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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가장 큰 월척 ?

나전칠기 찌를 많들다, 실패한 것으로 버리기는 아까워. 자주가는 유료 낚시터 사장님과 사모님 목걸이를 만들어 보았어요.
내 생의 가장 큰 월척 (월척지식 - 전통바닥낚시)
내 생의 가장 큰 월척 (월척지식 - 전통바닥낚시)
내 생의 가장 큰 월척 ? 세월의 저 뒤로 돌아가. 태백산이 병풍으로 둘러싼 작은 산골마을이 나의 고향이다. 어머니가 일직 돌아가시고 가정형평이 힘들었던 난 고등학교를 다니다 자퇴서를 내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다. 한 섬유업체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어려서 그림과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던 난 운 좋게 생산부에서 디자인을 겸하게 되었고 어린나이에 주임자리에 까지 2년 만에 초스피드로 진급하였다. 경험이 많은 고령자들을 기술로 이기며 한 참 혈기 왕성할 때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운전병으로 전역을 하며 다니던 회사에 재입사하여 또 다시 생산계장 직함을 얻고 열심히 일을 하는 성실한 한 청년 이었다 그런 회사에 영업계장이란 사람은 아주 깔끔하고 뭘 조금만 만져도 쪼르르 달려가 손을 씻는 서울 뺀질이 곱하기 멋쟁이라. 늘 먼지와 기름 냄새가 나는 산골 촌놈인 나 하고는 도대체 어울릴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서로 인사나 하고 작업 관계로 그때그때 몇 마디 말 할뿐 그렇게 좋은 사이도 나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회사마당에서 낚시대를 정비하며 곳 출발할 마음으로 한참 부풀어 있었는데. 서울 뺀질이가.! 어-이 이계장! 너도 낚시할 줄 아나? 오늘 갈려고? 예. 어디로 갈 건데? 예-에 그냥 공능 저수지나 백합저수지 쪽으로 가 볼까 해요. 아! 그래 우리 같이 한번 갈래? 참! 낚시란 그렇게 어울릴 수 없는 우리를 하나로 묵어 주었고 지도 총각. 나도 총각. 나중에 합류한 납품트럭을 운전하는 김 기사하고 셋이서 매주 토요일 오후면 무조건 저수지나 강으로 출발을 하였다. 김 기사는 나 보다 다섯 살 많았고 김 계장은 나보다 여섯 살 많아 막내인 내가 갈 때는 주로 운전을 하였다. 올 때는 마리 수나 크기로 운전을 하는 게 우리들에 법칙 이었다. 김 기사는 주둥이가 투-욱 튀어나와 못생긴 편이었지만. 그 얼굴에 실력도 있지? 장가를 가서 2살 난 아이 아빠에 형수님은 정말 보기 드문 미녀+미인을 둔 이상게 여복과 어복이 있는 희한한 넘. 김 계장은 김 기사보다 나이는 더 많아 가지고 눈-까-리가 얼마나 높은지 그 나이에 장가도 못간 노총각에 낚시 갈 때 운전을 한번도 안하는 뺀질이 곱하기 뺀질이에 낚시로 좀 친해지자 회사에서 늘 할 일 없으면 나 놀리는 재미로 살게 된 정은 가면서도 얄미워. 꼴 보기 싫은 넘. 정말! 낚시로 인해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러던 어느 토요일. 김 기사는 집에 잔치가 있어 못 가게 되고 김 계장과 단둘이서 낚시를 가게 되었다. 난 송추에서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하여 경기도와 포천. 동두천. 구석구석 모르는 저수지가 없었고 그날도 뺀질이가 운전할일은 없고. 김 기사도 없는데 가까운 곳 내유리나 가자고 하니 이 넘의 인간이 굿이 충주 땜으로 가자고하여 그 먼 곳 까지 고생하며 갔다. 땜 상류 쪽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으나. 가끔 지나다니는 고속유람선 때문에 파도가 칠 때마다. 뒤로 도망치고 낚시대는 엉망으로 흩어 지고. 그래도 뺀질이는 실력과 경험이 많은지? 그 인간만 손바닥만 한 것 두 마리 잡고. 저녁 무렵 밤낚시 하기에 아늑한 수로 쪽으로 이동 하였다. 고기 못 잡은 내가 라면을 끌려 요기를 한 뒤 밤낚시를 계속했다. 사실 난 그 인간들 보다 어림없는 초자였고. 김 기사는 실력이 비슷한데 어복은 많아 가지고 더러 큰넘을 가끔 올린다. 김 계장은 그때 당시로 고수라 우리는 맨 날 당하기 일 수다. 난 낚시를 배우려 하는 꽤도 없었고. 포인트 보는 감각도 없고. 떡밥운영도 잘 모르고 어복도 없었지만 오직 바닥채비에 언젠간 나도 대박 터질 날 있으리라 믿고. 그날도 밤새 열수 정도 올리고 아침에 입질은 좋았으나. 마리수가 아니고 크기로 운전해 와야 하기에 밤에 이미 물고 돌아다니는 붕어22cm겨우 되는 넘을 잡은 나는 아침이 되도록 아직 잔챙이와 놀고 있는 김 계장이 끌인 라면에 밥을 말아 먹고 밤에 먹다 남은 소주 한 병으로 해장을 하며 옆에서 아무리 올려도 잔챙이만 올라오는 김 계장에게 오늘 붕어는 모처럼 내편이라며 키키닥 거리며 놀리는 재미에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한 빤질이는 자기가 큰 넘 기어이 잡을 거라며 운전할 라면 술 마시지 말라고 찌나 볼 것이지 왜 날보고 고레고레 날린지? 나 참! 기가막혀서.... 김 계장님! 이제 1시간 후면 출발해야 하니까. 열심히 해보소. 대학 나왔다면 서요? 그렇게 입시 때처럼 열심히 하면 혹시 아나! 큰 넘이 덥석 물어 줄지! 고등학교 나온 나도 22cm인데. 사실 22cm가 아슬아슬 하게 안 되는데 주둥이와 꼬리 잡고 당기면 주둥이가 조금 늘어나 22cm이라고 빠락빡락 우겼다. 히히 아이고. 나는 올라갈 때 뒷자리에서 술이나 마시며 가야겠다. 돈 들여 대학 나온 계장님! 내 낚시대 잉어나 월척 물으라고 옥수수 달아 놓았으니 잘 좀 봐 주세요. 이 몸은 저기 가계 가서 올라갈 때 뒤자리에서 마실 소주랑 안주나 사와야지! 낄낄낄!! 내 초등학교 때는 자연책 36패이지 셋째 줄에 큰 붕어 잡는 방법이 나왔던데.. 계장님은 대학교 때 아니 배우 셨나! 뵈.. 히히 저게 죽을라고... 돌 방구가 주먹만 한 것이 정면으로 날아와 36계로 토꼈다. 정말! 모처럼 이긴 우연한 절호의 찬스에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소주 한병에 안주를 일부로 냄새나는 오징어에 김 계장이 좋아하는 뻔데기 통조림 까지 사들고 오면서 차에서 놀리며 올라갈 생각을 하니...... 혼자 걸으면서도 미이친넘 처럼 웃음이나와 좋아 줄을 것 같았고 다음날 김 기사에게 말하며..... 으-흐흐흐 아니 그런데! 이상하다? 멀리서 보아도 뺀질이가 내 낚시대를 들고 있다가 내려놓는 게 분명히 보였다. 왜 그러지 싶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뛰다 시피 달려갔다. 큰 거 잡았어요? 아니! 내 낚시대는 왜요? 들었다 놓는 것 갔던데! 잘 보라며? 임마! 그래서 밥 달였나 봐 줄려다. 너 오길래 그냥 내려 놨다. 옥수수 떨어지고 없으니 다시 달아나. 알았어요. 이상하내! 옥수수가 왜 떨어지나. 혹시 잉어 물은 거 아니에요? 지-이랄 하내. 잉어가 물을 넘 물지 고등학교도 못 나온 넘 에게 물겠다. 알았어요. 대학 나온 해박한 지식으로 많이 잡아보소. 월척이나 물어라. 떡밥을 달고 낚시를 다시 던지며 마지막으로 잔챙이라도 손맛을 몇 마리 더 볼 생각 이었다. 그래도 뭔가 느낌이 이상하고 왠지 조금 상기된듯하던 김 계장 얼굴이 본 모습으로 빤질거려 보였고.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질긴 옥수수가 왜 떨어지고 없을까? 혹시 내고기 가져간 건 아니지요? 에이시 조사해 봐야 겠어. 그래 봐라봐 너 고기가 어디 있나? 난 일어서려다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서울까지 오려면 오후에 바로 출발해야 저녁에 도착하기에 낚시대를 접고 우리가 끌고 간 봉고차 뒤 트렁크에 집을 싣고 난 안주와 소주 한 병이든 봉지를 들고 뒷자리로 타려하는데. 어! 뺀질이가 내 뒷덜미를 잡더니 당겨버리고 안주봉지를 획 가로채 자기가 뒷자리에 내뜸 올라 안자 발로 밀어 내며.. 가서 운전이나 해. 어딜 기어올라 와... 왜! 왜요? 뒤에 가봐 내 고기망태기 보고 말해. 빨리 절로 꺼져... 진흙이 잖득 묻은 장화발을 내 가슴쪽을 향하며.. 미이친나...? 난 어이가 없어 뒷 트렁크를 열고 아무런 생각없이 뺀질이 망태기를 들려다 보았다. 위에는 망사고 밑은 사각진 노란 비닐 바구니에 물이 담겨 검무스레 붕어 몇 마리 보이나 했더니? 확!! 이게 뭐야? 붕어야? 잉어야? 난 고기 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넛이 나간 넘 처럼 어이가 없어 멍하니 내려다보고 50cm자가 표시되 있는 찌통을 꺼내고 수건을 깔아 분명 붕어인 그넘을 눕혔다. 와우 38.9cm !!! 이거 정말 붕어! 기여? 아니여? 두말 할 것도 없었고 이 넘이 어떻게 저 빤질이에게 물였을까. 하고 놀라고 부럽고 진짜 고수는 고수다 싶었다. 우와 ! 정말 고수입니다. 인정! 인정 다시 바구니를 트렁크에 실고 뒷자리로가 김 계장님을 처다 보며 인정을 하는데 눈빛과 야릇한 웃음에 순간 ! 둘 다 밤새웠고! 언제? 아까. 내 낚시대 들었다 놓는 모습! 그리고 아무 말 없다가 이제 서야 ??? 순간 모든 생각이 교차하며..... 이건 내고기다. 내 생에 첫 월척 그것도 어마어마 하다.. 일로와요. 내고기! 내고기 잖아요? 이거 안 놓을래. 빨리 불어! 고백하세요? 나 집에 안가. 가든가! 안가든가! 너 마음대로 해라. 저 뺀질이! 저 도독넘 ! 난 뒤로 다시 돌아가 월척을 꺼내어 두 손으로 꽉 잡고 주둥이에 코를 대며 내 옥수수 냄새에 내 손 냄새가 난다며 한참 날리를 치고 진실을 아무리 호소해도 그 인간이 절대로 불지 않았다, 거기에다. 고백하고 인정하면 내가 운전하고 가겠다고 빌고 우겨도 죽어도 불지 않고 맥주나 마시지 소주는 처먹지도 않던 인간이 내가 사온 소주까지 홀라당 마시며 낄낄거리는 그 야비한 웃음! 아-정말 억울했지만. 한 시간을 더 싸우고 서야 금방 소주 한 병을 거이 다 마셔버리고 히죽 거리는 그 인간 보다. 아침에 술을 마셨던 내가 어쩔수 없이 운전을 하며 서울까지 다 왔으니 고백하고 불라고 해도 그 인간은 불지 않았고 다음날 김 기사하고 일부로 남 일하는 옆에 와서 자기가 고수니. 그 큰 넘은 찌 올리는 것도 점잔하다는 등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며 히히딱 거렸다. 고수 좋아 하네? 도독넘 이지. 내 다시는 너희들 하고 낚시를 가나 봐라 이 뺀질아. 이상한 넘아! 그 다음주 난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낚시를 갔다와도 빤질이는 불지 않았고 김 기사하고 돌이 갔다 와서는 나 들으라고 엄청 잡았다나? 그리고 옆에 여 조사님들이 와서 억수로 재미가 있었다 나.. 전부 거짓말 이란 걸 알면서도 은근히 둘이서 히히딱 거리는데 약은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또 친해져 낚시를 같이 다였다. 서울 뻰질아! 그게 어떻게 니 고기냐? 응? 지금이라도 불어라, 그리고 이 못생고 이상한 김 기사! 너 우리 셋이 파라호 갔을 때도 32cm 누리끼리한 토종 붕어. 그 것도 내 낚시대에 물은 건대 얼른 건저서 지 살림망에 넣은 것. 정말 사실이 아니냐? 이 인간들아! 내가 뚱 싸며 다 보고도 그것이 나오는 중이라 옆에 사람들이 많아 소리도 못 지르고 와서 좋게 이야기해도 두 눈 똥그랗게 뜨고 본걸 둘이서 우길 거라고 꾸역꾸역 우겨 운전 시켜먹고 오다가 그것도 부족해서 뒷자리에서 둘이 하도 약을 올려 걸어가겠다는 동생을 말리지는 못하고 둘이서 2Km나 앞에가 슈퍼마당에서 처질러 앉아 술까지 처 드시고 있었냐? 이 인간들아! 초보라 가방이 얼마나 무겁냐? 그걸 울러 매고 양손에 들고 2Km를 걸어와 머리 써서 술 먹은 니들에게 당해 한양까지 또 운전하고 오는데 뒤에서 술 냄새 풍기며 끝까지 약을 올이냐? 어떵게 그럴수 있냐? 인간의 탈을 쓰고. 응응 응 이 동상님이 마음이 넓어 용서를 해주고 넘어 가주었다. 이 악동들아. 그리고 김 계장. 빤질이! 또 할 말이 있다. 어느날 회사 일이 바빠서 동두천에 외주 주로 갔다 오더니? 어떤 아가씨를 태워주고는 그 높은 눈에 그렇게 마음에 든다며 생전 나에게 놀리기나 하더니. 생맥주 집에 끌고 가 진심이라며 이렇게 저렇게 말을 만들어 도와달라고 해서 찬스다 싶어 그때 월척사건 불으면 도와준다고 하니. 뭐라고 했냐? 도와주어 그 아가씨와 잘되면 고백하고. 뚱쌀때 김 기사 월척 사건도 인정 하겠다고 해서 밤마다 쉬지도 못하고 조나게 딸아 다니며 결혼까지 시켜 주었더니 불었냐? 이 인간아! 이 원수들아! 그 후로 월척은 구경도 못했다. 그밖에 낚시를 다니며 참으로 많은 일들 있었고 추억도 늘어만 갔지만... 그리고.... 회사에서 큰 추락사고가 났다. 한명은 사망하고 난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있게 되었다. 믿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현실 그대로..... 난 장애인이 되었고 병원생활 1년 동안 모든 걸 포기하고 과거를 떠나 산골로 돌아가야만 했다. 가정 사정으로 고향집에도 있지 못하게 된 난 4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여관 생활을 하며 보상금을 모두 술로 마시고 죽겠다며 술에 젓 어 시간을 보내다. 복지관 생활을 시작했고 1년이 더 지나서 누가 찾아 왔다고 해. 무거운 육신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던 난 멍하니 멈추어 섰다. 저 벤치에서 겨우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 손을 잡고 일어나고 있는 사람! 김 계장님 당신이 였습니다, 왜! 난 다가지 못하고 눈물이 그냥 주르르 흐르고 말았을까요. 왜! 당신은 다시 돌아앉으며 아이를 안는 척 눈물을 훔치셨나요. 서울 빤질이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시죠. 왜! 그렇게 전국 복지관을 다 뒤져서 저를 찾아 오셨나요. 이 아이가 그 아이 나요? 그래 너 가 만들어준 아이다. 귀엽지? 예. 계장님 판박이네요. 왜! 그냥 떠났니? 이제는 그냥 모두 있고 살아야죠. 그럼! 월척은? 그냥 계장님이 잡으신 걸로 하세요. 그래 재활운동 좀 많이 해 그래서 좋아지면 그때 꼭 말해 줄게.. 또 도망가지 말고. 김 기사도 오늘 같이 오려고 했는데 못 왔어. 너 찾았다고 하니 밤새 술 마시고 전화해 울고불고 잠 못 자게 하더라. 그래요. 김 기사님 보고도 뚱싸며 못 본 걸로 말해 주세요. 한번 보고 싶었다고.... 까만 봉지에서 음료수 하나를 건네며 손을 잡아 주시는데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난 또 바로 그곳을 떠나 추억과 그리움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숨어 버렸다. 김 계장님! 당신은 이미 그때에. 먼 훗날 내가 이토록 외롭고 사무쳐 하며 그리워 할 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첫사랑을 잊으리 만큼 당신들이 보고 싶으리라고는... 지금 만나면 다시 내 생에 첫 월척을 당신이 잡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을... 김 기사님! 이미 22년이 흘러버린 그때 그 추억이 세월이 가고 또 가도 왜 어제 일만 같을 까요. 튀어 나온 당신 입과 미스코리아 보다 더 이뿐 형수님이 많이 보고 싶군요. 세월이 아무리 더 흘러간다 한들... 우리들 마음에 그때 그 월척 두 마리는 늘 함께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행여 이글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허리를 숙여서 네 입 크로버를 잡아 봅니다. 아직도 노지 월척은 잡아보지 못한 어리석은 -나무꾼-

재밌고도 애잔하네요. 건강은 좋아지셨어요?
네!
건강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주옥같은 글들이 마치 내 이야기인듯 그림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멋들어진 찌와 글들을 눈으로만 호강했는데, 오늘은 제 가슴 한켠에 추억들도 호강을 하는 날인가 봅니다.

돌고 돌다보면 또 만나는게 사람들 인연이라 .. 가슴속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그인연 다시 이어지리라 믿어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요....
물로간나누꾼님 글을 빼놓지 않고 다 읽었는데....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요.
작년까지 같이 낚시 다니던 친구놈이 하나 있는데 마음이 맞지 않아서 요즘은 같이 안다니고 혼자 독조 출조 합니다.
님이 글에 나오는 김계장이나 김기사 보다 못 된 인간은 아닌데도 이제 같이 출조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제가 아직 인간이 덜 된 거겠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글쓰는 솜씨가 찌만드는 솜씨보다 더 좋으신거 같습니다. 불현듯 불알 친구들한테 전화하고싶어지네요.
좋은 저녁 보내시기 바랍니다.
웃기다가 울리다가 정말 끝에는 찡했습니다...
힘내세요~~화이팅!!
자유게시판에 놓기는 너무 안탑깝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추억을 곰씹으며 회상하기도 하지만...
낚시친구들과의 지난 추억은 소주 한짝으로도 애길 다 못하지요..
뵌적은 없지만 건강은 좋은신거 맞죠?
찌 얘길 처음 접하다가..문득 낚시에세이를 접하니..

이곳 월척지에서 몇장의 사진을 충족해야하고 습작..작품..으로 명명하여진--조행기의 잘못이 아니라 운영시스템의 획일성--
그래서 글로서 표현하는 조행기나 추억은 한편으로 밀리는..

불과 7-8년전만해도 또 그 이전에 글조행기가 주는 오묘함과 여운은 머리속의 나만의 사진과 풍경을 만들고
맘껏 공상하는 시간도 주었었는데..
이번에 나뭇꾼님께서 그런 시간을 주신것 같아 감사합니다.
누구나 다 자기만의 그림과 상상을 통해 만들어가야 발전한다고 보는데..
디지털혁명이라지만..삶은 디지털이 아니죠?
이어령교수가 디지로그가 되어야한다고 하지만
아마도 앞으로는 철저하게 아날로그화 되어야 인간성도 살고 정도 느끼며..
환경과 자연과 우리의 다음세대까지도 추억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너무나 눈에 보이는 빠름과 현실만 직시하는 것들이 때론 가슴을 앞으게 하지만..
제마음의 30년전 추억 , 20년전 추억, 살아가는 맛을 주셔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뵈면 추억의 낚시짐 지게나 운전은 제가하겠습니다.

감사드려요..
형님.^^
매번 올려주시는글 잘 읽고있습니다.
어느날부터 매번 점심시간.퇴근시간쯤에는 오늘은 어떤글일까..하는마음으로 올리신글 찿아보고 생각해보는시간이 있네요..
세상에는 참 많은사람의 종류가 있습니다.
참많은종류의 삶도있고요.
끝까지 아름다운 삶이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저녁되시길...동생올림.
재미있는 내용인데 끝으로 가니 가슴 한켠이 짠해져 옵니다.

아마 모두들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계실겁니다.
내가 바라보았던 것중 가장 아름다운 정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런 조행기에서,
감동의 휴먼드라마로 마무리되는 글 잘 보았습니다.
보고싶은 분들 다시 만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동적이네요

ㅇㅐ잔한 과거사가 있으시네요!!

항상좋은일만 있으시길바랍니ㅏㄷㅏ
사모님이 옆에서 잘 지켜주시잖아요 ^^
물로간나무꾼님!
몇편의 올리신 글에서 필력이 대단하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글은 더더욱 가슴찡한 감동을 주시는군요.
장문의 추억을 더듬는 글이지만 조금도 지루함없고 해학적으로 엮어내신 작품입니다.

손재주도 월등하셔서 찌며 주걱의 작품을 잘 보고 있습니다만,
늘 여유롭고 행복해 하시는 열정에 박수드립니다.

몬생긴 김기사님
뺀질이 김계장님과 세분의 젊은시절 낚시와 함께한
추억의 우정을 다시 옛말하며 만날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짠 하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바쁘다는 핑게로 자주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잠깐의 시간이면 통화할수있는데 오늘은 꼭 전화해볼렵니다...
첨에는 웃음이 입가에 돌앗는데..

라스트에는 눈물이 핑 도네여...

각박한 삶속에 젖어들어오는 '정'사람이 사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을 갇게 하네여.

소중한 추억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나뭇꾼님의 작품에는 그리 많은 아름다움이 있나봅니다.

아름다운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5,6살 많은 분들에게 놈들이라니...

소중한 인연을 가지고 있으시네요.

부럽습니다.

저도 옛날친구들 생각이 나네요.

정말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멋지셔요... ㅠㅠ
아~~~~진짜루~~~2편부터 읽었잔아요~~~~글 참 잘쓰시네요~~~~전 요즘 띠동갑하고 낚시다녀요 그래서 매일 운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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