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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답사, 하이볼 그리고 멧돼지...

    프로진영 / 2023-04-21 00:08 / Hit : 6970 본문+댓글추천 : 11

     
    오전 이른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오늘은 출조 계획이 없었다.
    거의 한달동안 계속 팽팽 놀아서, 이젠 일을 좀 해야할 거 같았다.
     
    전기자전차를 끌고 운동을 나갔다.
    운동패턴은 보통 왕복 20km 자전거도로를 평속 20km 정도로 다녀 오는게 일상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달려나가다보니, 문득 2년전 쯤 그날이 떠올랐다.  
     
    너무나 더운 날이었는데, 위성지도를 보고 찾아갔던 아담한 한 산속 소류지였다.
    아무리 검색해도 전혀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곳...
     
    외각 2차선 도로에서 작은 마을을 지나, 
    산 중턱에서  다시 등산로길로 접어들어  200미터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2년전 답사를 갔을때.,
    산속에 파뭍힌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들어 '한번 와야겠다' 생각만하다 이리저리 바빠 기억에서 잊혀진 곳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그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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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기자전차를 끌고 꾸역꾸역 올라가니 물의 거의 80%가 빠져 있다.
    그리고 배수를 했는지 최근 20cm정도 물을 뺀 젖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밤새 동물들이 얼마나 다녀갔는지, 연안가로 멧돼지, 고라니 발자국이 한 가득이다.
    그리고 멧돼지 목용탕도 3개 정도 만들어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30분 정도 자릴 잡고 앉아 물끄러미 수면을 보니,
    이렇게 물이 빠졌음에도, 수면 아래 알수 없는 생명체들이 기특하게 물파장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얼음이 가득한 하이볼을 한잔을 말아 놓고 책상에 앉았다.
    하지만 내 머리속은 온통, 조금전 다녀왔던 물이 거의 다 빠진 소류지 수면 위의 물파장만이 계속 어른어른 거렸다.
     
    40도짜리 70미리가 들어간 하이볼을 마시며, 그리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그 소류지에 와 있었다.
     
    오후 5시.
    첫대를 꺼내 캐미를 꺽고, 수면위로 던지곤....
     
    내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수심이 40cm였다.  
    정말 꿈에도 생각못했다.
    편광렌즈에도 탁한 물색만 보고, 그래도 1미터는 될 거라 착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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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동할 장소가 있었지만,
    그냥 두어시간 새파란 캐미불만보다 가야겠다 마음먹고 그냥 대를 폈다.
     
    뒷꽂이가 없어, 항상 그렇듯  주위에 나뒹구는 굵은 나무를 주워와 받쳐놓고, 마지막 3번째 대를 투척하는 순간,
     
    제방쪽에 붙여 놓은 찌가 한마디 오르다 그대로 수면 아래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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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게 뭐지?
    너무나 당찬 힘을 자랑하는 7치짜리 붕어가 올라와 버렸다.
     
    그리고 미친듯이 입질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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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찌 주위에 물파장이 끊이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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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조금씩 저물어가고...
    처음 허탈했던 내 마음이, 알수 없는 기대감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오늘은 기온도 너무 따뜻해 최소 자정까지는 찌불을 볼수 있을 거 같았다. 
    아니면 새벼까지 달려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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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완전히 내려 앉은 기대의 시간.

     

    5분에 한번씩 오던 입질이 조금씩 잦아 들었다.

    하지만 걸려 올라오는 붕어는 몇 미리씩 커져갔다.

     

     

     

     

     

     

     

    깁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소리에 찌불을 보고 있던 내 얼굴이 뒤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라디오를 껐다.

     

     

     

    [쿠쿵! 쿠쿵! 쿠쿵......]

     

    빠르게 다가오는 그 소리에 심장이 벌렁겨렸다. 

     

     

     

    [쿠쿵! 쿠쿵! 쿠쿵......쿠에에엑!!!]

     

    온 몸이 얼어 붙어 버렸다. 

     

    멧돼지였다.

     

     

    [쉐익! 쉐익! 쉐익!.....]

     

     

    고요한 산속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육중한 그 발소리와, 거친 주둥이에서 터져나오는 그 소리만 봐도 얼마나 큰 놈인지 가늠이 될 정도였다.

     

    조용히 몸을 돌려 뒤를 향해 바짝 자세를 낮혔다.

    그 와중에도 찌 두개는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쉐익! 쉐익! 쉐익!.....]

     

    미칠지경이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여기서 10미터 정도 위 ,전기자전차를 세워둔 그 근처 같았다.

     

    너무나 가까워 LED라이트를 켜거나,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도발하면 바로 달려들 가까운 거리였다.

     

     

    나무가지와 낚엽을 밟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마 놈도, 사람의 체취 때문인지, 고민하며 위에서 계속 배회하는거 같았다.

     

     

     

     

     

     

     

    지옥같은 10여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소름돋는 멧돼지 소리가 끊겼지만, 나는 5분 넘게 그렇게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낚시대를 하나씩 접었다.

     

    연안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던 발자국들이.....저 놈들이 또 이곳에 침범할 거란걸 증명하고 있었다.

    미친듯이 낚시대를 접고, 펼쳐져 있던 잡동사니와 내 쓰레기를 가방에 쑤셔넣고 전기자전차가 세워진 곳으로  기어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오는 그 200미터 암흑의 산속길이 정말이지 길고도 힘겨웠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에 그대로 멈춰서길 반복했다.

     

     

     

     

    전기자전차를 끌고 암흑천지의 산속에서 빠져나오자, 그래도 산이었지만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온몸에 힘이 빠졌다. 

    팬티까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멧돼지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쉽게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멧돼지가 개인적인 일로 개빡친 상태라면....알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몇시간의 별천지와, 40여분의 지옥을 선사했던 이 산속의 보물창고.....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구나....

     

     


    부처핸섬 23-04-21 01:20
    가만히 계시면 지 할일 하고 갈겁니다
    자주보면 정들고?그렇습니다
    효천™ 23-04-21 03:03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숨도 막히고요.

    옛 날.
    의성의 어느 산 속 소류지에서
    만났던 멧돼지 가족이 생각납니다.

    오줌지리게 긴장됐던..
    하이트498 23-04-21 06:14
    하드락 23-04-21 06:30
    무섭지요.
    한강65 23-04-21 07:36
    실감 나네요 ㅎㅎ
    그래도 안다치고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멧돼지는 포식자라 조심하셔야 해요
    휴산 23-04-21 08:35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가끔씩 만나는데 방향성 없이 뛰는 넘이라 그게 무섭더라구요.
    대물도사™ 23-04-21 08:45
    무사히 복귀하셔서 다행이네요
    그와중에 낱마리 손맛도보시고
    잘보고 갑니다
    실바람 23-04-21 09:07
    산속의 주인님이 나타 나셨군요
    얼른 비켜주시길 잘했군요

    아님 밤새. 주위를 맴돌았슬듯..
    어인魚人 23-04-21 09:14
    재미나게 잘읽었습니다.
    저도 10년이 지난 언제쯤
    밤낚에 제 텐트뒤로 멧돼지가 와서
    죽은듯이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산속 소류지는
    혼출 하지 않습니다.
    수우우 23-04-21 09:59
    어휴...글로만 봐도 오싹 합니다.
    손맛 축하드려요~~^^
    수원조사 23-04-21 10:08
    공포영화의 한장면을 보는것 같습니다. 등골이 오싹하네요
    한마리만물어봐라 23-04-21 11:41
    드라마 한편 본 기분입니다~^^
    현장감 장난아니네요~ㅋ
    멧돼지 개빡쳤을겁니다~
    동족이 인간으로 환생해 국가를 아작내고 있는데...
    하물며 동족으로 미안하고 빡쳐있을테지요~^^;
    잘~철수하셨습니다~^^
    이박사™ 23-04-21 12:53
    참 매정한 분이시군요.
    마운틴저팔계 불러다 소주 한 잔 주면서
    산중살이 힘들지 않냐
    외롭지는 않냐
    이는 잘 닦고 다니냐
    긴 이빨 그건 사랑니냐
    뭐 필요한 건 없냐

    고민도 좀 들어주시고
    용똔도 좀 주시고 허셨어여져.ㅡ.,ㅡ;
    노랑붕어™ 23-04-21 13:15
    추억의 조행기 수상감입니다.

    낚시는 둘이 다니는걸로 정하세요` ㅎ
    5짜좀보자 23-04-21 14:26
    이제 저도 연식이 되어 가나 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긴장이 되네요^^
    iiiioiiii 23-04-21 14:44
    무섭지요 ㅎㅎ
    살모사 23-04-21 15:34
    ㅎㅎ 재미나게 보고갑니다
    여울사랑 23-04-22 10:22
    멧돼지가 공포 영화 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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