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텨뷰.
나는 사랑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의 내가 가장 행복하다.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을 때가 없다.
내 곁의 가족들과 익숙한 친구들, 나를 제일 따르는 흰둥이와 밖이 내다보이는 조그만 창이 있는 내 침실을 사랑한다.
비가 세상 모든 것들에 부딪쳐 내는 소릴 들으며 누워 있는 뽀송하게 마른 아늑한 침대 위 이불의 느낌과
그 위에서 떠먹는 샤베트의 향기가 감미롭다. 창밖엔 비에 젖은 가로등의 붉은 불빛이 사랑스럽게 빛나고,
보이진 않지만 비와 구름 넘어 반짝 빛나고 있을 별들마저 사랑스러운 밤이다.
스물다섯. 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때 진실로 사랑을 사랑했었다. 세상은 온통 사랑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또한 나를 사랑하는 충만 된 행복에 가득 차, 별처럼 빛나던 삶이 내 삶이었다.
나그네의 길 위로 으스름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찾아오는 초조와 소란스러움 사이로 불온한 별이 슬며시 눈뜰 때.
그대여! 별이 아름답다고 처음 인식하던 그때를 기억하는가?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힘찬 감탄사가 꽃처럼 스스로 터지지 않았다면,
초롱한 별 밭을 스치던 가을바람이 ‘별은 아름답다.’고 영혼처럼 귓가에 속사여 주지 않았다면,
그대는 별이 만들어 놓은 아름답다는 관습과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임을.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들, 꿈꾸고 목말라 하는 것들, 늙은 노새 등에 얹힌 짐처럼 무거운 의무와 책임들,
세상의 모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점검해 볼 것.
스물여덟 살의 내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는 내 별을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내 별은
아름답거나 밝게 빛나는 보석이 아니었다. 밤이 더 이상 아름답거나 평온하지 않았고,
어둠은 내게 끝없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찾아들었다.
변함없는 건, 골목을 향해 난 작은 네모난 창. 그 창으로 황혼을 바라보며 이제 곧 나를 점령하고 들어올
어둠의 낯선 횡포를 떠올리며 내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내 손에 들린 내일 인터뷰 예상 질문지들엔 어김없이 그가 거론되어 있었다.
내 소설 속 어디에도 그를 언급하거나, 그를 유추할 수 있는 문체나 문장조차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정의와 날선 발톱의 진리는 그를 찾아내고 철저히 찢어발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방울의 눈물이면 족했다.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질 때,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 나오는 오열과 통곡이 없어도, 버림받은 순정과 짓밟힌 순결을 안타까워하는,
세상의 모든 날선 것들이 할퀴고 지나가는 파멸의 기마대와 그는 마탁 드리게 될 것이다.
그날의 일기는 ‘나는 사랑을 사랑한다.’ 였다. 아니, 나는 사랑을 사랑했었다.
사랑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믿었던 때, 나는 사랑을 사랑했고 늘 행복에 가득 차 있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일기를 마저 끝내기도 전에 더 행복해 지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나는
성급히 상자를 열어 z와 오후 쇼핑에서 신발을 꺼내 들었다. 시간을 때우러 잠시 들렸던 백화점에서 발견한 그 신발은
첫눈에 내게 충분한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을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신발을 바라보던 내 눈이 z와 마주치는 순간.
z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는 걸 이미 깨달은 것인지 한번 피식 웃더니 예정에도 없던 지출을 과감히 결정했다.
나는 “궈마워. 흥”이라고 한껏 콧소리를 냈지만 z는 예정에 없던 지출이라 그런지 입맛을 다셨다.
z에게 미안한 생각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한 것이 z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체
미쳐 감상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신발을 발에 신겨보았다. 약간 빈약한 느낌의 작고 앙증맞은 발에 착 안겨드는 느낌이
역시 너는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란 감탄사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특히 며칠 전 와인 빛 매니큐어로 칠해 놓은
둘째 발가락이 에찌 있게 드러난 모습은 신발의 색깔과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기집애. 넌 도대체 예쁘지 않은 곳이 어디니?” 신발을 신고 거울 앞에 서서 콧소리를 내며 즐거워 할 때,
z가 슬며시 거울 안으로 들어와 내 곁에 나란히 섰다. 나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키에 온순한 z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네가 큰 거니, 내가 작은 거니.” 쇼핑을 마치고 둘이 인증 샷을 찍으며 내가 물었을 때,
대답 없이 미소 짖던 z의 가지런한 치열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너의 가지런한 치열에 내 상큼한 사과를 한입 베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어찌 도도한 공주님이 백마 탄 왕자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니? ‘너의 가지런한 치열에 내 상큼한 사과를 한입 베이고 싶다.’
문득 오늘의 일기를 마감해야 할 문구를 찾았다는 느낌에 기쁨이 일었다.
대학을 문창과로 가게 된 이유가 이것이었다.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이나 꼭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열망 같은걸
가져 본적이 없었다. 대학 논술 과외를 받던 시절 과외선생이던 a는 가끔씩 비쳐지는 내 이런 언어들을 보고 문창과를
가보지 안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문창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창과 대학 4년은 내가 글을 쓸 재능이 없다는 것만 가르쳐 주었다. 글을 쓰기엔 나는 너무 행복했고,
세상은 너무 사랑스럽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열등감과 자의식, 본질에 대한 고민, 아픔과 상처, 분노와 질주. 나와는 거리가 먼 이런 단어들이 글 쓰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 순간부터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닫게 되었다.
행복에 겨워 세상에 대해 시를 쓰면 동요 가사를 써왔다는 놀림을 받았고, 단편소설을 써서 가져가면 동화를 써왔다는 놀림을 받았다.
언제나 낮은 학점을 받았지만 비참하진 않다. 비참함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몫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아도 행복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내가 사랑을 사랑하는 것에 지장이 된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문창과를 졸업한 후 내가 하는 일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영세 사업자들의 인터넷 블러그용 광고를 만들어 올리는 일이었는데,
보수도 보수려니와 광고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음식들을 맛보고 광고용 제품들을 사용해 보는 것들은 즐거운 일이었다.
친구들은 가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깎아 내리고 비웃기도 했지만, 그들이 아무리 나를 깎아 내린다고 해도
결국 밥값을 지불 할 때는 내 지갑을 기웃거리곤 했다.
일기를 마무리 지으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메일 한통이 도착해 있었다.
그새를 못 참고 메일 질이야. 크크. 메일을 열었을 때, 예상과는 다르게 z의 메일이 아닌 낯선 사람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교정 알바를 해줄 사람을 찾다가 나를 찾았다면서 자신의 글을 교정해 줄 수 있겠느냐는 메일이었다.
어떻게 날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 검색창에 교정 알바를 쳐보았다. 오래 전에 아는 사장님 부탁으로 교정알바를 했다는
일기 때문인지 검색에 내 블러그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의심이 풀리고 나자, 그가 어떤 사람일까 보다는
그는 어떤 글을 썼을까? 라는 궁금증이 더 강하게 일었다. 가끔 수준 미달의 글을 써 놓고 대단한 작품인 냥 거들먹거리는
얼치기 아마추어 작가들을 많이 접했던 터라 이번엔 또 어떤 글일까 하는 냉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글 쓰는걸 배웠지만 글을 쓸 수 없는 문창과 졸업생은, 어쩌면 이런 글들에 주석을 달고. 그렇게 밖에 못써요. 하고
꾸짖는 것에서 그 위안을 얻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물며 돈까지 지불하고 그 꾸짖음을 듣겠다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마침 시간이 조금 나서 맡을 수 있을 것 같네요.라고 쓴 건 언제나 시간은 남아돈다는 것이었고.
조건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하고 쓴 건 세상물정 모르는 초보 작가가 대뜸 큰돈을 지불하는 선택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a4 한 장당 만원 이면 너무 적게 드리는 건가요?’ 아싸, 그의 답신이 도착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교정알바라는 것이 기껏해야 a4 한 장당 천오백원에서 삼천 원 사이가 보편적이었기에 장당 만원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 같은 거였다.
“몇 장이나 되는데요?” “일단 써진 게 80장, 앞으로 써야 될 것이 120장정도 될 것 같습니다.” “원고지 말씀하시는 거죠?”
“아니요. a4.” 그의 답신을 받았을 때,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 졌다. a4 80장 분량이면 장편소설 한권분량이 다되는 분량이었다.
이런 아마추어 작가도 이런 분량을 써내는데, 원고지 80매짜리 단편소설조차 써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초라해 저서였는지,
아니면 앞으로 내게 다가올 운명을 예감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천천히 호흡을 맞춰보자며 그는 원고를 내게 보내 주었다. 그는 한 번도 글 쓰는 걸 배워 본적이 없고, 책도 많이 읽지 못했다며
오타나 맞춤법, 문단나누기와 비문을 걸러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그는 나이가 45세라는 것과 핸드폰 번호와 지방도시에 산다는
개괄적인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날 밤이 잊혀 지질 않는다.
신열을 앓는 사람처럼 열이 펄펄 솟아오르고 심장의 박동소리가 밤새 내 귀를 울려오던, 그날의 그 숨 가빴던
별들의 질주를 잊을 수가 없다. 심장박동처럼 깜박이는 마지막 커서에 눈을 떼지 못하고 맞이하던 그 새벽의 여명이 잊혀 지질 않는다.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 글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행복한척 미소 지어도 피눈물 뚝뚝 흘리는 내안의 내가 울고 있었다.
아무리 사랑을 사랑해도 내 안의 내가 아파하고 있었다. 천재적인 영감으로 가득 채워진 그의 글은 애써 외면해온
내 영혼의 아픔을 일시에 일깨워 냈다.
아팠다.
아플 걸 알기에, 좌절이 나를 무너뜨릴 걸 알기에 피하고 싶었던 내 운명을 그가 일깨우고 있었다. 그의 글이 아무리 많은 오타와
띄어쓰기 실수와 문법상 오류를 품고 있더라도,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재된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과
우주의 심장을 꿰뚫는 작가적 시각은 매끄럽지 못한 문장 안에서 더욱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한 번도 글 쓰는 걸 배워 본적이 없다는, 책을 많이 읽지도 못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소설은 단문으로 잘라 써야 한다. 시제를 맞춰야 한다. 시점을 맞춰야 한다. 문단은 어떻게 나누워야 한다…….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서 벗어난 그의 글은,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 것이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덧입혀지지 않는
순백의 영혼과 같은 것이었다.
그 새벽 나는 더듬거리며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말 글 쓰는 걸,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는 그 말이 사실인가요?”
내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은 누군가 정말 유명한 외국 작가의 글을 어설프게 번역해 내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마흔다섯이나 되는 나이까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숨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그도 깨어 있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회신이 날아 왔다.
'20년 동안 도망 다녔습니다. 한 줄의 글도 읽지 않았고,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밤 쓴 것을 추가로 넘겨 드립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열었다. 메일을 열어보고 놀란 건 그가 보낸 원고의 분량이었다. a4 열장 분량이 더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놀랄 틈도 없이 나는 그의 글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글에 시선이 닿는 순간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이미 내가 되어 있었다. 그의 글은 더 매끄러워 졌고 자유로이 내면을 훑고 지나는 문장은 더 정갈해져 있었다.
그의 글은 페이지를 더해갈수록 스스로 진화해가는 유기체 같았다.
'오늘 밤에 쓰신 게 맞나요?’ ‘예 일곱 시에 퇴근해서 지금까지 쓴 것입니다. 왜요?’ ‘그럼, 보내주신 원고는 언제부터 쓰신 건가요?’
‘열흘 전부터 쓴 겁니다.’ 장편소설 한권을 이렇게 깊은 내용의 글을 열흘 만에 썼다는 그의 말은 사실일까?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사랑했던 건 그였을까?
그의 글이었을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내가 갖지 못한 그의 천재성이었을까?
일주일을 소비했지만 결국 이십 페이지를 망쳐놓은 결과물을 그에게 보냈다. 어설픈 도공의 손에 그의 글이 가진 운율과 느낌들이
무참히 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십 페이지의 교정을 본건 어쩌면 내 안에 남은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의 글을 내가 배워온 소설이라는 틀 안에 우격다짐으로 맞춰 넣었다. 그의 글은 본연의 찬란한 빛을 잃고 병든 짐승처럼
우리에 갇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기뻐했다. ‘글을 쓰면서 너무 외로웠어요. 아무도 곁에 없었어요. 이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그의 문자를 읽고 왜 눈물이 핑 돌았는지, 왜 그를 만나 품안에 안고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왜, 그 순간 나는 20살이나 많은 그에게 젖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강한 모성애가 솟아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는 상처입고 어두운 굴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외로운 짐승 같았다.
그는 내 교정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리고 알려줬던 계좌에는 약속보다 많은 삼십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이 글이 공모에서 당선되면 별도의 보너스도 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당신의 글을 망치는 순간 절대로 당선될 수 없을 거예요.’
그의 문자를 받고 제일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글에서, 당신에게서 나는 떠날 수 없을 거예요.
그것이 저의 운명인 것 같아요.’ 운명을 믿지 않았던 소녀가 운명에 순응하는 처녀가 되는 순간이었다.
또, 한 주일 동안 나는 신열을 앓았다. 그의 글은 열 페이지 가까이 매일같이 날아왔지만 교정은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매일매일 그가 보내올 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의 글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한 영상을 만들어 내며 떠나질 않았다.
나는 이미 그의 글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그의 글속에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작품속의 여주인공이 되어 절절한 남자주인공의 아픔과 상처를 끊임없이 치유했다.
나는 상처 입은 주인공 b를 가슴에 품었다. b가 보내는 간절한 사랑을 받아드리고 그의 영혼을 이해하고 b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니 그가 b를 사랑하게끔 내게 세뇌를 걸고 있었다. 그의 분신일 b를 사랑하도록.......
문득문득 창밖에 z보였다. 큰 키만큼이나 기다란 그림자가 슬프게 드리워져 있었다. z를 만날 수가 없었다.
z를 변해버린 내 모습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z가 알고 있던 소녀가 아니었다.
한 번의 인생을 다 살아내고 그 기억을 가슴에 온전히 품어버린 괴물이 바로 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원고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단절된 것이었다.
나는 b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b의 곁엔 내가 있어야 했다. 마지막 장에서 b는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 하고,
뭔가를 저지를 것 같은 눈빛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불안감에 심장이 끊임없이 울렁거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는 내 문자와 메일에 회신이 없었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b는 일주일라는 시간을 나 없이 견뎌낼 수 있을까?
가끔 현실속의 나와 소설속의 내가 분열하고 있다는 자각이 일곤 했다.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에 대한 인지를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의 작품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의지는 일지 않았다.
그에게서 첫 번째 메일이 온지 삼주 만에 나는 삼년의 세월을 살아낸 사람 같았다. 나에겐 새로운 과거가 생겨나고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습게도 그것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메일을 받기 전의 내가
비현실적인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단편소설이 써보고 싶어서 이부작 내지 삼부작으로 짧게 쓸게요.
인터뷰 1. (단편으로 펜을 갈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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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신춘문예 응모작 올리는 곳이 아닌 이상, 좀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평하더라도 위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시는 분들도 다 그걸 감안하고 보실거에요...
계속 글 쓰시다 보면 좋은 글도 나올거에요...ㅋ
시대를 주름잡는 작가들도 싫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요...ㅋㅋ
쉽지 않네요.
지난번 저수지의 그녀 너무 황홀했습니다.
자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