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영한이 면회를 왔다. 영한은 침울한 표정으로 유리벽 너머에 앉아 있었다. 방청석에서 발견한 그녀를 그는 만났을 것이다.
그날 이후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찾아 온 것을 보니 그는 그녀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결과를 미리 말해주고 있었다.
“미영 이를 계속 설득했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제발 모든 걸 끝내 달라고, 차라리 나에게 모든 죄를 물어달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선한 사람이라고 제발 당신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
그는 많은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유리벽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유리벽 이쪽에 있는 내가 갇혀있는 것인지 반대편에 있는 영한이 갇혀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규정지을 수가 없었다.
‘유리벽 저편에 있는 그가 자유로울까? 저리 굳은 마음의 감옥에 갇힌 그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생을 지고 가야할
양심의 가책에 그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
나는 내 자신의 현실보다 그의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가 첫 번째 면회 이후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면회를 올 때마다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딱히 그에게 해야 할 말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힘들어 하지 말아요. 그녀가 날 용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 사랑을 배신한건
내가 아니라 그녀입니다. 그녀가 날 이곳에서 나가게 해 준다고 해서, 내 몸이 자유를 얻는다고 해서 내게 가해진 형벌이 끝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게 가해질 수 있는 형벌은 이미 모두 다 내려졌습니다. “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내 편안한 미소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많은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그녀와 만나던 순간부터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며 결국 얻은 결론은 단 하나였습니다.
영한 씨가 언젠가 꼭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가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 대답은 그 하루는 지나온 많은 날들에서
기인해서 온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묻고 또 묻는다고 해도 내 대답은 같을 겁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단하나, 지나온 많은 날들을 모두 부정해버리는 단 하루는 존재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루만으로
지나온 모든 날들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그는 머릿속이 복잡한 듯 내면으로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들여 다 보았다. 그가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억지웃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 한없이 평온하고 머리가 맑았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내말을 그녀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지나온 많은 날들을 부정해버리는, 그 속에 묻어 있던 숫한 이야기와 감정들과 진심을 다 부정해버리는 단 하루는 존재해선 안 된다고
그녀에게 전해 주세요. 나는 그 지나온 숫한 아름다운 날들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녀를 아직도 내 인생에 축복받은 선물로 간직하고
있노라고 그녀에게 전해주세요. “
나는 영한을 남겨둔 체 면회실을 빠져 나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되고 평온한 마음이었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난 듯 몸도 마음도 한없이 홀 가분 했다.
문득 이글을 시작하던 그 문구가 하나의 싯구처럼 머릿속에 떠올려 졌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언제 였을까?
그녀를 알기 시작한 때가 언제 였을까?
마치 처음부터 알아왔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곤 한다.‘
나는 구치소 복도를 걸어가며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그녀의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내 뺨 위론 소류지의 다시 오지 않을 서늘한 봄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소류지에 낚싯대를 펼쳐 놓고,
떨어져 앉아 있는 강노인의 모습을 훔쳐보며 미소 짖고 있었다. 제방 넘어 에선 낯익은 김 노인의 스쿠터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찌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수면위엔 여신처럼 미소 짖던 그녀의 환한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끝.
to 은희 (내 사랑하는 아내)
내 삶은 검불이었다.
철옹성처럼 굳게 구축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삶이란 바람 불면 훅하고 날려 가버릴 검불이었다.
45년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도 절제하고 경계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늘 주변을 배려하고 주위의 눈총을 의식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즐기면서 살아온 삶이었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니요 내 삶은 한없는 절제 속에 살아온 삶이었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삶이었다.
적당히 주변을 무시하고 내 감정을 충실히 즐기며 대충 살아온 삶이 아니었다.
적당히 흐트러지고 적당히 손가락질 받아가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삶이 아니었다.
20대의 충동과 30대의 유혹과 40대의 무료함을 철저히 견뎌내며 살아온
절제된 삶이었다.
그것이 한순간에 검불처럼 무너져 내렸다.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내 자신을 희생시키며 살아왔는지 조차 모르겠다.
한순간도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나를 그렇게 억압하던 것들이 다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너무나 허망하다.
내가 이룩해 놓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 많은 인연들이 모두가 너무나 허망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떤 것을 얻고자,
그 치열했던 유혹들과 본능의 충동들을 억제시키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내 삶은 검불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 본적이 없었다.
내 주변의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절제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나는 평생 내 자신을 위해, 온전히 내 자신만을 위해 아무것도 해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절제하고 참고 견디며 살아온 삶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
그 인내의 세월에 보상으로 주워졌다고 믿었던 그녀,
나와 같은 굴레에 갇혀 본능을 철저히 억누르는 그녀의 굴레를 깨버린 대가로
나는 내 삶의 모든 걸 잃었다.
나는 내 죄를 부정한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었을 뿐이다.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하는 인간적 한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가해지는 모든 형벌을 거부할 것이다.
세상 그 누가 나를 손가락질하고 욕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 죄를 끝까지 부정할 것이다.
나에게 가해지는 이 가혹한 형벌 또한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신이 나를 죄인이라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너에게 더 큰 아픔을 주게 될지라도
내 아이들에게만은 내가 괴물이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버지이기 전에 남자였고, 온전히 내 것인 본능과 꿈꾸는 삶이 있었던
한 인간 이였다는 걸 아이들이 언젠가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썼다.
일주일 후가 선고 기일이지만
나는 절대로 나에게 내려지는 선고를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나를 죄인이라 규정하고 내게 형벌을 내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 글과 이 편지를 네가 받을 때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것이다.
너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은 소망이 간절했다.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네가 나를 용서한다고 해도 내 결정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다.
너의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온전히 너만을 사랑해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보다.
아직도 너는 나에게 가슴 시린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부디 네가 나처럼 바보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마음이 이는 대로 감정에 충실하며 자유롭게 살아가 줬으면 좋겠다.
네가 지키며 살아온 삶, 그렇게 지켜가려 애쓰는 삶 또한 검불일 뿐이다.
오늘 하루 종일 써내려간 글을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철창 안에 짐승처럼 갇혀 불면의 밤을 새우며 했던 숫한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쓸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내 자신에 대한 방어와 궤변들로 점철됐을
그 글을 쓰지 않은 것이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글을 다 끝내지 못하고 가게 될까봐 내던 조바심이 살아진 탓인지,
오늘 밤 마음이 한없이 평온하고 행복하다.
내가 또 다른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발견 했듯이,
오늘밤 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설렘 마저 인다.
이 편지는 마흔여섯 살의 내가 마흔세 살의 너에게 쓰는 편지가 아니라,
너를 처음 만나던 스물다섯 살의 예비역 선배가 스물두 살의 은희에게 쓰는 편지다.
이십년의 세월은 놓아버리고 스물둘 사랑에 설레던 그 모습을 찾아 삶을 다시 시작해주길…….
- 이십년의 사랑이었던 사람아! 안녕히.
새로운 삶의 잉태
잠에서 깨었을 때,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고 심한 구토증세가 일었다.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아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현기증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지만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위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몇 번의 헛구역질만 나올 뿐 토사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변기 옆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고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현기증이 자꾸만 일어
어서 빨리 자리로 돌아가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화장실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을 때, 방안에는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가름이 되질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어둠속에서 한사람이 내 앞에 불쑥 일어서더니 내 뺨을 있는 힘을 다해 후려 갈겼다. 갑자기 불꽃이 튀는 느낌과
뺨의 통증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김 선생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목숨이……. 목숨이 장난이야!”
그의 일갈에 갑자기 내가 목을 매었다는 사실이 떠올려 졌다. 다시 한 번 그의 손이 내 뺨을 후려 갈겼다.
칠십이 다된 노인의 손찌검이라 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목숨이……. 목숨이 자네 것이야! 남은 삶들은 어떡하라고…….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가버리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날 꾸짖는 그의 목소리에 자꾸만 울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단순이 나에 대한 꾸짖음이 아닌
그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것마저도 내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는 절망이 내 안에서 끊임없는 슬픔을 몰고 왔다. 그는 그런 나를 감싸 앉았다.
그리고 그는 간절한 소망을 담긴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살아야 하네. 살아야 해.”
“살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그를 부둥켜안고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못난 소리 하지 말게. 자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지금은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 같겠지만,
정말 아무 일도 아니네.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끊고 나서 남겨진 사람의 고통에 비하면 지금 자네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 고통이……. 그 고통이 어떤 것인 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 하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갑자기 애들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그렇게 티 없이 밝고 쾌활한 애들의 얼굴이.
애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그는 꼭 감싸 안고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온 것은 불과 십일 전이었다. 처음 그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그가 이런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정갈한 눈빛과 깊이 있는 음성, 기품 있는 자세와 표정이 그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이 아닌 밖에서 만났다면
나는 한눈에 그를 사회지도층 인사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나이는 68세, 이름은 김 재식, 사기죄로 기소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리 지켜봐도 그가 그런 죄를 지었으리라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의 이런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수감자들이 김 선생이라고 호칭을 했다.
내가 어느 정도 폭발하던 감정들을 수습하자, 그가 한쪽 귀퉁이에 앉아 있는 철열을 가리켰다.
“저 친구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아마 철열이 목을 맨 나를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철열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방에 들어왔다. 나이는 38세였고 거친 삶을 살아온 모습이 역역하게 들어나 있었다.
그는 삼년 복역 후 출소한지 두 달 만에 폭행으로 구속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첫인상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대화조차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의 반말을 석어가며 비아냥거리는 어투가 여간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쳐다보더니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말을 던졌다.
“형씨, 그동안 쓴 것이 유서였어? 뭔 유서를 밤낮없이 두 달 동안이나 쓴데……. 뭔 죽을 사람이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다고…….”
그는 나를 비웃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며 반말을 짓거리는 모습에 속이 뒤틀려 왔다. 그때 김 선생이 그를 나무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나. 자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럽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 같은 놈도 사는데 멀쩡한 샌님 같은 사람이 죽네 사네 하는
꼬락서니가 우스워서…….”
철열의 목소리가 많이 정제되어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에게 김 선생과 같은 꾸지람을 했다면 욕짖거리 부터 터져 나왔겠지만,
웬일인지 철열도 김 선생은 조심을 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김 선생도 모두가 싫어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철열에게
유난히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었다 막 깨어난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인가? 사람하고는.”
김 선생의 꾸지람에 철열은 천역 덕스럽게 대답했다.
“나같이 사는 인생이야. 이제 가도 그만, 저제 가도 그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인데. 뭐가 어쩐다고 죽네 사네 하는지 원…….
나도 그만 가브까? 이것저것 내 맘대로 다해 봐도 재미도 없고, 여기 들락날락 하는 것도 이젠 재미없고, 나도 확 가브까?“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내게 다시 질문을 던져다.
“형씨, 어쩝디까? 숨 넘어 갈 때 안 아팟수. 확 가 븟으믄 좋것는디, 아플까봐서 가지도 못 하것고…….”
그의 말을 듣노라니 죽는 다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목에 속옷을 찢어 만든 줄을 걸고
무게를 지탱해주던 턱에서 발을 떼던 순간까지가 전부였다. 그 후 내게 고통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다시 차릴 때까지의 시간은 지워진 시간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비아냥거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나도 안 아픕디다. 근께 확 가 브쇼.”
내 말에 일순 방안에 긴장감 가득한 침묵이 감돌았다. 철열의 성격을 아는 다른 수감자들이 긴장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하지만 철열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럽디까? 알려줘서 고맙수다. 이제 알았응께 조만간 확 가야 것네. 내가 죽으면 다 형씨 덕택이요.
근디 발끈 하는 것을 보니 살긴 살 것소.”
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한바탕 나로 인한 해프닝은 끝이 나고, 모두들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워 잠을 청했다. 나는 창살 사이로 보이는 쪼개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빛 때문이지 하늘이 짙은 청록색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김 선생이 이런 내 상태를 느낀 건지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넸다.
“살수만 있으면 살아야 하네. 생목숨 끊는 것만큼 가족들에게 큰 죄는 없네. 살다보면 다 살아지는 게 삶이야.”
나는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지만,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것이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목을 매기 전까지 나는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나는 내 자신이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다시 내게 물었다.
“자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걸 생각해 보게.”
그 질문은 마치 아주 깊은 내면을 울리는 종소리처럼 내 마음에 심한 파장을 몰고 왔다.
‘내 삶의 가치’ 나는 끊임없이 그 말을 되네 이며 내 마음에 이는 파장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파장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철열이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나한테는 왜 안 물어 봐요?”
김 선생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잠깐 뜸을 들이던 철열이 속삭이듯 대답했다.
“꼴리는 대로 사는 거요.”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려 버릴 뻔 했다. 나는 겨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냈다.
그의 대답에 언짢은 듯 김 노인이 그를 책망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안 꼴릴 때 까지요.”
나는 끝내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음을 그쳤을 때, 철열이 다시 시비를 걸어 올 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웃으니깐 좋잖소. 금방 죽네 사네 해도, 또 금방 웃을 수 있는 것이 사는 건데……. 형씨는 그래도 나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요. 나는 무서워서 내 손으로는 못 죽것고, 누가 제발 나 좀 죽여줘 븟으면 좋것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심한 자책이 일었다. 나는 죽을 용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무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 드려지고 있었다.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자책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나는 면회실에 앉아 있었다. 유리벽 너머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토록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그녀였지만
어젯밤의 일 때문인지 담담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법원에서 보았던 것처럼 넓은 챙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지금 감정상태가 궁금했지만 그런 차림 때문에
그녀의 눈빛과 표정을 읽어 볼 수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젯밤 영한오빠를 만났어요. 영한오빠에게 전해 달라던 그 말 때문에 이곳에 왔어요.”
다행이 그녀의 목소리엔 나에 대한 증오는 묻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용서해 달라는 말이나 나를 이해해 달라는 말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였다.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생각해 보아도 그것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체 내 삶이 이렇게 바뀌어버린 이유를 찾아 헤매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많은 가정들을 세워보았지만, 모든 가정들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아귀가 맞아 떨어지질 않았다.
예전에도 그녀가 내게 그리 쉽게 첫 키스를 허락했던 것이 외로움 때문일 거라고 굳게 믿었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생각이 얼마나 많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라면 단 한 줄로 내가 충분히 납득하고 내 죄를 인정할 수 있게
정리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담담한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요?”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왜 그래야만 했어요?”
나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궁금해요? 제가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까지 하는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잠시 빤히 처다 보았다. 선글라스 때문에 그녀의 눈빛을 읽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제가 우리들 사랑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제가 진우 씨와 함께했던 모든 날들을 다 부정해 버리고,
그 속에 일던 감정들과 행복을 모두 부정해 버렸다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뱉어진 ‘우리들 사랑’이라는 단어가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한 번도 서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엔 아직도 나에 대한 호감이 묻어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이야기는 내가 짜놓은 많은 가정들과
완전히 엇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속에 구축해 보았던 가정들이 맞아들려면 그녀의 목소리엔 나에 대한
실망과 증오가 묻어있어야 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우리는 놀랍도록 닮았어요. 철저히 자신을 올아 매는 굴레에 갇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까지. 하지만 그날 진우 씨는 자신을 구속하던 그 굴레를 깨버렸어요. 진우 씨는 진우 씨 감싸고 있던
도덕적 굴레와 이성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본능에 따라 강압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켰어요.”
그녀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내가 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와 강압적인 성관계를 맺은 건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질문의 요지를 그녀에게 분명하게 다시 밝혔다.
“내 허물과 죄는 인정합니다. 그걸 부정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함께 나누웠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겁니다. 상대의 허물과 죄가 있다고 해서 상대를 이렇게 까지 철저히 부셔 버릴 그런 것이었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미영 씨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해도 미영 씨라면,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나약해 질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내 말이 그녀의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듯 그녀가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강한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날 당신의 품에 안겨 제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나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제가 흘린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행복의 눈물이었어요.”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모든 생각들은 다 무의미한 가정에서 출발된 것들이었다.
나는 지금껏 그날 일이 그녀에게는 고통으로 존재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행복한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가름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날 나른한 행복감에 젖어 잠에서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어요.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서
당신이 옆에 잠들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많은 날들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당신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슬픔에 한없이 울었어요.
그 눈물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당신이 당신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본능에 충실했듯이, 나도 내 굴레를 다 벗어버리고
내 본능에 충실하겠노라고. 나를 그토록 억눌렀던 그 굴레들을 다 깨버리고 내 본능이 원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 했어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당신이 그런 것처럼 강압적인 힘으로 라도 당신을 갖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당신이 쉽게 끊어 낼 수 없는 당신의 삶 전체를 파괴시켜 버리고서라도 당신을 꼭 갖고야 말겠노라고 다짐 했어요. “
그녀는 말을 다 끝내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의 새로운 삶을 위해 기존의 내 삶을 파괴시켰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한 줄로 선명하게 규정지을 수가 있었다. 시련이 내게 더 깊은 삶의 혜안을 가져다 준 것인지
내가 그녀에게 해야 할 말들이 한 치의 혼란도 없이 분명하게 떠올려 졌다.
“나는 당신이 깨지 못하는 그 굴레를 대신 깨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갇혀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는 당신에게 원망이 있었을 뿐 미움은 없었습니다.
내 삶이 이렇게 망가져 갈 때도 당신에 대한 아쉬움과 의문이 있었을 뿐 증오는 없었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내말에 온 신경을 기울인 체 내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게 될지 긴장된 모습으로 듣고 있었다.
그녀의 외로움과 나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이렇게 변질시켜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나는 오늘 미영 씨를 보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아무리 현명한 여자라도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서 얼마나
어리석어 질수 있는지를. 미영 씨의 생각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미영 씨의 방법은 너무나 그릇된 것입니다. “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다소 따지듯이 물었다.
“진우 씨의 방법은 옳았나요? 내가 진우 씨를 갖고자 하는 마음과 진우 씨가 나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미영 씨와 나는 완전히 다릅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미영 씨가 행복하기를 바랬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버린 이유가 나에 대한 미움 때문 이었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을 겁니다.
내가 당신이 가진 삶을 파괴해 버렸다면 미영씨도 그랬을까요? 나는 미영 씨를 사랑한 것이고, 지금 미영 씨는
내가 아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
한 가지만 더 묻고 싶네요. 그렇게 다 파괴해버리고 나면 날 가질 수 있겠던 가요?
내 삶의 가치들을 다 붕괴시켜버리고 나면 날 가질 수 있겠던 가요? “
나는 그녀가 내 목에 한 줄로 새겨진 상처를 보게 될까봐 웅크리고 있었던 자세를 곧게 펴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내 얼굴에 머물던 그녀의 시선이 목에 난 자줏빛 피멍자국을 발견한 것인지 그녀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녀는 놀라움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에선 놀라움과 슬픔이 범벅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미영 씨의 가슴엔 하나의 사랑만이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부일수도 있겠지만. 제 가슴엔 두 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제겐 그 두 개 모두가 너무 소중합니다. 미영 씨 내 하나의 사랑에 너무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내가 삶을 지속한다면
그건 그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내 모든 걸 바치는 삶이 될 겁니다. 그것이 내 삶의 가치입니다.
그 가치를 훼손시켜버리는 것은 내 생명을 훼손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허리를 숙인 체 울고 있었다. 그녀의 여린 어께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영 씨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 이예요. 난 미영 씨가 행복한 삶을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미영 씨가 그 긴 시간 외로웠던 이유는, 영한 씨와 강 영감, 김 영감님과 미영 씨 어머니의 삶이 그렇게 고단하고 외로웠던 이유는 단하나,
미영 씨가 미영 씨의 삶의 가치를 오직 자신, 미영 씨 자신에게 두고 있었기 때문 이란걸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이의 삶의 가치를 끌어 안아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뒤돌아서려는 그녀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영한 씨에게 미영 씨가 썼던 편지처럼 미영 씨가 나 없이도 행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최선을 대해 보겠다고 내게 말해줘요. 이젠 외롭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내게 말해줘요.”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그녀가 혹시나
불행의 늪에 빠져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녀는 울음을 삼긴 체 아무 말도 없이 내게 등을 보였다.
나는 그녀의 감정을 읽어 내려 애를 썼지만 그녀의 등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느린 걸음걸이로
면회실을 빠져 나갔다.
며칠 후 나는 그녀의 고소취하로 나를 구속하던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개인 사물을 넘겨받을 때 교도관이 쇼핑백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쇼핑백 안에는 손수 짠 목도리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며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 한 번의 면회 후 다시는 보지 못한 아내의 편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도리를 꺼내보니 그녀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편지를 열어 보았다. 그녀다운 글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내 사랑! 안녕히.’
그녀가 내게 선물한 목도리로 내 목에 새겨진 단절된 삶의 흔적을 봉합하고 구치소 공터로 나왔을 때,
여린 눈발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내리는 눈에 가려 하늘이 보이질 않았다.
구치소 철문 앞에서니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어디로 가야될지 어디서부터 내 삶의 궤적을 다시 되돌려나가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구치소 문이 열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문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문밖의 변해버린 현실을 내가 받아드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문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갑자기 ‘아빠’하고 부르는 밝은 혜린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딸 혜린 이와 아들 혁수가 내 품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나는 애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애들의 표정과 모습은 마치 긴 출장에서 돌아온
나를 반기는 것처럼 기쁨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아냈다.
곁에 서있던 아내가 다가오더니 내 어께에 툭하고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나는 목이 매여와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난 당신이……. 떠난 줄 알았어.”
“그러니깐, 있을 때 잘해요.”
아내도 비어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내며 대답 했다.
이것이 내 삶의 가치였다. 내가 생명처럼 지켜야할 내 삶의 가치가 이것이었다.
중년의 삶이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것이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었다. 애들에게 아빠의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눈이 내리는 허공을 배경으로 앙상한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삶이란 저 앙상한 가지처럼 모든 걸 잃어버린
시린 겨울에 비로소 새로운 삶을 잉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쓴 편지와 글을 아내에게 건네지 못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켜온 삶과 지켜가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그 삶은 검불이 아니라 생명이었다고 고쳐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내렸을 때 맞은편에 그녀가 서 있었다. 언젠가 내게 보여주던 여신 같이 빛나는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 미소는 내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애잔한 미소 한 줄을 보냈다. 그녀는 내 미소에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나는 아내를 와락 내 품에 끌어안았다. 낯익은 아내의 단내가 가슴 가득 차들어 왔다.
그 달콤한 향기가…….
세상 그 어떤 화려한 향기도 침범할 수 없는 그 강렬한 향기가…….
끝.
p.s 긴 여정이 이렇게 끝이 나네요.
글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스트레스 받았던 분들도 계신거 같은데,
끝을 이렇게 설정해 놓은 탓에 계속 갈수 밖에 없었네요.
이 글의 주제는 "세상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입니뎌~~
저수지의 그녀 42. 대단원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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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눈물이 핑 도네요
그녀의 잘못된 소유욕을 현명하게 꾸짖는 진우에게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삶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가치관의 기준 등등
저수지의 그녀는 이렇게 끝나지만 감동과여운은 계속될것 같습니다
그동안 글읽으면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무리에서 마음이 찡하니 표현할수 없는 감동을 느낌니다.
감사히 잘 읽엇읍니다.
감명 받고 갑니다
좋은글 읽으면서 행복했습니다
행복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글이 대체로 지엽습니다,
읽기가 부드럽지가 않아요,장황햐달까,,
수필과 장편을 구분하심이 좋을것 같구요,,
얍잡아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기초는 된것 같은데
글이 전체가 갈수록 식상 해진다는
조언 으로 드립니다,죄송,,ㅎㅎ
붕어우리3님 저는 지금까지 님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 즐거웠읍니다..^^
저는 글쓰시는분이 얼마나 힘들다는것을 십분 압니다..^^
지금까지 저수지의 그녀를 집필 해오신것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수고 하셨읍니다^^
더 좋은 글 부탁드리고
팬으로서 꿈을 잃지마시고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한줄한줄 쓰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
붕어님의 글을 응원해주시는 모든분들의 에너지를 받아서
기력회복하시기를 바래봅니다
회복이 끝나시믄 염치불구하고 몬테를~~~~ 기다려봅니다 ㅎㅎ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녀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스토리도
써 볼만할텐데....
그 명암의 고뇌를 쓰려면 너무 힘들겠죠??
저수지의 그녀는 진우의 가슴설레는 선물이지만
인생의 근본과는 바꿀수 없겠죠
미영의 입장에선 선물이 아닌
욕심나는 새삶 이겠지요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선물에 공감합니다!!!!!!!!!!!
보여주시길~~~
덕분에 좋은 글...재미난 글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치고나니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
또 하나의 마디를 만드셨어요.
마디 하나하나 올고지게 맺으셔서
끝내 곧고 푸른 대나무가 되소서...
몇가지 조심스럽게 제가 가지고 있는 여운과 의문을 남겨봅니다. 진우가 그녀를 범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인정이었습니다. 두개의 사랑 중 한개의 사랑으로 의미를 부여/인정했던 것도 진우였구요. 물론, 가족의 사랑에 대한 완성으로의 결말은 찬성/여쩔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사랑은 방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당연히라는 것때문에 결말이 행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었겠지만, 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제 3의 선택을 했다면 어떠했을까요....거기서 좀 더 탈고의 고통이 따르겠지요. 어쩌면 제가 중간에 결말을 예측했기 때문에 더 큰 허탈감이 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미영을 망가뜨렸다면, 진우가 좀 더 자기의 다른 사랑을 인정했더라면 어떠했을가요? 좀 더 극적인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진우의 고통이 너무 단순한 계기로 짧은 시간에 전개 되었고, 미영의 사랑의 완성도가 억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수지의 그녀를 더이상 볼수 없다는 아쉬움이 주가 되었겠지만, 좀 더 두 사람의 완성도 있는 사랑의 전개가 가능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수지의 그녀를 휴대폰에 담아 놓고, 몇번을 읽었네요... 하지만 마지막 38~42단의 글은 너무 빠른 전개로 읽는 재미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재미의 깊이가 짧고/전개가 단순했다고 할까요...... 당연히 저만의 생각입니다. 이상으로 미천한 저의 생각을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당연히 몬테 연재해 주실거지요?
여기 회원님들의 이런저런 지적들은 미움이 아니라, 관심어린 애정이라 생각해주세요.
저는 믿습니다. 그녀를 방치한게 아니란걸... 저는 자꾸만 그녀가 눈에 밟힙니다. 물론 가족이 우선이니까 저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언젠가 정말 언젠가 진우와 미영이 다른 어떤이도 생각하지 않고 서로만을 바라보며, 따뜻한 웃음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올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흰머리 희끗해지는 노년의 시간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읽어오는 동안 저수지의 그녀는 저의 첫사랑을 점점 닮아갔습니다. 모든걸 바쳐서 사랑했지만 절대 가질수 없었던 그녀... 나 자신이 주인공에게 투영될수록 자꾸만 아쉬움이 남네요... 소설에서라도 이루지 못한 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봅니다. 단 1년이라도...
저수지의 그녀에 대한 사람이 제가 영한이였고 진우였고 저수지의 그녀전남편이였다라면 어뗐을까? 극중의 스토리에 내가 그역활속에 몰입되는 그 것을 전문용어로 뭐라하던데요....
저번부터 꼭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얼치기 글꾼이라는 스스로를 깍아내리지 마세요
우리는 붕어우리님의 글에 취했고 붕어우리님의 글의 목마름에 지쳐갔었고 저수지의 그녀을 품는 ... 그리고 넘지않았음을 고대했습니다.
어느 글이 웹상에서 그많은 독자를 기다리게 했고 아쉬워했고 목마라 했을까요
중년의 일탈 우리가 우리님의 글중 이런말귀가 아직도 뇌리에 남습니다.
아버지란이름으로 남편이란 이름으로 ... 아 훌륭한 말이다 ... 현재의 나는 누군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어디쯤왔나? 수없이 되네여 봤는데 그결론을 이글에서 찾아주었네요 제겐 아주 훌륭한 글이였 죄와 벌이라는 러시아 문학보다도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아쉬움이 남았다면 어떤분이 지적한것처럼 글에 투영된 여러가지 관점이 복잡하게 얽힌다면 순수 문학을 도입하면 어떨까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최인호 님의 사랑의 기쁨이란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꼭한번 읽어보세요 복잡하면서 쉽게 글을 쓴다면 순수문학을 기대어 보시는것이 어떨런지요
바로 시입니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상업성글과 순수문학의 글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순수문학과 상업성의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전 하나의 몸짓이였지만 부르고 활용하신다면 붕어우리님의 아름다운 꽃이 되지않을까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 운다고 하는데
등단하시거나 죽백에 오를만한 작품을 구상하신다면 고뇌와 고통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지 않을까 감히 떠들고 갑니다.
너무 잘읽었어요...
감사해요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모조록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끌고 오시느라 참으로 수고 하셨습니다.
중간 즈음에 무척 힘들어 보였는데
자알 극복 하신것 같습니다.
박수 크게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 동안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꼭 제가 경험한것 같은 느낌이 ...
마지막글 잘보았읍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군요
또 다른세상!!
근디 아깝네요^^
정말 재밋게 잘보구감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셧어요
저수지그녀 2편은 언제나오나요 ㅎㅎ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낚시란 주제와 연관이 된것도 있지만
이렇게 가슴설레이게 끝까지 읽은 책은 처음인것 같네요.
그만큼 붕어우리님의 글솜씨가 탁월하다는 이야기이겠죠....
당선되었다고 꼭 좋은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즐비합니다.
그냥 그렇게 그분들처럼 고수로 남아계셔도 좋습니다.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대구에 오시면 연락주세요.
소주한잔 대접해드릴께요.
좋은 만남 즐거운 이야기가 많을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금 가족의 소중함...느껴봅니다..
조금 아쉽긴 하네요
필력이 좋네요~ㅎㅎ
그동안 몇번을 읽었는지..
참 고마웠습니다..
제 마음속에 숨어있던 그 뭔가가 요동치는 느낌을 간만에 만끽해보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