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번 추억의 조행기를 눈팅만 하다가, 제 지난 시절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몇자 끄적여 봅니다.
그저 예전 일들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니 뭐라 나무라진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1. 시작....
어릴적 일욜 새벽이면 작은 손으로 눈꼽을 떼어가며, 게슴츠레 눈을 비벼대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당도하는 곳은 낚시터.
지금 생각해보면 한칸반쯤될 작은 낚시대 하나를 제 앞에 놓아주고, 아버지는 지인분들과 낚시를 즐기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낚시의 낚자도 모르는 코흘리개 시절이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낚시터 주변에서 시간을 떼우곤 했었죠.
그렇게 처음으로 시작한 싫증만 가득한 낚시였습니다.
그래도 한번은 보물인냥 제가 잡은 월(34쯤 되었다고 함)을 어탁을 뜨고 준우승으로 받은 트로피 안에 고히 모셔둔 적도 있었지요.
그 때가 아마 일곱살때였던것 같습니다.
도회지에서 살다가 열한살때쯤인가, 저희 가족은 조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농삿일에 아버지도 낚시를 접으셨고, 먼지 가득한 아버지의 낚시가방은 창고의 다른 물건들과 동격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이라 그런지, 작은 둠벙에서부터 어린 제겐 멀리 떨어져 있는 하천까지.... 그렇게 싫증만 느끼던 낚시를 하고 픈 맘이 왜 들었던 걸까요?
하지만, 창고에 쑤셔 밖혀 있는 아버지의 낚시가방은 감히 제가 손을 델 수 없는 그 무언가의 경외감이 있었기에
그저 시골 친구들과 삼태기와 뜰채로 천렵을 하는 재미밖에는 없었죠.
한달에 한번 머리를 깎으러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부대를 거쳐서 수향리이발소에 갑니다.
어머니한테 머리깎을 돈을 받아 쥐고서....
그 날만큼은 친구들과 저에게는 한달에 한번밖에 없는 행복감을 느끼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발소 아저씨는 신경통인가 뭔가 오랜 지병이 있으셨는데, 두더지를 푸욱 고아 드시곤 했었습니다.
살아있는 녀석을 잡아가면 오백원. 죽은 녀석을 잡아가면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셨죠.
그래서, 머리깎기 전날은 가장 바쁜 날이 됩니다.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저는 가방을 팽개치고 뻘건 황토에 심어진 고구마밭으로 향했죠.
용돈이란 따로 없던 시골 그때만큼은 저희에게 큰 용돈을 만들 기회였으니까요.
물론 꽝치는 날이 더 많았지만....
두더지를 잡아가는 날에는 머리를 깎고 구멍가게에 들려 이것저것 신기한 군것질 거리를 실컷 먹고, 빨대처럼 생긴 찌에 바늘과 낚시줄이 같이 있는 오십원짜리를 구입해서 긴 막대를 꺾어 동여매고 수향리 저수지에 대를 담그곤 했습니다.
물론 머리를 깎으러갈때, 덤으로 가져가는 것은 거름더미에서 잡은 지렁이였죠.
그때는 꽁치를 잡았다고 좋아라 했던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살치였던것 같습니다.
이게 벌써 삼십오육년이 흘러버린 시간이라니....
2. 가물이는 몽뎅이로~
앞 동네와 우리 동네는 가끔씩 야구를 했습니다. 변변한 야구공과 글러브가 없었기에 동네에서 보관을 하다가 이날 꺼내어 사용을 하곤 했죠.
우리의 야구장은 1킬로 남짓 떨어져 있는 한내라는 하천 주변의 풀밭!
(경부고속도로의 입장화물휴게소 바로 옆의 하천입니다)
준비물은 또 있었으니 큰 냄비와 국수, 고추장....
야구를 마치면 작은 고추를 드러내고 발가 벗은채로 그 냇가에서 신나게 놉니다.
그러다보면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초등학교 오육학년 형들은 메기, 붕어를 하천변 수초에 손을 넣고 움켜 잡는데, 그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하느님처럼 경외심과 존경심이 우러 나오곤 합니다.
나는 언제 형들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삼사학년인 저희는 각자의 손에 주위에서 주은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서서히 물가 모래사장쪽으로 일렬로 다가 섭니다.
조용 조용.... 서서히 서서히
모래사장과 물이 만나는 지점에 시커멓게 타버리다 남은 몽둥이처럼 생긴 물체가 보이지 않나 작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바라보면서....
누군가 먼저 그 물체를 발견하면 손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그쪽으로 서로 바짝 붙어 앞으로 앞으로 조심조심....
이삼미터 앞까지 다다르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각자의 함성들....
와~~~~~ 야~~~~~
그렇게 우리는 그 시커먼 물체를 향해 냅다 달려 나갑니다.
그 물체는 우리의 갑작스런 출현에 바들짝 놀래 꿈틀거리며 물밖 모래사장으로 때로는 옆으로 날쌔게 움직입니다.
이때,
우리의 몽둥이는 두번째 타석에 들어서게 됩니다.
휀스없는 홈런 한방을 위해서 몽둥이는 그 시커먼 물체를 향해 "쳤습니다! 홈런~~ 홈런입니다."
이렇게 한방 홈런을 친 친구는 영웅이 되고, 우리는 빙 둘러 모래사장에서 아직도 꿈틀거리는 그 물체를 빙 둘러 에워싸고 두번째 공격을 가합니다.
전장에서 패배한 병사처럼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버린 그 시커먼 물체는 가물이....
보통 오육십센티정도 됩니다.
형들이 손으로 움켜 잡은 메기,붕어 그리고, 친구들과 합세하여 잡은 가물이는 커다란 냄비에 얹혀지고, 주변 밭에서 따온 고추, 파 등등을 손으로 작게 부러뜨려 넣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넣고서....
가위, 바위, 보~!
가위바위보에서 진 한 녀석은 불을 지펴 그곳을 지키고 다른 친구들은 다시금 물가에서 신나게 놀죠~~
삼십여분쯤 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속의 고추장향기~~~
이때, 국수를 통채로 넣고 그 냄비에 빙 둘러 앉아 기다립니다. 각자의 손엔 주위에서 나무를 꺾어 만든 젓가락을 들고서....
아~~~~ 그 맛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3. 아버지의 낚시대!
아버지의 낚시가방이 창고에서 나오게 된건 제가 아닌 삼촌에 의해서 였습니다.
충주호의 향어낚시에 심취해 계셨던 삼촌은 아버지의 허락하에 낚시가방을 얻으셨고, 당연히 저는 이때의 기회를 노칠수가 없었죠.
그래서, 제 손에 쥐어진 아버지의 낚시대는 1.8대와 2.0대 이렇게 달랑 두개!
나머지는 모두 삼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달랑 두대의 낚시대,,,, 하지만 이날의 뿌듯한 행복감이란 말로 다 형용하지 못할 천국에 온 기분이랄까....ㅎㅎ
이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름더미를 헤치고 지렁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동네 앞 논과 논 사이의 작은 둠벙들을 향해 달리는게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딱 한번 보여주신 아버지의 찌맛춤~!
빨간 고무다라 큰데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어린 제겐 소중한 보물로만 보이는 잘 빠진 찌에 납봉을 묶어 물속에 담그시고 머라머라 하셨는데,
지금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고 어렴풋이 그 광경만 머릿속에 남아 있네요.
손맛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찌가 움직이면 잡아채어 올라오는 붕어가 신기해서 한 몇달간은 그렇게 보냈던것 같습니다.
어린 제겐 빨리도 찾아오는 싫증....
다시금 그 두대의 낚시대는 못자리용 비닐에 감싸여 창고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아이보리 색상의 오리엔탈 두대~!
그렇게 시간이 또 십몇년이 지나 언제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읍내에서 구입한 작은 낚시가방과 몇천원짜리 낚시대들과 섞여 오리엔탈 두대는 제 개인 낚시가방에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몇달 내려가 있었던 저는 자전거 뒷자리에 작은 낚시가방을 묶고 저수지에서 무료함을 달래곤 햇습니다.
한낮의 짬낚시에 손맛을 제대로 보긴 힘들었지만, 찌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나 혼자만의 공상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그게 낙이었던것 같습니다.
읍내 낚시점에서 몇천원에 구입했던 낚시대는 그 무게감때문에 가방에서 나와본적이 거의 없었고, 매번 두대의 오리엔탈 낚시대가 저와 함께 하는 벗이 되어주곤 했었죠.
4. 골동품 가격
다시금 십여년이 지나 제 나이는 서른중반, 한달에 두어번 시골을 찾아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와중에, 창고에 먼지 수북히 얹혀 있는 낚시가방하나...
그건 이십대 중반에 처음으로 구입했던 작은 낚시가방이었습니다.
어느날인가, 그날도 저수지의 상류 햇볕이 따스하던 봄이었던것 같습니다.
십여미터 몇에서 낚시를 하시던 노년의 조사님께서 줄곧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시는 시선을 오분쯤 느꼈을때, 그 조사님이 제게 다가 오셨습니다.
헌데, 그 분의 시선은 줄곧 제 낚시대에만 머물러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제 옆에 서서 하시는 말씀 "그거 오리엔탈 맞죠? 아직도 그걸 쓰시는 분이 있다니.... 한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히야~~~ 이걸 얼마만에 잡아 보는거야~~~"
계속되는 그 노 조사님의 말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큰 맘먹고 처음으로 구입한게 바로 요놈이었습니다"
"정말.... 이거 삼십년도 넘었을건데...."
"사십년쯤 되었습니다. 제 아버님이 쓰시던겁니다"
"이거 제게 파실 의향없으신가요? 아뇨~ 제게 파시죠. 값은 후하게 쳐드리겠습니다."
"안됩니다. 저 역시 제 추억과 아버님의 손때가 묻어 있는거라서요."
"제발 부탁드려요.... 제게도 이놈은 제 소중한 기억들이 생각나게하는거라서요."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육십이 넘어 보이는 노 조사님이 이제 삼십대중반인 제게 연거푸 굽신굽신 상체를 숙이시면서 부탁을 하시는데....
차마 저는 거절을 못하겠더군요.
결국, 작은 1.8대 하나를 그 분에게 넘겨 드렸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분의 두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소중한 추억이 있으신가보네...'
그 분은 오리엔탈1.8대 하나를 들고 자리에 가시더니 이내 낚시대를 접으시고, 돌아가시는거 였습니다.
차의 시동을 끄지 않고 제 자리로 오시더니 봉투 하나를 제게 건네면서
"정말 고마워요. 이거 돌아가실때 저녁밥이나 사드시고 가세요"
"아닙니다. 괜챦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겁니다. 밥값밖에 안되요"
"네. 그럼...."
그 노 조사님은 차로 돌아가시면서 핸드폰으로 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군요.
"오늘 내가 뭘 잡은줄 아나? 대물중의 대물일세 그려~~~"
"허허허허~~"
그 낚시대를 대물중의 대물로 표현하시며 돌아가시는 그 노 조사님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는 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 하얀 봉투속에서는 십만원짜리 다섯장이 들어있는게 아니겠어요.
누가 줘도 안가져갈 사십년묵은 허름한 낚시대 하나를 오십만원씩이나 주고 가져가시다니....
지금은 칠순이 넘으셨을 그 분!
건강하신지.... 지금도 물가에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추억의 조행기를 눈팅만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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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도 좋은 글 기대 합니다.
흡사 형형색색 단청도 없는
어느 조용한 향교 툇마루에서 봄햇살을 맞는 듯...
물품이 지닌 가치는 마음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죠. 노조사분께 잘 분양하셨네요.
공감과 추억을 회상할수있게 해주신
자버꾼님께 감사 드립니다
초등학교 양어장에서 수수깡찌에 붕돌은 자갈로 대는 대나무로 미끼는 쌀밥풀로
받침대도 없이 그냥손에 대를 들고있으면 어신이 오면 드러가도 올라도 무조건
챔질을 하면 가끔은 붕어가 올라옵니다
대나무로 만든 낚시대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빼기식 낚시대 처음 아버지로 부터 받고 나서
그렇게 좋아 했었는데..
자버꾼 때문에 저역시 아련한 추억에 잠기네요..
글 잘 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즉 절대 잊을수 없는 추억이 있는 물건이였나봅니다~^^
소중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소중한것들을 다시 떠올릴수 있는 시간을
얻었네요.
노조사님은 그낚싯대에 누구도 모르는 당신만의
소중하디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것이었을것입니다.
그걸 수십년만에 다시 대했을때는 금전적인 가치가아닌
나이에 비례한 만큼의 갑진 가치가 있어 다시 가지게된
대물중의 대물이 녹아들것입니다.
그자리에 가게된것도 인연일것이고 하여 그분은 그소중함을 꼭얻고자 했을거고
얻었음에 훈훈한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모처럼 재미있는글 읽었습니다 낚시로 인해서 행복한 시간들 되십시요~~
바로 '오리엔탈' 골동낚시는 그런 것이었군요.
잔잔한 한 편의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