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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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에 들어간 생애 첫 월척(3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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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바야흐로 95년도(20대 중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여름 뙈약볕임에도 12만 평 계곡형 그 저수지는 좌안에 떡갈나무, 굴참나무, 나도밤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리가 중상류에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이곳으로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 붕어 잉어를 비롯 중대형급 향어를 노림수로 더위를 식히곤 했었죠. 그 당시 저도 공인된 제 자리가 있을 정도로 나름 인지도도 좀 되는 현지꾼에 속했었는데, 때마침 뒤늦게 전라북도 정읍과 경상북도 대구분들께 전수받은 잉어낚시를 한창 익히던 때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평소하던대로 대낚시 자리에서 하류쪽으로 30m 정도 아래에서 자새낚시(방울낚시=줄낚시)를 쏠채로 10여 개 던져두고, 2.5칸, 3.0칸, 3.6칸 민낚시대 세 대를 펴서 어분과 토끼표떡밥을 적당히 섞어서 던져뒀겠죠. 자잘한 향어와 잉어, 붕어를 대낚시로 낚는데, 갑자기 끼리리릭~ 끼리리릭~ 하면서 잉어를 노리고 던져둔 방울낚시 하나가 굉장한 속도로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땅에 실하게 박아두지 않았다면 아마 튕겨져 물속으로 날아가버릴 정도였어요. 뭐 이것저것 잴 필요도 없이 득달 같이 달려가 손으로 움켜쥐고 머리 위로 쳐올려 후킹을 했습니다. 이미 70cm급 잉어는 서너 수 낚아본 상태라 그 정도 씨알은 감이 오는데, 도데체 이 녀석은 어느 정도 크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지 가고 싶은 곳으로 그냥 왔다갔다 하더군요. 저는 그냥 그 잉어의 움직임을 따라 연안을 좌우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5분 남짓 실랑이 하다가 잠깐 빈틈을 보이길래, 서서히 줄을 감아 끌어내는데, 연안에서 30m 정도 떨어진 물속에 나무등걸이 꽤 큰 것이 있었는데, 하필 그속으로 쳐박혀 옴짝달싹을 않더군요. 자기 뜰채를 들고 달려오셨던 주위분들과 구경오셔서 들어라 늦춰라 감아라 위로 올라가라 내려가라며 응원해대던 대여섯 분도 '에이~ 끝났어.' 이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자기 자리로 떠나시더군요. 그분들도 그 나무등걸에 박혀버린 잉어를 한두 수 씩은 모두 놓쳐보신 분들이시라서... 채비(감성돔 바늘 4~5호)를 억지로 당겨 회수해서 보니 바늘 두 개는 부러졌고, 바늘 하나는 뻗었더군요. 잉어낚시 전용 여섯바늘 채비를 했는데, 그 당시 바늘이 한두 개 부족해 은침과 흑침을 섞어서 묶어놓은 채비에 하필 잉어가 걸렸었던지, 흑침 두 개는 부러졌고, 은침 한 개는 뻗었더군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일이라도 또 오겠지 하면서(당시엔 잉어에 그다지 큰 욕심은 업었답니다), 다시 떡밥을 달아 쏠채로 40m 정도 던져두고, 대낚시에 집중했습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된 터라, 낚시하시던 현지꾼들께서는 다 가시고, 근처 슈퍼로 소주 한잔 하러 가신분들도 계셔서 제 주위 가까이엔 아무도 없었고, 건너편 최상류 장박하는 분들만 새로 잉어떡밥을 갈아주시느라 바빴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 더하다가 가야겠다 하고는, 대낚시에 떡밥을 갈아주면서 잔씨알 향어와 잉어, 붕어, 떡붕어를 낚고 있었는데, 간간이 입질이 들어와 두마린가 낚아냈던 3.6칸 찌가 곧 넘어질려고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또 잔챙이겠거니 챔질을 했더니, 갑자기 대가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3m에 육박한 수심에서 내리박길래, 저는 또 40cm급 향어나 한마리 건줄 알았죠. 그런데, 그냥 잠깐 힘을 쓰더니 다시 쉽게 끌려나오더군요. 제법 큰 씨알이라 잡아놓고, 붕어를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깨끗하고 예쁘지 않고 뭔가 좀 부족해 뵈는 붕어였습니다. 분명 떡붕어는 아닌 게 확실했지만, 어디 그물이나 어떤 분 살림망에서 도망을 쳤다거나, 아니면, 어떤 꾼의 낚시대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장애물을 감고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치다가 겨우겨우 빠져나와 제 바늘에 다시 걸린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입술은 두 군데 정도 찢어져 너덜거려 다 아물지 못한 상태였고, 비늘도 양면에 대여섯 개 씩은 떨어져 나가고 약간 검은 등쪽을 빼고는 몸은 또 유난히 연한 황금색 조금하고 거의 대부분은 은색을 띄었고요. 다른 잉어꾼들이 잡았다가 나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 당시 그 저수지엔 정읍 사람들과 대구분들이 잉어를 잡아 전문으로 돈벌이를 하는 분들이 예닐곱 명은 됐었던지라... 그 붕어가 혹시 떡붕어 아녔냐고요? ^^; 보통 그 저수지 그 포인트엔 각자 자리가 정해져 있어 제가 가운데 앉고 양쪽으로 낚시대 두세대씩 펴는 분들이 앉곤 했었습니다. 저는 양쪽에서 낚아내는 어종을 낚아낸 분 손에 잡히기도 전에 맞혀낼 수 있었습니다. 잉어네요, 향어네요, 떡이네요, 붕어네요. 하면서요. ^^; 솔직히 세네 치 잉어와 붕어는 손에 쥐어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그분들이 정말 신기해했던 추억이... ^^* 암튼, 태어나 처음으로(그 이전엔 솔직히 월척에 대한 개념이 없어 붕어는 그냥 큰 붕어와 작은 붕어로 나뉘었을 뿐일 때니까요.)큰붕어를 낚은 저는, 얼른 철수를 해서 붕어를 집 마당 수돗가에 모셔두고, 친한 친구 몇에게 자랑을 했지 뭡니까.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붕어를 보여주려는데, 수돗가 큰 플라스틱 통이 비워져 있었고, 집에서는 꽤나 먹음직스러운 사골냄새 비슷한 것이 강하게 풍겨져 오고 있었습니다. 부엌 말고 집 뒤켠에도 가스렌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곳이 그 냄새의 진원지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랑 집 뒤켠으로 갔더니 가스불 위에 올려진 큰 찜통이 부글부글 끓고 있더군요. 가스불을 줄이고, 제가 뚜껑을 열고 친구랑 안 내용물을 보고는 기겁을 했지요. 그 큰 붕어가 실제로 마늘을 베개 삼고, 찹쌀을 이불 삼아 찜통 속에서 다소곳하게 누워있었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붕어의 흔적은 보여질 정도라 대충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바닥 지름이 40cm 크기의 찜통을 거의 채울 법한 붕어 크기라 그냥 낚은 것으로 대략인정(?)을 받았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 와서 줄자를 종이박스 위에 길게 빼두고 붕어를 줄자 위에 올리니까 꼬리지느러미 끝이 36.8cm를 가리켰었습니다. 암튼, 이미 삶아진 붕어는 그냥 두고 본부로 이동해 월척을 낚아낸 기념으로 친구와 기분 좋게 소주를 나눠 마셨더랬습니다. 그날 밤, 붕어를 찜통에 삶으신 범인(?)은 아버지로 밝혀졌고요. 제가, 집에서 붕어 약내리는 방법을, 아버지께 진작에 알려드렸던 것이 그렇게 큰 화근이 될줄이야 저는 진짜 몰랐었습니다. ^^; 이제와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아버지 그땐 진짜 왜 그러셨어요." ㅡㅜ

그날 아버님 보약드셨네여^^ ㅎㅎ
그러게요. ^^

처음에 몇번 잘 드시고는 재탕으로 드실려다가 결국 새까맣게 홀라당 다 타버렸었답니다. ^^;
그래서... 늦동이 동생이 생겼어요.?

이박사님이 겸손한 고수라는 헛소문이 사실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
피러 어르신/
막내가 군대를 갔을 시기였고, 그 이후 아버님과 어머니께서는 뻐뻐도 잘 안하시는 상황이셨던 것으로 압니다. ^^;
제가 고수라고요?
저는 그냥 중수만 하겠습니다. ^^;


율포리님/
진짜 웃기죠. ^^
실제 사건입니다.
실은 저는 그녀석을 읍 사진찍는 사진관에 모시고 가 사진을 찍고 확대해서 액자에 넣을려고 했었답니다. ㅋㅋㅋ
아직 무월 이라 부러운 마음 금할길 없습니다 ㅜ
그래서...아버지드신게 아깝다는 말씀은아니쥬~??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아버님..오래오래무병장수하시긋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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