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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29

엇 그젠 이른 저녁을 물리고 거실에서 사무실의 잔무를 보고 있자니 출출했었는데 마침 덩치 큰 아들놈 손에 단지 입구에 있는 제과점 빵봉지가 들려 있길래 호기심에 물으니 그렇치 않아도 아버지 생각이 나 사왔노라 하며 넓은 쟁반에 투명 비닐로 낱개 포장한 빵을 쏟아 놓습니다. 마눌은 급히 먹으면 체 한다면 렌지에서 머그컵에 우유를 따끈하게 데워 탁자에 놓고 마눌도 흐뭇한지 곰보빵이 맘에 든다며 빵을 집어 한 입을 깨물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아!!~~맛있다...호들갑은... 저도 따끈한 우유를 한모금 머금고 누런빵 하나를 집어 씹기 시작합니다. 베란다 밖 K.T본사 건물 꼭대기의 전광판 시계가 어느덧 밤11시를 알립니다. 헌데~ 헌데 말이죠... 그 빵맛이 예전 "국민학교"시절 "강냉이(옥수수)급식빵" 맛 하고 똑같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전 국민학교 시절 "강냉이 급식빵"을 기억하십니까.? 그러니까...국민학교 시절. 60년대... 한 반의 반 이상이 도시락은 커녕 점심시간이면 수돗가에서에 주둥이를 갔다대고 수돗물로 주린배를 채워가며 힘들게 공부하던 그 시절엔 외국 특히 미국에서 원조 받은 강냉이 가루로 죽을 끓이고 아님 손바닥 보다 작은 강냉이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우리 월님들도 기억 하시겠죠. 강냉이 죽 한그릇과 돌덩이 처럼 굳은 우유가루를 들고 그것도 가족들과 나누워 먹으려고 먹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집에서 큰 양푼에 끓여 온 가족이 둘려 앉아 큰 대접에 떠 먹곤 했었지요. 외국에서 원조 온 헌 옷가지를 집으로 가저와선 어머니가 삭 바느질로 줄이고 깁고 해서 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입고 다니던 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 그 옷들은 지금 우리가 헌 옷 또는 유행이 지나거나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을 아파트 헌옷 기증함에 넣던 옷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은 옷들이 제 3세계에 우리도 원조를 한다지요. 이제 그렇게 지지리도 못살았던 코흘리게 조무래기들이 어느새 오십줄... 요사이 T.V에서 베이붐세대(1953 ~ 1963)라 하여 정년이 어떻니 저쩌니 떠드는데... 사실 정년이 코 앞에 있지만 경제 적으로 막상 해 놓은것은 별로 없고 부모와 자녀들에게 책임감은 높아 최선을 다 했지만 정작 우리들은 자식들 눈치보기 하지요. 그렇치요???? 속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들도 많지 않고 가족들과 소통에도 서툴러 스트레스나 괴로움에 한숨만 짓는 답니다. 탈진 상태의 우리들에게 희망은 없는건가요?? 7~ 80년대엔 대한민국 호경기시절엔 산업의 역군으로 중동으로 중동으로... 80년대 중반엔 넥타이 부대 혁명의 상징으로... 군 시절엔 10.26... 5.18...12.12 격동의 세월속에서 허걱대며 달려온 우리들의 50대들 ... 이젠 자식들도 성장해 대학을 다니거나 아님 졸업을 했더라도 취직이 않되고 또한 딸들은 결혼 정령기에 이르렀으니 참!!!!!....에~~효... 전쟁이 끝나 지지리도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살았고.오죽하면 "맥아더"장군이 말하길 이 나라가 자력으로 일어서려면 "100년"도 모자랄 것이다 말했는데 우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배경에는 외국서 원조 해준 강냉이 빵으로 주린배를 채워가며 공부하고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야근"과 "철야""특근"을 밥먹듯이한 우리들의 50대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제과점에서 사온 "강냉이빵" 한 조각에 그 옛날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 봅니다......끝 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50대...화...이...팅. 씨^_____^익 아이고 눈이야!!! 오타가 많으니 이해 바랍니다.^^

전 30대라 패쓰합니다 ..
올해도 내년도 30대할랍니다
저같은경우는 할머니가 해주신 보리곰빵을 먹었드랬죠
소주 도가에서 나오는 (아래기) 찌꺼기
타다먹고 취해서 온마당 뒹굴던 그래도 그때가
역사의 한장 새롭네요 그때가
만년 39살인 저는 빵뚜껑이 새카맣게 탄 급식빵이 먹구 싶습니다.

옛날 국민학교 댕길때... 그땐 빵차가 시커먼 매연을 뿜는 완전 뗭차였었습니다.

수업중 교문에 빵차가 들어오는 날... 모두들 와~!!빵차다~!!!소리치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빵차가 오던 그 날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기억이......ㅎㅎㅎㅎ

지난 추억을 일깨워 주신 권형님...감사합니다.

밖은 엄청 춥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국민학교(초등)저학년 때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 뒤에서
큰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여주던(소사:학교 잡무담당) 강냉이 죽을 먹었고,
4~5학년 되어서 부터 바둑판 크기의 빵을 쪼개서 한개씩 받아 먹었습니다.
이렇게 받은 빵은 혼자 먹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고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동생들과 나눠 먹었는데, 동생들은 형이 학교 마치고 오기만 동네 어귀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동생들이 기다린 건 형이아니라 빵이었겠죠.

삼천리 고물 자전거로 중.고등학교를 통학하면서
징줄(체인)이 벗겨져 맨손으로 몇번을 끼워서 손은 온통 기름투성이였죠.
1978년 입대하고 1979.10.18-19부마항쟁과 이어서 10.26과 12.12....
1980년 5월의 그날(광주민주항쟁)까지 현역 군인으로 있었고, 얼마 안있어 제대하면서
국난극복?에 기여했다고 "국난극복기장"까지 받았던 격동의 세월에 몸으로 부대끼고.....
제대 후 7일만에 입사. 청춘을 함께한 회사에서 20년 근속 후 명퇴(명예로운 퇴사?)한지도 10여년이 되었네요.

그 때를 떠 올려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권형님의 "대한민국 50대여 화이팅!" 이란 글에 힘을 실어봅니다.
요며칠전..

권형님이 말씀하신 옥식기빵!이

왜그리 갑자기 먹고싶던지 빵집을 돌아다닌적이 있습니다


빵배급량도 적어 돌아가면서 2~3일에 한번씩 받았지요

그날 그날 빵타는사람은 결석 하는 사람이 없었죠

그것도 아껴먹는다고 10리길 집까지 걸어오다 중간동네 불량배?들한테

뺏긴적도 있었죠

빵도 크기가 일정치 않아 남의 빵이 더커보일때가 더많았던거 같아요

다른맛이나 향은 옛기억이 없는데

유독 그시절 강냉이 빵 냄새만은 새록새록 입,코에 멤도는군요
생각나지요

배급받은 우유가루를 도시락그릇으로 쩌내

딱딱한것을 앞이빨을 이용해 끊어 먹던시절...

고운 쌀겨에 당원풀어 밥할때 쩌서 간식으로 먹던시절...

강냉이 가루로 빵만들어 나눠 먹던시절...

권형님 글속에 옛추억이 새롭게, 그립게 생각납니다
올 집에 갈대 빵사가야지...

권형 님...안녕하십니까...

저도 급식빵을 받았는데..이빵이랑은 다르죠....
저도 그 냄새가 그립습니다. 도시락을 못싸와야 얻어 먹을 수 있었던 빵...
근데, 이렇게 생각이 나네요.
강냉이(옥수수)죽, 강냉이빵 ----> 옥수수 내림. <--- 중증이죠? <br/>
앉으나 서나 낚수 생각 뿐 입니다.
위 댓글 다신 분들은 모두 저보다 연배이신 선배님들 이시네요.

흐흐흐, 제가 제일 젊어서 기분 좋습니다.

저희땐 초등 5학년때까지 빵을 나눠주다가 6학년 올라가니 돈내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강냉이빵 밥에 쪄먹으면 무쟈게 맛있었는데......

저는 실컷 먹었습니다.

큰형님은 빵을 안좋아 하여 제게 가져다 주셨고요,

둘째형님이 운동선수라 학교에서 매일 빵을 받아 왔구요.

셋째형은 지가 다먹고와서 내꺼까지 빼묵고

제가 초등학교 댕길땐 하급생들이 상납(자발적인, 진짜 자발적입니다)해서 ......^)^

요새 애들 그거주면 먹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진짜 맛있었는데........

아! 배고파.
얼릉 퇴근해 밥묵으야지.
옥수수빵 정말 맜있었죠..^^

빵차가오면 쟁반들고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급식하고 남은빵은 주번하고, 청소당번으로 돌아갔는데

빵 하나 더 얻어 먹을려고 일부러 청소하던 생각..ㅋ

옥수수빵 다음으로 타원형으로 된 밀가루 빵이 나왔던것

같은데요..꾸들꾸들 하니 맛이 있었는데..

안그런가요..?..

권형님..
40대가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50대 화이팅!!! 빠샤!

저는 희안하게 예전의 급식빵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는데요

가난한 시골학교에서 한조각의 급식빵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소풍갈때 다른 것 없어도 꼭 있어야했던 사이다 한병!

퇴근할때 제과점에 들어야겠습니다
촌에서 60년중반에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은 누룽국시 수제비 지금도 잊어 버리지 않네요~

미국에 원조 밀가루 성조기에 서로 악수하는 그림이 걸린 밀가루 포데기 농지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한해 흉년이 들면 쌀밥은

아버지에게 조금 나머지 가족은 무우썩인 꽁 보리밥 밥먹고 밖에서 뛰어 놀면 이넘에 자식아 밤먹고 헛배 꺼준다고 꾸중을

들었지요~요즘 보리밥을 별미로 먹는다고 하지요~ 그분들은 어릴때 보리밥에 골병이 않들었던 분들 입니다.

저 아직까지도 보리밥 처다보지도 않습니다...

면 까지 거리가 10리 학교 잡일을 돌보시는 소사라는 직책을 가진분이 학교에 한명씩 있었지요.

이 소사분이 자전거를 타고 옥수수빵을 배급을 받아오면 공부하던 아이들도 창문밖을 내다보면서 와~빵온다~~~

그땐 우째 그렇게도 맛이 있었을까요~ 방아간에서 쌀을 찢고 나오는 덩게 덩게떡~까껄까껄 해서 목에 넘어가지 않지요.

춥고 없었서 못먹던 시절~ 지금에 옥수수빵이 그맛이 날까요~^)^*

그때에 고생이 아주 아련한 어릴때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권형님에 추억 여행~
아...그때 , 그 옥수수빵 그렇게 먹구 싶었는데 저희집도 가난했지만 그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사람에게만 주던 빵이라 빵받는 애들을 부러워했었는디... 그래도 같은 동네 친구 아버님이 수위로 계셔서 그친구 통해 여러번 얻어먹은 기억이 새롭네요....
제기억에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지금 먹어보믄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애들은 아예 안먹으려할거 같기두 하구...
안녕하십니까? 권형님 쿠마도 국민핵교 1~2학년시절
쿠마의고향 ( 경기도김포 ) 마송국민학교 재학시절 옥시기빵 한조각을
짝궁이랑 반을갈라 먹었던 기억이납니다 그당시 쿠마 싸움대장을 하고있어서 지금의 짱 ㅋㅋㅋ
빵은 배불리 먹었던기억이...
하교길 교문앞을 나서면서 우리의 아지트인 산소가있는 잠듸밭에서 친그들과 같이먹던 그빵이 생각납니다
강냉이 죽 강냉이 빵
우유 쩌서 돌맹이처럼 땡땡한 과자.?
알량미 쌀........
50년대 맨날 묵는기 원조로 받은것으로 연명을 했으니......
난 왜 옥수수죽 맛은 기억이 안나고 눈앞이 침침해지는거지?
기억 안나면 지는건디 ㅜㅜ
나두 늙어 가는 건가? 젠장
다녀가시고 허접한 글에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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