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얼마전 자게판에 올린글인데
보신분이 몆분 안계셔서 내용조금 추가해서 재활용 했습니다 ^^
오늘 대물낚시코너중
팔당 배견지가 나와 옛생각이 나서 몆자 적어봅니다 .
제가 낚시 한지가 꽤 오래 됐는데
제 최고의 붕어 조황은 저수지에서 나온게 아니고
아이러니 하게도 팔당댐 밑 배견지 구더기 미끼 에서 나왔습니다.
예전8.90년대 제가 수도권에에 살았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팔당댐 낚시 단속이 심할때가 아니고
배스도 없던 시절 이어서 어디서나 낚시가 골고루 잘됐습니다
자가용이 별로없던 시절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낚시점에서 떡밥 지렁이 사고
아침 5시 첫 버스타고 팔당호 양수리 다리 밑이나 문호리등으로 출조해서
몰래 도둑 낚시를 즐기곤 했지요
당시 붕어낚시 주 포인트는 양수대교 검문소 밑이나
지금 유료낚시터가 있는곳
또 양수리 시내 주유소 뒷편이 당시엔 모두
팔당호와 접한 논이었는데
매일 그 논둑에 수십명이 길게 않아서
낚시들을하던 장관이 이루어지곤 했지요
당시는 배스 불루길이 설치기 전이라
멍텅구리 채비에 찌맞춤을 안해도
일단 낚시줄에 바늘만 달아서 넣으면
누구든 풍족하게 원하는 만큼 잘나오던
정말 지금은 상상도 못할
풍요로운 낚시환경 이었습니다.
지금 낚시인들이 치를떠는 배스낚시가 처음 시작된 때도 그 무렵 입니다 .
지금은 배스가 떵 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지만
그무렵은 배스라는 말은 다들 알지도 못하고 당시엔 민물농어 라고해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지요 .
배스는 지금은 루어낚시로 흔히 잡지만
당시엔 전국에서 유일하게 팔당댐에서만 나왔고
팔당댐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 포인트에서만
어쩌다 손님고기로 가끔 나오는 귀한 생선이었지요.
붕어낚시중 배스가 한마리 나오면 귀한 민물농어 잡혔다고
사람들이 모여서 회치고 소주먹고 난리였지요.ㅎㅎ
배스낚시도 문호리 등 일부지역에서만
산새우 미끼에 배타고 이루어지는
당시로써는 부자들만 하는
정말 최고급 낚시 였지요.
당시에는 양수리나 덕소 시내에도
배스파는 식당이 있었는데
당시는 배스가 송어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지요.
당시 그렇게 귀하게 대접받던 민물농어가
지금은 떵만도 못한 배스로 대접 받는걸 보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아침낚시에 붕어잉어 강고기 실컷잡고
햇빛이 뜨거워져 낚시 그만할까 할때쯤이면
낚시단속반이 어김없이 10시쯤 이면
매일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지요 .
그때는 양수리검문소밑과
문호리 수암리 능내등 팔당댐 전역에서
낚시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팔당댐 낚시가 불법으로 규정 되있었음에도
지금처럼 벌금을 물리는게 아니라
그냥 단속반이 자전거 타고 포인트 따라돌며
낚시하던 사람들을 쫒아내는 수준의 단속 만 있었습니다.
사람도 고기도 참 순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
단속요원이오면 낚시하더 사람들은
동시에 x팔 x팔하며 낚시대들을 접고
철수하고 일부는 단속반이 가길 기다렸다가
오후3시쯤 단속반이 다시 나올때까지
다시 도둑낚시를 즐기곤 했지요.
저는그때 대낚시하다가 단속반이 나오면 낚시대를 접고
덕소 동막에 있는 등나무집과
덕소에 몆군데있던 배견지집에 가서
배견지 낚시를 즐기곤 했지요.
배견지낚시는 주로 댐이 물을 방류하여
여울이 생길때 물살타고하는거라
작은 노젓는배에 1명이나2명이 타면 견짓배주인이
모타배로 낚시배를 팔당댐 밑 가운데 여울에 끌어다주면
물위에 띄우는 썰망에 깻묵과 구더기를 넣어 여울 아래로 흘려보내고
그걸 먹으면서 고기들이 물살 타고 올라오다가
견짓대 바늘에 낀 미끼먹고 고기들이 잡히는방식이지요.
견짓대에 구더기미끼를 달아 낚시를 하면
주로 피라미 끄리 매자 누치등이 잡혔고
주로 노리는 어종은 멍짜라고 해서 50센티이상 큰누치였지요 .
가늘고 작은 견짓대에 멍짜 한마리 물리면
그 쾌감은 대물 오짜붕어 낚을때보다 절대로 떨어지진 않지요.
배견지 재미있는데 일단 한번 물 가운데로 가면
절대 나올수가 없었지요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던때라 밥주문도
처음탈때 해야 갖다줬지요.
배주인에게 몆시까지 오라고 해야
모타보트로 그시간에 견짓배 끌러옵니다.
물 한가운데 인데도 덥기는 무척 더웠지요
처음 배견지 하는 사람들은 중도기권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지요.
시간전에 철수하고 싶어도 여울에 노를
몆킬로씩저어 나가야 햇기에
철수길도 고생이었습니다.
낚시하다가 남자들은 소변을 아무데나 해결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면 정말 난감했지요.
좀 요령있는꾼들은 볼일용으로 쇼팅깡통이나
오뚜기케찹 깡통을 필수로지참했고
같이 동행하는 여자들도 치마는 필수였지요.
치마가 왜 필요한지는 상상에 맞기겠습니다 ㅎㅎ
주로 포인트가 여울 가운데라 낚시배들을 가운데
물살있는 여울에 집중시켜 다닥다닥 붙여놓아
가끔 치마 안 입은여자가 타면
뻔히 서로들 보이는 낚시배들 사이에서
소변을 볼수없어 발동동구르며 참다가
포기하고 낑낑대며 노저어서 철수하곤 했지요.
90년대 장마 끝나고 팔당호 방류 멈춰고 물빛이 흑탕물일때
친구랑 등나무집 배견지타고 낚시를했는데
평소에는 배견지에 전혀 나오지않던 붕어들이
그날따라 희안하게 때를지어
구더기미끼를 물고나와
정말 폭팔적으로 붕어를 잡은적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둘이서 견지낚시 구더기미끼로
붕어만 사과박스에 꽉꽉 채워서 몆박스나
잡았습니다 .준.월척급만 수십마리 ......
정말 몆시간 동안 붕어만 견지로 쉬지않고 나왔습니다
당시는 민물고기도 귀하게 먹던때라
덕소 시내로 나가 종이박스 구해서 꾹꾹 눌러 담아서
물 뚝뚝 떨어 지는걸 둘이 정류장 까지 낑낑대며 옮기고
비린내 푹푹 풍기고 시내버스 기사님 눈치보며
집에까지 버스로 실어 날러 동네잔치를 한적있습니다.
친한 동네사람들 모여 가마솥에 불지피고 대파 뚝뚝 썰어넣고
붕어매운탕 뻘겋게 한솥끓여
막소주와 함께 캬~~~~~~~~~~~~~~~~~~~~~~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입니다 ^^
당시 살던 동네는 사람들이 좀 없이 살았어도
정말 다들 정많고 인정많은 동네였는데
그동네 떠나온지가 오래되서
그시절과 그사람들이 참 그립습니다 ㅡ_ㅡ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쓸데없이 주저리 주저리 한번 써봤습니다 ^^
팔당댐 도둑낚시와 배견지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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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붕어도갈수록 인심이 사나워 지는것 같습니다
안출하십시요~
양수리 상류로 이동하고 오후에 단속반뜨면 다시 능네에 점빵차리고
그래도 야간에는 단속을 안해서 밤낚시하기는 좋았죠
그시절 팔당댐이 서울 꾼들의 최고의 놀이터였는데 ***
노를저어 수물나무근처까지 조용히 다가서서 장대에 고부력튜브단찌에 새우끼워 중층에 놓고
입질 없으면 약간의 고패질에 숨어있던 베스가 덥석물어주면 느꼈던 그손맛 그리워 지네요.
말씀데로 그때 베스는 고급어종으로 회감이었는데 지금 팔당베스 왜 못먹는지 아니면 안먹는지 그놈의 베스 그때 다 잡았으면 지금 없을것을...,
지금의 베스꾼들 왜 릴리즈 해주는지 F.TV보다 베스꾼들보면 욕부터 나오니 찬넬 바꾸죠.
자연을 사랑해서 다시 놔 준다나 원
견짓대가 아니라 루어 였지만...
끄리하고 누치를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한가운데지만 정말 덥다는거...
초겨울에 루어 배스낚시(새벽에 몰래)도....^
양수리 그 거대한 강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상상이 가네요.소박사님 추억의조행 잘보고 갑니다.
소중한 추억의 조행기 잘 봤습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앞으로도 좋은글 올려주세요^^
낚시금지 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아쉬웠던지
양수리쪽보다는 퇴촌 분원 귀여리쪽 조황이 훨씬 좋았었죠
새벽 물안개 속에 칸데라 불빛을 받으면서 반짝이며 올라오던 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도 아주 옛날에 아버님과 함께 검문소옆에서 많이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님이 김밥 싸주셧었는데 낚시하면 먹으라구 썰지도 않고 주셨던 기억도 나네요.
순박함이 밀려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안출하시길 바랍니다
재미나고 추억이 생각나는글 잘읽고 갑니다~
갑자기 피라미 청양고추넣고 자글자글 조림해논거 먹고싶어지네요~~^^
청량리에 새벽에나가 첫차타고 덕소까지가서 다시 시외버스로갈아타고 양수리쪽으로 낚시가던생각...
양수리에서 내려 근1키로정도 짐들고메고 낑낑대며 올라갈때 꼭 삐삐선은 챙겨야했던일(당시 후레쉬도 나온시기군요)
83년도에 팔당댐 수문밑에서 깡통릴(?) 20여개펴놓고 잉어잡던 그당시 70넘은 노인분들생각(지금도살아계실까?)...
나도 거기에빠져 그좋던 직장그만두고 깡통릴10개 사가지고 그노인분들 틈에끼어 3개월 텐트치고 해본적있습니다
83년도 당시 74세드신 노인분이 하시는말 16살에 일본가서 엄청 두드려맞으면서 우리가 지금쓰는 타올짜는일 배워서
국내들어와 타올공장을 운영했는데 당시 데리고 일가르쳤던사람이 나가서 차린회사가 지금의 송월타올이라고 하던데
경기광주로 여주로 버스타고 찐깻묵 사러가던일 ..경동시장에서 걷보리사서 볶아빻고 튀긴강냉이 사던일..
댐수문 밑에서 대형잉어 잡아놓으면 불교신자들이와서 잉어를 사다가 위에서 스님목탁두드리며 방생하고
밑에서는 노인분들이 깡통릴로 다시잡고...
거기서 잉어낚시에 한참푹빠져있는데 라디오에서 갑자기 당시대통령이던 전두환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방송보고
전쟁난줄알고 짐싸들고 집에왔더니 어머님이 낚시간다해서 금방들어올줄알았더니소식도없이 3개월이나 나가있다 들어왔으니
집에서 난리가 났던일..
참.... 옛날생각나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소박사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지렁이 한마리에 붕어 한마리
유일하게 지렁이 모자라서 낚시 접은적 있습니다
쪽배 5000원이면 하루 빌릴수 있었고
새우로 띄울낚시하면 배스도 잘 낚였었지요
배스 그리 나쁜놈인줄 몰랐고 민물농어라고 잡으면 좋아했었지요 ㅎㅎ
옛생각 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