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쯤 전인가...
지금의 서식처로 옮기기전에 낚시천국 구미에서 살 때 회사에, 타 사이트에 가끔 올렸던 조행기들이 있어
그 중 반응이 있었던 글 몇 편 올려 보려 합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님들의 조행기들 눈팅만 한게 죄송스러워서리...
눈은 말똥말똥..시간은 12시를 넘어섰고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다.
이제 집을 나서면 새벽에 일찍 간거지 밤낚시 간게 아니다.
소심한 나로서도 양심에 거리낌이전혀 없다.
마눌은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피곤한지 누우면 뻗는다.
그래도 애가 쪼금만 끙끙대면 벌떡 일어 나는데.. 나는 왔다갔다 별 난리를 떨어도 모른다.
그래... 많이 벌어 나 좋은 낚시대로 개비하게 용돈 좀 마니줘라.
잠든 마눌의 마빡을 다정하게 한번 쓰다듬은 후 침대를 빠져 나온다.
이제 조용히 챙겨서 슬쩍 빠져 나가는 일만 남았는데... 아 씨..이놈의 비가 원수다.
TV를 보다가도 10분 간격으로 밖을 살핀다... 그칠 기미가 없다.
이럴 땐 일기 예보도 더럽게 잘 맞는다.
비오는 밤에 저수지에 진입해서 낚시대 펼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늦은 밤 조용히 오로지에 들어가서 사고 한번 칠려던 계획은 무산이다.
새벽에 진입해서 피라미나 배쓰 성화없이 오전낚시를 할 수 있는곳으로
출조지를 다시 골라야한다.
저번주에 갔던 군위 위천 사직리 보에 갈까? 짭짤했는데... 물이 불고 있기 때문에
재수 없으면 떠내려 갈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떠올려 보곤 이내 머리를 흔든다.
한국 중년 정말 갈 데 없다...
문득 작은 방의 책꽂이가 떠오른다. 정기구독한 낚시 잡지가 2년치...
의성,군위,왜관,성주,김천 이란 단어만 찾는다. 몇군데 후보지를 챙겨서 PC로 간다.
PC를 켜서 지도로 다시한번 위치와 약도 거리를 확인한다. 세상 참 좋아 졌다.
출조지 선정이 끝나고 나니 3시다. 이제 배가 고프다.
라면을 끓여 먹고 우중낚시를 준비한다. 파라솔,장화, 우의,모자,...
도개면 신림지.... 진입로가 험하다.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 했는데
중간에 진짜 진입로와 만났다. 차바닥 다 긁어먹고나서....
제방위에 올라서니 여기저기 주차한 차가 예닐곱대는 되겠다.
뭐이래 많아... 랜턴을 들고 비를 맞으며 저수지를 둘러본다.
자리잡기가 만만치가않다. 어렵게 고른 후,
주위가 환해질 무렵, 겨우 자리 잡고 담배 한대 무는데 그제서야 차들이 동시에 철수한다.
아 쒸... 쫌만 일찍가지... 잠시 갈등 후 낑낑대며 자리를 옮긴다.
낚시대 펼친 후자리 옮기면 두배로 힘들다.
상류인데도 3칸대 기준 수심 약 4m ... 엄청나다. 필시 최근 준설을 한것일게다.
8시 ... 이떡밥,저떡밥,지렁이,옥수수,... 별짓을 다해봐도 입질은 없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두더지 팩으로 파라솔을 단단히 고정시켰으나
날라간 파라솔 줏으러 여러번 뛰어 다녔다. 파라솔 줍다가 미끄러지면서 물에 빠질 뻔 했다.
지병인 무좀 심한 오른발에 또 물이 들어 갔다. 비러무글... 안되겠다. 이번엔 의자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이젠됐다. 미끼를 갈고 캐스팅을 위해 엉덩이를 드는 순간 의자까지 뽑아 들고 굴러간다.
저수지에 아무도 없으니 다행이다. 스타일 완전 구겨진다.
고아텍스 쟈켓, 철벽 우의, 장화,모자... 다 소용없다. 안경엔 빗물, 빤쓰까지 흠뻑 젖었다.
따뜻하게 뭘 좀 끓여먹을래도 이상황에선 엄두가 안난다.
스타렉스 가진 김태훈이 생각난다.
이럴 때 차안에서 끓여 먹으면 죽일 텐데...그 시키는 좋겠다.
교회도 자주 안가는 넘이 일욜날 낚시 안다니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큰차 사자니깐 반대하던 우리 마눌도 밉다.
도대체 내 이런 고생을 아는지 모르겠다.
한손으로 파라솔을 붙들고 한손으로 차가운 삼각김밥을 씹는데 목이 메인다.
도저히 안되겠다. 약이 필요하다. 참이슬을 한방울 흡입한다. 역시.. 좀 낫다.
한병을 비우고 나니 상황이 덜 고생스럽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만평도 안되는 조그만 저수지에 물결이 아닌 파도가 인다.
철썩철썩 발밑에선 제법 파도소리가 들리고 꼬박 밤을 샌 탓에 이젠 잠이 온다.
안돼 이대로 잠들면 안돼.... K2 영화 장면을 꿈꾸며 거의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가 뒤통수를 툭 친다. 에이 씨...머냐?
화들짝 깨보니 파라솔이 쓰러지며 봉에 뒤통수를 맞았다.
....어차피 다 젖은거 ... 아예 파라솔을 접고주변물품을 모두 정리해서
트렁크에 실어 버리고 떡밥은 비닐에 싸서 두고 비 맞으며 그냥 한다.
아무래도 낚시텐트 하나 장만해야 겠다.
마눌에게 뭐 뽀리 칠 껀수가 없는지 잔머리를 굴려본다. ...
가까운 누굴 죽여서 조의금을 타낼까? 그럴려면 한번에 여럿 죽여야 할텐데...
그러다 죽인사람 헷갈려서 뽀록나면 되려 내가 맞아 죽는 수가 있다.
메모하는 습관은 정말 중요하다. 난 머리도 안좋은데 메모도 싫어하니...
그냥 카드 긁어 놓고 며칠 집에 들어가지 말까? 웃고 있으면 살살 때릴지도...
아냐 그랬다가 담달 용돈에서 까고 주면 어떡하지?
사주면 말 잘 듣겠다고 애원해 볼까?
아...머리속이 복잡해 진다. 담에 생각 해보자.
그럭저럭 9시. 몇번의 입질 비스무리한게 있었지만 물결 때문에 챔질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다. 3.0칸의 미끼를 갈면서 2.6칸을 힐끗 바라보던 순간...
찌가 없다. 물결 때문인가 하면서도 손은 이미 손잡이에 가 있다.
순간 초릿대가 옆으로 짼다. 본능적인 챔질, ... 수심 4m에 밑걸림 없는 맹탕못
손맛 보기엔 충분한데... 별로다.. 큰 저항없이 나온 놈은 의외로 길다.
혹 잉언가 ... 눈을 비비고 다시본다. 수염이 없다. 붕어다! 만세...
떨리는 손으로 계측하니 29cm ... 아까비... 배를 쫌 눌러보까... 쫌 더 길어지게...
계곡지 답게 체고가 낮고 긴 편인데다 산란 직후인지 비늘이 거칠고 배가 홀쪽하다.
별로 힘을 못쓴 이유를 알겠다.
그만 접을까 하다가 기운을 내서 좀더 부지런히 품질을 하고 안경을 닦아가며
아프도록 째려 보았지만 더이상의 조과는 없다.
올해 최대어로 등극한 녀석에게 다음에 1.3cm 더 커서 만나기로 약속을 받은 후 보내주고
철수길에 오른다.
옛날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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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올려 주세요.
재밋게 읽고 갑니다~~ㅎ
자주 글올려주세요.
카드로 낚시텐트 질러버리셨나여
낚시갈때 생각 행동
저랑비슷해서 한참웃었읍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웃어습니다.
글잘쓰시내요 다음글 기대해도?
^^
재미나게 잘 보고 갑니다...
마치 제가 주인공 인 듯 한 착각이....ㅋㅋ
몇년지나 댓글다니 늦엇다고 책망 마십시요
잘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