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한때 좋아했던 그녀였습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오빠야 잘 지내냐고 아직도 그렇게 약간 이세상 텐션 아닌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살고있냐고
15년만이었습니다 그녀와 한 두시간정도 즐거운 통화를 했습니다
제 소식 전해듣고 오랜만에 전화한다고
이제 곧 단풍국으로 이민을 간다면서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어긋났던 명동역 1번출구에서 가까운날 보자고요
저와 "월요일을 꼭 월료일이라고 발음하던 부산에서 온" 천사(그녀)의 이야기입니다
대리시절이었습니다
아침에 외근하고 출근하였는데 옆팀에 직급은 같은 대리지만 나이는 저보다 2살어린 천사가 딱 하니 입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아마 5월이었고
하얀 라운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입사 인사를 하는 수수했던 천사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첫눈에 반했던거 같습니다
천사가 속한팀은
팀장이 팀원들을 탈탈탈 털었는데 업무 양식이라던지 완전 사소한거로 트집을 잡기 일쑤여서
그쪽팀은 팀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어고 또 퇴사도 많이 했었습니다
반대로 저희팀은
지각하면 위에 보고할때 서로 구라도 쳐주고
어중간한 시간에 외근을 가면 서로 알아서 직퇴를 장려하는 분위기였으며
약간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알아서 할일하고 최대한 빨리 집으로 짜지자는 분위기여서
사내에서 그쪽팀은 북한 저희팀은 남한이라고 불렀는데
술자리가 있으면 저희가 북조선 동포들을 많이 위로했던 거 같습니다.
귀순 권유도 많이 했었구요
제가 천사에게 반했던 두번째 이유는
1년사이에 3명이 퇴사하고 또 한명은 이미 사직서를 3번이나내고 퇴사 예정인 엉망진창인 분위기에서
그 팀장의 성격을 다 받아주면서
한번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성격에 반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입사하면 전산팀에서 메일 계정을 깔아주는데 그 당시 회사 입사자 최초로 자기가 메일 계정을 자기가 깔았었습니다
일종의 독립심이라고 할까요 그런것도 쌍따봉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에게는 남친이 있었습니다
몇달의 시간이 지나고 둘이서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을때
저는 그냥 솔직히 불어버렸습니다
너 처음부터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니 생각이 먼저 난다
하지만 니가 남친이 있는데 내가 너 좋다고 그 관계를 흔들고 싶지 않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하면 내 눈물에도 피눈물 나는법
그냥 앞으로 나는 그냥 너의 팬이 되겠다고
이불킥 돌직구를 날리면서
저는 그녀의 어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진해서 우럭 13호 및 광어 28호로 또 몇달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나야 인공위성 부웅~"
천사 " 어 그게 뭐예요.?"
"어 나는 항상 니 주위를 맴돌고 있어..."
이런 드립도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었던것은
생수병을 들고 출퇴근을 할 정도로 물을 마시던 천사를 위해 해외출장을 갈때마다 각 나라의 생수와 면세점에서 산
소소한 선물들을 조공으로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동료로서 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올 크리스마스 이브날 명동역 1번출구에서 7시에 만나자고 제가 농담을 했고
한사람이 나오고 한사람이 안나와도 서로 연락은 하지 않는게 드라마틱 하지 않겠냐고 썰을 풀었고
또 장난이었지만 실제로 그녀의 책상 달력 12월 24일에 제가 딱하고 적어놨습니다
"명동역 1번출구 7시"
시간이 몇년 흘러 그녀는 저보다 퇴사를 먼저 하게 되었고
송별회 자리가 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지만 천사의 앞길을 축복하는 자리라서
그날 유난히 더 들떠서 즐거운 회식 분위기를 만들었던거 같습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동안 둘이서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제가 한번도 바래다 준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천사가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저좀 바래다 주세요"하고 말했고 제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20여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천사가 저한테 말했습니다.
왜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날 명동역에 왜 안왔냐고... 3시간 반을 기다렸다면서
저는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헤어짐이 아닌 헤어짐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1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어 어제 그녀가 저한테 부탁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오빠 SBS 8시 뉴스에 나온거 봤고 월척 회원정보에 핸드폰 번호보고 전화할 수 있었는데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는데
고3지에서 4짜잡은 사람의 기운을 받으면 서울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저한테 어떻게 거기서 4짜를 잡았냐고 대단하다면서
그 기운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부산을 좋아하냐고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광역시에서 11월에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다고도 알려 주었습니다
아닙니다
https://youtu.be/UmtmOGVEe-M?t=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