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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은낙엽 ..

    은둔자2 / 2010-07-24 15:03 / Hit : 3978 본문+댓글추천 : 0

    선배는 "젖은 낙엽"이라고 했다
    쓸모없어진 중년 남자를 두고 이르는 말로 이보다 더 절실한 단어가 또 있을까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비로 쓸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
    버려지고 고립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
    화려한 젊은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적어도 내 가정안에선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곧 법이고 규율이었던 가장..

    누가 뭐래도 가장이란 이름이어서
    늘 내가 하는일은 가족을 위한 최선으로 믿고 행했으며
    알아주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할 책무로 알고 뛰었다
    만만치 않은 세상이 어깨를 짓누루고 때로 얼굴에 침을 뱉어오며 한계를 시험해와도
    내가족이 있기에 .. 내가 가장이기에 ..

    돈좀 아껴써라 ..
    아이들 공부에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들어가느냐...
    무슨 생활비가 그리 많으냐 ...
    20여년 동안 내것인양 일해온 회사에서 정리해고 소리가 나올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뱉어지는 푸념에 아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마라 했다
    옆집 누구 아빠는 둘씩이나 미국으로 유학보낸다며
    돈없으면 공부나 할수있는지 아느냐며 되려 핏대를 세운다


    강남 한복판에 몇십억 짜리 아파트 .
    이런건 언감생심이라도
    아이들 가르치고 순전히 내손으로 작은 내집도 마련했는데
    그래서 나름 이만하면 잘한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

    여자가 나이드니 참 무섭다
    귀밑 흰새치가 하나 둘 는것처럼 내 사내구실도 별볼일이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사내가 아닌건 아닌데 마주보고 누워본게 얼마전 일인지 ..
    신혼때 쥐꼬리만한 월급봉투 두손으로 받아들며 고마워하던 그녀가 아니다
    마흔줄엔 웃음 줄어든 아내에게 짜증도 냈었는데
    이젠 짜증을 내어도 없는 애교를 부려도 내앞에선 절대 웃지않는아내 ..
    무표정한 그 얼굴이 마주쳐 보지않는 그시선이 안타깝다
    이젠 내가 뭘해도 웃지않는 아내 ...

    아들녀석과 차를타고 먼길을 가는데
    문득 정적이 느껴진다
    굳게 다물어진 아들녀석의 입
    살갑게 대하진 못했어도 뭘줘도 아깝지 않은 녀석인데 .. 그런데
    ..
    뭔가 얘깃거리를 생각해보지만 그녀석과 이을 .. 서로 같이 아는 ..그런게 없다
    요즘 잘지내냐 ..
    어렵게 입을 뗏는데 정작 녀석은 창밖만 쳐다본다
    내 젊은날 그것처럼 녀석의 굵어진 팔둑을 곁눈으로 쳐다보다 그만 울컥해지는 바람에 차가 흔들린다
    그제서야 자세를 고쳐앉으며 아들녀석이 꼭 제엄마처럼 눈을 흘긴다
    술좀 작작 드세요 좀 ..
    속으로만 욱한 마음이 일지만 .. 입밖으론 그래 미안하다 소리만 나온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허리가 아프다
    언제든 한번은 병원 가봐야지 했는데
    마음만 먹었지 벌써 몇년째 병원은 가보지 못했다
    가끔 가슴뼈가 부서지는듯 통증이 오는것도 벌써 몇해짼데 ..
    아내는 마음 편하니 살쪄서 그렇다 한다


    내나이 쉰둘 ..
    아내와 아이들이 나가고 없는 일요일
    거울앞에서 나를 봤다
    머리숱도 없어지고 코옆으로 긴 고랑이 생기고 ...
    머리도 많이 허해지고...볼것이 하나도 얼굴
    문득 눈밑이 주름져 잔뜩 처진걸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왜 이리 서러운지 ...
    아무도 없는 욕실안에서 난 그날 참 많이도 울었다
    ...................................


    낚시중 우연히 만난 선배되는이와 잠깐 나눈대화를 각색해봤습니다
    젖은 낙엽 이란 말을 권형선배님에게 들었지만
    그 단어가 가진 아픔은 이제 겨우 와 닿습니다
    세상에 모든 가장들 ..
    힘내십시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은 훌륭한 가장이었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멋진 가장일겁니다
    절대로 혼자 울지 마십시요

    한강붕어 10-07-24 15:49
    가장이 뭔지 참 ~~~ .
    이시대에 이 나라에 태어난 업보려니 합니다.
    그래도 아직 까지는 남편은 하늘이다란 생각을 잠시도 잊지않는
    아내 덕분에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마운 아내..

    여담으로 ~~ 어제밤엔 술마시고 더워서 한강에 모기장 치고 잤습니다.
    걷어서 오려고 보니 이게 원일~~ 조립? 을 할줄 몰라서 그냥 집까지 들고왔는데
    이걸 보고 아침에도 한마디 들었다는..당신은 나 없이 뭐 할수 있냐는 ㅠ.ㅠ..
    곰곰 생각해 보니 정말 없다는 ..휴....
    고독한꾼 10-07-24 16:51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잘보았습니다.......
    공산570 10-07-24 18:38
    아직도 울 겨늘이 없습니다 , 이 땅의 가장들은 자신을 돌아 볼수도 없이 그져 주어진 하루에 묶여 살고 있는 이가

    많으니라 봅니다 ..

    허지만 , 우리네가 있기에 이 땅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

    그래도 세상의 한 부분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온 우리가 아닙니까 !!!

    움츠릴 이유가 없습니다 ... 다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이 겠지요 .......

    늙고 추한 자신이 아니라 골패인 주름 하나하나에는 연륜에 어울어진 멋스러움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삽시다 ...

    아직도 길은 멀고 삶은 터널은 길게 뻗어 있습니다 .

    우리 모두 힘내어 살아봅시다 !!!!!!!!!! 이 땅의 중년들이여 !!
    보고픈붕어 10-07-24 20:34
    음,
    제가 쉰둘입니다.
    다행히 저희 가정은 구성원 모두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 그런 감정은 느낀적이 없습니다.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군요.
    은둔자님, 고맙습니다.
    권형 10-07-24 23:26
    "은둔자"님^^

    제 속에 들어갔다 나오셨나요.ㅎㅎㅎ

    "有口無言"올시다.

    더 이상 드릴말씀이 없습니다.ㅎ
    엘도라도 10-07-25 00:17
    가족의 냉대 참 무섭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살다 가셨는지 다시금 생각케 하는글입니다.
    가족끼리의 쉽게 허물수 없었던 벽. 돌아가시고 난다음 아버지의 인생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붕어와춤을 10-07-25 06:15
    그렇군요.

    젖은 낙엽이 바로 우리 가장이군요.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글 입니더.
    송애 10-07-25 07:30
    속빈강정......
    껍데기........

    그래도 격정의 한시대를 살아온 우리들 아입니까.
    힘 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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