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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하는 미늘(지금 이 저수지에 홀로 있는 이유) 5

    입질!기다림. / 2002-12-07 20:25 / Hit : 4857 본문+댓글추천 : 0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비이면 인생의 축소판일 수 있는, 낚시 레포츠에 있어서 낚시바늘의 미늘 역할일 수 있으리라.
     한 번 박혀진 바늘은 미늘로 인해 결속되고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남편과 아비는 가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나는 이미 역할을 못하는 용도 폐기된 무딘 낚시바늘의 미늘이었다.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내렸다.
     밀폐된 공간에 뜨거운 열기의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
     지금 내 형편에 있어 동물적인 편안함의 추구는 동떨어진 과장된 표현이며 사치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 미로와 방황의 끝자락은 어디일까?
     지금까지 모든 걸 믿고 살아오면서 타인도 마음의 문이 열리면 모두가 내 생각과 동일시 해오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자화상.
     K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떠올랐다.
     젊은 나이에 유통업계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며 중앙 일간신문에도 전면 광고를 게재할 정도의 규모로 회사를 키워낸 야심에 차고 능력 있는 인물.
     총동창회 부회장, 사회봉사 활동 단체의 장 등 언론을 통해 그의 활동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영남권 중소도시에서 출발하여 지점을 거느리고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 심장이라는 서울과 부산에도 그의 깃발을 꽂고 있었다.
     제대 후 복학을 하고 졸업 후 월급쟁이로 만족하며 살아갈 때 그의 결혼청첩장을 받고 찾아갔다.
     경북 K시 예식장에서 만난 신부는, 큰 키와 어둠 속에 빛나던 석고상 비너스의 예쁜 가슴, 군계일학처럼 돋보이던 큰 키의 여인.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달성공원의 후미진 벤치에서 나누던 첫 키스의 달콤함.
     그녀의 입에서는 비누거품처럼 풋풋한 향내와 혀의 감촉에서 전해지던 연한 젤리의 느낌에서 난 벌써 팬티가 젖는 걸 느끼고 있었다.
     휴학을 한 후 군 입대 후 두어 번 편지가 온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는데 K의 결혼식장에서 신부로 변신한 그녀를 만났었다.
    지난 과거 추억은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아 화석처럼 변해가다가 불쑥불쑥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나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 가슴에 각인된 환상의 여인 M이었다.
     둘은 그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신혼여행을 떠나갔었다. 그 다음해, 나는 누이동생의 동료교사인 지금의 아내와 맞선을 보고 사귀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 이후, 기업이 궤도에 오르자 그의 부탁과 수십 차례 정확하게 계산되는 이자를 믿고 내 모두를 보증이라는 이름 아래 걸어 두고있었다. K에 대한 신뢰와 가슴 밑바닥에 잔존하던 M의 환상도 작용을 했으리라.
     작년 겨울 밤늦게 걸려온 한 통화의 전화를 받는 순간 내 가정이 붕괴되어 황톳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환영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거품이 사그라지고 내가 밟고 있는 땅이 함몰되는 것을 느끼며 현기증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럼! 미안해. 지금 지방이야. 모든 게 끝난 것 같애. 형이 피해본 건 집사람이 수습해 줄 거야. 그리고......"
     다급하게 호랑이에게 쫓기는 약한 토끼의 음성을 들었다.
    당당하고 우렁차던 음성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당당했던 것은 그가 소유한 황금의 힘이었을까?
     어려운 교직생활에서 아이를 키우며 노력하던 착한 아내와 두 아이들의 미래를 나와 같이 연대하여 나락의 늪으로 몰고 갈 수는 없었다. 아내가 흘리는 눈물을 바라보고 인연의 종말은 아니라고 마른 입술을 적시며 변명을 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걸 포기하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래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K는 미리 전화를 주었다.
     K의 대구지점 채무 보증관계는 퇴직금과 내 명의의 부동산 등을  채무자에게 넘겨주고 몸뚱이 하나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내 명의의 소형 아파트와 아내가 교직생활에서 형성한 재물은 이혼관계로 피해 갈수가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일간지를 도배한 K의 부도소식은 전화를 받은 후 두 달 보름 뒤였다.
     그 기간이 결국 내 재산의 도피를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함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포기를 했다.
     차창밖에는 성큼 어둠이 다가와 있었다.


    박중사 02-12-08 11:15
    저도 몇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슴다.
    이제 어느 정도 치유 되고 있슴다.
    강태공이 마눌의 온갖 박해 속에서도 미늘도 없고
    곧게 뻗은 바늘로 낚수를 하다가 제나라를 사구팔
    걸어 올리듯 쪽대에 담았슴다.
    님께서도 부디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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