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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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그녀. 40.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 나는 타는 듯 한 갈증에 잠에서 깨었다. 처음 잠에서 깨었을 때 모든 것이 몽롱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조차 떠오르질 않았다. 여명에 조금씩 밝아오는 익숙치 않은 창문의 모습에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술기운이 그대로 남아 어지러운 현기증과 깨이지 않은 몽롱한 의식사이로 낯익은 향기가 풍겨왔다. 그녀를 처음만난 순간부터 너무나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그 향기였다. 서서히 끊겨있던 기억의 필름들이 봉합되며 내가 지금 그녀와 그녀의 집에 함께 있다는 것이 떠올려 졌다. 갈증과 함께 속이 미식거리며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의식을 찾으려고 애를 썻지만 취기 때문인지 쉽게 의식이 차려지질 않았다. 몽롱한 의식 속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핑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머리맡에 그대로 놓인 보조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생수가 들어간 탓인지 갈증과 미식 거림은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몽롱한 의식은 쉽게 깨어나질 않았다. 소변을 누기위해 벽에 손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운 현기증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 벽에 의지한 체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어둠속으로 진 청록의 여명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기둥에 의지한 체 마루에 서 마당에 소변을 보고 방으로 돌아와 벽을 의지하며 주저앉았다. 새벽녘 취기에 아직도 범벅이 된 체 모아지지 않는 생각을 이끌어보려 했지만 의식이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일어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점점 현기증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뜨고 방안을 살펴보았다. 그녀도 술에 취해 그대로 잠들었던 탓인지 상위에 술병이며 음식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그리고 상 한쪽으로 하얀 그녀의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새벽여명에 빛나는 여인의 희디힌 살결이 빛나는 대리석 조각처럼 보여 졌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 거리며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솟아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지금 나신의 몸으로 누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의 편린들을 맞춰보려 애를 써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의 기억이 떠올려 지지 않았다. 나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상에서 벗어나 그녀의 상체 쪽을 바라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다행이 그녀는 나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원피스가 위로 말려 올라가 하반신이 완전히 들어나 있었던 것이다. 가슴은 심하게 요동치고 취기와 함께 찾아오는 욕정의 격랑으로 쓰러질 것 같은 강한 현기증이 일었다. 생각을 모아보려 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날 제어해볼 생각을 모아보려 했다. 하지만 생각들이 단편적으로 끊겨 나가며 이어지질 못했다. 너무나 심한 현기증과 가슴속의 울렁거림이 내 생각이 이어지는데 자꾸만 방해가 되었다. 나는 나를 제어해볼 의지조차 쉽게 불러 일을 킬 수가 없었다. 현기증이 자꾸만 내 의식의 흐름을 끊어 놓고 있었다. 갑자기 워커힐에서 그녀의 방문 손잡이를 돌리던 그 찰나의 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는 머릿속에 그려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요동치는 심장의 박동에 너무나 어지러웠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생각을 모아보려 애를 썼다. 무슨 생각을 해봐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생각을 해보아야한다는 간절한 외침만이 가끔씩 모아지는 의식 속에 들려왔다. 하지만 그 의식마저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심장의 박동소리에 쉽게 묻혀갔다. 나는 서서히 몸을 움직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해가 되고 있는 상을 한쪽 귀퉁이로 밀어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본능의 충동을 지켜주던 이성의 소리도 어지러운 현기증과 귓전을 때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에 묻혀버렸다. 오직 쾌락을 꿈꾸는 본능만이 새벽녘의 발기처럼 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녀도 술에 취한 탓인지 내가 야수처럼 뿜어내는 욕정의 분출을 감지하지도 못한 체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너무나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너무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이어지지 않는 의식의 흐름과 격한 내 몸의 반응들이 견디기 힘든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원피스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원피스 단추를 다 풀기도 전에 브라를 차지 않은 젓 가슴이 튕겨질듯 옷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는 탐스런 젓 가슴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청록의 여명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감당하기 힘든 욕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목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깊이 잠든 모습위로 환하게 미소 짖던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처음으로 의식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너무나 고운 사람인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밀려들었다. 나는 잠시 몸을 세우고 그녀 곁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한번 모아지기 시작한 의식은 심한 내적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내적 갈등이란 추상적인 것일 뿐, 구체적인 논리들은 존재 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에 대한 갈등을 하고 있는지 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취기로부터 시작된 현기증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고 생각을 모아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를 자꾸만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내가 의식을 차리고 생각을 모은다 할지라도 내 안에 들끓어 오르는 욕정을 이겨내기엔 솟구치는 그 욕정은 너무나 강렬했다. 내 시야에 그녀의 미끈한 다리와 드러난 하반신이 들어오는 순간, 그녀가 입고 있는 끈만 잡아당기면 풀려버릴 팬티를 본 순간, 내 심장의 박동소리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리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속옷차림은 내 망설임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녀의 팬티를 지탱해주는 나약한 매듭의 끝을 잡아 당겼다. 매듭이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듯 힘없이 툭하고 풀려 나갔다. 반대쪽 매듭까지 풀고 나자 그녀는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나는 몸을 세우고 어지러운 현기증 속에 옷을 벗었다. 어둠속에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원피스가 엉성하게 몸 위에 걸쳐진 체 누워 있는 그녀와 완전한 나신이 되어버린 내 몸이 새벽여명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체중을 싣지 않고 올라갔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이 곤두박질 쳤다. 그녀의 향기가 어지럽게 풍겨져 왔다. 나는 몸을 지탱하던 팔에 서서히 힘을 풀어 그녀의 맨살위에 내 몸을 밀착 시켰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 위를 가볍게 애무했다. 그런 느낌이 싫지 않은 듯 그녀의 몸이 무의식중에 반응을 해왔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애무하며 천천히 그녀의 젓 가슴을 손에 쥐었다. 처음 그녀의 젖가슴을 쥐던 느낌 그대로 찰진 그녀의 젓 가슴이 손안에 가득 차들어 왔다. 나는 거침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젖가슴을 한입베어 물었다. 그녀의 몸이 움찔하며 반응을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른한 쾌감에 젖어 들어가는 표정의 얼굴에 안도감이 드는 순간, 갑자기 그녀가 놀란 듯 두 눈을 번쩍 치켜 떴다. 나는 그녀의 몸을 힘껏 끌어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가쁨 숨을 품어냈다. 아직 청록의 여명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새벽길을 걸었다. 현기증이 일어 자꾸만 몸이 비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취기에 비틀거리며 그 길을 내려왔다. 어디선가 나를 조롱하듯 새들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풀잎 마다 맺힌 이슬방울들이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멀리 보이는 수면위론 햇살이 쏟아지면 사라질 연약한 손길들이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그 내리막길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내 가슴속에 무엇인가가 모두 빠져나가 버린 듯, 가벼움이 느껴졌다. 땅을 지탱하고 걷기조차 힘든 허허로움,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그렇게 휘청거리며 그 멀고도 긴 회한의 길을 걸어 내려왔다. 낚시 텐트 속 의자에 깊이 몸을 파묻었다. 회한의 길을 내려오며 참고 참았던 눈물 한 줄이 볼 아래로 쭉 흘러 내렸다. ‘무슨 짓을 해 버린 것인가? 보석처럼 빛날 소중한 추억에……. 그리 아름답게 빛날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해 버린 것인가? 가슴 벅찬 설렘도, 소중했던 기억들도, 잊혀 져 가던 내 남성을 일깨워 주던 그 교감들도, 이제는 다 저 무성한 물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는 오늘의 치욕의 떠올리며 수치심에 몸서리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무엇의 완성을 원했던 것이었던가? 완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것인가? 내 육체적 욕정의 충족을 이 긴 이야기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내게 이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것인가? 나는 괴물이었다. 아니,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욕망에 가득 찬 한 남자였을 뿐이다……. 내가 괴물이었던가? 아니다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냥 한 남자일 뿐이었다. 내 안에 이는 욕정을 참아 내기엔 너무 버거웠고, 그걸 견뎌내라 하기엔 너무 가혹했을 뿐이었다.……. ‘ 내 마음속에는 수면 위를 어지럽히는 새벽 물안개처럼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이 쉼 없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나는 그 물안개처럼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거미줄처럼 빈틈없이 짜여 진 운명의 실타래 위에서 신이 부여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나는 괴물도 아니고, 인격 파탄자도 아니었다.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한 남자일 뿐이었고, 그저 운명이 이끄는 그 길로 갈수밖에 없는 나약한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그때, 그 어둡고 침울한 생각들을 뚫고 한줄기 빛처럼 나를 지탱해줄 생각 한 줄이 머릿속에 번져 나왔다. ‘그녀의 힘으론 그녀를 옭아매는 그 굴레들을 끊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고통 받는 나를 위안해줄 마지막 변명이었다. 나는 이 말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햇살처럼 그려내며 잠이 들었다. 수면위에서 반사되는 강한 햇볕에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고 속이 쓰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먹을 물은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의자에 그대로 몸을 기대고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잠들기 전에 그토록 나를 어지럽히던 새벽녘의 일들이 마치 오래전 기억 속에서나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마음이 한없이 차분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런 수치심이나 죄책감도 없이 허허로움에 한없이 비틀거리며 걸어 내려 오던 그 길을 걸어 올라갔다. 늘 그렇듯이 그녀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미소와 농담을 내게 던지며 내 마음을 위로해 줄 것 같았다. 그녀의 집거름을 돌아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당엔 나른한 가을 오후의 햇살만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릴 뿐, 그녀의 신발도 그녀의 기척도 없었다. 나는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새벽에 보았던 그대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방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상위에 어지럽게 널려진 도시락과 컵과 식기들을 치우고 화장지로 상위의 음식 찌꺼기 들을 다 닥아 내고 짐들을 정리했다. 나는 일부러 머릿속을 비우고 나는 방을 정리했다. 방 정리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슬픔이 울컥 밀려 들었다. 인사도 없이 그렇게 쓸쓸히 떠나가는 고통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떠올려 졌다. 나는 그녀에게 상처만을 남긴 체 그렇게 이별을 맞이했던 것이다. 내 자신에 대한 한없는 자책과 회한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나는 그렇게 맞이하는 이별의 슬픔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왔다. 나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황급히 보조가방을 들고 방에서 빠져 나왔다. 짐을 들고 마루로 나왔을 때, 마당에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없는 집에 웬 남자들이 이렇게…….’하는 생각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나를 노려보는 사내의 눈과 마주쳤다. “박 진우 씨 되시나요.” 사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그런데 무슨…….” 사내는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사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의식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 들려왔다. “박 진우 씨 당신을 특정범죄 가중 처벌법…….”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말은 내 의식을 일깨우지 못하고 모두 팅겨 나갔다. 단지 가을햇살에 반짝하고 빛나는 금속물질이 내 손목에 감기는 그 느낌만이 내가 처한 상황을 내 의식 속에 전달해 주고 있었다. 경찰차에 실려 가는 동안, 머릿속이 아무 생각도 모아지지를 않았다. 차량의 엔진소리와 사내들의 말소리조차 비현실적인 음향으로 느릿하게 전달되고 있었고, 차창을 스치는 모든 풍광들이 꿈속처럼 몽롱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중력의 공간에 놓인 듯 몸이 자꾸만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만이 내 의식을 자꾸만 조여 왔다. 나는 두꺼운 유리 밑에 깔린 초록색 천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보아오던 그 천이 처음으로 내게 인식된 것 같았다. 그것은 천이 아니었다. 파란 보프라기 들을 모아 찍어낸 듯 한 부피감이 캐시미어 천을 연상시켰다. 그것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모아보아도 그것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한 번도 그것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기계적으로 던지는 사내의 질문들과 의식 없이 내뱉는 내 대답들……. 사내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마저 환청인 듯 들려왔다. 내가 깊은 내면에 몰입되어 사내의 질문에 대답을 놓칠 때면 모니터 옆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내의 날카로운 눈빛만이 가끔 내 의식을 일깨워 주고는 했다. 내 신변정보와 그녀와의 지난 정황들을 기계적으로 묻던 사내가 갑자기 질문을 중단했다.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물었다. “담배 피우십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한대 피우고 다시 시작하죠.” 사내를 내 팔을 가볍게 잡고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을 벗어나 사내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 끝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그 문밖으로 나가니 가을햇살이 시멘트로 포장된 바닥에 쏟아지고 있었다. 사내가 내게 담배 한가치를 주었다. 나는 사내에게서 담배를 받아 들어 입에 물었다. 사내가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자신도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한번 담배연기를 내 품더니 내게 물었다. “제가 보니 그럴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하신 겁니까?”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담배를 피웠다. 몽롱했던 의식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지나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이거 잘못 꾸려지면 방법이 없습니다. 쉽게 아무렇게나 대답하지 마시고 깊이 생각하시고 본인에게 유리하거나 본인을 방어할 말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세요. 그렇게 예, 예, 만하지 마시구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벅벅 피워댔다. 그가 준 담배를 피운 탓인지 몽롱하던 의식들이 깨어나며 이것이 현실속의 상황이라는 자각이 일어났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은데 줄 수 있나요?” 나는 그 사내를 향해 처음으로 의식이 수반된 말을 건넸다. 사내가 한숨을 푹 쉬더니 바로 옆 자판기로 커피를 뽑으러 가서 자판기 앞에서 사내가 다른 사내와 무슨 이야기 인가를 나누며 턱으로 나를 가리 켰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커피를 두잔 가지고 온 사내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런데 처음 와보셨죠? 이렇게 조서를 꾸며 본적도 처음인거 같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도 법이라는 잣대를 가져다 대면 냉혹한 것이에요. 그냥 선생님이 안타까워 보여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곳에 처음 오신 분들 보면 그게 실수지 뭔 큰일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예요. 하지만 이건 선생님 인생을 바꿔버릴 일입니다. 이런 사건은 상당히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에요. 말 한마디가 중요하단 말입니다. 형사이기 앞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딱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새겨들 으세요. “ 그는 말을 끝내고 긴 한숨을 내 뿜었다. 커피를 다 마신 사내가 나를 다시 조사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 갔다. 조사실로 돌아온 후 사내는 다시 기계적인 어투로 변했다. “피해자가 이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까?” 사내의 질문에 새벽녘의 영상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려 졌다. 눈을 뜬 그녀가 ‘이러지 말아 달라고, 제발 놓아 달라고…….’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그녀의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방아쇠가 당겨져 버린 욕망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아직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녀가 강렬하게 저항하진 못했지만 눈물로서 내게 호소했다. 아직 술기운 에 의식이 몽롱한 탓인지 나를 멈추게 할 강한 거부의사를 표명하진 못했지만 그녀의 흐느낌 속에서 제발 이러지 말아 달라는 웅얼거림이 계속 들려왔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두 팔로 꽉 끌어 않고 그녀의 몸을 탐해 나갔다. 그녀가 강렬하게 저항하지 않는 것이 너무 취한 몸과 몽롱한 의식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거부 의사를 긍정의 부정으로 스스로 왜곡해 버렸다. 내 몸이 그녀의 몸을 파고들 때 희열하던 그녀의 몸이 조건반사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드리고 있다고 스스로 왜곡해 버렸다. 그녀의 입술사이로 끊임없이 터져 나오던 신음소리가 여인의 몸이 가져 다 주는 반사적인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녀가 쾌감에 젖어 품어 내는 소리라고 스스로 위안해 버렸다. 그녀는 같은 장소에서 그녀가 가장 믿고 신뢰했던 두 사내에게 똑 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나는 영한이 그랬던 것처럼 간절히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를 갖게 된 것이었다. “예” 내 대답에 갑자기 자판을 두드리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 다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그 말을 기억할 수 있는 겁니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피해자가 이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까?” 사내의 어투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강한 악센트를 주며 내게 다시 물었다. 마치 내가 술에 취해 그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할 수 없다고 답해야 한다는 어필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나 선명하게 그때 그 순간들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내 운명을 결정 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가 않았다. “예” 내가 대답을 하고 나서 ‘삐걱’하는 의자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내가 자판에서 떨어져 의자에 몸을 젖히고 있었다. 그는 답답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체념한 듯 긴 숨을 품어 냈다. 유치장에 수감된 후 머릿속엔 온통 내 자신에 대한 질책과 후회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신에 대한 질책과 후회대신 그녀에 대한 원망이 계속 일어났다. 원망이라는 표현보다는 아쉬움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꼭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나에 대한 실망과 망가져버린 기억들로 그렇게 간직하면 안 됐을까? ‘ 나와 그녀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떠올려 졌다.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녀에게도 그 시간들이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면, 그토록 이성적인 그녀라면 술 취한 본능 앞에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알 것인데,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아쉬웠다. 문득 모든 상황들 속에서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가 영한을 장에서 꺼내줄 합의서를 선뜻 만들어주지 않고 버텼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일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지만 왜 그걸 그녀에게 묻지 못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걸 알았다면 나를 이렇게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그녀의 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일었다. 나는 끝내 그녀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해야 했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던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일었다. 내가 느끼는 우리의 관계와 그녀가 생각하는 우리의 관계는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 무슨 짓을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이렇게 궁지로 몰고 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있었고,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자꾸만 일었다. p.s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허걱! ??만 남는군요~ 감사합니다
흠 몬테에서 왜 감옥에 갔을까 궁금했는데 이런이유가 있었군요
그래도 좀 황당하다고나 할까여 ㅋㅋㅋㅋ남자들 조심하세요 ㅎㅎㅎ
때가 되면 알겠죠....왜 이렇게 달리는지..
그래도..왜???????????????????????????
정말 당혹스럽군요... 내가 알던 저수지의 그녀가 아닌듯...
진짜 저수지의 그녀가 신고한 걸까요? 그렇다면 이건 함정밖에 안되는군요... 사랑했다는 것도 거짓말인가요... 빨리 다음편을 보고싶어요... 빨리..
그여인이 신고햇을까요???? 햇다면 왜햇는지 급궁금합니다^^
다음편이 기대 됩니다...어떻게 되었을까요?
왜그래을까~?
점점 ....
다편기대됍니다
아 ~ 안타깝네요
그녀의 상처가 진하게 베어 있는 그곳에서 동의없이 ....
진우씨 답지 않군요.
그나저나 진우씨 와이프분 걱정이 많이 되네요.
아마 많이 아프신것 같았는데 이번일로 심한 충격 받으실것 같습니다.
안타깝고 허무하네요 ^^ 작가님 의도가있겠죠
항상 잘보고갑니다
이런 이야기로 흘러 가지 않기를 바랬는데...제 예상되로 흘러 가 버렸네요.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항상 재미있게 보게 되네요. 그리고 몬테에서의 그녀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해집니다.
몬테에서 그녀의 등장으로 봐서는 그녀의 용서와 그녀와의 화해가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마지막은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음...술이 문제구만요.
다음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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