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샬망님으로 부터 가훈 적어 주신다기에 부랴 부랴 가족회의를 해서 ( 반성은 하되후회는 말라) 말을 정하고
샬망님한테 통보 해 줬습니다
얼마후 샬망님 으로부터 작품 사진 메일로 보내 주더군요
근데 다른 사람들 작품보이까네
밑에 사진은 황금빛 잉어님 가훈입니다
마캉 한문으로 적어 놨네요
내혼자만 국산품 애용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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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내: 샬망님요 내도 한문으로 된거 한개 맹글어 주소!!
샬망: 와예~~(이건 표준말 억양입니더)
내: 다리(넘들)는 마캉 한문으로 적어 놓았네예!
내만 한글이라 넘 티가 남니더!
샬망: 그럼 뭐 생각해 두신거라도 있으세요?(지극히 표준말)
내: 한문으로 된거는 아능기 없는데예
걍 아무꺼나 쫌 있어 보이는걸로 하나 적어 주이소!
샬망: 호호호호호 (저 위에 지방 사람들 웃는 모습) 알았습니다 한개 더 드리지요 ㅎㅎ
내: 고맙심더
이래가꼬 가훈 한개 더 주기로 했심더
울집 가훈 두갬니더
헤헤~~


삥신의 극치!^^
조금전의 일인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ㅠ
아무튼 좋은 문구로 보낸듯 합니다.ㅎ
역시..출소 형님 답습니다
삥신의 지존!^^
하여간 좀 있어 보이는거지예~~??
우리집 가훈 ᆢ너나잘해ᆢ
이건 웟다 걸어 놓기도 넘사스러서ᆢㅜ
"훔치긴하되 삥은 치지말자"
이걸 삥이라 해야되나~~
왜 그러셨어요.
지금은 가훈 하나 더 이지만
나중엔 집 하나 달라 하실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하셨다면
가훈으로
양상군자(梁上君子) 추천 합니더.
족폭성님과 건달성님은 하나이니라~~
양산에 날뽕님도 있고 군자 많아예~~
접이불루(接而不漏) 추천 합니더.
"미끼는 달 되 취하지 않는다."
전국구로 진출하심도~~!!!@@@@@
이젠 무분도 끝이보이네요~~ ㅋㅋㅋ
불루길은요 미끼없이 바늘만 딱 떤지도 물때 있어예~
저것 삥 맞습니다..
하와이 오시어 제것도 삥뜯어가세요..
ㅎㅎㅎ
일취월장 (日醉越牆) 추천 합니더.
"낮술에 취해서 담 뛰어 들어 간다. "
이리 오너라 벗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요고 집에 걸어 놓소
盡人事代天命이고
제가 가져야할 덕목은
言忠信行篤敬으로 정하여
편액하여 집에 걸어 두고 보긴한데....
참 어렵네요.....
"9시이전 완전소등"
"백주대낮 교미금지" 입니다.
야ㅅ싸님 ~~~~~~~~~~~~~~
쫌~~
代---->待 무식이 탄로 나네요....ㅋㅋ
더이상..따라올자가 없습니다^^
근데 이거 누구 욕하는거 아니쥬?
하늘에 가끔 욕합니다....
기달려도 기달려도 달라는 붕어 안보여줄때....ㅋㅋ
예전 안 중근 의사의 글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차암
"단도지갑" 적으로 말씀 하시네요.
운동 가시이소.
사투리계의 지존이십니다 다리(넘들)는 마캉ㅎㅎ
나를 알아보는 이가 나에게 이렇게 살아라고 편액하여 준 글귀 입니다
나하고 딱 맞는 글귀라고 자기 스승님을 3일 밤낮으로 쫄라 얻은 글씨를 편액하여 집들이 선물로 주셨읍니다
참 좋은 글귀라 두고두고 보지만 잘 안되네요....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이 유묵에는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야만)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라 큰 글자로 쓰고, 왼쪽에 작은 글자로 ‘경술삼월(庚戌三月) 어여순옥중(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서(安重根書)’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왼쪽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종이의 규격은 가로 34.1㎝·세로 137.0㎝로, 4매의 종이가 연접되었다. 왼쪽 손도장은 손금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여순감옥의 일본인 경찰이 보관해오다가 그의 손자 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 다이헤이요 산업주식회사 회장)가 2002년 10월 안중근의사숭모회측에 기증한 것이다.
집이 두개 인 모양입니더....
한개는 삥~~~
재밌네요~~
샬망님두 고생하셨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