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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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바다의 꽃,벤자리

    구름이흘러가는곳 / 2022-11-07 01:28 / Hit : 5286 본문+댓글추천 : 2

    우리 사무실 앞에 있는《황금어장》횟집에 커다란 병어가 산채로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설마...덕자병어가 활어로 들어왔다는 말인가?..
    아주 오래전에 흑산도 앞바다에서 배낚시로 커다란 병어를 낚아 뱃전에서 회로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 눈물나게 기막힌 맛은 지금도 나의 뇌리 저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병어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현지에선 그 큰병어를 덕자병어라고 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횟집 수족관에 가보니(에휴~~역시 그러면 그렇지 ㅠ.ㅠ)겉모습이 병어와 흡사한 <라운드 폼파노>,일명 병어돔이란 외래어종이다.
    외양이 병어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히 다른 어종으로 회의 색깔과 맛이 숭어와 참돔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병어회에 설레인 춘정과도 같은 이마음을 어찌하랴.
    친구를 불러서 꿩대신 닭이라고 병어돔회에 소주 한잔 걸치기로 했다.
    수족관 바로 옆의 테이블에 앉아 병어돔과 인심좋은 횟집사장이 써비스로 내어준 자리돔 세꼬시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니 신선한 해물과 물칸에서 건너온 바다향기에 이끌려 마음은 아련히 저 먼곳 남해바다의 한점 섬에 가 닿는다.

    93년 여름, 6월 하순의 어느 날.
    나는 늦은 오후에 거제 홍도 앞바다에서 배낚시를 하고 있었다.
    남해바다를 회유하는 한여름의 진객 <벤자리>를 낚기 위한 출조였다.
    마산 서성동에서 치과를 개업하고 있는 황원장과 그의 친구 세분,나까지 다섯명의 멤버가 거제 남부면 저구리 대포항을 낚시배로 출발하여 40여분을 소요한 끝에 오후4시 무렵 거제 홍도 앞바다에 닿았다.
    벤자리는 야행성 어종이며 군집성이므로 야간 배낚시를 하는데 해질녘까지는 반유동 찌낚시 채비로 하다가 일몰후엔 야광찌를 달고 전유동채비로 전환한다.
    2호 5m 갯바위 낚시대에 5000번 스피닝릴을 장착하고 6호원줄에 5호목줄,12호 참돔바늘에 크릴을 끼워 조류를 타는 본류대에 흘려 보냈다.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배경으로 외딴섬 홍도가 붉게 물들어 가고 산란 막바지의 괭이갈매기의 군무가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 반유동 채비에 40센티급 참돔과 30센티급 돌돔 드물게 농어와 값비싼 어종인 구문쟁이(능성어)등이 심심치 않게 잡혀 올라왔다.
    놀라웠다.
    진해, 마산, 통영등지로 배낚시를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고급어종이 다양하게 낚여올라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정말 어족자원이 풍부한 청정 해역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작렬하던 한낮의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잠기고 바다에 어둠이 찾아왔다.

    케미라이트를 끼운 유동찌를 달빛이 잘게 부서지는 조류대에 흘려 보내자 이내 입질이 들어왔다.
    정직하게 빨아들이다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사라지는 시원스런 입질.
    시간차를 두고 챔질을 하자 어? 이것봐라 제법 강력한 저항으로 릴대가 급격하게 휜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신중하게 릴링을 하자 잠시후 밝은 달빛 아래에서 고운 자태의 물고기가 뜰채에 담긴다.
    ....와...아름답다....
    티하나 없이 반질거리는 회색빛 몸체에 선명한 노란색 지느러미,온순한 입매의 30센티급 벤자리다.
    내가 낚아 낸것을 신호로 뱃전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가 이어졌다.
    벤자리는 40센티급이 넘으면 대물로 쳐주는데 이걸 < 돗벤자리> 라고 한다.
    어린것은 몸옆에 3개의 측선이 있으나 돗벤자리급이 되면 측선은 없어지고 회색빛이 짙어진다.
    불과 두시간여 만에 벤자리의 습격을 받아 배의 물칸이 가득찼다.
    월척급 돗벤자리도 꽤 많이 낚여 올라왔다.

    어둠이 짙어지자 하늘에는 맑은 별들이 돋아나고 홍도에서 쏘아 보내는 등대의 섬광이 빠르게 밤바다를 스쳐갔다.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에 푸른인광이 꿈결처럼 피어오르고 쏟아질 듯 별들이 가득한 여름밤하늘에서 유성이 찰라의 잔영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잡을만큼 잡았으니 이제 입맛 차례다.
    선장과 내가 도마를 놓고 돌돔,돗벤자리,구문쟁이,열기,참돔을 회쳐서 넓은 쟁반에 종류별로 담아내었다.
    양재기 소주를 들이키며 손가락으로 집어서 초장과 고추냉이에 찍어먹는 선상에서의 회파티.
    모두들 아무말없이 묵묵히 회와 소주만 먹었다.
    ....ㅋㅋㅋ~~ 너무 맛있으면 저렇게 말이 없어 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 맛은 입속을 지나 뼛속 깊숙히 각인처럼 자리잡는 천상의 맛이었다.
    최고의 횟감을 거수로 확인했는데 돌돔2,돗벤자리4로 돗벤자리의 압승이었다.
    횟감의 지존,갯바위의 황제를 제압하는 숨은 맛의 고수 벤자리라니...

    만족한 조과에 아침낚시를 포기하고 귀항할 때 나는 배의 고물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홍도 등대가 섬광을 보내는 밤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나는 삶의 항해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 삶의 항로를 정하기는한 것일까?
    어찌보면 야속하게도 삶의 길은 자명하게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저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며 한세상 더불어 살아도 썩 괜찮은 삶이 아닐까?
    정해지지 않은 삶의 길목에서 뜻밖의 감동으로 보낸 한나절의 시간.
    밤바다의 별처럼 명멸하는 수많은 인연과 추억을 생각하며 저 멀리 포구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일 때 쯤 양재기술에 취한 눈시울이 해풍속에서 뜨거워졌다.

    찬바람 부는 초겨울에 그해의 여름을 생각한다.
    그리운 그곳,남해바다는 잘있을까?
    여름이 오면 사랑하는 나의 벤자리들은
    그 해역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정다운 친구와 모처럼 한잔 하다보니 옛생각에 빠져 주절거림이 길어졌습니다.
    월척 회원님들 올 한해 물낚시 마무리 잘하시고 늘 건강한 삶속에서 행복한 낚시가 이어지길 빕니다^^.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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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큰붕어 22-11-07 19:52
    묵는거가꼬 장난치심 안됨미더
    비산붕어 22-11-07 21:21
    저런 고급은 몬 묵어도
    흔한 거라도 묵 고시픈 일인 ㅎ
    과연육자 22-11-09 08:40
    저는 추자도가는 배에서 배멀리를 얼매나 했는지 위액까지 다 토하고 정신을 잃어버릴정도로

    환상속에 있다가 추자도에 도착하여 배에서 육지로 내리는 순간 배멀미가 사라지더군요....

    허나 다토해내서 기운이 없어서 도져히 낚수는 불가 .....

    육지로 오는 배에서는 너울이 잔잔하여 배멀리는 안했지만 그 이상 바다낚시는 저와 인연을 단절했습니다.

    가끔 선상 쭈꾸미나 문어는 하지만 배를 타면 그 때 심한 배멀미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쉽게 배에 오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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