라갑니다
아마 저들중 반 이상은 위에서 기다리다
김주사가 가고나면 다시 내려 오겠지요
낚시 가방을 메고 어르신이 오십니다
어르신께 사정 말씀을 드리고 같이 양수리 시내로 나갑니다
어르신 댁에 낚시 가방을 맡기고 비닐 비료푸대를 한장얻어
농어 쪼려서 밥먹고 가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정중히사절하고
수건을 한장 빌려 다리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속에서 잉어를 꺼내 비료 포대에 넣었습니다
커다란 놈이 푸드덕 거리자 가슴으로 감싸 않고 넣어서
옷은 흙탕물에 잉어체액에 뒤범벅이 됩니다
쓰던 수건과 어르신께 빌린 수건을 물에 적셔서
잉어를 감쌓습니다
잉어를 들고 다리위 도로가로 올라 갔습니다
잉어가 정말 무겁습니다
버스 정류장도 아닌 도로에 얼마쯤 서있자
버스가 한대 와서 섭니다
우연인지 버스문이 열리자 아침에 뵈였던 기사님이 계십니다
기사님께 사정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사님 이걸 들고 서울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는 서울까지 간다는 택시가 없네요
비린내는 좀 나지만 다음 정류장인 덕소까지만
타고가면 안되겠습니까?"
바로 한마디 하십니다
"타유!"
비료 푸대를 들고 버스에 오르니 기사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와 ~ 크다 큰걸 잡았네유"
버스에는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잉어를 보자 몰려들어 구경들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 말씀을 기사님께 드렸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기사님 덕소에서 내리겠습니다"
"서울로 간다면서유?"
"예! 기사님 덕소에서 택시를 타려구요"
"그럼 택시비가 많이 나올텐데유 ?
에~이 그냥 종점인 교문리까지 가유!"
"예?기사님 그럼 저는 좋지만 차에서 비린내가 날텐데요?"
" 괜찮어유! 창문 좀 열면 되지유 뭐~"
기사님의 배려로 교문리까지 버스를 타고
교문리에서 웃돈을 조금 더 주고
택시를 타고 서울 친구집으로 갔습니다.
친구는 없고 집에는 산모만 있었습니다.
가져간 잉어를 보더니 기겁을 합니다.
목욕탕 욕조에 물을 받아
잉어를 담가놓으니 욕조가 꽉 찹니다
꿈벅 거리는 커다란 잉어눈을 바라보니
한편으론 잉어한테 미안한 마음도듭니다.
기다렸다 친구도만나고 저녁도 먹고가라는 친구 와이프의 말에
산모를 부려 먹으면 애기가 욕한다고 농담을 하고
고맙다는 말을듣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가는도중 옷가게 유리에 걸려있는
대형거울에 내 모습이 비쳐집니다.
거울안에는 잉어채액이 말라붙어 얼룩과 흙탕물 자국으로
뒤범벅이된 옷을 입고있는 꾀제제한 내가있습니다.
보이는 행색은 노숙자 같아도 마음만은 날아갈듯 가볍습니다.
.
거울을보고 씩 한번 웃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오자마자 행복했던 하루의 여운을 느끼며
피곤에 지쳐 잠에 빠져듭니다.
꿈속에선 다시 양수리로 날아 갑니다.
파란하늘 시린 햇살 아래
흐르는 물결따라 찌가 떠 있습니다.
수몰된 나무위에 물새 한마리가 않아 있습니다.
물에 잠겨있는 나무를 보고 있다가
꿈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어 납니다 .
쩌르르릉~~~~~
쩌르르릉~~~~~~
"이제 그만하고 가유~~~~~~!!!!"
지금이 꿈 이 였으면 좋겠습니다.
꿈이라 잠에서 깨어나면
그때 그 시절 그 다리 밑 시원한 교각 그늘 아래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양수리 도둑낚시의 추억 ..( 재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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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는 인사 후 읽으러 갑니다
씨 >>>>>>>> 앵 £》》》》》
예전에 읽었던거잖우,,,,,,,
내추천 물어내유,,,ㅠㅠ
삼봉바늘에 신장 떡밥 낚시...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ㅎ
동무들과 대낚, 릴(초기 모델은 깔깔이 릴)을 장짐지고 댐이나 주로 강낚을 다니던 혈기방탕했던 시적이 생각납니다..
내청춘 돌리도~~~~~~~~~~~~~~~~~~~^
멋지십니다.
건강하세요.
양평쪽 철조망밑 개구녕 사이로 들어가 잉어향어 낚시하던 그때가 그리워 집니데이ᆢ
댐에서 홀로 5~6박 날밤새던 내 청춘도 돌리도~~ㅎㅎ
간만에 추천 꾹~^-^;;
소박사님이 이런 분이셨군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어제,오늘에 걸쳐 이틀간 읽었슴미더
좋은글 정말 잘 보았슴미도......^========^
시간 되시면 따끈따끈한 글도 올려 주시면
억쑤로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교문리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아련하게 남아있네요..
소박사님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추억으로의 여행같아서 왠지 힐링되는 기분에 로그인까지 하여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일전에 찾아가며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
놓친 작품이 있었네요^^
투표날이라 그런지 손님 뜸한틈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나실때마다 짧게라도 한편씩
써주시면 너무 좋을것같습니다~^^
역시 소박사님은 자게판 보다 추억의조행기에 자주오셔야겠습니다
새로운 글 기다립니다 ~~~~
ㅋㅋㅋ
한편의영화처럼 그림이 슬로우 비디오가 되어
내머리에 자세히 그려지내요..
저는...그곳에서는 낚시는 못해봤지만
교문리.덕소.마석.샛터.청평.현리
이곳들 지명이 익숙한것은
저또한 한강에서 낚시를 많이했었지요
샛터에서.현리에서
지금도 가끔 꿈에 그곳에서 낚시하던
꿈을 꾸곤 합니다
소박사님
조행기 잘읽었읍니다
기가막힌곳이 있지요
밤에 간드레 불빛에 찌가 환상이지요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소박사님 왕대박입니다
카바이트 넣고사용하는 칸델라 라고부른기억이 불빛에 야광테이프붙인찌 입질하면 반짝반짝하고..........
그리고 다사용한거 버린거주워다 물에풀어서 고기잡은 기억이나네요(짐생각하면 농약푸러개기잡아먹었죠 카바이트^^
잼나고 소중한 옛기억 추억을되살려주셔서 감사혀요.
역시소박사님이십니다 추천꾸우.............우욱 않하렵니다 ^^넘마니받어심 배부러시잖어요 ㅋㅋ
비오는저녁이네요 그래도 좋은 저녁시간들되세요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추억을 떠올리며
가슴 아련함이 있는것
그래서 추억은 멋있죠
소박사님이 재연재를 하면서까지 올리신 이유가
있으신듯 합니다
여기는 추억의 조행기방이니까요 ^^
글쓴이를 안보고 글을 읽다가..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첨으로 돌아가서 다시보니 글쓴이가 역시 소박사님이시네요....
소박사님..조행기란에서 자주뵙고싶어요..소박사님글 역시 재밋어요..
"지금이 꿈 이였으면 좋겠습니다.
꿈이라 잠에서 깨어나면
그때 그 시절 그 다리 밑 시원한 교각 그늘 아래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말로 가슴이 뭉클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정말 그러면 너무너무 좋겠습니다..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달달한 추억이시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
호흡도 가빠지고 중간이음매도 탁탁 막히고ㅡㅡ
박사님의 글을 몇번 읽으며 꿈결 같은
시절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ᆞ
덤으로 누더기 같은 이야기 보따리도
풀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낌니다ᆞ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ᆞ
만세!
허물 없이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입가에 미소 머금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덕소로 해서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암튼 예전에 양수리쪽 줄을 잡고 물건너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는데....
덕분에 옛 추억과 함께 소박사님의 진수를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전 처음이라 재탕아닙니다..
팔당댐 밑 배견지도 해보고 축대 식당에서 밥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참 좋은 시절이었는데..
갑니다.
중학교적 양수리 다리건너기전 조안이라는 마을에 사는 친구와 필자님이 낚시한 그곳을 몇번 가보았습니다.
홍수가 크게나서 양수리에서 향어 가두리가 터지는 바람에 어분을써서 낚시하면 50짜리 향어가 줄이어 낚이던 그곳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리고 그 단속반 경찰차같은 싸이렌을켜고 멋진 모터보트를타고 연안까지 막 달려들었었죠.
이젠다..흘러간이야기이지요,,아마지금낙시하시는분들은잘모를겝니다
오십대후반이나육십대초반정도는되어야알지요,,,잘보구갑니다
몇번을읽엇는지모릅니다 .분명한것은 몇번을읽어도 재미잇다는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잘읽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