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어둠속에 몸을 맡기고 이른아침 동이 트기 전까지,
케미 불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내 시름들을 모두 가슴 한켠으로 밀쳐두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처럼 빗줄기가 파라솔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리는 주말 오후엔
수초앞 빨간 찌 끝을 바라보며 깡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어 지지만
이제 트렁크속의 낚시장비들은 모두 창고에서 여러해 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낚시를 그만둔 세월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변해 버리고 까마득히 되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월척지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대하면서,
정신없이 물가를 찾아 헤매던 옛 기억하나가 아련히 떠오릅니다.
제가 사십중반 때 였으니까 십여년 쯤 전의 일입니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 정문에서 서쪽으로 도로 끝 부분에 "내지"라고 하는 작은 저수지가 있습니다.
도시 속 이지만 농촌 풍경이 그대로 살아있는 조용한 곳이지요.
저수지 제방이 마을 입구인 셈인데 입구의 고목을 비롯해서 제방을 따라
운치넘치는 커다란 소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곳입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않았기 때문에 가끔 나무그늘아래 에서
한가롭게 쉬었다 오기도 했습니다.
몇해 전 마을공동으로 연(蓮)을 파종해서 지금쯤 아마 연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을것 같습니다.
지금도 낚시를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
정자가 있던 자리 부근 제방아래 에서 저녁무렵에 낚싯대 한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말풀이 가득 우거져서 여기저기 펼쳐볼 여건이 아니었고 파라솔조차 펴지 않았던 것으로
아마도 늦여름이었거나 가을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이외엔 낚시꾼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낚시를 한다기 보다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게 옳은 표현이 겠습니다.
가장 간편한 미끼인 캔옥수수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끔 피라미들이 톡톡 건드리는 움직임 외에 찌는 미동도 없었습니다.
옥수수 알갱이 열댓개 정도면 밤낚시 까지 완주 할 수 있는 釣力 이었으므로
나머지 알갱이들은 의외로 좋은 안주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릴때 쯤,
중년의 사내 하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잠시 내 낚싯대를 보고 찾아온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일부러 찾아와 준 손님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제가 던져놓은 찌 끝을 그와 저 둘이서 그렇게 말없이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먼저 말했습니다.
"여기 작년에 물 빼서 고기가 없을건데요..."
"아, 그랬군요...!"
저의 연배와 비슷해 보였던 그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눈빛이 살아있다는 느낌이었고
처음 대하는 사람이었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저수지 저편 산아래 쪽을 가르키면서 저 안쪽에 빈집이 하나 있고
몇해전 부터 거기 들어와서 살고있다고 말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겐 내가 편하게 여겨 졌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그는 낚시에 정신 나간것 처럼 빠져 들었던 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낚시 때문에 그의 인생의 굴곡이 찾아왔다고 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처럼 몰입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그가 말하던 이야기의 시점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여년 전 쯤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기업에 근무했던 그는 너무 낚시를 좋아한 나머지 가끔씩
근무에 지장을 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굳이 낚시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취미생활 때문에 회사를
결근한다던지 조퇴한다던지 해서야 순탄한 직장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러던 중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남해의 어느 섬으로 혼자 낚시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통신수단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이라 기상 상태에 따라 고립되어 버릴 수 도 있고,
일단 외딴 섬에 고립되면 헤엄쳐서 나오지 않고서야 대책이 없었다고 합니다.
무단결근 보름에다 가족들과도 불통이었으니 온전할 리가 없었겠지요.
실직과 함께 당시에 사귀고 있던 여성과도 이별하게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고 하네요.
어디 낚시 뿐이겠습니까 마는, 취미는 취미일 뿐이어야 하겠지요.
어쨋든 그 일을 시작으로 순탄치 못한 인생행로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엔 등산복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그마저 여의치가 않아 재고만 쌓여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근무하시는 회사에 여직원들이 많으시냐고. 여직원이 많으시면 혹시 가지고 있는
등산복을 좀 몇벌이라도 처분할 수 있겠느냐고.
가지고 있는 등산복은 정말 좋은 제품임을 자신할 수 있다면서 여기 잠시만 계시면
샘플을 몇개 가지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근무하는곳엔 여직원들이 많지 않습니다.
샘플은 제가 몇개 구매할 수는 있지만 판매 약속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쨋든 잠시만 계세요, 금방 다녀올께요". 하면서 자리에서 그가 일어섰습니다.
해는 이미 기울어서 어둑어둑해 졌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던 산 아래
빈집쪽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일때문에 궁지에 몰릴 일도 없을테니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케미 하나 꺽어서 살짝 물위에 띄워놓고 있으려니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남자 상의(上依) 하고 여자 상의 하나씩 가져왔습니다. 여자상의가 재고가 많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입어보시고 괜찮다 생각드시면 소개 좀 해 주십시요.
만원씩만 받으면 됩니다".
하면서 명함과 함께 내 밀었습니다.
"예, 저희 여직원에게 한번 의뢰는 해 보겠습니다" 하면서 만원짜리 두장을 꺼내
받으시라 했으나 극구 사양하며 어둠속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저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로 인해 바쁘게 지내게 되었고
등산복을 입어볼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한참을 지난 후, 여직원 둘이서 인터넷 쇼핑몰 앞에서 뭔가 소근대고 있는것을 본 순간
그 일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저희 여직원 중 하나는 여직원들 사이에 제법 입김이 잘 먹히는 여자 였습니다.
직급이나 부서 등을 떠나 리더격인 여직원이었지요.
제 이야기를 들은 그 여직원이 대뜸,
"그런일이면 얼른 말씀하셔야지요. 내일 등산복 가져와 보세요".
됐구나, 저애 정도 넉살이면 수십장 정도는 가능하겠다 싶었지만
아뿔사, 그 명함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길이 없었습니다.
초록색 바탕의 촌스런 명함이었는데 그때 입었던 평상복과 집안, 사무실 온 구석을
다 뒤져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 저수지에 그 시간쯤에 몇번이나 그를 찾으러 갔는지 모릅니다.
왜 그랬는지 산 아래 있다는 빈집까지 찾아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그를 만날 수 있기만 기대 했었습니다.
그 뒤로 저도 회사에서 명예퇴직 했고 사업에 실패도 해 보았고
그 처럼 어려운 시간도 보내 보았습니다.
나이 들어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긴 하지만 가급적 예전의
여유롭게 낚시하던 추억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받았던 검정색 등산복 상의(INOS**I 라고 새겨진)가 그의 말 대로
정말 좋은 기능을 지녔다는것과 특히 힘든일 할때 너무나 유용한 옷임을
요즈음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더더욱 그에게 미안하고 그가 그리워 지는 이유 입니다.
옛날에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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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허와실은 세월이 지나야 나을 찿아오나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잘되어있을때는
남의 사정이 잘 느껴지지않죠,,
그리고 월척하나님께서도 다시 낚시하세요.
생각해보면 물가의 비좁고 구질구질한 자리에서 모기에게 시달리고 불편하게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미쳐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사흘만 안 가도 마음이 불만족스럽고 뭔가 부족한 느낌 때문에 안절부절하다고 또 그 불편을 감수하고 물가로 달려갑니다.
뭔가 모르지만 낚시에 그 무엇이 있나 봅니다.
사연 잘 읽었습니다.
삶의 활력소가 될 듯 싶네요.
하나둘씩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생각하면
살며시 미소가 번질 것 입니다.
저하고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주제 넘지만 한 말씀 드렸습니다.
좋은 글,
고맙게 읽고 갑니다. ...'꾹'
여름철 낚시는 활성도가 좋아서 입질도 시원하지만 대신 성가신 것도 많지요?
모기,파리,개미,거미,나방,뱀,개구리,지렁이,고양이,고라니,돼지,늑대,호랑이,쓰레기... 에혀.
늘 안출하시고 가실때마다 환상의 찌올림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저도 정년이 3년여..... 쉽지 않겠지만 후회없도록 남은 시간 소중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더불어 그분과 월척하나님 모두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리며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좋은 글 많이 들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님 께서는 오죽 하시겠습니까..
그나마 의류가 가격대비 실용성이 있는것 같으니 그분께선 추후
좋은 결과를 보았으리라 믿어집니다
취미는 적당한 선에서 컨트롤타워로 활용을 하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당시엔 몰랐죠. 주위에 어울리는 사람도 많고 스트레스 받는 생업보다 재미있었으니까요.
지나고 힘들어지고 나서야 원인을 알게됐죠. "취미활동" 이었죠.
지금은 낚시 하나만 하고 있습니다.
낚시는 비나 바람 등으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상황이 있어 그나마 부득불, 조절이 되는 듯 싶습니다.
예전 취미는 장비자랑, 서로간 경쟁 등으로 점점 "고수"가 되기위한 분위기에 휩쓸리며 시간, 지출이 늘어나게 되더군요.
낚시는 혼자서도 가능하다는게 장점인것 같습니다.
모든 취미활동에는 그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난 취미지만, 그사람은 생업이죠.
생업하는 사람들 쫒아가다가는, 결국 내생업에 지장이 생기더군요.
월척하나님 글을보고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조절이 가능할 만큼만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