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바람이 엄동설한 내내 인고(忍苦)의 세월을 장하게 버티어온 산하(山河)를
훈훈한 입김으로 간질이듯 속삭여서 깨우면, 정녕코 죽은 듯 깊게 잠든 채 바싹 메말라서,
꺼무튀튀했던 초목의 가지들이 목을 축이고 생기를 찾아,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겨우내
장중한 수묵화(水墨畫)처럼 을씨년스러웠던 그곳을 화사한 봄의 빛깔로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잔설(殘雪)이 있는데도, 한시라도 빨리 봄의 도래를 알리고픈 초조함에 젖어들어
새순(筍)보다도 앞서 꽃망울부터 터트리고 보는 매화(梅花)를 선봉으로,
색(色)동 전령들의 화급한 뜀박질로, 하루가 다르게 환해지는 암울하기만 했던 산야(山野)를 꿈꾸듯이 보면서,
꾼의 마음도 꼭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기쁨에 겨워 덩달아 들뜨기 시작합니다.
영하의 기온인데도, 무심코 본 깨알만한 입춘(立春) 두 글자가 화등잔(ㅎ)만큼 커 보이는
시기가 지나면, 물가에 앉아있을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보며 흐뭇해합니다.^^
1980년의 봄도 그렇게 왔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내다보던 작은 뜰의 양지바른 귀퉁이에 서있던 단 한그루 매화나무에서도
겨우내 차갑게 얹고 살던 얼음 꽃, 눈꽃은 가고 연분홍 그 예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붕어에겐 그들의 생존본능에 따른 뜻 깊은 행사로 고난의 산란기이자,
설치고 싶은 철없는(?) 꾼들에게는 잦은 입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그 시절이 곧 도래합니다.
좌회전하여 퇴촌으로 진입하는 삼거리 모퉁이의 가게 뒤편에는, 커다란 아카시아 고목이 있어서
초여름이면 만개한 그 꽃의 싱그럽고 상큼한 내음이 열린 차창을 통해 버스 안을 물씬 향기롭게
하는 것까지는 여느 해처럼 좋았는데,
퇴촌을 바라보는 다리 입구에서는 파견된 경찰관들이 낚시꾼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상부의 지시를 내세우는 그들에게 별 대안은 없었습니다.
꾼은 오염과는 무관한 생미끼를 쓰기도 하고 저와 같은 경우는 콩, 보릿가루와 소량의 깻묵만 미끼로 쓰는데,
꾼이 먹어도 되는 그것이 수질악화로 이어진다는 데에는 이의(異議가) 있지만
매사에 합리성보다는 법(法)대로가 우선인 막힌 현실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원의 형을 따라 신갈, 송전, 고삼 등 경기권의 이름난 저수지를 두루 섭렵해 보았으나
찾아가 앉아 물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후련하고, 난데없이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이 너무나 아파서,
가마니를 주워 뒤집어쓰고서도 웃으면서 행복했던 팔당호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속이 허술한 틈을 타 나쁜(ㅋ) 양이 되어 가끔 ‘금사리’를 찾는 가운데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규제로 즐거움이 반감되는 낚시라서 오히려 씁쓸함만 늘어가던 중 불현듯 ‘운심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단출한 장비와 차림으로 화창한 가을 어느 날, 머나먼 그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해질 무렵에 고추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서 물가에 이르렀습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열성 꾼이 땀깨나 흘리고 만들어 놓았을 완벽한 여건을 갖춘 그곳에 정성스레 대를 폈습니다.
앉을 자리도 평탄 널찍하고 부채꼴로 뚫어놓은 그 언저리는 빼곡한 수초로 뒤덮여있었습니다.
발밑에서 가파른 경사로 이어진 2.5칸 대 지점은 1.5미터의 수심, 2칸 대를 하나 더 폈습니다.
예신에 이은 느긋한 찌 올림이나 굼실거리며 모로 가는 찌의 이동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초장부터 힘센 준척의 입질로 실로 뿌듯한 향연이 시작되면서 가을밤은 시나브로 깊어갔습니다.
웬만해선 낚싯대만으로 붕어의 항복을 받아내던 저도 오랜만에 기대감에서 뜰채를 폈습니다.
바싹 마른 고춧대 사이에서 먹이를 찾아 쏘다니는 작은 짐승의 가벼운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녀석들이 들쥐임을 저는 잘 압니다. 때로는 떡밥을 주워 먹으려고 주변으로 오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제법 소란을 일으키는 큰 녀석의 정체는 알 길이 없어 받침대를 하나 펴 세웠습니다.
간드레로 뒤를 비추자 섬뜩한 인광이 인근에서 번뜩거리다 이내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들고양이 나부랭이겠지만 일단 놈이 도망가서 안심, 그래도 텐트를 쳐 등 뒤를 막았습니다.
때로는 돌을 던져도 도망은커녕 시퍼렇게 째려보는 간땡이 부은 큰 녀석도 있답니다.^^
문제는 자정 무렵부터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술렁거리는 전면 수초속의 큰 꿈틀거림입니다.
팔당호의 ‘이무기’는 금시초문이고 ‘보아’의 존재라니 맹랑하고... 도대체 무엇일까? ㅎㄷㄷ
6V용 랜턴만 있었다면 쉽게 무언가 확인할 수가 있었겠지만 짐을 줄이려고 두고 왔고,
빛을 멀리 비추기보다는 반사경으로 확산시켜서 근거리에 광범위한 조사(照射)가 주목적인
간드레로는 윤곽만 보이지, 도무지 형체를 알아낼 수가 없어 두려움에 가슴만 쿵쾅거렸습니다.
신통하게도 입질에는 별 변동이 없었습니다. 놈은 계속 술렁거렸고, 저는 연속 잡았습니다.
돌을 던지고도 싶었지만 쓸데없이 녀석을 건드려 자진해서 혼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무기를 잡은 낚시꾼’ ‘사투를 벌린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낚시꾼’...?? 혼란스러웠습니다.
붕어를 끌어내던 중에 불시에 놈의 기습을 받고 결국 저는 뒤로 벌러덩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넘어지자, 미리 계산해서 설치해둔대로 텐트 속으로 뒤로 굴러 들어간 셈이 됐습니다.
코앞 물속에서 솟구친 그 괴물도 저를 보고 놀라서 물위를 달려 황급하게 튀고 있었습니다.ㅎㅎ
그들은 늦가을부터 한겨울 내내, 밤새 수초사이를 누비며 노니는 오붓한 오리가족이었습니다.
걸린 붕어를 따라 잠수해 오다가 가까워진 불빛에 놀라서 코앞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훗날, 남녘의 저수지에서 그 오리의 이름이 ‘쥐오리’라는 사실을 짝을 통해 알았습니다.
잠수를 하고 엉뚱한 먼 곳에서 머리를 내밀 수 있는 녀석은 쥐오리 밖에는 없다고 하던데요...
해남의 개초지에서 새벽 무렵에 황당한 그 꼴을 다시 겪었습니다. 살짝 놀랬습니다만,
급한 나머지 목도리도마뱀처럼 물위를 달려 내빼는 녀석이 그 때는 우습기만 했습니다.ㅎ
< 庚申年 9月 17日 새벽 5時, 팔당호 雲心里, 31.5cm >
어탁을 대할 때마다, ‘팔당호’에서의 마지막 낚시,
정녕 잊을 수 없는 그 ‘雲心里’가 그리움으로 밀물이 되어 다가옵니다.^^*
'팔당호'에서의 마지막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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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단속배가 보이면 후다닥 짐을 챙겨 달아나며 어떤 경우에는 잡아놓은 붕어망조차 놓고 내빼던 기억이...
재미있는 조행기 잘 보았습니다.
이제 포근해지는 봄날에 안출 하시고, 대물 상면 하시길......
낚시 내공 못지 않게 글솜씨 또한 일품입니다
가까이 계시면 허럼한 대포집에서 낚시 이야기며 세상사 이야기 하면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고 싶네요
언젠가는 뵐날이 있겠지요
생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빨리 지나가버리죠
한순간 떠오르는 기쁨의 조행을 반추하면 지나온 꾼의 삶이 무의미하지만은 않겠죠
편안한 맘으로 감상해 봅니다
17살 고1때 친구와 친구 아버님을 따라 처음으로,,,
친구의 수수깡찌와 대나무 낚시대,,,
28~29 짜리 붕어를 첫수에 낚고 낚시길로 빠진,,,ㅎㅎㅎ
다음날 동네 낚시방(신당낚시)에서 대나무대 3개와 대나무에 철사를 열십자로 벌린 받침대를 사서 친구와 주구장천 낚시만,,,
그 대가 아직 있답니다,,,
초릿대의 탄력이 없어져서 이제는 그 대로 낚시를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처음 산 낚시대라,,,^^
철붕님 덕분에 팔당댐의 첫 낚시질이 생각나서 잠시 감회에 젖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가내 평안 하기를 기원합니다.
추억은 언제나 감미롭습니다.
철없는 붕어님 손끝에서 묻어나는 감칠맛이 더 깊은 추억으로 묻어납니다.
전 어릴때 기억이 피라미 낚시가 전부 였죠 ㅎㅎ
우수에 젖어며 맥주 한잔 기울여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요즈음 월척에 자주접속을 하지못해서 이제서야 댓글을 드립니다
ㅎㅎㅎ 쥐오리 저도 어렸을적에 냇가에서 쪽대들고 천렵갔다가 놀란적이 있지요
올해 출조는 하셨는지요? 저는 지난주 시조회에 바쁜관계로 취소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산속소류지에 조우셋과 동출을 햇었구요 물론 꽝이구요 ㅎㅎㅎ
건강하시구요 올봄에 입춘대박 하십시요 꾸~벅
재미난 야그잘보고가여
야광테프 붙여놓고 나이롱 A형텐트 쳐놓고 며칠밤씩 묶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들고양이 나부랭이겠지만 " 이 문구가 영~
암튼 잘 감상했심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