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쉽게 상처받고 쉽게 병이 든다.
사람들은 몸의 상처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고 약을 먹는다.
일생동안 지속되는 몸의 상처나 병은 너무나 익숙해진 인생의 한 테마가 되었다.
상처가 생기고 치료받고, 병이 들어 병마를 쫒아내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육체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하는 육체보다 인간의 마음이 더 쉽게 상처받고,
쉽게 병이 든다는 것은 망각하고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육체의 상처와 병은 치료를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마음이 받는 상처와 마음에 드는 병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상처와 병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이로인해 삶이 얼마나 망가져 가는지 조차 느끼지도 못한체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병들기 쉬운 약한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있는지, 얼마나 큰 병이 들었는지 모른체 그렇게 살아간다.
한번도 치유해보지 않은 상처와 병,
그 실체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기에 치료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 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그 상처가 다 치유될 것이라고,
그 병이 다 나을 거라 믿고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그런 상처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덧나고 곪아서 언제가는 회복하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기고는 한다.
그녀가 그러했고, 영한이 그러했고, 강노인과 김노인이 그러했듯이....
내 마음엔 병이 들었다.
평생 앓아보지 않은 새로운 병이 내 마음속에 찾아든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해도 결코 완전히 치유될 수 없는 병을 얻은 것이다.
경험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더라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 경험을 함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마음속의 파장을 몰고 오고,
그로인해 마음엔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될수 없는 병마를 남기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그녀를 마음속에서 지우려 해도 결코 그녀를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녀를 알기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해도 결코 그녀를 알기전의 마음상태로 돌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한번 경험해 버린 일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돼는 것이었다.
경험하지 말아야 할것들을 경험하지 않고, 그것의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었다.
금단의 사과를 맛보아버린 것처럼 나는 그녀를 통해 경험하지 말아야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이렇게 마음의 병을 얻어
행복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조차 없는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밤 이후 아내는 많이 밝아졌다.
문득문득 깊은 내면으로 숨어들던 그녀의 눈빛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얻은 병마를 벗어 버릴 수가 없었다.
행복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녀의 이미지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럴때면 가슴 깊은 곳에 아픔이 느껴졌다.
병원 주차장에서 내게 내밀던 그녀의 희고 여린손과 나를 바라보던 그 안타깝던 얼굴이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그렇게 마음속에 각인된체 떠올려 지고는 했다.
그러면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된 아련한 아픔이 점점 강도를 더해 내 마음 전체를 점령해 들어오곤 했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는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일부러 아내에게 말이 많이 했고, 과장된 쾌활함으로 이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게 애쓰곤 했다.
하지만 혼자 깨어있는 밤이 되면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영상들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떠올릴때면 그녀가 한없이 안타깝고 애처러웠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보고픈 열망이 간절하게 샘솟곤 했다.
그녀의 그 향기로운 체취를 다시 맡고 싶었다.
그녀의 그 맑은 미소를 다시 보고, 그녀에게서 느끼던 그 가슴설레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이런 내 간절한 소망은 길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무서운 기세를 한풀 꺽이기 시작하고,
세상을 온통 점령하던 초록이 서서히 그 위세를 잃어갈 무렵 이었다.
점심을 먹기위해 직원들과 사무실을 나서는데 영한에게서 한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강영한의 모, 송순덕여사 별세
영광 장례식장, 발인 8월 29일‘
짧게 보내진 부고문자 였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전체에 발송된 단체 문자인것 같았다.
처음 그 문자를 받자마자 김노인의 얼굴이 떠올려 졌다.
어머니가 없는 영한에게 어머니라 칭할 수 있는 여인은 김노인의 처였다.
미영을 그리워 하며 오열을 토해내던 눈물범벅이 되던 그 김노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려 졌다.
평생 자식도 없이 미영과 영한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며 살았다던 그 부부의 삶과 죽음이 짧은 시간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미영과의 재회로 기뻐하던 김노인이 또다시 삶의 가장 큰 시련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문자를 받고 점심을 먹는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당연히 가야할 곳이었지만 쉽게 마음의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 가게 되면 너무나 보고 싶지만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다시 보게 되면 내 마음을 다시 심하게 흔들어 놓을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을때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반가운 눈빛과 미소로 나를 맞이할 그녀의 모습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철저히 외면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그녀의 모습이 모두 그려졌다.
그녀는 분명 내게 눈빛한번 주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나를 대할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두 숨긴체 그녀를 스쳐지날 것이다.
그렇게 어색하게 서로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 그 모습이 웬지 너무 싫게 느껴졌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녀와의 이런 만남 이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게 될것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걸지 않아도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 보고 싶었던 사람을 스치듯이 보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빌미로 결국 전화통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확신처럼 머릿속에 떠올려 졌다.
그 어색한 만남에서 서로에게 묻지 못했던 것들을 묻지 않고, 말하고 못했던 것을 말하지 않고 버텨낼 자신은 없었다.
‘가야 한다. 가지말아야 한다.’
나는 퇴근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해서 갈림길을 헤매이고 있었다.
이미 결론이 뻔히 나있는 고민이었지만 나는 긴 시간 고민을 지속했다.
퇴근시간 무렵 그녀와의 저녘약속에 가슴설레이며 바라보던 화장실 거울앞에 서서 그때처럼 거울을 바라보았다.
한가지 질문을 거울에 비친 내게 던졌다.
‘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이미 답은 내려져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하던 내 소망을 꺽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누군가 그곳에 나를 가지못하게 부여잡는다고 해도 나는 그 모든걸 뿌리치고라도 그곳에 갈 것이다.
거울속에 비친 내가 비열한 웃음을 짖고 있었다.
‘고민하는척 하지 말아라! 위선자.....
고민하는척 하는 것이 위안이 되는가?
그렇게 라도 최소한의 죄책감을 없애고 싶었느냐?
그냥 떳떳이 가슴이 설레인다고, 그녀를 다시 볼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네 진심을 말해라!‘
그것이 진실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녀를 피해 그곳을 가지 않으려 고민해 보았쟈,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내 몸은 그녀 옆에 가 있을 것이다.
피할수 없는 운명처럼 나는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넘어에서 아내의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달링, 왜?”
“나 오늘 영광에 장례식 좀 다녀와야 겠어.”
“누가 돌아가셨어?”
“응, 아시는분 사모님이 돌아가셨다네. 퇴근하고 바로 갈거니까 그리 알고 있어.”
“그래요. 운전 조심하고.... 언제쯤 올거예요.”
나는 아내의 갑작스런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으~응, 몰라 새벽에 올지도....”
나는 망설이다 아내에게 새벽에 올지도 모른다는 대답을 했다.
아내와 전화를 끝내고 나서도 계속해서 새벽이라는 단어가 곱씹어 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무의식중에 시간을 벌었다.
친구나 친인척이 관련된 장례식도 아니었고, 거기서 밤을 세워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냥 조문을 끝내고 식사를 하거나, 식사도 하지 않은체 나올만한 그런 자리였다.
퇴근후 한시간 거리도 않돼는 그곳에 조문을 마치고 오면 아무리 늦어도 열시이전에 돌아올 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짧은 순간 무의식 적으로 아내에게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 벌어진 시간동안 내가 바라는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긴 해후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조문을 마치고 그녀와 그곳을 빠져나와 나누게 될 긴 해후의 시간들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퇴근시간이 겹친 탓인지 시내 도로는 체증이 심했다.
한번의 신호로 교차로를 빠져나가지 못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조바심이 일었다.
마치 중요한 약속에 시간이 늦은 사람처럼 내 마음은 안절부절하고 짜증이 밀려 들었다.
평소같으면 멈춰쳤을 노란불에도 꼬리를 물고 교차로를 넘어갔고,
쉽게 양보하던 끼여들기 차량도 끼여들지 못하게 차 앞머리를 밀고 들어갔다.
조바심을 일게하던 시내를 빠져나와 뻥 뚫린 광주영광간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서도 이런 조급증은 해소가 되질 않았다.
악셀을 밟은 발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삼십분 남짓이면 충분히 가던 그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바심으로 달려온 길이었지만,
영광장례식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는 차에서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여름은 긴 해는 아직도 지지 않고 밝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대기속으로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안정되지 못한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때 그녀를 만나게 되는게 싫었다.
깊은 어둠이나, 화창한 햇볕이 쏫아지는 대낮이 좋았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새벽이나 황혼녘엔 내게 소란스러움과 어수선한 느낌을 주곤했다.
특히 도심에서 맞이하는 황혼녘은 그 어수선한 느낌의 정도가 가장 심했다.
나는 주위가 완전한 어둠에 쌓일때까지 그렇게 차안에 머물러 있었다.
조금 있으면 그녀를 볼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꾸만 가슴이 벅차왔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돼면 어떤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야 될지 무슨말을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정리가 되질 않았다.
주위가 완전한 어둠에 쌓였을때 나는 차에서 내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서서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2층 목련실
고인 송순덕 여사,
상주 장남 강영한
상주 장녀 박미영‘
한참을 아무생각도 없이 내눈에 보이는 글들이 어떤 의미인지 인식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강영한과 박미영이 같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크게 웃지도, 과장되게 표현하지도 않는 차분하고 정다운 분위기....
많이 친해보려고 가까이 다가가 보지도 않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려 애써보지도 않았지만 늘 편한 고향의 낯익은
아주머니와 같은 느낌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미영의 어머니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낚시를 하고 있노라면 그렇게 내 곁을 스치던 그분의 얼굴이 그려졌다.
정신을 잃은 분을 태우고 차를 몰고가며 자꾸만 백밀러로 바라보던 그 얼굴이 함께 그려졌다.
그렇게 미영은 혼자가 된 것이었다.
죽어가는 어머니의 곁을 홀로 외롭고 지키고 있었을 미영을 생각하니 울컥 슬픔이 밀려들었다.
목련실 앞에는 영한이 상주가 된 탓인지 낯익은 기업들의 화환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문상객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검정색 정장차림의 엘리트들과 늙고 주름진 마을사람들이 분명한 두 구획으로 나눠져 있었다.
조문실에는 그녀와 영한이 상복을 입고 먼저 도착한 문상객과 맞절을 하고 있었다.
슬핏 본 그녀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문상객이 맞절을 끝내고 영한과 악수를 나누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눌 동안 나는 신발을 벗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슬픔과 원망이 가득 담긴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는지 얼굴을 감싸 안으며 주저 앉았다.
그런 그녀의 울음을 달래려는듯 영한이 그녀를 다독였다.
조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영한이 나를 발견한듯 자세를 바로 세웠다.
영정사진엔 미영의 어머니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 편안한 얼굴 그대로 웃고 있었다.
나는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한번의 절을 하고 두 번째 절을 했을때 나는 쉽게 일어설수가 없었다.
그러게 이마를 바닦에 댄체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흐느낌소리가 비수처럼 가슴에 꽃혀 왔다.
절을 끝내고 상주와 맞절을 할때에도 그녀는 그렇게 쪼그려 앉아 얼굴을 무릅사이에 묻은체 흐느껴 울었다.
영한과 맞절을 했다.
“고통없이 가셨습니까?”
나는 영한에게 아주머니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
차라리 의식을 찾지 못한체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끝내 떠나보내는 그런 모습은 미영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시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영한의 말을 들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를 듣은 탓인지 그녀의 어께가 더 심하게 떨려왔다.
그 가려린 어께를 감싸 안아주며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번 안부조차 묻지 못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를 그렇게 혼자 버려둔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꾸만 눈망울에 눈물이 번지는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떨군체 조문실을 나왔다.
누가 이런 내모습을 볼까 싶어 그곳을 나오려 급히 신발을 신고 있을때 물기 젖은 시야로 다가오는 한사람의 다리가 보였다.
그는 내앞에 선체 내가 신발을 다 신길 기다리고 있었다.
구두가 발에 잘 안들어 가는척하며 시간을 벌며 감정을 추스렸다.
신발을 다 신고 일어서니 김노인이 반가운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다.
“왔능가.”
“예, 어르신! 오랜만이네요.”
“일단 자리로 가세. 할 이야기가 많어.”
김노인은 내 팔을 잡아 끌고 식탁테이블로 갔다.
나는 일부러 그녀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노인은 나를 다그쳤다.
“그동안 뭔일 있었는가? 어찌 한번도 않오고....
주말마다 이제나 저제나 하믄서 기달렸구만 어떻게 한번을 안와?“
“어찌하다 그렇게 됐네요. 건강하시죠?”
“전화번호라도 받어놨으믄 전화라도 한번 해봤을 것인디, 전화번호도 않받아놔서 전화도 못하고....
참말로 자네도 무심한 사람이여.
우덜이 걱정할거라는 생각도 안들던가?“
“면목이 없네요. 죄송해요.”
생각해보니 강노인이나 김노인과는 서로 전화번호도 몰랐다.
삼년을 주말마다 저수지에서 만났지만 한번도 통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가면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언제나 주말이면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삼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김노인에게 건넸다.
김노인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 번호를 눌렀다.
“거기 찍힌 번호가 내 번호여. 앞으론 뭔일 있으면 연락이라도 하고 지내게.
알았제.“
“예, 어르신.”
이렇게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있을때 음식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아무 생각없이 차려지는 음식들을 쳐다보다 김노인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음식을 차리는 여인을 쳐다 보았다.
영한의 여인이었다.
상복을 입은 그녀가 반갑다는 듯한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이미 서로 구면이라는 내색은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식을 다 차린 후 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에야 김노인이 흐믓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쟈가 영한이 짝이여.”
“그래요?. 이쁘게 생겼네요.”
나는 일부러 구면이라는 내색을 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때 한쪽 귀퉁이에서 강노인이 나를 발견한듯 눈을 마주치더니 벌떡 일어서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랑거리를 가득 품고 내게 다가오던 예전의 그모습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일어서서 강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강노인은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일어서지 말고 어여 식사혀. 참말로 오랜만이시.”
“예, 그렇게 됐네요.”
강노인은 눈짖으로 방금 음식을 차려놓고 돌아가는 영한의 여인을 가르쳤다.
“우리 며늘아가 될 야그여.”
“예 좀전에 김영감님이 말씀해 주시데요. 얼마나 좋으셔요. 이쁘게도 생겼드만요.”
강노인은 만연에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늘그막에 복이 터졌는가벼. 딸도 생기고 며늘아도 생기고....”
나는 딸이 생겼단 말이 무슨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궁금증을 느낀 탓인지 김노인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영한이하고 미영이가 의형제를 맺었어.
그냥 말로만 맺은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마을사람들 다 모아서 잔치열고 진짜로 의형제 맺었어.”
“언제요?”
나는 그녀가 영한과 진실로 화해를 했다는 것이 쉽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미영이 엄니 쓰러지고 한달 후 쯤인가 그래.
엄니 깨어나고 해야 되는게 맞는디 언제 깨어나실지 모른다고 영한이 아무지만 모시고 했제.
글고 영한이랑 미영이랑 미영이 엄니한테 가서 손잡고 다 말했다고 하데.
아마 미영이 엄니도 다 들었을 거구만, 우리 이렇게 형제가 되었다고 말씀드리닌께 의식도 없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드래.
...............
그래도 그 양반 가는 길이 더 가벼웠을 것이여.”
워커힐에서 그날 밤 이후 미영은 과거를 다시 끌어 안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갔지만 미영은 과거의 많은 사람들을 되찾았다.
천지분간에 홀로 남겨질 미영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미영에게는 오빠가 있고 새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끌어안은 과거의 인해 더 이상 그녀가 외롭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랬다.
내가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기를....
그래서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사라져 주지를 간절히 바랬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 처음으로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나에게 희미한 미소 한줄을 건네주고 있었다.
나도 그녀에게 애쟌한 미소 한줄을 보냈다.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정확히 알지 못하는 교감을 나누며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p.s 모든일이 마지막 마무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연도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순간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게 시점의 문제입니다.
가장 적정한 순간에 이루워지는 끝이 가장 좋은 법인데........
가장 좋은 순간에 끝을 맺지 못하는 건 미련때문이겠지요.
이정도 쯤에서 마무릴해도 될듯 싶지만 생각했던 끝을 가보고 싶은 미련이 남아있네요.
설혹 그것이 핸피앤딩을 바라는 분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될지....
아니 간만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보렵니다.
저수지의 그녀. 35.
-
- Hit : 10542
- 본문+댓글추천 : 32
- 댓글 38
다음편은 언제~~~
항상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즐감하고 갑니다.
마지막 까지 가봐야지요,,
그게 인생이 니까요,,ㅎㅎ
담편 기대할께요
그리고 감사드림니다...
사람이 미련을 남기면 안되지요.
끝까지 가봐야지요.
그때가서 후회를 하던지 말던지....ㅎㅎ
화이팅~~
더이상은 독자들이 그리게끔...ㅋ
근디,
자꾸 입질이 들어온단말시.....
우짜야쓰것나용 !
더이상 글이 없으면 심심해뿔려고하구...ㅋ
일~~딴은 잘보았시우.....
근디,
이단은 .....
2편을 기대하는 이 맴은?
힘내시고....끝까지 갑시다!!!!
울 마누라가 잘 보는 일일 드라마는 다 그런 식이던데
곧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겠지요. 그렇지요?
작가님...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애잔하네요 ^^
힘내세요^^
희노애락이 없어면 과연 살맛이 날까요..
다음편을 기다리겠습니다...꾸벅!!!~~
잘읽었습니다
미영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님들 모두가 아마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린것을 어찌 하오리까...ㅋ
장편 드라마가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좀더 서로를 치유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지금부터는 좀 부담스러워 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일관성과 개연성을 가지고...긴장감과 흥미를 유지시키면서..
부담을 해소시켜 나갈 것인지...궁금도 하고...걱정도 됩니다...
이미 독자의 마음을 다 읽고...글을 이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만...
앞으로 한 두편으로 마무리한다 하여도...섭섭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님은 이미 작가이시네요...감사합니다.......
권서징악 사필귀정?
어느글에서 이러더군요 떠나라 슬픔이여
그러나 슬픔은 내머릿맡앞에서 뜨개질 하고 있구나
하지만 누구에게나 무지개는 뜨고 태양이 뜨지않겠습니까
미영과의 만남이 사랑의기쁨으로 올지...
사랑의 기쁨이란 노래가 잘 어울릴듯 하네요 노래가사가 전체적으로 슬픔을 노래하듯
잘보고감니다 근데숨넘어가겠어요 기다림에 지쳐 ...
담편이 넘넘 기대됍니당~~
어떤 끝을 보아야 할지....
여운을 남기며 앤딩은 읽는이의 몫으로 남기자!!
회를 거듭하며 서서히 앤딩으로 다가갈수록
자꾸 깊어져 가는.... 우리님의 고민을 함께
느껴 봅니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님두 제어하시기 버겁게....
너무 멀리 와 버린것 같은 느낌이.....
이러시다 .....홀연이 사라지시는건 아니신지.....
후에 ...읽는이들은.....
흘러온 ,글,속. 어느곳에 서 계실지.......
첫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본 사람으로 지금의 이글은....
단적으로 얘기하자면...패턴을 잃으셨군요...
무릇 소설이란 독자에게 실화의 가능성과 소설로의 중간을 어느 정도 기대하며 가야하는데..(제 지론입니다)
이젠 실화의 가능성은 이미 넘어 선 듯하고...단순히..독자의 관심을 충족키 위해...
즉...50부작 대하드라마로 예정되었던 TV드라마가 방청자의 청취율에 기대어 60부작으로 늘려져 편성된 것과
별반 다른 것 없는 듯 보여집니다.
예정에 없었던 갈등, 반전...
10여년전 영화 '실미도'에서의 설경구 대사가 귓전에 때립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보잘것 없는 주워담을 능력도 안되는 잔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이 얘기가 님을 더욱 편하게 할 수 있길....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힘내세여~~~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네요..
좋은내용 잘보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새로운 반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