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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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보조행기] 초보 훈련시키기(놓쳐버린 대구리)

    안동어뱅이 / 2002-10-04 18:33 / Hit : 4489 본문+댓글추천 : 0

    초보 훈련시키기(놓쳐버린 대구리)

    회사 옆 부서에 강감독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늘그막에 바람이 났는지 낚시를 하고 싶다고 해서 부서 직원이 낚시점에 데리고 가서 기본채비를 갖추어 주었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아서 훗날을 준비하는가 보다.
    하기야, 낚시만큼 좋은 취미가 또 있을까?
    처음 시작이라 23/26호 2대를 짧은 줄로 매고 와서 이제는 물가로 가는 일만 남았다.

    강감독은 나와 같이 집은 안동이고 직장이 대구라서 주말에 같이 갈 사람이 나밖에 없는 터라 같아가자고 부탁을 하기에 10월 3일 개천절(sky open day?)로 날을 잡고 아침 8시에 가자고 약속을 했다.
    강의 집이 식당을 하니 점심도시락은 본인이 준비를 한다고 하니 잿밥에 먼저 마음이 있었다.
    수제자가 남원으로 전출을 간지 꼭 1년이 되었고 그 동안 혼자서 낚시를 다니던 중이라 제자하나 기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머리가 벗겨진 선배라 별로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하나 미치게 만드는 나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되었으니 즐거운 생각도 든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제자가 사부를 모셔야 하는데, 처음부터 기분이 좋지 않지만 내가 전화를 하니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신경질이 난다.
    조금 기다리다 전화를 하니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제자(이하 제자라 표기함)를 포기하고 혼자서 신나게 안개 속으로 달리다 안개등을 켰다. 이것이 오늘의 첫 번째 실수다.

    한참을 달리는데 전화가 와서 도시락 준비를 해야 된다나...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되니 그냥 바로 오시오."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길가에서 기다리니 30분이 지나서 무쏘를 끌고 웃으며 나타났다.
    길이 험해서 무쏘로 가면 좋으련만 처음 제자를 모시는 자리라 카렌스로 함께 타고 달린다.
    새벽안개 속으로 코스모스가 유난히 곱게 보인다. 가을이 한 가운데까지 왔고 또 날씨도 생각보다 좋을 것 같다. 안개 낀 날은 날씨가 좋기 마련이다.

    나만의 비밀 소류지, 차가 겨우 진입해 제방 위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산 쪽으로 이동하여 제자에게 좋은 자리에 대를 펴서 수심을 맞춰주고 내 자리에 앉았다. 제자는 23/26호 2대를 펴고 나는 잔 입질이 적은 곳이라 15/21/25/27/29/32호 6대를 펴고 지렁이, 떡밥 짝밥으로 붕어를 꼬시기 시작한다.
    저수지 위로는 집도 절도 없고 논도 밭도 없는 계곡지다. 비가 와야만 물이 고이는 곳이라 태풍 때 흐린 물이 아직도 황토색이다. 그러나, 봄에 월척도 한 곳이라 가을의 대물을 노리는 꾼의 기대는 커다. 이름 모를 들꽃이 너무 곱다.

    얼마 후 7치를 마수걸이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가을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는데 27대가 초릿대를 물 속에 처박는다. 2호 원줄, 7호 바늘에 지렁이를 물고 나온 놈은 27cm가 되어 보인다. '32대를 물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2cm만 물어라!' 기도를 하는데 제자는 "역시나 사부가 다르군요."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기에 잔기침을 하면서 열심히 품질을 한다.

    점심 때 까지 7치 몇 마리를 추가하고 제자도 6치 한 마리를 올리고 마수걸이를 했다고 좋아한다. 라면을 끓여 제자를 대접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날씨도 포근하고 씨알 좋은 놈을 기다리건만 찌는 몰 속에서 잠만 잔다.
    제자가 신나게 6~7치를 연달아 4마리를 건지고 기분이 좋아 씩씩거린다.
    내 자리에서 보면 나무에 가려 옆 사람의 머리와 낚시대만 보인다. 대만 보면 크기를 알 수 있다.

    입질도 없고 해서 의자를 젖히고 낮잠이나 자려고 하는데, 제자가 고함을 지르기에 옆을 보니 대가 물 속에 처박히고 있다.
    "월척입니다. 아니 잉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배를 뒤집는 2자짜리 대구리다. "대를 세우고 꼼짝하지 말고 있어요. 뜰채를 가져 올테니."
    가방을 열고 보니 작은 뜰채만 있고 바다 뜰채는 차안에 두고 왔다.
    이것이 두 번째 실수다.

    낚시가방, 뜰채, 의자, 파라솔도 2개씩 가지고 다니는데 떡밥낚시라, 또 잉어가 나온 적이 없어서 작은 가방만 가지고 왔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뜰채를 펴니 너무 적어서 대구리를 잡을 수가 없다.
    붕어는 힘을 빼면 물가에서 순순히 나오지만 잉어란 놈은 끝까지 반항을 하므로 뜰채가 없으면 대책이 없다.

    "수건이 어디 있어요?" 하고 가방을 뒤지니 수건이 있어 물가로 끌어낸 잉어의 눈을 가리고 살며시 머리를 잡는데.....
    이 놈이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도망을 가버리고 뻗어진 6호 바늘만 수건에 걸려 나온다.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제자의 얼굴이 새파래지고 두근거리던 가슴이 벌럭이며 씩씩거린다. "내 고기, 내잉어!"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대물은 잡을 때보다 놓칠 때가 더 흥분되는 법입니다. 이룬 사랑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지요. 하! 하! 하!"

    어둠이 내리니 제자가 대를 접기에 나도 대를 접었다.
    제자의 망속에 고기를 모아주고 제방으로 와서 시동을 거는데, 찍소리도 안 난다. 이제 보니 안개등을 끄지 않았던 것....
    보험사에 연락을 하면 이 깊은 산골에 찾아오지를 못할 것 같아 사위에게 전화를 한다. 여러 번 전화로 물어서 오긴 했는데, 제방 위에 세워진 차 앞에 점프선이 짧아서 되질 않는다. 다시 차를 상류 쪽, 길도 없는 곳으로 가서 돌리려다가 구조하러 온 차가 빠져 버렸다.
    억지로 끌어내니 앞쪽이 많이 상했다. 어둠 속이라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는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자의 첫 번 째 출조 날!
    대구리는 놓치고,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구조하러 온 차는 언덕에 빠지고 악운만 겹치는 날이었다.
    그래도, 제자는 이번 일요일 또 가잔다.
    또 한 사람의 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아니다. 고생길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일자바늘 02-10-05 13:32
    ㅎㅎㅎ...어뱅이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거기가 02-10-06 08:13
    양념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잘읽었슴니다.
    허수아비 02-10-06 21:33
    대단 하십니다 항상 즐겁게 읽고있습니다
    즐거운이 02-10-07 16:25
    가끔씩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붕새 02-10-10 20:23
    짧은 수필의 글월,잘 읽었습니다.지난날 제가 낚시에 입문하게된 경험이 떠올라 미소가 번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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