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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목,자유게시판] 낚시를 하다 보니 -21-

    안변해 / 2018-08-30 17:52 / Hit : 6873 본문+댓글추천 : 0

    낚시를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에, 사는 데 필요한 자격과 학위를 마친 무렵이었습니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특별한 취미도 없이 지내다가
    이제는 뭔가 취미다운 취미를 가져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다들 골프를 치기 시작하는 분위기였기에 언젠가는 시작할 요량으로
    이미 골프채 세트를 하나 구해서 안방 한 켠에 세워 두었던 참이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 동생에게 문득 낚시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함께 남대문 낚시가게에 가서 2.0칸, 2.5칸, 3.5칸 세 대의 낚싯대를 샀습니다.
    그 많던 남대문 낚시 가게는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한 군데 밖에 안 남아 있습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의 인터넷 쇼핑 트렌드에 직격탄을 맞은 탓입니다.

    처음 간 곳은 과거에는 아산만이라고 불렀던 평택호의 창룡리 석축이었습니다.
    채비는 비닐 튜브에 조개봉돌을 눌러서 만든 양벌림 지렁이 낚시 채비였습니다.
    찌 맞추는 법, 지렁이 꿰는 법, 챔질 타이밍 등을 차근차근 전수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완전 초보가 하룻밤 낚시에 20여 마리를 낚는 대박을 터트린 것입니다.
    삼십여 년의 낚시 여정은 이런 식으로 코가 꿰어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골프채 세트는 일 년 남짓 안방에 서 있다가 헐값에 팔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토요일 오후에 갔다가 새벽 한두 시면 귀가하는 짬낚시 수준이지만
    소싯적에는 아내를 주말 과부로 만드는 짓을 수없이 저질렀습니다.

    다른 취미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고 유독 낚시에만 빠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고기가 걸려 나오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크든 작든 손맛이 어떻든 생명체로부터 느껴지는 전율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낚시에 점점 빠져들면서 환상적인 찌오름, 낚싯대에 따른 섬세한 손맛의 차이,
    배우고 연구해서 직접 만든 채비가 맞아 떨어질 때의 쾌감 등에 심취했습니다.
    밤새 꽝을 치다가 새벽에 일어나 물안개 사이로 거짓말처럼 올라오는 찌,
    이름하여 찌르가즘에 전율을 느끼곤 했습니다.

    조과에 상관없이 낚싯대를 펴고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일주일 내내 방에 갇혀 있다가 탈출을 감행한 느낌이기도 하고
    속세를 벗어나 아무 생각이 없는 블랙아웃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일주일 동안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하는 처지인지라
    일요일은 쉬어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는 어김없이 낚시터로 향합니다.
    부득이 토요일 낚시를 못하게 되면 일요일 낮에 잠시라도 다녀옵니다.
    어쩌다 주말 낚시를 못하고 넘어가면 일주일 내내 짜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취식이나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어부와 달리 낚시는 비용을 지불하는 취미입니다.
    손맛터가 처음 생겼을 때에 그걸 낚시라고 하냐고 비아냥거리곤 했습니다.
    어느새 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제는 제 자신이 손맛터 귀신이 되었기에
    해보지도 않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직립보행이 가능할 때까지는 낚시터에서 시간을 낚을 작정입니다.

    수초사랑 18-08-30 19:09
    공감합니다.
    멋진 낚시 하시길 바랍니다^^
    한마리만물어봐라 18-08-30 20:02
    캬~^^
    낚시인은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항상 즐거운 취미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기시길..
    전 좀있다 퇴근후 3시간정도 짬낚시 후 귀가합니다
    ^^;;
    일격 18-08-30 20:35
    서울역 맞은편 구 도쿄호텔 방면으로
    제일낚시를 비롯해 꽤 많은 낚시점들이
    있고 을지로에 은성을 비롯 다수의
    점포들이 있었는데....
    글을 읽다보니 옛생각이 나네요..
    용산서부터 남대문까지 걸어가
    인찌기 채비도 사고 칸드레에 카바히트까지..
    열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것 같은데
    여건과 몸이 안따라 주네요...
    남아있는 시간 늘 안출하세요
    무조히 18-08-31 08:22
    제일낚시는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죠.
    추억이 어린 가게여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만나도 왠지 정겹습니다.
    많이 팔아드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최저가 블랙홀 쪽으로 쏠리다보니 잘 안됩니다ㅠㅠ
    B접점 18-08-31 10:07
    낚시꾼이라면 비슷한 동기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때 대박을 치시지 말았어야하는건데...
    산들바람이 18-08-31 10:54
    공감 가는 글입니다.
    어찌하다보니 코가 콕 끼어 찌불놀음에 안달하는 제 모습과겹치네요~^^
    한방부르스 18-08-31 10:58
    낚시가 유일한 긴장의 탈출구입니다.
    건강히 오래오래 낚시하시길...
    섬지 18-08-31 10:59
    공감 100퍼^^
    79년 로얄 반도 2.5 3.0
    두대를 구입해서 낚시를 시작했고
    어느새 40년이 지났습니다

    80년에 입대를 하고
    정기휴가 15일중 절반은
    낚시를 하고..낚시하는 군인아저씨^^

    글을 읽는 짧은 시간
    그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중년조사 18-08-31 11:22
    우거진 대나무숲에서고르고 골라서
    조립낚시를연결하여 동네저수지를다니면서
    시작한낚시가 지금은 풀셑트장비로ᆢ
    오랜세월함께했네요^*^
    디자이너 18-08-31 15:26
    공감합니다^^언제나안전출조하세요
    올초보 18-08-31 22:20
    대나무 조립하여 카바이트 ,봉지 떡밥 그거면 하루밤낚시가 다인줄 알았는데 어린나이에 장비병이 생겼
    나 , 청룡세트 가방에 튜브톱 캐미라이트를 장착하고 기회만 되면 기어나가 낚시하다 부모님한테 뒤지게 맞기도 했는데
    참~~~ 공감 꾸욱 눌러 봅니다
    미리내마을 18-09-01 21:01
    어떤 친구가 낚시터에 자리잡고
    전투낚시 모드로 낚시대 펴고 이것저것 채비하고 한참 열낚하더니,
    가벼운 반주에 저녁식사 후
    11시도 안되어서 골아 떨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에 커피한잔 돌리면서 하는 말.......

    입질 좀 봤슈?
    아!...그런데, 이 개운함은 뭐징...?

    요즘 물가에 나가면 몸이 먼저
    산소 인큐베이터에 왔다고 좋아라합니다.
    이슬보고 18-09-03 22:38
    저도 고1때 용돈으로 낚시대 몰래사서 주말낚시간 첫날 대박만 나지 않았으면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낚시를 다니지 않았을테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만 ...

    역시 낚시는 하늘이 "선택한 꾼에게만 주시는 취미"인것 같습니다.

    이제 낚시한지 30년이 넘어가니 붕어잡는 것 보다는 현장에서 조우들과 어울려 즐기는 캠핑의 즐거움이 큰것 같습니다.
    막걸리속공낚시 18-09-07 20:06
    공감되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저역시 비슷한계기로 시작하게 된게 30년이 되었네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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