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워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방을 메고 스스로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세월이 낚시를 처음 접하게 된지도 36년 정도 흘렀는데 오랜 세월 낚시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몇가지 있어서 적어 봅니다.
1. 첫번째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카바이트 넣어서 사용하던 간드레
간드레 불빛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던 찌에 감았던 야광테이프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간드레의 불빛을 받으며 찌에 감아 놓은 야광테잎이 반짝반짝이며 입질을 해줄 때면 쉬던 숨도 멈춘채 얼마나 긴장을 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찌를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거의 죽음이었지요.
2. 두번째
처음 접한 것은 꼽기식 대나무 낚시대, 그러다가 글라스로드대를 접하고, 반카본, 올카본 이런 식으로 낚시대를 접하게 되었는데 대나무 낚시대 처음 사용할 때 글라스로드대가 그렇게도 가지고 싶어서 이 대만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추억의 낚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가운데는 아직도 글라스로드를 사용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세번째
지금은 성능 좋은 카본 줄을 사용하고, 낚시에 필요한 낚시용품을 넉넉하게 구비하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무젓가락을 깎아서 싸인펜으로 적당하게 칠을 한 후 찌로 사용을 하기도 했고, 강변을 걸어다니다가 버려진 찌나 바늘이 있으면 재사용 하기도 했습니다.
찌고무가 손상되거나 하는 날에는 낚시를 할 수가 없었고, 햇볕이 뜨겁게도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 온몸이 벌겋게 달구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받침대도 없이 무거운 손으로 들고서 낚시를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4. 네번째
어린시절 떡밥 살돈이 없어서 이것 저것 잡거나해서 미끼로 사용을 했네요.
지렁이는 기본이고, 파리, 메뚜기, 잠자리, 떡밥이 없어서 된장에 밀가루를 섞어서 달아보기도, 미숫가루를 써보기도, 밥알이나 삶은 국수를 달아보기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기어다니던 구더기를 잡아다가 그 놈의 물고기 잡겠다고 낚시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낚시에 대해서(60) - 낚시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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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계시죠 ㅋㅎ
강가에 천렵온 도시사람들이 100원,200원에 팔라하기도 하고
가끔 통큰 아저씨들은 고기뿐만아니라 어항과 미끼용 깻묵까지 아도쳐서
한몫 크게 잡기도 했었습니다 ㅎㅎ
낚시터에선 싱싱한 지렁이를 잡아다 주는 댓가로 과자값을 받거나
낚시바늘같은 소품이나 찌를 받기도 했던 기억이...(찌는 주로 불량난 것 ㅎ~)
두엄을 뒤져 잡아다 준 싱싱한 지렁이의 위력(?)을
확인이라도 할 요량으로 한참이나 옆에서 관전했고
그러다 큰 붕어라도 물으면 제 어깨가 으쓱되었죠
지금으로 따지면 깔맞춤인데
그라스대 네다섯대 펴논 아저씨들도 있었는데 엄청 멋있어 보였던 기억이...
첨엔 아무거나 많이만 잡아 오면 되는 줄알았는데
가끔 너무 크니 작니 하고 투덜대는 아저씨도 있었다는...
나중엔 어떤 상태의 것을 선호하는지 파악이 되어 나름 지렁이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ㅎㅎㅎ
뭐니뭐니해도 가끔 상태 좋은 찌를 주시는 어른도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알았지만 그때는 낚시란게 이런거구나 하는 정도였으므로....
제대로 한거라면 80년도 초반에 대학 새내기시절 선배와 친구들과 켐핑낚시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연결이 되고 있네요.
서울서 살다보니 그당시에는 종로, 동대문 주변, 그리고 청랑리에 주로 낚시용품을 파는 대형매장이나 소규모 매장이 있었습니다.
저역시 대나무 낚싯대하고 글라스롯드대를 구입하여 머리크고 낚시란걸 하러 다녔습니다.
밤낚시에는 필수적으로 카바이트 연료와 깐드레, 그리고 꼭 필료한 일명 삐삐선(전선강선) 노줄이 막히니까 반드시 뚫어줘야 했지요.
버너도 그당시는 석유버너나 알콜버너였지요.
처음엔 모르니까 부력도 안맞추고 그냥 팔던 발사찌 한 300원정도 한기억이....
파워100님 말씀처럼 그때는 거의 모든찌에 반사테입이 두세줄 감겨 있어서 깐드레 불빛으로 각도를 조준하여 수면에 있는 찌를 비춰
고기를 잡았습니다.
하룻밤 낚시를하면 깐드레 반사경에 온갓 날파리 모기의 사체가 다닥다닥 붙어서 청소하기가 지겨웠습니다.
바늘도 주로 인찌끼라고 하는 가운데 봉돌에 떡밥을 뭉처쓰는 3봉 또는 5봉을 많이 사용햇지요.
조금 멋을 부리면 요즘 편대체비 같은 조개봉돌 틈으로 호수를 가로로 넣은 2바늘체비 그때는 3봉으로 떡밥낚시 많이 했습니다.
떡밥 종류는 깻묵가루나 원자탄 곰표 토끼표 신장탄 등으로 지렁이와 같이 사용햇었습니다.
그당시 특별하게 부유한 분이 아니고선 대부분이 열차나 시외버스 몇번식 갈아타고 많은 짐을 꾸려서 다녔지요.
저역시 그렇게 낚시를 하다가 낚시회를 알고 다니면서 새롭게 낚시에 눈을 떳지요.
낚시회 다닐때 사용하던 이화공작찌 1,000 원 정도 했는데 지톱이 카본이 아닌 튜블러 가끔 생각납니다.
고기가 약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찌가 참 기능이 좋은 찌로 생각이 듭니다.
민물낚시의 가장 큰 혁명은 카본대의 대중화 그리고 케미컬 나이트의 등장이라 생각이 드네요....
휴일날 모든 분들 좋은하루 보네세요.... ㅎㅎㅎㅎ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아련한 추억을 다시 끄집어 내시는듯 합니다.
저도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조금 뜸한 시설이 있긴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변치않고 지켜온 취미가 낚시인 것을 보면 낚시는 참 재미있는 일이 맞는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의 기억에서 깨어나 확 정신이 들게한 것이 대나무 낚시대 였습니다.
국민학교때 아버지께 받은 대나무 낚시대를 대학교때 까지 사용 했었습니다.
글라스로드에 빠져서도 아버지가 주신 낚시대만은 가끔이나마 사용 했었지요...
그후 이십수년간을 대나무낚시대를 사용해 보지 않은 시절이 있었고
몇년전에 대나무낚시대를 써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그 뛰어난 손맛에 대한 기억이 가슴을 설레게 했었는데
사용해 보고 상당한 실망(?)을 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손맛을 기대하고 낚시를 했습니다만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정작 손맛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더군요...
첫사랑의 좋은 기억처럼 묻어둘 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