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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문을 아시나요?

    담여수 / 2024-06-14 08:37 / Hit : 4659 본문+댓글추천 : 15

    인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힘듭니다.

    우리 또한 5천년을 중국 일본과 부대꼈습니다.

    굵직한 것만 꼽아보더라도

    중국은 수, 당, 거란침공부터 병자호란에 이르고

    일본은 고려말 왜구부터 임진왜란,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릅니다.


    일본에 위안부가 있다면 중국에 50만에 이르는 환향녀(還鄕女)가 있다.
    중국은 사실상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서부터

    1895년 하관(시모노세끼) 조약때 까지 500년간 조선을 속국으로 지배했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을 세우고 서울 서대문에 홍살문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왔다.
    그러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때 홍살문을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뜻으로 영은문(迎恩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왕은 영은문까지 나가 중국 사신을 영접하였다. 
    중국 사신과 함께 한양으로 들어올 때에는 조선 왕은 중국 사신보다도 서열이 낮아 사신보다 앞서 가지 못했다.  
    중국 사신이 한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은 떨었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 이상 그렇게 생각왔다고

    대다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간 나라였다. 중국 황제가 승인을 해야 왕이 될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명나라 황제는 쿠테타로 권좌에 오른 이성계와 그 후대 왕들을
    권지조선국사(조선의 왕을 대신하는 사람)이라 칭하며 왕으로 인정도 하지 않았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들의 진은 다 빠졌고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중국의 사신으로 임명된 자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1894년 발발한 청일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의 이등박문과 중국(청)의 이홍장 간에 조인한 조약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선언함으로서

    조선은 중국의 500년 지배에서 비로소 독립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는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하면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이나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 온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0년간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지은 것이다.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던 

    6·25 남침 때 패망 직전의 김일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지금까지도 우리민족이 분단된 국토의 고통을 받게 한 것이 '마오쩌둥(모택동)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를 중국으로 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일본으로 부터 독립시킨 것은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습니다.

    오직 자국의 국익과 이를 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할 뿐입니다.

    역사를 망각하지 않아야하지만 역사에 매몰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하드락 24-06-14 09:08
    양도증서를

    독립문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쫌사 24-06-14 11:17
    안녕하세요.
    글중에 일부 오해가 있을수 있어 발췌문을 옮김니다. (위키백과)

    1896년 6월 20일 간행된 독립신문의 영문본에서 서재필은 독립문의 의미를 단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기, 부패와 속임수의 시스템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일본·러시아 및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독립까지도 뜻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we hope, also from the system of fraud, corruption and trickery which today makes that most populous empire the laughing-stock of the world. This arch means independence not from China alone but from Japan from Russia and from all European powers. …

    — 독립신문 영문본 1896년 6월 20일자 1면 1단 Editorial 원문
    간편 24-06-14 12:33
    "오직 자국의 국익과 이를 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할뿐"
    저와 생각이 같으시네요!
    강한 국방력, 알찬 경제력!
    樂山樂水 24-06-14 12:55
    불쾌하고 듣기싫은 역사이기는해도 조선은 외교권도 중국에 넘긴 속국이 맞죠,
    중국으로부터 독립에 크게 힘쓴이 중에 한명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완용입니다, 이상하죠 천하에 매국노가.
    그래서 독립문현판 글씨를 이완용이 쓴겁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자들이 이완용글씨라고 독립문글씨 없애자고까지도 했었읍니다.
    이완용이 독립협회회장인지 부회장인지까지 했읍니다, 아마 독립신문사에도 영향력 있는 인사였을겁니다.
    이 사람이 진짜 매국노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떠나서 이완용이 조선백성 수십만에서 수백만명 목숨을 살린건 확실합니다.
    당시 일본군사력이 전세계 탑3안에 들었으니 무력으로 조선을 휘집는거 말 그대로 껌이었을겁니다.
    중국은 덤비다가 남경에서만 1주일만에 삼백만인가 희생됐죠,
    조선은 이걸 피했고, 이또한 아이러니하게 이완용때문에.
    가끔 우리가 배운 역사가 너무 편협한 시각만 반영된거 아닌가 싶습니다.
    붕어얼굴못보고 24-06-14 13:30
    잘 보고 갑니다.
    쫌사 24-06-14 13:54
    윗 댓글에...

    그 당시 일본에 맞설 군사력이 있었나요?

    군사가 전무했죠??
    하늘아래붕어 24-06-14 18:07
    역사. 공부 ..
    핵교다닐때는. 귀에 안들어왔는디~~^ ^
    寒江蓑笠翁 24-06-14 18:16
    윗 댓글 중에
    무장 강도들이 들어와 자기 딸 강간할 때 잠자코 있다가 그 덕에 살아났다고 강도들한테 고맙다고 할 사람 있네요.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은 이른바 '존엄'이라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목숨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면,
    나라와 민족,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사람들은 천하의 똥멍청이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조선을 500년 동안 지배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속국'이었다고 한다면 얼마간 인정하겠지만 '지배했다'고 한다면 인정할 수 없네요.
    분명 조선은 '독립국'이었습니다. 비록 당시 봉건제도라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 땅에 있는 나라를 '상국'이라고 해서 받들었고, 왕위 계승에 있어서 형식적인 허락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조선 땅을 통치한 것은 분명 '조선의 왕과 관료'였습니다. 또한 왕이 죽은 후 '묘호'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명, 청이 조선을 '속국'의 형식으로 대했지만 실질적으로 '독립국'으로 대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 500년을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제 강점기 35년'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류라고 봅니다.

    마지막 문장,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습니다. 오직 자국의 국익과 이를 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할 뿐입니다."
    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며 현 한국의 위정자들이 깊이 새겨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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