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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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1. 고열과 지속적인 통증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이상 야릇한 경험에 대해 나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했고 아내는 얼굴과 팔 다리의 긁힌 상처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지만 풀숲을 헤치다 가시덩굴에 쏠린 자국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을 회피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 주일이 지나고 첫 증상은 배뇨의 이상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단순한 요로감염에 의한 탁한 오줌줄기가 아니라 골반과 허리 갈비뼈가 욱신거리는 기분 나쁜 증상이 불면과 더불어 찾아 왔는데 혹 옆에 누운 아내가 눈치챌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아랫배를 짓눌러 신음이 새어나지 못하게 고통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체적 이상은 물집이 생기고 있었다. 물집은 면도중 귓볼 뒤에붙어 콩알만 하게 잡혔는데 하루가 지나고 갯수가 늘어나면서 목덜미 아래 쇄골까지 번졌고 며칠 후에는 가슴을 내려와 겨드랑이까지 번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집을 잡아떼고 터뜨렸지만 갯수와 범위가 늘어나면서 그마저 포기해야 했다. 검은색, 붉은색, 주황색의 짓물과 고름이 번들거리는 물집이 내 몸을 잠식하는 동안 환각증상과 악몽, 가위눌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또한 손바닥과 발바닥의 각질이 심해지고 피부가 고목나무처럼 거칠어지고 갈라졌다. 눈가에는 기미와 다크서클이 짓게 깔리고 한 눈에도 나는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불어 손발톱의 길이가 기형적으로 길어지고 단단해졌으며 깎아도 삽시간에 원래대로 복원되어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워졌다. 신체의 이상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그 해 여름을 나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도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지 못하고 긴팔 옷으로 36도의 찜통더위를 견디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외출을 위해서는 마스크와 장갑 역시 필히 지참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달의 시간이 흘렀고 그즈음 아내는 백방으로 나를 치료하기 위해 수소문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처방이나 심지어 이름 난 무당의 굿과 종합병원의 저명한 의사조차도 병명이나 증상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통증에 짓눌리는 밤을 견뎌야 하는 나날들이 나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했고 점점 무시무시하게 변해가는 내 육신에 대한 혐오감과 병변에 대한 자기학대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오지마, 오지마! 아빠 가까이 오지마 제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 아이 슬기에게도 접근을 막아야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슬기를 품에 안고 다른 방으로 가서 북받친 설움과 슬픔으로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눈을 뜬 곳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운 병실이었다. 발작과 환각상태가 실신과 졸도에 이러게 한 것이다. 나는 아득한 정신을 꼿꼿히 부여 잡고 담당의사와 아내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가망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이... 의학적으로 부군의 병은 치료할 수가 없어요 . 독특하게도 증상의 악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장기를 비롯한 신체 내부에는 전혀 손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MRl와 자기공명촬영에서도 그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선생님 그럼 제 남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네!! 치료할 수 없다면 죽는단 말인가요....." "지금으로선 어떤 치료도 무용지물입니다. 외부로 부터 감염이 있었고 그것이 진행중이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내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실 바닥에 쓰러졌고 소리내어 울었다. "선생님 제발 우리 그이를 살려 주세요 우리 슬기 아빠를 살려주세요. 제게는 너무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의 눈가도 동시에 하얗게 얼룩지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환자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환자의 신체가 이겨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의학적 소견으로는 치료불가라 저로선 더 이상 손 쓸 수 없지만 유전병리학의 최고 권위자이신 권박사님을 한번 만나 보세요 제가 주선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저도 부군이 쾌유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렇게 내 담당의사는 진료실을 나갔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의사의 손목을 잡고 매달렸고 나는 내가 처한 이 기막힌 현실 앞에 머리를 감싸쥐고 베개를 사정없이 내리칠 뿐이었다.

달구지님..따라

2편으로 이동..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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