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의 일대기
1. 1868년 평안남도 평양부 출생
2. 1883년 평양 감영 나팔수 입대 / 1886 상관 살해 후 탈영 후 금강산 신계사로 도주
3. 1886년 신계사에서 출가 직후 비구니 임신시킴
4. 1886년 황해도 수안군 제지공장 추업
5. 제지공장 사장 및 형제들 3명 살해 후 도주
6. 1896년 강원도 산골 일대에서 사냥꾼 생활 시작 / 일제의 총포기화류 일제 단속에 반발하여 거병
7. 1907년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에 반발하여 거병
함흥 초라장 유채골 동네에 와 밤에 달려들어 부자놈 아들을 붙잡아 일화 이만판천여원 빼앗아 군비에 사용
홍원군수 홍가 아들을 붙잡아 일화 삼만칠천원을 빼앗아가지고 돈을 내청하는 대로 바치지 않으면 당장에 식구는 오늘밤으로 멸망시킨다고 하고 일화 삼십만원을 바치라고 함.
전성준 놈의 집에 야밤에 달려들어 일본돈 팔천사백팔십원을 달래가지고 무달사 어귀에서 전성준 놈을 쏘고 펴안도 양덕으로 넘어가서 양덕으로 성천으로 여원으로 달리면서 산간으로 삼년을 혼자 의병을 함.
8. 1911년 연해주로 이동
9. 1917년 국제간섭군 러시아 혁명 개입당시 적군과 합류
10. 1918년 한인사회당 적위군과 협력
11. 1919년 대한북로군독부 북로 제1군 사령부장
12. 1919년 소련 지원으로 이동휘와 독립군단 창설 시도 : 자유시 이동
13.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14. 1921년 소련군 통제 하의 고려혁명군 가담
15.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러시아에 의해 독립군 1700명 사살당할때 러시아편에 섬
16. 1922년 모스크바 코민테른 극동민족대회 참석 / 레닌.트로츠키 독대하여 레닌에게 권총 하사받음
17. 1923년 상해파 독립군 김오남.김창수 살해 / 소련군에게 붙잡혔는데 레닌에게 받은 권총으로 풀려남
18.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 /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 대열 합류
19. 1937년 스탈린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20. 1941년 독소전쟁 발발 직후 73세 나이로 소련군 지원 / 소련 입대거부
- 소련 입대 거부 후 선전가로 활동하며 참전 독려 "나는 늙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지금 파시스트들과 전쟁을 한다. 젋은이들
모두 무기를 잡고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나서라" 소련군 입대 할 수 있다며 극장에서 사격 시험
21. 1945년 노환으로 사망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어야하느냐 마느냐로 시끌시끌하군요.
육사에 있어야 하는지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야하는지는 개인이 판단하면 될것 같네요.
개인 판단은 민족 정신을 위해 어느정도 필요하긴 하지만 지나친 우상화 경향이 있다 보여지고 독립운동을 한 공을 인정하여 독립기념관으로 가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설치할때부터 육사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문 정부에서 강제로 설치를 했고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의 일생을 비춰볼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육사에 있기는 무리가 있어보이네요.
박정희 김창룡 백선엽에게도 같은 잣대로 평가 하고 주디 열어 주시면 생각을 바꿔 볼수도있을 것 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