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토론방

    · 회원이 토론의 이슈를 제안하면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댓글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의 토론방입니다.
    · 이슈의 범위는 제한하지 않으나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자극적이거나 비매너적인 댓글은 삭제됩니다.
    · 뉴스기사 및 타 사이트의 게시글을 옮겨와 단순히 게시하는 것, 본인의 의견이 아닌 글은 삭제됩니다.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과 신중한 이슈 제안을 위해 게시물 횟수를 3일 1회로 제한 합니다.

    잊혀진 역사~

    사운드래인 / 2013-09-06 08:51 / Hit : 5485 본문+댓글추천 : 0

    제가쓴 글이 아니고~
    제가자주가는 카페의 어떤분이 쓴글이고~
    출처를 밝히고 싶지않은 것은, 그곳 카페가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있어~
    일베등 기타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는 쓰레기들이 난무 할까 우려되여 ...
    대표적인 얘가 예전에는 아고라가 그래도 심심할때 읽을꺼리도 많았고
    갠찮은 논객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주 쓰래기장이 되어 버린 경우라 하겠씁니다.
    밑의글은 정치적인 글은 아니니...너무 재미 있게 읽어서 여러분에게도 읽어 보시라고...

    ----------------------------------------------------------------------------


    역사란 무엇인가?

    대학 1학년 때 E.H.Car의 <역사란 무엇인가> 를 읽은 적이 있다.

    단지 필수 교양도서라기에 또 학회에서 읽으라고 하기에 <철학에세이> 와 더불어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

    내용을 요약하라던 선배의 말이 독후감 써오라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만큼 부담스러웠다.

    그때 내가 요약한 <역사란 무엇인가> 의 분량은 약 50장 정도였던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E.H.Car의 <역사란 무었인가> 를 후배들에게 읽으라고 시켰다.

    물론 내용을 요약하라고 했다. 그런후 내 스스로 요약을 해보았다. 2장 내외로 요약이 되었다.

    대학 졸업전 E.H.Car의 <역사란 무엇인가> 를 교양과목에서 배운다는 후배가 찾아왔다.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단 한마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내가 말한 전부였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요지 즉,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라는 뜻은 실증주의 사관의 포기를 의미한다.

    실증주의 사관은 고증 제일주의 사관이며 우리를 지금까지도 괴롭히고 있는 식민사관의 다른 말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 중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은 전혀 없다.

    내가 1988년 6월 14일에 김치치게를 먹었는지 누가 증명 하겠는가?

    10년 전의 일도 증명못하는데 하물며 2천년 전의 일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비석? 무덤? 후세의 조작이 아니라고 누가 증명할수 있는가?

    탄소연대 측정법의 오차는 1만년의 4천년 정도라고 알고있다.

    거기에 기후조건등의 영향으로 몇천년 정도 왔다갔다 한다.

    그것이 연대측정의 단위가 될수 있는가? 과연 기원전 5세기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수 있는가?



    동양사학에서는 역사를 문학, 철학과 동의어로 보았다.

    근대의 서구 사학에서 역사를 과학으로 본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어느쪽이 옳은지는 따지지 않겠다.

    단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의 논조는 "역사란 실증위주의 과학이 아니라 현재의 자기 자신의 철학"인 것이다.

    내가 1988년 6월 14일에 김치찌게를 먹었든 안먹었든 나 스스로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과거의 사실이다.

    이에 반해 중학교 3학년때 선생님과 낚시에 가서 나눈 인생의 이야기들(언재인지 어느 낚시터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없던 일일수도 내가 꿈을 현실로 착각한 사실일수도 있다.)은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있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정신의 원동력임과 동시에 내 철학의 기조가 되는 과거의 사실이다.



    다시말해 역사란 "의미있는" 과거의 사실(아닐수도 있음)인 셈이다.

    역사는 객관과 과학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주관이며 철저한 철학이다.

    (철학에도 논리는 과학만큼 엄격하다. 단지 전제의 증명이 없을뿐)

    역사서를 볼때 얼마나 과거의 사실을 정확히 고증하고 증명하는지를 보지 말라.

    내가 1988년 6월 14일에 김치찌게를 먹었다는 둥 루비콘강을 주사위 파는 행상아줌마가 건너갔다는 둥

    고려 공민왕 9년에 평남에서 우박이 내렸다는 둥 쓸대없는 사실을 증명하면 뭐하겠는가?

    단지 저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논리적인가를 보라.

    얼마나 자신의 철학을 역사를 통해 펼쳐나가는 가를 보라.

    그것이 역사를 보는 바른 관점이다.



    훈족

    HUN이란 족속이 있었다. 지금부터 한 2천년전의 족속들이다. 동양에선 흉노(匈奴)라고 불렀다.
    오히려 흉노보단 HUN이 그들 족속의 이름으로 더 맞을 것이다.

    HUN은 사람을 뜻한다는 설과 하늘을 뜻한다는 설이 팽팽히 맞서있다.

    한민족(韓民族)의 한(韓)이 무엇인가와도 연관이 있을법도 하다.

    동양의 중국역사에서 훈족의 역사를 축소, 왜곡, 은폐 시키는데 급급했듯이

    서양역사 에서의 훈족도 축소, 은폐, 왜곡되어 왔다.

    우리민족에게 훈족은 적어도 사촌많큼 가까운 민족이고 우리까지 그들을

    야만스럽고 별거 아닌 대상으로 축소시켜선 안된다.

    어차피 없에려고 마음먹은 역사가 자세히 살펴본다고 살아날리 없다.

    하지만 몇몇의 사실에서 유추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첫째, Hungary라는 나라가 아직도 존재한다. 헝가리가 아닌 훈가리이다.

    영어식으로 발음할 필요없다. gary는 몽골어로 나라를 뜻한다. 불가리아의 가리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드라큘라라는 서양 최고의 귀신이 있다.

    이 귀신책의 첫장에 보면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의 어쩌고 저쩌고 백작이며 훈족의 자손이다." 라고 되어있다.

    되게 무서우라고 적어논 글이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드라큘라라는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게 "마늘과 십자가" 라는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 사회의 중세유럽에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늘을 무서워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마늘냄새가 지독해서? 그런다고 그 무시무시한 귀신을 이겨?

    이점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았는가?

    "슈퍼맨" 이란 영화가 있다.

    엄청 울트라하고 파워플한 싸나이가 종횡무진 까불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이 슈퍼맨이 한가지 약점이 있다. 바로 자기 고향의 돌, 클립톤 행성의 돌만보면 무기력 해지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둘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강력한 슈퍼맨이라도 자기 고향에서는 보통사람 인 것이다.

    자기 고향의 상징을 갖다대면 아 ~ 난 보통이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무시무시한 귀신 드라큘라라도 훈족의 자손이라고 언급한 이상 진짜 훈족 앞에서는

    박쥐 흉내나 내는 보통에 불과하다. 이 훈족의 상징이 바로 마늘인 것이다.

    전세계 많은 민족이 있으나 내가 알기로 마늘을 자기 민족의 상징으로 내세울 만한 민족 은 한민족밖에 없을것이다.

    가장 가까운 중국과 일본도 생마늘을 마구 먹지는 못한다.

    국사책에서 감자가 몇세기에 수입되었고 하는 따위의 쓸대없는 시험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품목이 마늘이다.

    우리민족의 상징되는 음식은 김치, 불고기가 아닌 마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점 때문이라도 훈족과 우리민족 사이의 마늘을 가지고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세째로, 훈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유발시킨 원인이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연구하는 많은 사학자들의 "게르만족이 왜 이동하였을까?" 에 대한 결론은 바로 "공포(恐怖)" 였다.

    연인원 2천만명 이란 엄청난 숫자가 한꺼번에 이동하였고 그 이유는 바로 "훈족에 대한 공포"였던 것이다.

    공포에 질려 도망가다 앞에 걸리적거리는 로마라는 나라를 멸망시켜 버린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서.......

    원탁의 기사, 라는 아주 멋진 기사도를 다룬 소설이 있다.

    백전백승 임전무퇴의 아더왕이 왜 흑기사만 만나면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도망을 가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아참, 흑기사는 얼굴이 검은것이 아니고 드라큘라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검은 망토를 걸친 기사를 말한다.



    네째, 시계 이름으로 유명한 오딘 이란말을 들은적이 있을것이다. 게르만족의 고대 신 이다.

    무지무지하게 힘이 세고 번개로 사람을 막 죽이고, 거인 신들을 몰살한 무시무시한 신이다.

    스칸디나비아 신화같은데 보면 자주 등장하는 신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반대신이 사탄이란 것은 잘 알것이다.

    부처님을 매일 괴롭히던 악신이 아수라라는 것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뭐 게르만족의 신을 알아서 뭐하겠냐마는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오딘의 상대신, 아주 악하고 성격 드럽고 사람들 죽이기를 재미로 하는 악신이 존재한다.

    그 악신이 바로 아틸라 이다.

    게르만족 신화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니라, "Atilla는 실존 인물로써 훈족의 대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Odin,오딘과 같은 레벨의 악신으로 꼽았겠는가.



    심연의 상처

    이 네가지 점에서 볼때 훈족이 얼마나 서양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족속 이었는지 유추할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감추고 왜곡해 왔는지 이해할수 있다.

    더이상의 훈족에 대한 내용은 찿아볼수 없다.

    하지만 위의 네가지 사실만으로도 훈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인들은 아직도 동양인들을 무서워한다.

    아니 동양인 자체를 무서워 한다기 보다는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치켜올라간 모습을 무서워 한다.

    어떤 서양인(누군지 모름, 알필요 없음)이 쓴 "서양인의 심리상태"란 책을 읽은적이 있다.

    그 책에보면 서양인이 누군가를 겁줄때 짖는 표정이 눈을 가늘게 뜨는것 이라고 쓰여있었다.

    예로 몇가지 들어놓은 것이 "터미네이터와 대부"였다.

    아놀드가 경찰들 겁주고 총 막 쏘고 다닐때의 표정을 생각해 보라.

    대부,의 돈,어쩌고가 상대편 죽이기 전의 표정을 생각해 보라. 어찌보면 맞는것 같기도 하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참 슬픈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사람은 다 알겠지만 거기에 수잔은 입양아로 나온다.

    그리고 양부모에게 매우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란다.

    그런데 어느순간 양엄마가 마구 때린다. 그 이유는 "무섭다"라는 것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는 애를 빗자루로 마구마구 때리면서 무섭다고 울부짖는다.

    아이의 눈이 가늘고 위로 찢어져 올라갔다는 점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 믿을만 할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훈족이 남긴 그들 "심연의 상처"이다.

    왜곡시키고 소멸시킨 역사 이지만 그들의 잠재의식 속엔 아직도

    자신의 선조를 공포에 떨면서 대 이동시킨 훈족의 영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몽골

    훈족이 어떻게 전투했고 어떤 방법으로 서양인들의 공포심을 유발 시켰는가는 상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서적은 없다.

    단지 훈족과 비슷하고 유일하게 서양을 침략한 몽골 제베군의 전투사를 보며 유추할수 있을것이다.

    징기스칸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정복(나폴레용이나 알렉산더 따위의 쪼다들 말고)을 이루었을 때의 총 병력이 8만명

    이였다면 믿을수 있겠는가? 또다시 유럽을 훈족의 공포에 떨게 만들고, 유럽 최강의 세력이던 폴란드를 초토화시키고

    라이프니쯔에서 유럽연합군 기사 10만명을 몰살시킨 제베군의 총 병력이 2천명 이었다면 믿을수 있겠는가?



    사실이였다. 몽골군이 서양에 처들어간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맨 처음 몽골의 징기스칸이 가진 목적은 딱 두가지였다.

    한가지는 몽골의 통일 이였으며, 또 한가지는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였다.

    이 푸른 늑대는 이 두가지만을 위하여 전세계를 헤집고 다니게 된다.

    첫번째 목표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

    금의 이간책 덕에 나름대로 애를 먹었지만 두번째 목표에 비해서는 쉬웠다.

    하지만 두번째 목표는 상당히 어려웠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도망다니는 길을 쫓아다니며 정복한 곳이

    오늘날 우리가 사회과 부도에서 감탄하는 몽골의 영토이다.

    이 원수가 처음에 서하로 도망치게 된다. 서하에 도착한 징기스칸이 좋게 말할때 내놓으라 하니까 싫단다. 그래서

    서하를 멸망시키고 지금 까지도 그땅의 유물이 땅을 몇십미터는 파 내려가야 어쩌다 하나 나올정도로 초토화 시킨다.

    그 원수가 다음에 도망친 곳이 인도였다. 희말라야 산맥을 넘은 징기스칸에게 하나의 전령이 도착한다.

    그 원수가 인도가 아닌 아랍으로 도망쳤단다. 인도는 살았고, 아랍은 죽었다.

    이제 아랍의 호라즘 왕국으로 쫓아간 징기스칸에게 호라즘 국왕은 웃기지 말란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냐는 욕설과 함께 징기스칸의 사신을 죽인다. 그리고 호라즘 또한 초토화된다.

    초토화란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다. 그냥 유목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땅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모든 인공적인것들(건축물,논,밭등)을 전부 갈아

    (기록에는 벽돌 한장까지 다 갈았다고 되어 있다) 흙밭으로 만든다.

    이것이 초토화 이다. 조금은 겁이 나는 말이기도 하다.



    징기스칸 군대가 이용한 최대의 무기는 공포(恐怖)였다. 적에게 분노를 주지않고 공포를 주는것이다.

    침략해서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행위는 적에게 공포는 주지않고 분노만 심어준다.

    하지만 몽골군 1명당 8만명 꼴의 대 학살을 하는 중에도 약탈과 강간이 없었다는 사실은 적에게

    사람이 아닌 마귀들 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감만 심어줄 뿐 감히 저항할 생각도 못하게 한다.

    또 한가지 징기스칸 군대의 무기는 민심(民心)이였다. 항복한 성에서는 일체의 약탈이 없었다.

    유목족인 징기스칸 군대가 정복당한 농경민들의 추수를 돕는다. 다음 차례의 적들이 선택할 길은 두가지 뿐이다.

    반항하여 초토화 되느냐 항복하여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냐,이다.

    대부분의 다음 차례 적들이 항복하였다.



    아랍끝 지금의 터키까지 도망친 원수는 끝내 병사한다. 징기스칸은 속이상해 울어버린다.

    그런 징기스칸에게 "교황의 친서"가 왔다.(그 당시는 십자군 원정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직후였다. 유럽의

    제국가들은 무지무지 단결이 잘되고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우리 공통의 적 아랍을 함께 무찌릅시다." 라는 내용이였다. 징기스칸은 "x신 지뢀하네"로 일축해 버린다.

    아랍을 무찌를 이유도 없지만 니네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다시 고국으로 향하던 징기스칸에게 사신이 온다.

    러시아의 레지스탕스가 보낸 사신이다. ("대장 불리바" 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러시아는 폴란드의 식민지였음) 온김에 우리좀 독립시켜 달라는 내용이였다. 징기스칸이 O K 한다.

    그리고 제베에게 2천명의 군대를 딸려 보낸다.



    2천 대 10만, 의 라이프니쯔 싸움

    폴란드가 초토화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독립되었다. 전 유럽이 경악했다.

    유럽 최강국 폴란드가 2천명에게 풀밭으로 변하다니....

    긴급 소집한 각국의 대표들은 다시한번 십자군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각국에서 기사 10만명을 소집하였다.

    (봉건제도를 보면 기사가 영주 다음 계급이다. 기사 10만명이면 졸(卒)들까지 치면 100만도 넘는 대군일 것이다)

    현재의 독일 라이프니쯔에서 기사 10만명 V S 몽골기병 2천명의 전쟁이 벌어진다.

    결과는 기사 10만명의 소리없는 증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전쟁이었다. 찍소리 한번 못하고 증발한 기사 10만명 때문에 유럽의 역사는 수치스러운

    나머지 라이프니쯔 전쟁을 감추고 숨겼다. 불행중 다행으로 제베군이 러시아에 눌러 살았다.

    맨날 비오고 축축한 서유럽은 별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훈족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그 해답은 기사의 갑옷과 국궁에 있다. 양궁과 국궁의 파괴력은 4배 차이가 난다.

    기사의 갑옷은 양궁에 맞으면 끄떡없어도 국궁에 맞으면 끄떡정도가 아니라 관통되어 죽는다.



    라이프니쯔의 기사들은 쇠갑옷을 입고 말들까지도 쇠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몽골 기병들은 무기외엔 쇠붙이가 없는(심지어 안장까지도 없다) 경기병 들이었다.

    기동력에서 차이가 나고 또 몽골 기병들은 기사(騎射)에 능했다. ㅡ기사(騎射)란 말타고 활쏘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말타고 활쏘기를 보았다는 사실은 다들 알것이다.

    그런데 말타기 따로 활쏘기 따로가 아니고 멀티테스킹을 시험보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것 같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말위에서 쏜 화살이 과녁을 맞춘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대 뒤떨어진 우리후세의 생각이고 그때엔 정말로 했다.

    또한 몽골군의 말에 안장이 없는 이유는 오른쪽과 뒤에있는 적들을 말위에서 돌아앉아 활을 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말타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뭣하러 걸리적 거리기만한 안장을 매다는가? ㅡ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기사(騎射)가 나온다. 고등학교 국사책 표지에 있다. 몽골뿐 아니라 우리도 잘했다는 말이다.



    몽고군의 전술은 단순했다.

    기사 10만명을 가운데에 몰아넣고 2천명이 전속력으로 주위를 돌며 가운데에 활을 쏘아넣는 것이다.

    10만명이 증발할 때까지... 섬찟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전쟁은 없는 법이니까.

    몽골군이 유목족들 중 특별히 강한 족속 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냥 평균적인 유목민족 이였을 것이다.

    말갈족의 시조 아골타는 이렇다할 원수가 없기 때문에 귀찮게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청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구려,발해또한 마찬가지였다.

    ...................................

    삼손 13-09-06 09:50
    재미있고 유익한 글 잘읽고 갑니다.
    랩소디s 13-09-06 09:58
    또다른 시각에서 본
    세계사를 읽는 느낌이네요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이런거 자주 퍼오셨으면합니다
    매복한땅콩600 13-09-06 11:12
    세계사는 철저한 사대사관이지요.
    양놈들의시각으로 쓰여진 세뇌된 동양!!!
    天地不仁 13-09-06 13:04
    좋은글 읽고갑니다 몽골 대단한 나라였죠
    誠敬信™ 13-09-06 17:49
    잘 읽었습니다

    무슨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느낌이 옵니다

    빙그레 웃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꿈꾸는찌1 13-09-07 00:15
    몽골의 말은 몽골만의 특이한 보법을 훈련시킴으로
    몽골말은 달려도 말등의 상하 움직임이 적어 기병이 안장없이 장시간 말을 타도
    위하수 설사 구토 등의 부작용이 적고
    안장을 사용 안함으로 무게를 줄여 말의 피로도를 줄여줌으로
    장거리를 달렸다

    간혹 사찰이나 옛글등을 보면 퍽이나 뻥이 심한 경우를 본다
    특히 이동거리가 뻥이 심하다
    누가 어디서 어디로 몇일만에 이동하였다 라고하는 글을 보면
    말을타고 쉼없이 죽자고 달려도 어려운 거리가 있다
    생각없이 뻥을친 결과이다

    파발마를 생각하여보면 답이 나온다
    기병이 말을타고 4시간이상은 달리지못하다
    마라톤을 생각하여보면
    4시간이상 말을타고 질주하면 피똥을싸고 졸도를 할거라 생각됩니다

    파발마는 말과 기수가 동시에 교대를 하는 시스템이다
    말죽거리 / 구파발 /등의 지명을 보면 파발마가 생각난다

    ~~~~ 위의 원문을 읽다 몽골의 기마병 생각이나 ~~~~
    웃긴낙타 13-09-10 15:11
    우리는 중국에 밀린 훈족으로 인해 게르만족이 이동을 햇다고 배워왔지만 이는 과거의 많은 사실과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들어 서양학자들 사이에서 훈족의 아틸라가 재조명 받고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고있는 훈족의 이동의 원인또한 재조명 받아야 한다 봅니다. 아틸라는 고구려에 의해 서쪽으로 밀렷거나 아틸라 자체가 고구려인이거나 둘중에 하나가 확실하다 봅니다. 현재의 세계사든 동양사든 모두 서양인들에 의해 재구성되어진 소설에 불과하다 보이며 중국이 90년대에 들어서야 역사를 가르친점을 본다면 중국은 우리가 아는것처럼 고대부터 내려온 국가가 아니라 미국처럼 신생 독립국에 불과합니다.
    웃긴낙타 13-09-10 15:19
    드라큐라는 아틸라를 상징화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얼마전에 바이킹 유골을 확인한결과 몽골리안 이라는 결과가 사학계를 충격속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이킹 그림을 보면 쇠뿔투구를 볼 수 있는데 이 쇠뿔투구의 원조는 부여와 고구려이지요. 두가지를 조합해본다면 부여계나 고구려계의 지류가 바이킹의 원조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서리꽃m 13-09-25 23:58
    제가본 이슈방글중 유익,유쾌,재미난글인것같습니다.
    좋은글 많이올려주세요~
    미사일 13-10-14 02:51
    뭔 소리인지. 정말 두서도없고 모순 천지네



    2024 Mobile Wolch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