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과 숙종때 사람으로
독학으로 학문을 이루었으며
나이가 많은 송시열이
자신의 독서가 부끄럽다할 정도의
인정한 뛰어난 경지의 인물로
일생의 대부분을 초야에서 학문이룸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 기회가 오면
관직으로 나가리라" 다짐과 함께
숙종에의해 58세에 관직에 오름
상복을 1년 입을지 3년 입을지 송시열과의 치열한 당쟁(예송논쟁)의 소용돌이속에 숙종의 배신으로 죽음
사약을 마시기 직전" 나라가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 무엇이 있는가"
생각이 다르면 다름을 인정하면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되지...
구지........
나의 주장도 상대가 있기에 가시가 되고 약이 되거늘
마지막 승자가 되어 들어 줄 사람 하나 없는데
혼자 남아 외친들 누가 알아주랴...
또한 떠난들 내집만큼 좋으랴...
우리집 7식구 오랫만에 만나면
1시간만 이산가족
2시간 지나면 UFC...
그래도 밥먹을 땐 다같이.....
엄청 뒤끝있는 이야기^^ (5,6월의 인물 "윤휴")
붕어와100분토론 / / Hit : 2250 본문+댓글추천 : 0
2시간 지나면 UFC...
그래도 밥먹을 땐 다같이.....
옭으신 말씀 입니다 밥은 같이 먹어야지요 ^^
도덕정치의 기반인 주자학에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대립하였다고 하면 아마도
조선을 병들게 하였던 노론과 남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은 다 사라지고 말겁니다.
윤휴는 서럽게 돌아가신 것 말고는 솔직히 많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고를 충북이 갖고 있는 송우암은 휸휴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 알만하구요.
송우암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충북 괴산 청천에서 사약을 받고 그곳에 묻혀 있지요.
조선조를 통틀어 대표적인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송우암을 성인화 하는 사업은 거의 매년 주장이 나오지만 저와 제주변은 지속 반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공과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일을 단순히 과거라 하여 적당히 미화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윤휴의 죽음 뒤로는 복잡한 정쟁과 청나라와의 국제관계가 있었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깊이 걱정 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뒤끝이라 하셨는데 여긴 기본적으로 붕어잡는 곳이라 의미가 너무 깊이 숨으면 잘 모르게 됩니다.
채석강 잘 있지요?
마지막에 승자가 되어 들어 줄 사람 하나 없는데
혼자 남아 외친들 누가 알아주랴...
이 문구가 시사하는 바가 큰것 같습니다...
어복 충만 하세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조선조때 당파싸움을 혐오합니다
당쟁이 이나라를 멍들게하고
망치게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당을 없앴으면 합니다
만사가 너무 조용해도 재미가없습니다요~
점심 맛나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