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겨울밤이 깊어가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일전에 이곳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북쪽이 고향이신 부모님들은 국수(소면)을 유난히도 좋아 하셨습니다.
뒷 곁에 뭍어둔 김치 항아리에서 살얼음이 살짝 잡힌 김치국물.또는 차디찬 동치미 국물에
하얀 소면을 말아 먹는 맛이란 수십년이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북쪽에서 피난 내려온 부모님 고향분들이 오갈때 없으시면 저희집 뒷방에 몇 분 씩 신세를 지곤 하셨는데
때가 되면 항시 어머님이 소면을 삶아내어 멸치국물에 말아 고명을 얹저 드리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이 타고 오신 차에 싣린 상자 하나."*양라면"
겉 박-스에 쓰인 글씨를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그때가 1964년 쯤 된것같습니다.
어머니가 감춰놓으시고 이따금씩 끓여주신 "라면"의 맛은 제 개인적으론 국수의 새로운 맛이 였습니다.
"꼬불꼬불"한 면발 새로운 국물 맛...그리고 그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은 그 맛이란.....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라면이 처음 들어 온 것이 1963년 "*양라면"을 통해서라 합니다.
당시 그 회사 회장(전중윤)분이 일본의 식품회사를 통하여 생산기계를 들여와 만들기 시작 했다죠.
"라면"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땐 국민들의 첫 반응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합니다.
"밥"이나 "국수"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 눈엔 "라면"은 생소한 식품의 형태였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 "라면"이 개발된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거고
지금이야 쌀이 남아 도는 판국이지만 6 - 70년대만 해도"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인지라 전국적으로
"쌀 절약" "혼 분식" 장려 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던 무렵이였답니다.
술을 빛거나 떡을 찧는것은 당연히 금지 되였고 미국으로 부터 대량으로 공수된 밀가루를 이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보라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개발된것이 "인스탄트 라면"이였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라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기에 쌀 소비량이 늘어 났다는
기사를 빛바랜 신문에서 볼수 있습니다.
군 시절엔 다섯개가 한봉지인 라면을 싸리나무로 불을 지펴 두꺼운 양은 세숫대야에 끓여 먹고 내무반에
시뻘겋게 달은 "뻬치카" 방열판에서 "반합"에 끊인 "라면"의 맛은 세상이 세번하고도 몇번을 변해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밤 보초근무땐 "야전잠바" 주머니에 넣고서 오독오독 씹어 먹던 기억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죠.^^
예전엔 변변이 군것질 거리가 없을뿐더러 가게조차 별로 없던 시절엔 많이도 부셔 먹었던 기억 있으시리라...
"라면"의 총 갯수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는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소비 갯수로는 당연 "우리 나라"라 합니다.
월님들!!
"라면"은 누구나 손쉽게 끊일수 있는 음식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스프와 면을 넣는 타이밍과 불 조절에 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하지요.ㅎㅎㅎ
"뽀빠이" "라면 - 땅" "자 - 야" 등등 라면으로 만든 과자...기억들 하십니까?????ㅎㅎㅎ
요즘은 뭔 놈에 "라면" 종류가 이리도 많은지 원~~
집안 어딘가에 또는 우리가 출조 할때 꼭 필수품으로 한 두개씩은 챙겨가는 "라면".....
출출 하시면 지금 끓여 드셔보십시요."계란 탁" "파 송송" "김치"와 함께.............끝....................감사합니다... ^)^
그때 그 시절...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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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그룹에서 분리되어 농*라면으로 된 이후 다시 모기업이 라면에 손을 대면서 농*도 나오고 롯*도 나오고요.
군대가서 일주일에 두개씩 꼬박꼬박 먹었죠. 계란을 하개씩 날계란으로 주면, 안 먹고 반합속에 감춰 뒀다가 짬밥에 비벼먹던 시절이었죠.
뭐니 뭐니 해도 처음 나온 라면은 고급음식이었죠. 짜장면 값이나 비슷한.. 그게 먹고 싶어서 꾀병을 부리기도 했지요.
저는 라면중에서는 시락면이라는게 기억에 남네요. "산에가야 범을잡고 먹어봐야 맛을 알지 시락면" 이라고 광고 했던 시래기 들어 있던 라면. 청보라면도 있었죠? 청보핀토스프로야구단 기업.
유명했던 라면 동물성우지 파동. 우지는 원래 동물 식물의 큰 구분은 의미없다고 했는데도 사람들의 소비패턴과 라면 점유율 판도가 변했다 하데요. 그 이후 촛불 집회이후로 다시 판도가 다시 바뀌었다 들었고요. 확실한 근거는 모르지만요.
나이가 먹으면 확실히 라면 맛이 떨어진다 하는데, 물가만 가면 다시 그 맛이 살아나는 것 같아요. 라면 없었으면, 물가에서 굶어죽었을 지도 모를일이지요?
라면회사 분들은 낚시꾼들한테 고마워 해야 하는데....
이 댓글을 쓰는 동안에도 위에서 라면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군침이 넘어갑니다.
권형님 덕에 라면 잘 얻어먹고 잡니다...
다른건 몰라도 자취생 끼리도 라면은 궁합이 맛아야 되지요? 냄비에 물하고 라면을 같이 처읍부터 넣고 끓인다느니, 다 익은 라면에 날계란을 그때깨서 넣는 다느니, 라면을 네 등분 이상 뽀개서 긇인다느니...
혹시 여기 월님들도 그런 분들 혹시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전 영, 질색입니다... 딴 건 몰라도 라면은 개성이 맞아야 합니다.
쩝 ~ 쩝 ~ 쩝
어 ~ 라 그래도 배는 꾸루룩 꾸루룩.....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처음 라면이 나왔습니다.
그 때는 삼양라면이 처음 나왔는데 지금의 라면과는 품질이 틀립니다.
면을 닭기름에 튀기셔 라면 면발을 만들었지요.
라면을 냄비에 넣어서 끓이면 국물이 샛노란 색이었습니다. 닭기름에 면을 튀겨서 라면을 만들었으니 국물이 샛노랗었지요.
그리고 라면을 오래 삶아도 지금처럼 퍼지지가 않았습니다.
오래 삶아도 라면 면가닥이 펴지지가 않고 꼬불랑하였습니다. 국물은 진하고 그리고 완전히 고깃국물이지요.
닭기름에 면가닥을 오래 튀겨서 라면을 만들었기에 라면을 오래 삶아도 라면 면발이 퍼지지않고 항상 꼬불꼬불 하였지요.
아마 그 당시의 라면의 품질을 그대로 유지한 체 현재 만든다면 현재 시세로 라면 한 개당 가격이 현재 가격보다
100% 는 더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 라면은 값싼 식품이 아니었지요.
지금 우리들이 손쉽게 먹는 라면과 그 당시의 라면과는 품질에서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과거의 라면이 품질면에서 지금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그런 라면이 몇 년 지나니 수요는 폭발적이고 가격은 엄청 낮아졌는데 맛은 점 점 하락하더군요.
초창기의 라면은 고급 음식이었는데 몇 년 지나니 서민의 1회용 보급형 음식으로 점 차 바뀌었지요.
지금도 수 십년 전의 그 라면 맛을 잊지못합니다.
삶아도 굉장히 꼬불꼬불하고 샛노랗면서 고깃국물냄새가 진하였던 그 라면 -----
국민학교 6학년 때에 중학교 입학 입시 공부 준비하는라 과외받을 때에 가정교사와 밤 12시에 먹던 라면 ---
진짜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랑 친구 어머니들이 번갈아 가면서 라면 삶아서 장바구니에 담아서
밤 12시에 과외방으로 매일 배달하였으니깐요 ..... 에효 ~
요새 애들도 공부 엄청나게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있던 그 시절 에효~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애들이
새벽 2시까지 일 년 내내 공부하였으니 .....
그 당시 매일 밤마다 밤참으로 지겹도록 먹은 것이 샛노란 국물의 완전 꼬불꼬불 면가닥의 고깃맛 라면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먹는 라면은 그 당시의 라면과는 하늘 땅 차이로 품질이 형편없는 라면입니다.
재미있지요?
지금은 음식이 과거보다 더 풍요로와 졌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과거의 음식이 훨씬 더 나았습니다.
심지어 공장에서 만든 라면조차도 과거의 라면이 질적인 면에서 지금의 라면과는 비교도 안되게끔 품질이 좋았지요.
우습지요?
이제일어나 밥맞도 없든차에 라면 한그릇
잘먹고갑니다
낚시터에서는 이게제맞이지요 추울떠한그릇
야참으로 정말끗네주는 라면
생각만해도 옛생각이나네요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생각이 나에 가슴 한편에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유별시리 둘째아들인 나를 지독히도 사랑하시던 아버지에 생각이 말입니다.
라면이 처음나온시절이 아마 제가8살때 인것 같습니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신 아버지 께서는 부억에서 뭔가 끌이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온동내에 퍼지게 하드군요...동내 사람들이 이게 무쉰 냄세고~응~~~
시골 23호에 집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산골 마을에서 라면에 냄새가 얼마나 신기하고 먹고 싶은는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냄비에 라면이 읶어갈때 노랑 기름이 동동 뜨있는것 닭고기에 냄새가 확실하였습니다.
그때 라면을 처음먹어 보았지요.지금도 그 라면에 향기와 맛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요즘에 라면은 향이 그때에 향이 절대로 나지 않습니다...맛또한 마찬 가지구요.
몇년후에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돌아 가셨지만요...
지금 라면을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우선 한끼를 때우는데는 유용하겠지만 글세요 건강에는 별로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뽀글뽀글 끌어오르는 아버지와에 어릴적 라면에 추억 아침부터 마음이 짠~하네요.
건강을 기원 합니다.
어릴 때 많이 먹고 싶었던 라면입니다.
국수는 멸치 다시국물을 어머니께서 해주셔야 먹을 수 있어서 스스로는 해먹기 곤란했지만
라면은 간편하게 끓여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삼양라면이 제일 맛이 있었고, 지금도 저는 수많은 라면 중에서 삼양라면이 제 취향입니다.
라면과자(뽀빠이,라면땅,자야..)는
자전거로 학교 다닐 때 호주머니에 넣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뽀빠이 그림의 바지는 파란색이고 상의는 붉은색이라 남.북한을 표현한 거라는
근거없이 애들끼리 떠돌았던 예기가 생각납니다.
권형님 덕분에 라면과 추억 듬뿍 먹었습니다
비닐봉지도 투명했는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라면 정말 맛있었는데.....
권형님 잘~보구 갑니다...
시골 고향집에서 구멍가게를 했을때가 있었습니다
생라면 한번 먹어볼려고
엄청난 노력을..
결국 한봉지 먹고 디지도록 맞았습니다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
낚시터에서 만큼은 라면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시절 군것질의 최고였죠..
잊혀진 유년시절을 새록새록 나게 해 주신
권형님 감사합니다..^^
60년대말 70년대초 기름 동동 뜨는 라면...생각하면 눈물 날라캄미다...
순수 라면만 끓여먹는집은 잘사는집(?) 였구요...
라면2개에 국수 한뭉치 섞어서 끓여 먹었어요~
꼬불꼬불한 면발 서로 건져 먹을려고...
젓가락 칼쌈 하던 유년시절이 어제 같은데요~
멀칼 히끗히끗한 지천명의 나이만 먹었으나
한낱 미물인 물속 붕어의 명도 잘 몰라요...ㅠ.ㅠ
부모님은 국수 건져 자시곤 했지요
어머님이 외가집이라도 가실적이면
아버지랑 끓여서 먹던 라면은 푹 퍼진 라면인데
계란 껄쭉하니 풀어서 먹던 그 라면은 진짜 맛있었습니다.
나중에 꼬들꼬들한 라면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식미가 안맞아서 힘들었지요 ㅎㅎㅎ
초딩1, 2학년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학교 갔다오면 아랫묵 이불 밑에 스치로폴로 만든 밥그릇 모양 보온용기에
라면을 끓여 밥그릇에 담아 뒀었는데
젓가락을 대면 그릇 모양 그대로 라면이 들렸지요
당근 물은 한 점도 없고
그래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
가물가물 합니다.
학교에서 야자하고 밤12시에 오면 어머님께서
양은냄비에 계란 풀어서 끓여 주셨는데.......
라면에 계란 넣는거 안좋아합니다.
하두 먹어서......
어머님 생각나게 만드시네요, 군형님!
우리나라 국민들중 대부분이 라면이 뭔지, 어떻게 먹는지를 몰라서
초기에 판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직원을 모두 서울의 사대문으로 보내 라면을 직접 끓여서 시식하게한 이후부터
조금씩 국민들이 라면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군납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5개들이 덕용포장인 '해피라면'이었답니다.
잠자던 사람들을 벌떡 일어나게 만들고, 울던 아이도 그치게 만들었던 라면!
지금은 예전의 그 라면맛이 안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그만큼 각종 맛난 먹을거리가 많아지고 있고
우리의 입맛이 많이 변해버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라면냄새가 코 끝에 맴도는 것이 오늘은 아무래도 라면에 공기밥 한그릇 말아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