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의 신작로에 "새나라승용차"가 보이는걸 봐서 60년대 같습니다만...
전쟁으로 전국의 산들이 초토화되여 벌거숭이로 땔감이 궁핍하던시절...
땔감으로 닥치는 대로 아무것이나 아궁이에 쓸어 넣고 불을 때었기 때문에 검댕이(그으름)가
덕지~덕지 많이도 생겨 구들장 밑이고.. 굴뚝이고.. 그렇게 잘 막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껌한 검댕이란 참 과관이였습니다.
굴뚝이 막히면 땔감도 잘 타지 안을뿐더러 아궁이의 불은 역류해 위험하였고 연기또한 눈물 콧물 범벅이였지요.
방 또한 따듯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검댕이 생기지 않는 연탄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던 60년대말 또는 70년대 초반 무렵
또는 그 후 주택개량으로 장작사용이 사라질때 까지는 이런 아저씨들의 역할이 자못 컸습니다.
그 차림은 어깨에는 "헝겊방망이"와 "수세미" "솔" 같은 것을 끝에 단 두 개의 가늘고 긴 "대나무쑤시개"를
둥글게 "용수철"처럼 말아 어깨에 메고 몇 발짝에 한 번씩 커다란 "징"을 울리며 "굴~뚝 소제하세요~"
혹은 "굴~뚝 쑤셔요~" 것도 아니면 줄여 "뚫어~"하던...
직업의 특성상 일의 특성상 옷은 물론이요. 얼굴과 손은 항상 검댕칠로 다녔고 작업복 역시 항시 남루한 차림이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휘몰아칠떄 주택개량등으로 설자리가 없어진 "굴뚝청소부"
혹은 "굴뚝소제부" 아저씨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지난글 그때 그시절...87(동이트는 새벽꿈에)에 다녀가시고 추억을 공감하시며 댓글로 용기를 주신
월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씨-__^익
그때 그시절...88(혹시 기억들 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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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엔 올림픽이 빠지면 섭하지 않을까 합니다ㅋ
추억의 글..늘 잘보고 갑니다.
둥그런탱크안에 환자를 넣는모습...
제가 태어나기전의 일같네요!
소외감,느낍니다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ㅠㅠ
덕분에 옛사진보고 감회에 젖고갑니다..
늘감사한마음입니다
울 동네 저 아저씨 살고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