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시절 자전거로 경산이나 고산쪽의 못을 지렁이 한봉지, 밥알, 빨간떡밥, 한칸반대 낚시대 한대만을 가지고 일요일마다 누빌때가 생각이나네요.
저희집은 어르신, 형님, 저 삼부자가 낚시에 미쳐있는 한집안 낚시 집안입니다.
지금도 명절에나 가끔씩 모일때 그때 그 이천못?<그때 저희끼리는 이천못이라 불렀습니다.> 얘기를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곤합니다.
위치는 그때 당시 담티고개를 넘어서면 우측에 담티못이라고 조그만 못이있었고 조금 내려가면 검문소와 버스정류장
이있었죠. 방공포병학교 들어가는데로 쭉가면 부대정문이있고 그옆에 작은못이 하나더 있었는데 거기도 붕어가 곧잘
올라오곤 했죠. 포병학교 옆 담길을따라 돌아가면 벽돌공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벽돌공장이 아래였나??> 그
길따라 계속올라가면 작은 못뚝이 나옵니다. 올라가면 우측으로 마을이 있구요.
~~~~그때 당시 채비가 머 있나요. 부력은 걍 찌만 내려가면 되고 바늘이야 가지바늘에 추달린거 대충달아서 하죠.
자....그때 밤낚시 조황이 어땟냐? 이건 머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자생새우가 있었는데 새우끼우면 거의 20분에
한마리씩....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씨알은 35~25가 주종. 엄청난 입질과 마릿수에 어려서 그게 머 그리 대단한건줄
도 모르고 했던터라 그저 열심히 잡아 내기만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에서나 만날수 있는 그런곳이었죠.
^^;; 어느날인가 소문이 나면서<그전까지 아는사람 서너명 정도만 낚시를 했었고> 못은 금방 인산인해가 되어버렸죠
근데 중요한건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달도 되지않아 주민들에 의해 낚시가 금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엄청난 쓰레기에
소음등에 못이긴 주민들이 강력하게 낚시를 금지를 해버렸죠. ㅜㅜ;;
그래서 저랑 형이랑 사촌형이 기발한 생각을 해내었습니다. 검은 복장에 짧은 낚시대에, 케미는 까만색 유성매직으로
끝만 살짝 나오게 하고는 도둑낚시를 갔던 겁니다. ㅎㅎㅎㅎㅎ 여전히 우글거리는 붕어에 엄청난 손맛을 보고는 새벽
에 도망을 왔죠..^^:;
너무 강력하게 주민들이 금지를 하기에 그후로는 아예 포기를 해버렸구요. 거의 매년마다 한번씩 들르곤 합니다.
아직두 못은 그대로인듯한데......낚시 금지도 여전하더군요. ㅋㅋ
혹시 이글을 보시는 월님들중에도 이못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어릴적 추억속에 그못이 생각이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즐낚, 안출하세요`~~~
87년도 대구 근교 방공포병학교 뒷쪽위에 있었던 이천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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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저수지는 압니다
을지훈련때 군선배 한분이 낚시대 한대로 밤낚시를 하는데
전차표가 줄줄이 엮여 나오던....
그때 저는 낚시를 하지 않아서 그냥
잡혀나오는 붕어를 신기하게 쳐다보기만 하고 말았지만....
전 거기가 어딘진 모르나 님의 낚시사랑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 못도 92년도 부터 한 2년간은 유료 낚시터로 운영이 되어, 부대에서 향어 잡아다가 회에, 매운탕에 회식도 했었습니다.
특히, 마을 반대쪽, 산밑으로 난 개울에는 미꾸라지가 많아서, 벽돌공장까지만 잡아도 포대원 추어탕으로 충분했었습니다.
부대앞, 밤못에는 그때 당시에 월척 자원및 팔뚝만한 가물치가 엄청 많았습니다. 부대앞 대구식당 할아버지가 배달해주는
병맥주를 한박스 깔고 앉아 낚시하던 그 추억이 많이 생각 나네요. 저는 작년에 제대해서 경산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있지만, 그때 미꾸라지 잡고, 같이 뚜꺼비 잡던 분들 많이 생각나게하는 아침이네요.
거의 삼십여년이 지난 일인데 ..그때도 물이 거시기하더란...
인근에 시민낙시빵 뒷쪽 (이사갔나?) 연호지 산귀신나오기로 악명높았었지요
시지대농옆 가랭이못 ...욱수지.. 월느컵 옆 장금못 윗쪽의 당치지 ...
지금은 길에 다들어가버리고 끝만 쬐금남은 범물 천주교공원 묘지못 ...
(송장썩은 물먹고 자란 고기들 힘이 괴력이었지요)
외에도 mbc사거리에 있던 한걸못과 감삼시장이 돼버린 감삼못 컨벤션 들어선 자리의 검단못 ...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추억속의 못들 입니다
아침부터 옛추억이 아련해 일손이 잡힐른지 심란함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