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벌써 40년이 흘러가 버렸으니까요...
제가 국민학교6학년때의 일이였으니까요...
그날도 또래친구들과 저는 동네형들과 어울려 도청앞 전일빌딩 아래 화단 어디쯤인가에 서 있었드랬읍니다
6.25난리는 난리도 아녀...잉?
하시는 어르신들 사이에끼어 시민군을 가득실은 차량이 도청분수대쪽으로
진입하면 영문도 모르는 박수와 응원의 함성을 보태고 있었읍니다
솔직히 시민군을 위해 나눠주던 김밥과 주먹밥에 더 눈이 갈 나이이었지요..
어느순간 -쩡쩡쩡쩡 쩡쩡쩡
제귀에는 꼭그렇게 들렸읍니다
그리고 잠시후 여기 저기서 외치는소리!!
오메 !! 핼리콥타에서 m-60 갈긴다
광주시민들 다 죽일란갑다 ㅡ이개***들아!!&*!
하는 악받친 절규들을 뒤로한채 형들손에 이끌려 화단 나무사이에 머리를 쳐박고 들었던 그소리!!
어찌 들으니 철든후 공수특전단 정복을 차려입고 휴가나온 친구의 정강이 언저리에서 나던 쇠구슬 파열음과
많이 닮은듯 한 그 기관총소리는 50이 넘은 지금도 5월이 오면 문득 문득 귓전을 후벼 파는듯 합니다
법정에서 졸고 있던 어느 늙은 영감도 진실은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우리회원님들도 5.18 그때 앞서서 나갔던 그 민주시민들을 잠깐이라도 추모해주십시요..
광주 시민 여러분 ,,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면서 마지막밤 도청방송을 하던 그여열사의 목소리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귀에 쟁쟁 합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진정 산자로 사신 그분들의 위대한 희생에 삼가 경의를 표 합니다...
장미그빛깔은 붉은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던 생명의 피
분노
울분
복수
그리고 혁명이었으니ㅡ
돌맹이 하나 들지않았던 우리가
돌을돌고
죽창을들고
종국엔 총을틀고
내아들들에게 총을겨누고 그 아들들은 그부모에가슴에
총을 쏘았다ㅡ
순진하게도 미함대가 우리을구하러 남해안 상룩하리라
믿으며
독재자에게
최대한 부담으로작용하리라 도청희생의 댓가는
반란군의12년폭정으로ㅡ
용서와화합이라는 허울좋은미사여구로
반란의수괴는 지금도 거리을활보하고
그 수혜자들의 정신나간망언은지속되어라ㅡ
오월의장미아래 낭만을노래마라
선연한 피빛은
아스팔트 물들이던 생명 자유 민주였나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