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봄날.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열차들은 큼직한 손잡이가 달린
"야전(야외전축)"을 든 장발의 청춘들로 붐볐죠.
스테레오가 되지 않는 모노 스피커와 곡의 빠르기를 선택하는 "33/45"
회전 조절 스윗치가 달린 이 움직이는 음악실은 고고춤 열풍을 야외로 확산시켰읍니다.
세운상가에서 해직판 (백판이라고 불렸다) LP를 한장에 500원씩 주고 사서 야전위에 올리면.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흐르는 CCR의 "헤이 투나잇" "모리나" "프라우드메리"
톰 존스의 "기프 온 러닝" 이 강촌과 대성리의 모래밭을 춤추게 했다. 일부러 찢은 교모를
눌러쓰고 교련복 나팔바지 자락을 펄럭이며 몸을 흔들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써니텐 타입(고고춤을 추는 시간 "흔들어 주세요" 라는 CF에서 나온말)
"고부갈등" (고고 출까 블루스 출까 고민) 이란 유행어도 나오고
행락철 단골 사고뭉치로 "열차고고족" 이 꼽힌 것도 이 무렵이고 비좁은 기차간 통로에서
흔들어대다 78년 봄에만 여러명이 즉심에 넘겨진 사실을 아십니까?ㅎㅎㅎ
고고는 60년대 초 뉴욕의 "위스키아 고고(Whiskya Gogo)라는 술집 이름에서 시작됐으며
그 뜻은 "한잔먹고 뛰어보자" 쯤 된다 고고가 국내에 상륙한 것은 65년 이였지만
열풍이 분 것은 69년 여름 그룹사운드 대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다.
71년 서울에는 고고클럽이 십여곳 있었고 세곳은 철야영업을 했을정도니
새벽4시 택시들은 춤추다 지쳐 물먹은 솜같이 퍼진 이들을 청진동 해장국집이나
마포 설렁탕집으로 실어 날랐다. "밤샘 고고"는 청소년비행의 상징이 됐으며
어느 칼럼니스트는 코리아에 '코리아가 돈다고 꼬집었어죠.
72년 당국은 고고 금지령을 내렸고, 밤10시 라디오에선' 사랑의 종소리'가 울렸으며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효과는 신통치 않았고 고고 열풍에 "편승하는 상혼도 기승을 부렸죠.
77년 5월 명동의 다방 십여곳이 '초저녁 고고' 간판을 내걸었다. 10대를 겨냥해 고고장 영업을 하는 다방도있었죠.
한 고고클럽을단속하니 손님 전원이 미성년자로 들어나기도 했고
고고를 막으려는 당국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합니다.ㅎㅎㅎ
뜻밖에도78년 존 트래볼타가 그 일을 해냈습니다. (저도 봤죠. 을지로 스카라 극장에서)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와 그리스는 이땅의 고고판을 디스코판으로 단숨에 판갈이했습니다.
고고도 디스코도 시들해진 2009년 그 신바람들이 그리운건 저 뿐일까요...
오십대중반 이상의 아련한 추억일 겁니다 ㅎㅎㅎ
그때를 아십니까?
그때가 그립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이 침침하여 오타가 많으니 양해 바랍니다^_______^*
그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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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나날되십시요.
제일 많이 생각 나는것은 헤이투나잇" 모리나" 뛰어라 기프 온 러닝구""대단했지요...세월이 좀 지나서 크리프에" 더영온스"
그때에 고고열풍 마저 없었다면 우리에 젊은이 들은 더욱더 암울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아련한 추억은 75년도 부터 시작이 였네요...국내가요 로는 신중현에 "미인 이종용에"너 조용필에 부산항" 등
대구쪽은 고고 장도 난리 였지만요...75년부터 79년까지 팝 음악에 감상실 그의 폭팔적이 였지요...
존트라볼타가 몰고온 나이트 휘버 디스코 열풍에 비지스에 환상적인 화모니에 완전히 대한민국을 팝에 물들어 버렸죠...
몰래 뚱친고 얻은 돈으로 야외전축 하나 구입 할라고 밤잠 못자면서 고생한 사람 월척에 몇명이나 있을까요.??
권형님에 글에서 옛추억에 그림자를 생각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살모시 지어 봅니다...
차일 피일이 되어버렸는데 권형님이 오디오(야전)얘기를 하셨네요
저는 야외전축이 아니고 포터블카세트데크를 들고 다녔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않은 깡촌에 가난한 떠꺼머리가 카세트데크 가당치도 않지만
한해 수박농사 지은 보상으로 그 당시 엄청난 거금을 들여
구입하여 4년여 저의 좋은 친구가 되었었지요
고고,저는 그때에도 우리 가요만 즐겨들었답니다
나훈아,남진,문주란,
한시대를 거슬러올라가 SP시대의 기린아들(남인수,고복수,이난영,황금심,백년설등등)
그 조금뒤에 최갑석,명국환,방태원,박재란,최숙자등등의 우리 가수들의 노래만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들었지요
팝송과 클래식에 조금 자리를 내어준것은 40줄에 들어서 였었지요
언젠가 취미이야기를 하다보면 40년 오디오역사속에 녹아있는 팝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못먹고 못입었던 가난한 시골청년이었지만
그때가 못견디게 그리울때가 있답니다
디퍼플의 "하이 웨이 스타"도 있었고..
강한 비트 음악의 머리를 흔들었었죠..ㅋㅋ
그당시에 쥬크박스에 10원짜리동전 넣고
원하는곡을 누르면싱글판이 세로로 돌아가던...
꿀단지,하숙생...등등... 만화...ㅎㅎㅎ
친구들과 돌려가면서 보면..
몇장씩 찢겨나가곤 했었는데..ㅋㅋ
그때가 그립네요....
잊고 있던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 나게 하네요
파도. 판코리아. 맥심 .
무궁화 백화점 지하에 있던 ?
향촌동 막걸리 골목 (여기서 상다리 몇개는 뿌쌌읍니다)
제 고등학교때는 디스코 였죠~~~~~~~~~~~~
추억은 감미롭습니다.
종로2가, 광교, 무교동을 중심으로 산재해서, 팝이나 클래식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던
추억의 음악 감상실들, 저도 그곳들의 단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장료에 차 한 잔 값이 포함되어 있어서,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도 헤아려주었던 살가운 시절,
그 시절이 진정 그립습니다. 디-셰네, 뉴-월드, 쎄시봉, 르네상스, 크로이체르. 아폴로.....
이제는 잊어야하겠지요. 돌아갈 수도 없고요.
정말 멋지신 분이네요.그리고 위의 글 올리신 분들도 모두요....
옛 추억을 먹는 기회 주셨으니 저도 한말씀드립니다.
저 고향은 경주인데요.그 당시는 가을이면 전국의 내 또래들은(중.고교) 수학여행은 그쪽으로 다몰리는데,
학교마치면 얼룩무늬 교련복장으로 가을겆이에 바쁘신 부모님이 계시는 논으로 뛰어갔습니다.
박물관.첨성대.천마총.안압지를 주변에 두고 그중심에 반월성이 있는데, 저의 집과 논도 인접해 있어서
늘어선 대형버스 대열속에 수학여행 즐기는 또래들과 길가 논에서 일하는 저와는 늘 상반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제미있었던 것은 버스가 지나면서 뿌려대던 펜팔 쪽지가 너무많아서 그중 글씨 예쁜 쪽지만 골라서
다음날 학교가서 친그들에게 나눠서 펜팔도 많이했고, 들에 일하러 가지않을 때는
친구들과 007가방 같은 야전(야외전축:한쪽은 몸체.한쪽은 두개로 분리되는 스피커) 통기타 들고 반월성에 가서
go go춤추고 통기타 배우며 학창 시절 보내며, 수업 시간에도 팝송 가사적어 연습하고...
근래에 동창회 모임에서 친구들과 노래방가면 제 18번이 "불꺼진창"인데 감정좋게 한번부르면
다음은 신나는 노래 꿈의대화로 옛추억을 먹는답니다.
낚시 오가는 길에는 옛날 그룹사운드들의 노래들과 "추억의 학창시절"이란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가슴앓이..겨울아이..불놀이야..긴머리소녀..하얀나비..오동잎..한잔의추억.. 왜불러.........
몇해전 부터는 나이를 셈하지 않는 안타까움(낚시할 인생이 짧아져감)에 젖어 있습니다.
가겐 잘 되시죠...
빼빼로님^^ 맞습니다 맞고요...
바리깡에 고속도로 ㅎㅎㅎ
젊은날에 초상 입니다...
봄봄님^^
포터블 카세트 테입 그 귀한걸요.
독수리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진
별표 전축 그리고 기쁜 소리사...
다음글 기다리겠습니다...
jazz님^^
맞아요...
싱글판 세로로 돌아가는것 본것 같네요.
대찬붕어님^^
파도?판코리아? 맥심?향촌동 막걸리? 무궁화 백화점?서울에 있지않은 지명 갔읍니다.
젊은 시절 생각 많이 나시죠.ㅎㅎㅎ
붕어와춤을님^^
고고 좋지요.
당시 대세는 고고타임 조명좋고 물 좋고 ㅎㅎㅎ
철없는붕어님^^
저도 어디선가 본듯한 ㅎㅎㅎ
많이 알고 계시네요.
예.당시엔 종로가 대세였죠 그리고 광교 무교동 내친김에 명동까지.
오! 쎄시봉 정겨운 이름이네요.생각나네요 학림다방...
소쩍새우는밤님^^
야전 ㅎㅎㅎ그렇죠 반 분리형.
참 좋았어요.예전엔요!!
추억을 회상해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_____^*
예전엔 참 좋았습니다 당시엔요...
크리든스 크리워드 리바이벌 ... 맞나 가물이넹...
비오니 누가비를보앗나요 듣구잪당
해뷰애버씬드레인 ..ㅋ 영자판몬찿겠어용^^;;
알지요~ 알고말고요^^
장발 구류3일
열 나고 답답하고 숨막혀 죽눈줄 알았습니다
지금생각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습니다 ^^